탈학교 후 헤매던 내게 ‘등대’가 되어준 곳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17살 최선이 경험한 세상

최선 | 기사입력 2012/11/14 [16:37]

탈학교 후 헤매던 내게 ‘등대’가 되어준 곳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17살 최선이 경험한 세상

최선 | 입력 : 2012/11/14 [16:37]
[‘일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10대, 20대의 획일화된 인생의 궤도를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개척해가는 청년들의 시간과 고민을 들어봅니다. 특별기획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연재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엄마는 고등학교를 안 다녔어”
 
▲ "엄마는 고등학교를 안 다녔어." 엄마의 말은 어두웠던 하늘에 한 줄기의 빛과 같았고, 나는 검정고시가 내 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 가기가 너무 싫었다. 겉으로는 “교육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공부는 이런 식의 학습이 아니다. ‘인생은 성적순이다’는 식의 학교가 싫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숨겼던 다른 이유가 있다.

 
새로운 학급,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기가 너무 어색하고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는 한 학년을 올라가는 게 무서워서 울었던 적도 있었다. 집에서나 동네에서는 새롭고 색다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학교만은 예외였다. 그래서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고등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음, 엄마는 고등학교를 안 다녔어.” 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엄청 놀랐다. 고등학교를 안 다녔는데 대학을 나왔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대학교는 어떻게 들어간 건지 여쭤보았다. 검정고시를 통해서라고 하셨다. 말로는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자세한 건 몰랐는데, 검정고시를 보면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졸업증을 딸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어두웠던 하늘에 한 줄기의 빛이 내리쬐는걸 느낄 수 있었고, 검정고시가 내 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등지고 나오게 되었다.
 
탈학교 십대에게 손 내밀어준 지역사회
 
하지만 학교에서 일생을 살아온 나는 밖에서 새로운 난관을 맞이했다. 학교에서는 “공부해라, 여기만 외우면 된다”고 지시라도 해줬지만, 밖에서는 그런 말을 해 줄 사람도, 공부를 시키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잉여’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평소 학교 다닐 땐 남는 시간이 얼마 없어 부담 없이 하루가 지났는데, 학교 밖으로 나와 보니 어떻게 시간관리를 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았다. 게다가 공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나를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고,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너무 어려웠다.
 
▲ 충북청소년 종합지원센터가 제공는 스마트 교실은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 최선
이런 막막함 속에 던져져 있던 나에게 큰 도움과 힘이 되어준 건, 충북청소년 종합지원센터(이하 청소년센터)와 청년고용센터 세움이라는 곳이었다.

 
당시 친한 언니와 동생, 우리 셋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던 우리에게, 청소년센터가 제공하고 있는 ‘스마트 교실’은 유익한 곳이었다. 스마트 교실은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스마트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되면서 청소년센터와 만나게 되었다. 스마트 교실은 대학생분들이 와서 책의 내용을 가르쳐주거나, 검정고시 작년도나 재작년도 문제를 가지고 설명해주시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재미있는 수업도 있고 재미없는 수업도 있는 것이,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갇혀서 공부만 주입당하는 그런 학교가 아니라,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배움을 주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스마트 교실 안에서의 나는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항상 배우고 싶었던 춤, 뻣뻣한 몸으로 도전하다
 
학교 밖으로 나와서 얻은 자유시간을 검정고시 준비만 하며 보낸 것은 물론 아니다. 청소년센터에는 ‘두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직업의 기본에 대해 알아보고 아르바이트 최저임금이나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알려줬다. 우리는 자신이 해봤던 알바 등을 이야기하면서 어울려 게임도 하고 직업체험도 하였다.
 
‘두드림’을 참여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안면을 튼 사이가 아니었다. 솔직히 참여하기 싫을 정도로 어색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 나가다 보니 어색함마저 익숙해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오가면서 인사는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 청소년센터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인 '두드림'에서 요리체험을 했다.  © 최선
프로그램 마지막에 요리 체험을 했는데, 캘리포니아 롤과 해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망하면 어떡하지.’ 라고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까지 받아서 나쁘지 않았다. 단지 요리 후 쌓인 설거지 감이 나의 한숨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리고 격주 금요일마다 동아리 활동을 했다. 나는 춤은 못 추지만 댄스동아리에 들어갔다. 항상 춤을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목만 옆으로 움직이는 동작은 잘했다. 하지만 역시나 적시나, 나는 정말 춤을 못 췄다. 특히 웨이브는 뻣뻣함의 끝을 보여줬다. 유연성은 좋은데 웨이브는 안 되니 내 몸은 보통 ‘유연하면 웨이브를 잘한다’는 상식의 틀을 깨는 것 같았다. 동아리 안의 모든 참여자가 나에게 웨이브 알려주기를 포기했으니 말 다한 거다.
 
지난번까지는 지도해주시는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나름 무슨 춤을 출까 논의도 하고 동작도 열심히 잘했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과 나처럼 못하는 사람의 차이도 있고 서로 알려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선생님 한 분이 오셨다. 춤 좀 추던 분이다. 기본스텝과 동작을 알려주고 같이 놀고 하는데,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나이 9살 차이 나는 동네오빠 같은 느낌이 들어 편했다.
 
우리끼리 꽁냥거리며 하던 것과는 달리, 중요 포인트 안무와 모두가 잘할 때까지 연습하고, 그다음에 파트 별로 안무를 끊어서 알려주시는 등 진도가 팍팍 나갔다. 올 12월에 있을 졸업식 공연 생각에 걱정이 산더미 같았는데, 좋은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인다.
 
낯선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경험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지원방안 토론회”의 오프닝 행사로 기타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공연에 참여하려 했는데, “기타에 재능이 있으니 기타를 쳐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박자도 제각각이고 호흡도 점점 빨라지고 음 이탈에 코드도 엉망이고 딱 망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주 만나서 박자 맞춰보고 서로 코드 알려주고 호흡을 맞추고 같이 놀고 연습하면서, 많이 친해졌고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발전하고 있었다.
 
공연 당일,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와 긴장 속에 공연했지만 다행히 틀린 부분 없이 해맑게 웃으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학교에 있었다면 과연 이런 경험을 해볼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기타에 빠져들었으나, 양은냄비보다 더 빨리 식어버리는 나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지금은 관상용으로 얌전히 누워있다.
 
내게 또한 의미가 있었던 경험은 체육대회나 청소년박람회, 떡 만들기, 청주 곳곳을 구경하며 다양한 체험학습에 참여한 것이다. 평소에 가기 어려운 곳을 가보고 경험을 쌓고 스트레스도 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모든 활동에 대해 “아이, 즐거워!” “행복해!” 하진 않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때쯤엔 ‘내 또래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나는 밖에서 여러 신기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올 9월에는 대전, 충주, 청주, 천안에 있는 청소년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이 모여 캠프를 갔다. 처음에 조 배정을 봤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암담하고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말도 트고 같이 밥도 먹고 장기자랑 준비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어색하고 낯설고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만 했던 나에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니!’ 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는 과정이나 경험이 두렵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학교를 나오게 된 것에 감사했고, 이런 캠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지원방안 토론회”의 오프닝 행사로 기타 공연을 했다. 같이 놀고 연습하면서, 많이 친해지고 발전해 갔다. 학교에 있었다면 과연 이런 경험을 해볼 수나 있었을까  생각했다.  © 최선

내년엔 직업훈련을 받고 싶다
 
지금은 엑셀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을 따야 한다’기보다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배우는 중이다. 사실 이렇게 배워도 ‘함수’는 정말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일주일 뒤면 시험인데, 마음에서는 ‘시험 날 잠수 탈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마음은 이래도 열심히 알려주신 선생님을 봐서라도 성의는 보여야 할 것이다. 솔직히 힘들다!
 
내가 학교를 나와서 청소년센터와 만나기 전까지는 ‘검정고시 합격’이라는 목표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검정고시 고득점 합격의 목표를 이루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갖고 싶은 직업에 대해 더 알아보고, 배우고 싶은 것들도 생각하고,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도 알아보는 등 나의 미래를 하나 둘 적극적으로 설계해가고 있다.
 
청소년고용센터 세움에서 직업훈련 패키지 사업에 참여하며, 몇 차례의 상담을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길을 찾고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닿았다. 나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느라 직업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내년에 다시 참여하여 직업훈련을 받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 적성직업으로 추천을 받기도 했던 ‘디자인’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가 있기까지는 청소년센터의 선생님들 도움이 정말 컸다. 만날 때마다 밝게 인사해주시고, 먹을 것도 챙겨주시고, 상담이 필요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친언니나 친구처럼 부드러운 상담을 해주셨다. 어려움이 있으면 조언해주고 격려해주신 분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나와 길을 잃었던 나에게 ‘나침반과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준 청소년센터와 세움. 지금도 어딘가에 길을 잃어버린 많은 탈학교 청소년들이 너무 헤매지 않고,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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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0 [15:44] 수정 | 삭제
  • 편견을 깨고 많은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생각들이 변하지 않고 이어지면서 꿈을 찾
  • 테미 2012/11/18 [21:29] 수정 | 삭제
  • 지역에서도 도움 받을수 있는 정보들이 있는데 연결이 잘안되고 탈학교에 대해서도 천편일률적인 정보만 있는 것 같아요. 좋은글 잘보고 공유해갈게요~
  • 동전 2012/11/15 [19:40] 수정 | 삭제
  • 솔직함이 매력적이고, 자신의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귀엽고 ^^ 그러면서도 행간에 고민과 성숙하는 과정이 보여서 좋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이렇게 십대, 이십대들이 학교 밖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성장해가고 있는지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다양함이 특이함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존중받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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