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빛이 꺼지지 않는 삶을 위해

<시설을 나와 홀로서다> ③ 박현, 시(詩)에 담은 자립이야기

최성규 | 기사입력 2013/01/05 [17:41]

영원히 빛이 꺼지지 않는 삶을 위해

<시설을 나와 홀로서다> ③ 박현, 시(詩)에 담은 자립이야기

최성규 | 입력 : 2013/01/05 [17:41]
[2010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포함해 지역사회단체들이 함께 시작한 장애인주거복지사업을 통해 16명의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지원이 많이 미비한 상황에서 ‘사람다운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홀로 선 이들의 이야기가 최근 <나, 자립했다>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 중 일부를 <일다>에 옮겨 싣습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홀로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우리 사회가 어떠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어떻게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삶은 장독대를 열어 맛을 보는 것과 같아요’ 

▲ 13살부터 시작된 시설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자립생활을 시작한 박현씨. 그는 시설 안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 고은경
 
“바깥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뭐랄까 장독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골집 뒷마당에 가면 있잖아요.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장독대.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가 모여 있구요.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은데 뚜껑을 열고 맛을 보면 모두 다르거든요. 대부분 맵고 짜지만 싱거운 것도 있더라구요. 하하… 속을 알 수 없는 장독대를 열어서 여러 가지 맛을 본 것 같았어요.”

 
시설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그대로 갇혀버린 사람들. 상상할 수 없는 질곡의 시간을 묻는 질문에 그가 꺼내놓은 것은 투박한 장독대였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항아리들이 굳게 박혀 있는 뒷마당.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서 뚜껑을 열고 맛을 보고 왔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그에 대해서, 아니 그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져도 한참 가졌었나보다. 깊고 어두운 터널 같았을 거라고 상상하는 내 앞엔 시골집 항아리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곳에도 사람이 있다는 그의 말에 조금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가을비가 그친 제법 쌀쌀한 어느 날, 뉴스에서는 올해 들어 가시거리가 가장 먼 하루로 기록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구름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걸음을 늦출 때마다 시설에서 썼다는 그의 습작시들을 떠올렸다. 시인을 만났구나. 시설에서 탈출한 장애인이 아니라 묵묵히 그곳을 통과한 한 시인을 만났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잊힌 침묵의 삶들을 장독대에 담아, 조심스럽게 세워 놓은 발걸음 위로 겹겹이 써내려간 시. 시인의 이름은 박현이다.
 
희망의 작은 모습
 
길가에 한마리 새가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습니다

 
작은 몸짓을 치며
걷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내 마음이 매여지는 것 같습니다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날
저 새의 몸짓은

 
삶의 끈을 잡은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힘든 삶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 길에서 따뜻한 눈길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 날’ 이후 돌아가지 못한 집
 
“학교는 가 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셨고, 가끔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봐주셨구요. 2살 위 누나가 있었는데 늘 차가웠어요. 장애가 있는 나를 더 걱정하는 집안 분위기에 질투가 났던 거라고 생각해요. 한 3살차 남동생은 나를 조금 따랐던 것 같은데 기억이 별로 없어요. 아빠도 기억이 별로. 엄마보다 내 편을 더 들어준 것 같았는데 그냥 저 하고 싶은 거 하게 두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으니까.”
 
그는 13살에 시설에 입소했다.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자고만 했지 시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출퇴근을 하는 복지관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이후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가족이 없어야 입소가 가능했던 시설은 면회도 너무 자주 오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는 이모라고 불러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면회가 일 년에 한 번이 되고, 그렇게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은 그냥 먼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과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냐고 묻는 질문에 처음엔 그랬지만 받아들였다고 했다. 늘 차가웠던 누나, 그냥 놔두라는 아버지에 대한 희미한 기억은 원망보다 이해였다. 나만 빠지면. 모든 게 제자리니까.
 
바램

세상을 날 수 있는 작은새가 되고 싶습니다
행복을 전해줄 수 있으니까

 
소나기가 되고 싶습니다
아픔과 상처가 많은 세상 잠시나마 씻겨 줄 수 있으니까

 
해가 되고 싶어라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냉정하고 굳어버린
세상 사람들 조금이라도 마음을 녹여줄 수 있으니까
 


“현이씨 시에는 작은새가 자주 등장하는 거 같아요.”

“네. 그 작은 몸이 움직이는 걸 보면... 귀엽다기보다 애쓰면서 살고 있구나 싶어요. 잘 눈에도 뜨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죠. 저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사실은 새가 되고 싶어요. 어디든 날아가잖아요. 턱도 넘고 담장도 넘고. 물고기는 육지를 건너지 못하고, 육지동물은 물을 건너지 못하지만 새는 무엇이든 건널 수 있으니까요.”

 
“시설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았어요. 시설 안에도 병원은 있었지만 아픈 사람들을 제때 치료해 주진 못했어요. 친한 사람이 있었는데 입소 후 한 두 달 뒤에 같은 방을 썼던 아저씨였어요. 그 분은 저의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글도 그 분께 배웠고 장기도 배웠어요. 시설에서 장기를 가장 잘 두셨는데, 수제자였던 제가 시설 내 장기 대회에서 그 분과 결승까지 가서 1등을 한 거예요. 너무 기뻤어요. 근데 상품이 페트병 소주 2병. 황당. 18, 19살이었는데 말이에요. 암튼 그런 분이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디가 아파서 외부에 있는 병원에 가셨다는 거예요. 수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시설은 그렇게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는 곳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낮에 있다가 밤이 되면 퇴근하는 직원들, 잠깐씩 있다가 가는 봉사자들도 모두 그에겐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었다.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요. 같이 놀았던 봉사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봉사자가 급하게 집에 가야한다고 차비를 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5만원. 그리고는 안 나타났어요. 카세트가 있었는데 그것도 가져갔구요. 직원한테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없다는 거예요. 어떤 직원한테도 당했는데, 며칠 무단결근을 하다가 이미 짤린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일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시설에서 거절했었죠. 그런데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겠다고 며칠 나오더라구요.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내 방에 찾아와서 장기를 두자고 나가자고 하더니 강당에 저를 혼자 앉혀놓고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는 빈 방에 다시 간 거였어요. CD 플레이어를 가져갔는데 그거 말고는 가져갈 만한 게 없었죠. 그때는 기분이 나빴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해 보였어요.”
 
미움과 원망 대신, 손을 내밀다
 
아름다운 손
 
손은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끈이며

 
손은 사람을
알게 합니다

 
손은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끈으로 살짝 묶어줍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 끈을
건네지 못하고

 
난 마음이 아파
내 작은 손으로 기도합니다

 
그는 사람을 미워하는 법이 없다.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시를 쓰게 된 이유였다. 문자로 좋은 노래와 글을 사람들에게 보내주니까 좋아했다고 했다. 학교에 갈 시간에 보내고 잠이 들기 전에 보내주면 너무 고맙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시설에는 친구가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들어와서 같이 사는 사람들 중에는 또래가 없고, 늘 아저씨들과 살게 되었다.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다가 멀게만 느꼈던 직원들과 봉사자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짧은 문자 메시지에 노래 가사나 좋은 글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직접 쓴 글을 보내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들 마음에 시를 쓴 것이다.
 
나의 어머니
 
나의 삶에서
늘 힘이 되어 준 그 사람

 
이제는 곁에 없다 해도
나는 당신의 품을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 빛을 보여주었던
나의 소중한 사람 힘들고 지칠 때
내 마음 아시는 듯 그 따뜻한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당신의 포근한 품으로

 
안겨주던 그 사람에게 나는 힘이
되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늘 담아 두었던 말
그 흔한 말 이제서야 꺼냅니다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 시는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쓴 시예요. 마음에서 보내드리려고. 그리고 다른 엄마가 생겼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그 분께도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요. 두 엄마에게 모두.” 

▲ 박현 씨는 한동안 멈추었던 시를 다시 쓰려고 한다. 그는 다시 시작되는 그의 시가 노래가 되기를 희망한다.     ©고은경
“어느 날 그 분에게 문자를 보낸 게 처음이었어요. 엄마… 라고 불러도 될까요? 한참 있다가 답이 왔어요. 괜찮아. 하고. 그때부터 문자 메시지가 좋아졌어요. 엄마에게 가끔 메시지를 보냈어요. 문자보다는 전화를 주시거나 다음에 오실 때 잘 받았다고 얘기해주셨지만 괜찮았어요. 그래도 너무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의 몸에서 시인을 불러냈던 문자 메시지. 문자가 좋아졌던 건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다른 엄마가 생긴 것이다. 잘해주시는 직원 아주머니와 함께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엄마-아들 하면 되겠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단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러고 싶었다고.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새 엄마가 생기고 나서 쓴 시였지만, 진짜 엄마를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다가 쓰게 된 거라고 했다.
 
어떤 어머니냐고 묻는 내게, 아마도 두 어머니에게 모두 쓴 거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 마음속으로 진짜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문자 엄마를 빈 마음에 채웠던 것이다. 더 이상 곁에 없다 해도,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두 어머니 모두에게 보냈던 사랑한다는 말…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립을 위해 넘어야 했던 ‘벽’들
 
아름다운 선물
 
난 창 앞에서
잠을 자듯 눈을 감았습니다

 
그 어둠속에서
작은 빛이 떨어지고

 
잠시 뒤
푸른 하늘 그 사이사이
떠있던 구름 조각이 떨어집니다.

 
어느덧 내 손은
머리 위로 향하고
한발 한발 다가가니

 
그 작고 힘없는 조각이 모여
내 주위를 장식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주는 선물이라고

 
“이 시는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아니예요. 어느 핸가 12월 31일 밤이었는데 눈이 오는 거예요. 시설에서는 한 해에 마지막 날이라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어서 그냥 조용히 지내는데 창 밖에 눈이 오더라구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작고 힘없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너무 예뻤구요.”

 
그의 시에는 슬픔이 없다. 어딘가 슬픔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의 마지막은 ‘사랑합니다. 기다립니다.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로 끝나고 있었다. 늘 누군가 위로를 하고 있었던 거다. 죽음의 순간을 그린 것 같다고, 어딘가 슬프게 보인다고 묻는 질문은 모두 빗나갔다. 강한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시설에서 나오게 된 과정을 물을 수 있었다. 어쩌면 전쟁터가 될 수도 있는 바깥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진작부터 나오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근데 시설장이 자립할 방법을 알려줬죠. 한뇌협(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을 소개시켜줬고, 교육도 받았어요. 먼저 나간 분이 있었는데 발바닥(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도 소개시켜줬어요. 집안에선 반대가 심했어요. 장애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냐는 거였죠. 생활비나 집을 구하기 위해 음성 군청에 활동가들과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준비했어요. 그것도 만만치 않았어요. 음성군은 거부했고, 어떤 직원은 외출을 하려고 하면 부모님께 연락을 했어요. 부모님은 소송을 취소하겠다는 지장을 강제로 찍게 하기도 했구요.” 

그야말로 거센 반대였다. 13살에 입소해 16년만이었다. 가족과 시설과 지자체가 그의 자립을 반대한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은 2009년 탈시설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거주지, 정착금 등의 지원을 구체적인 욕구에 따라 집행할 것을 요구한 싸움이었다. 탈시설 자립생활에 대해 정보를 주고 지원을 하도록 되어있는 복지법이었지만, 실상은 돈을 받고 싶으면 기초수급신청을 해서 받고 관내에 국민임대주택을 신청하라는 것에 불과했다.

 
관료적이고 무책임한 행정은 그를 주저앉히려고만 했다. 그렇게 변경 신청이 거부당하고 나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몇 년의 싸움이었지만 결국 패소 판결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사회복지서비스가 얼마나 실효성이 없고 전시행정이었는지 알리는 계기가 된 거였다.
 
2011년 1월 6일 드디어 그가 자립을 했다. 3년만이다. 그는 자립을 실감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동사무소에 가서 직접 전입신고를 했던 날을 떠올렸다. 방 안에서 마음대로 티비를 보고 외출을 하고 밤에는 늦게 잘 수도 있는 그런 자유가 자립이 아니었다. 지역 사회에서 당당하게 신고를 하고 구성원이 되는 기억. 그거면 충분했던 거다.
 
“넘어야 하는 벽은 계속 나타났어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인도 살아가는 게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제일 힘든 건 사람 관계였어요. 대인관계 경험이 없다보니까 활보(활동 보조인)와 마찰이 있었어요. 내가 채용한 일꾼인데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그럴 거예요. 거기 직원이나 봉사자들처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미안하고, 필요한 걸 말 못하는 거죠. 친해지기도 힘들고.
 
때로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 많은데 이동 보조를 시키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게 부끄러웠나 봐요. 마음먹고 술 한 잔 마시면서 풀어보려고 했는데 더 황당한 말을 하는 거예요. 앞으로 해달라는 거 해 줄 테니까 술심부름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나이어린 놈이 술심부름 시키는 건 못 참겠다는 거였어요.”
 
가슴에 품은 사랑이야기 하나
 
하루
 
길었던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어느덧 햇님도 그대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 천천히 져가고
내 마음도 어느새 어두워집니다

 
난 그대와 보낸 하루가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그대는 날 봐주진 않지만
내가 그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이 긴 밤도 그대는 날 생각하진 않겠지만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앞에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 앞에 서지 못합니다
얼굴을 마주보면 내 마음 알까봐

 
나는 고개를 돌립니다
내가 너무 초라해
손도 내밀지 못하는 내 삶이지만
나는 그래도 행복합니다

 
그 모습 잊지 않게 내 눈에 항상
 
당신이 있으니까
가슴 아프게
마음 속으로 외치는 말

 
이젠 입으로 외치고 싶습니다
그 힘든 말을

 
사랑합니다
 

나는 그를 인터뷰하기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탈시설-자립한 장애인과 함께 진행했던 워크숍, ‘스토리텔링 - 내 안의 역사쓰기’에서 떠난 강릉의 바다에서였다. 운전기사 겸 좋은 사람들과 파란 바다에 초대되었던 거다. 그 곳에서 처음 보게 된 박현은 힘겹게 마이크를 잡고 마음 속 으로만 좋아했던 짝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를 시설에 데려간 가족도, 시설에서 돈과 CD플레이어를 훔쳐간 누군가도, 나를 힘들게 했던 활동보조인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가 가슴에 품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23살 어린 나이였죠. 동갑이었어요. 시설에는 봉사자가 많았는데 이상하게 그녀가 눈에 뜨이는 거예요. 핸드폰 주소록에 그녀는 이쁜이였어요. 법학과 학생이라고 들었고 1년 휴학을 하면서 봉사를 하는 거 였나봐요. 공부도 잘하면서 이런 곳에 왜 올까 생각했었어요. 동갑이었는데 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녀가 직원 숙소에서 살면서 어려운 점이나 자기 마음에 힘든 이야기를 내게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녀가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듣기만 하는 건데 편했나봐요. 그저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할 뿐이었어요. 그녀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이쁜이는 처음엔 예쁘지 않았는데 내게 와서 심장에 박혔어요.”
 
손수건
 
슬픈 이별을 했습니다.
언제나 나뭇가지에 나뭇잎처럼
항상 곁에 있고 싶어했던 내 마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내 마음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겨울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오지만
그렇지만 나는 다시 나뭇잎이 되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장의 손수건을 드립니다
나뭇잎은 다시 이별을 말하지만

 
내 마음 이 손수건이 되어
힘들고 슬플 때 언제나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시는 곧 노래가 되리
 
그렇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 즈음에 더 이상 시를 쓰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녀를 떠내 보내서가 아니라 시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시설에 있던 ‘시인문학반’에는 나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도 많았고, 운율에 맞춰야 하고, 어렵기만한 시 공부를 해야 했다. 혼자 쓸 때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자유롭게 썼지만 시를 배우면서 더 이상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돌을 하나씩 쌓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쌓다보니 앎이라는 돌 벽에 갇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 실은 모든 시는 시설에서 1~2년간 썼던 것이다.
 
그가 오늘 내게 해준 이야기들은 세상과 싸운 이야기도 큰 꿈을 이룬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갈 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말끝마다 비장애인도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되묻는 그를 보며 나는 그의 키가 갑자기 커 보인다고 생각했다.
 
앎이라는 돌집에 창문을 내고 있는 사람. 단단하게. 더 큰 집을 짓고 있는 그를 상상한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쯤 가장 최근에 썼다는 시를 보여주었다. 근 6년 만에 쓴 시였다. 그의 집이 세상 누구보다 크게 지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의 시가 노래가 되기를.
 
“시설에서 나오면서 장애인 인권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시설에서 초등학교 검정고시 까지만 하고 도와주던 교수님이 사정이 생겨 중단했었어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쉽진 않겠죠? 일단 도전해보고 변호사가 어렵다면 장애인권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장애인 야학에서 공부도 하고, 집회나 각종 행사에도 나가고 있어요. 활동을 하고 있으니 반 정도는 활동가가 아닐까요. 하하. 참. 시도 다시 써 보려고 해요. 시 라기 보단... 노랫말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 내 글을 노래로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인생
 
많은 것을 품고
이 길을 걸어 왔습니다

 
햇빛보다 먹구름
꽃향기보다 비바람
설레임보다 두려움이었던 길

 
허나 여기 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영원히 빛이 꺼지지 않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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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이 2013/01/11 [16:40] 수정 | 삭제
  • 1. 활동보조인의 노동은 어디까지인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모두 실현시키는 그 모든 것인가? 2.활동보조인의 자기결정권과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할때, 그로인해 어떤 노동에 거부를 표명햇을때 그것은 그릇된 행동인가? 2-1. 가령 장애인 이용자가 자기결정권 실현의 하나로 자살을 도와달라고 했을때, 활동보조인은 살인죄가 성립, 동시에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자기결정권에 위배 3. 권력에 대한 저항은 존중하고 응원해야할 가치, 그러나 내가 고용한 사람이라는 말에서 ㄴ나오는 고용과 피고용자 사이의 권력관계. 권력은 고용자에게 있고 피고용인은 권력이 없으므로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한다는 인식은 또다른 권력이아닌가? 3-1. 장애인 이용자가 고용자도 아니고 고용자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게 옳은 인식인가? 4. 활동보조인의 업무영역은 어디까지인가? 할수 있는 일과 할수없는일, 해서는 안되는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고 가이드라인도 없다. 성노동도 할수 있는 일과 할수없는일 해서는 안되는일이 정해져 있는데, 4-1. 활동보조노동자는 친밀도나 관계, 같은것까지 시장에 팔아야 하는것일까? 시장에서 노동자를 고용할때, 가족같은 관계와 용모단정까지 요구하는데, 활동보조인에게 친구같은 관계, 선한 마음, 온순한태도까지 요구하는것은 옳은가? 5. 활동보조인은 자신의 인격이나 욕망이나 자기결정권은 모두 억압하거나 거세하고 기계적으로 장애인 이용자의 손발 노릇만 해주면 되는가? 이것이 기게가 아니고 무엇인가? (비마이너에 실린 일본의 활동보조인의 경우 참고) 6. 시장주의적으로 말하자면 활동보조인의 수는 25000명, 활동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의 수는 35000명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므로 권력관계는 활동보조인에게 있는것인가?
  • 활보퇴직자 2013/01/11 [02:06] 수정 | 삭제
  • 활동보조를 막 시작한 초창기에 박현씨를 보조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자립생활을 응원합니다. 큰 맥락에서 활동보조인이 권리로 보장되기 보다. 큰 맥락에서 대인관계적 측면에서 활동보조인의 눈치를 보았다는 것으로 해석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떡갈나무님의 문제제기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활동보조인의 노예화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독자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현대의 모든 노동을 노예화에 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육체노동을 담당하던 노예가 계약을 통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도 그 계약의 내용에 따라 노동자를 물건처럼 취급하고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기에 '노예계약'이라며 비난받는 계약들이 있습니다. 계약의 내용에 노동으로 제공할 급부가 명확하지도 않고 시키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노예계약이 아닐까요.

    박현씨의 활동보조인은 술심부름을 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술을 사다주는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술심부름이 활동보조인의 업무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서비스 제공 대상자와 함께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 제공 대상자가 요구하는 모든 급부를 활동보조인은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활동보조인의 장애인 이용자에 대한 미진한 인식 또한 지적되어야 하고 언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자의 미진한 인식 또한 언급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미진한 인식들 중에는 내가 '채용'한 활동보조인이므로 무엇이든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요? 박현씨가 대단히 악덕한 이용자도 아니고, 언급된 활동보조인이 대단히 훌륭한 활동보조인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경험한 사례를 받아들이는 사고속에 활동보조인을 노예화 하는 단초적 사고가 있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활동보조인의 입장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2013/01/11 [01:59] 수정 | 삭제
  • 1. 활동보조인 노조는 아직 결성되지 못햇구요. 언뜻 잘못보면 름달효정님이 노조를 만드신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을것 같내요. 2. 장애인/비장애인-일반인 혼란처럼, 박현님이 잘못 생각하고 서툴게 표현햇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그렇게 이해할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뿐, 고용-피고용 관게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것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일반인 의 용어는 비장애인은 일반적이지 않고 이상한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그런 인식의 기반에서 쓰이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박현씨의 단어선택이 실수일수도 잇지요. 잘몰라서일수도 있구요 그러나 그 표현이 일반적인 인식을 표현하는 단어,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은 고용-피고용 관계이고 시키는 모든것을 해야한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기반한다면 수정하고 바꿔줄것을 요구하는건 이해와는 다른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 rang 2013/01/10 [21:01] 수정 | 삭제
  • 제 주위에 활동보조인이 세상으로 나가는 창을 열어준 은인이기도 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닫게 하는 경우가 되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얘길 듣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분들인 만큼 복불복 식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면 좋겠네요. 많이 생각해보게 되어 좋습니다. 기사도 공감 많이 하게되었어요.
  • 독자 2013/01/10 [14:25] 수정 | 삭제
  • 활동보조인에 대한 댓글이 씁쓸하긴 하지만요.
    노동은 신성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사는 아니지만 불행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저도 노동자로서 큰 틀에서 지지합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고용이나 관리에 대해 노예제도처럼 비화하는 것은 요즘 세상에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살려면 누구에게도 고용당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황당한 추론까지 가능해져버리거든요.

    활동보조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처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서비스이용자의 태도가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인식 개선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 입장에선 반론의 여지가 있으리라고 감안하면서 듣는 이도 들을 거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서비스이용자들 -더욱이 사회적 약자인데- 은 활동보조정책에 부족한 점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만약 활동보조인의 서비스가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느낀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방의 주장이니 반론의 여지가 상대방에게도 있겠지 하면서 듣는 이가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
  • 름달효정 2013/01/09 [20:47] 수정 | 삭제
  • 먼저 활동보조인이 정책화 된 배경은 장애인의 지역사회삶에서의 보편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권리의 맥락이었음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위에 지나가다님이 적으신 것처럼 전기영, 박현님의 글에서 언급된 활동보조인과의 갈등은 고용/피고용의 문제는 아니라는데 입장을 함께 합니다.

    우리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확보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연대하여 활동보조인들의 노동환경과 임금을 확대하기위한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스스로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들을 공유하거나 대응하면서 이 서비스가 정착되는데 있어서의 시행착오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장애인당사자들의 표현이 거칠 순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이 당한 피해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모든 활동보조인들이 혹은 모든 장애인들이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고 반인격적으로 대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장면의 공유를 통해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서비스는 실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형태이고, 갈등과 문제도 지극히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지부가 자립생활센터 혹은 복지관 등에 사업을 위탁하고 평가제를 통해 재계약을 맺는 과정들에서 위탁기관은 이런 갈등들이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문제를 드러내기조차 어려워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활동보조인 역시 기관과 서비스 이용장애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 권력의 맥락에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탈시설은 권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자신의 뜻과 관계 없이 시설로의 분리 될 당시부터 작동된 권력은, 오랫동안의 집단생활을 통해 소위 시설증후군의 형태로 장애인당사자 개개인에게 인이 박힙니다. 여전히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엔 열악한 지역사회에서로 나온다 하더라도, 시설을 떠나 공간과 시간, 관계들을 새롭게 정립하고, 시설에서의 그것들을 벗겨내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 탈시설장애인들이 거의 처음으로 갖는 관계맺음이 바로 활동보조인입니다. 장애인/비장애인을 넘어, ‘첫 사람’인것이지요. 당연히 탈시설장애인당사자의 ‘첫 사람’은 여러 의미에서 큰 의미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k와 H는 자유를 꿈꾸며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은 억눌림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설에서 나와 그 권력으로부터의 눌림을 경험한 것입니다. 부당함 앞에서 무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자기결정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투박해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길어졌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권력관계를 온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자신과, 시설에서 나와 이 첫 사람을 만난데서 온 상처의 한 장면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인데.. 여튼 이런 장면을 노예화라고 표현하신다면, 지나친 일반화이고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갈나무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열악한 활동보조인의 노동환경에 동의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활동보조인이 있음에도 동의합니다. 국가의 보호하에 쟁취해야 할 노동권이 있을테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얽히는 직접서비스의 특수성에서 오는 노동권과는 해결의 결이 다른 갈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권의 확보와 현명한 갈등의 해결 방법을 찾는데, 서로가 일방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 떡갈나무 2013/01/08 [22:08] 수정 | 삭제
  • 활동보조인은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활동보조인이 피고용인이라는 점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복지부가 활동보조인의 고용주체라는 말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보장의 책임과 아울러 인력관리의 책임(서비스제공인력의 인권보호, 서비스제공관계의 평등성지향)이 서비스이용자가 아닌 보건복지부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회공공서비스중에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은 국가로부터(국민으로부터) 장애인활동을 지원하는 재가복지서비스 제공을 위임받은 자입니다. 누가 고용인이 되는가는 따라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장애인개인이 활동보조인의 고용인 이라면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보조인력의 관리주체가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과 인권 모두를 통제할 권한을 갖게 될겁니다. 반복하자면, 사회공공서비스로서 활동보조서비스제공인력의 관리의 권한은 서비스이용자(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국가에 있습니다. 공적인 서비스 제공자로서 활동보조인력은 국가의 보호하에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다(돌봄서비스, 활동보조서비스제공). 오직 장애인 필요만을 위하여 활동보조인의 노동권과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것입니다.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권리, 탈시설장애인의 권리를 논할 때에도 이러한 우리사회 전체의 다양한 맥락들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회관계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활동보조서비스가 지급되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활동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제공현장에서 무엇이(어떠한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비장애인)활동보조인을 노예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며,성찰하고, 왜곡된 인식전환을 위해 연구하고 투쟁해야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의식중에 "내가 채용한 일꾼인데, 내가 눈치를 보게된다"라고 내뱉은 표현은 심하게 일그러진 발언자의 인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 지나가다 2013/01/08 [14:33] 수정 | 삭제
  • '채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순 있지만, 왜곡이라는 표현 역시 지나쳐보입니다. 탈시설과정에서의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강압적인 분위기의 시설에서 익숙해진 분들에게는 타인에게 자기 의사 표현이 어렵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복지부가 고용을 하건 당사자가 고용을 하건 고용/피고용 관계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나요?
  • 떡갈나무 2013/01/07 [07:37] 수정 | 삭제
  • 윗글을 읽어보니 이런 표현이 있네요. "내가 채용한 일꾼인데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장애인당사자로서 서비스 이용자는 서비스 이용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시스템에서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는 활동보조인의 채용주체가 아니에요. 활동보조인의 고용주, 채용주체는 보건복지부입니다. 그리고 활동보조서비스는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많은 장애인 이용자들이 재가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을 자기가 채용한 부하직원쯤으로 잘못인식하고 있는데, 왜 장애인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마저 이런 왜곡된 말들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네요.
  • 에코 2013/01/06 [16:02] 수정 | 삭제
  • 도시적 삶에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삶을 꿈꾸는데 자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고, 자립의 길을 선택하시고 작은새를 꿈꾸시는 시인께 큰 힘을 얻습니다. 눈물을 닦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으렵니다.
  • 도연 2013/01/06 [00:10] 수정 | 삭제
  •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어도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신기하고 고마운 체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는 행간의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그 행간을 시가 채워주어서 긴 호흡으로 읽고,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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