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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신문 지면에 등장한 내 이름 석자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인 2003년 11월 초, 신문사에 다니는 C씨는 부산귀농학교 수강생이었다. 그는 귀농 새내기인 나의 강의를 듣고서, 그가 연재하는 지면에 칼럼을 썼다. “요즘 너무 행복하여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라는, 강의 중에 내가 언급한 말을 첫 문장으로 한 그의 글은, 물질만능주의가 대세인 가운데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간 나의 용기와,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자기행보를 하는 부모로서의 나의 선택을 매개로 하여 암울한 우리 사회에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별은 어두울수록 더 빛난다’라는 문장으로 맺어진 그의 글은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면모를 보였다.
“박선생님! 너무 행복해서 실실 웃음이 나오나요? 아, 좋겠다!!!” 하고 첫 인사를 시작하더니 부러워서 죽겠다는 둥의 덕담을 늘어놓았다. 기사에 대해서 깜깜무소식이던 나는 어리둥절해졌고, 출근길에 신문을 보고 반가워 전화했다는 G의 설명을 듣고서야 내막을 알아차렸다. 그와 나의 관계로 보나, 그의 어감으로 보나 격려에 찬 인사임이 분명했지만,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수치심에 휩싸였다. 어정쩡한 화답으로 통화를 마무리하자마자 느려터진 386컴퓨터를 저주하며 귀농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동문들의 사랑방에다 이런 느낌의 글을 올렸다. ‘C님, 어떻게 신문에다가 제 이름을 쓸 수가 있지요? 이건 인격모독입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치열하게 살고 있는 G와 교육현장에서 견디고 있는 또 다른 G들에게, 어두운 교육현장을 탈출한 주제에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별’로 비유된 것이 부끄럽고 민망했던 것이다. 또, 이제는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망에 부담을 지게 될 것을 저어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의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 않을 만큼 행복한 귀농 새내기였고, 그의 글은 내 강의의 핵심을 나보다 더 설득력 있게 정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느닷없이 비난을 해댔으니, 좋은 마음을 짓밟힌 그 분으로선 황당하다 못해 슬픈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아, 영원히 민망할 사건이었다. 더구나 당시 내 의식수준에서라면 요즘의 내 글이야말로 온통 누군가의 인격을 침해하고 있음이다. (C님, 죄송합니다. 언젠가 만나면 저에게 따귀 한대 때려도 좋아요. 진심입니다.) 내 이름 석자에 연연해서 그야말로 인격모독을 저지른 내가, 지금은 그 어디나, 예를 들면 치킨전문점 사보의 인터뷰까지도 무조건 응하고 있다. 시골 읍내에서 카페를 운영하자면 아무래도 많이 알려지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세속적인 판단에서다. 그리고 어쩌다 나도 글쟁이의 입장에 서게 되다 보니, 대개는 왜곡이라기보다 글 쓰는 이가 세상을 보는 프리즘의 차이, 혹은 글의 주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책, 같은 영화, 같은 사람을 접하고도 다른 느낌을 갖는 것처럼. 그래서 며칠 전 모 지방신문사의 인터뷰에도 응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엄청난 공짜홍보!!!)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왔다. 인터뷰했던 내용에다가 내가 쓴 책의 내용도 참고하여 적절히 잘 녹여 쓴, 베테랑 기자다운 글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행복한 은퇴자’라는 주제였으므로 귀농의 사례 역시 그것을 장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와 상관없이, 나는 또 인격모독을 당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가슴에 걸린 한 대목은 이거다. 질문: 귀농학교 강사로도 활동 중인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 답변: 흔히 귀농이라고 하면 농사짓는 걸로 안다. 시골에서도 문화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걸 강조한다. 전직 직업을 잘 살리면 오히려 도시보다 더 큰 보람과 함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중학교에서 방과후 연극수업을 한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배웠던 연극을 농촌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면서 동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방과후 수업으로 수입도 생긴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내 실제 대답은 이러했다. “귀농을 해서 농사랍시고 꼼지락거려 보긴 했는데 일머리도 없고 체력도 부쳐서 우리에게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을 찾아보려고 채집 경제에 도전하기도 했다. 산골짜기를 헤매며 도토리를 주운 적도 있고 버섯 철에는 걸망을 메고 버섯을 따러 다니기도 하고. 그런데 그 역시 몸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몇 번의 체험에 그쳤다. 농사로 돈을 버는 건, 특히나 일머리가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결국 방과후 강사나 옷가게 등으로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방과 후 수업도 안정정인 수입구조가 못되고, 옷가게는 그런대로 자리를 잡을 무렵 그만두게 되었다. 어쨌건 그래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귀농, 농사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주제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귀농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도 이런 강의를 들으러 온다는 건 이미 마음이 사로잡힌 상태라 모든 말이 좋게 들리게 되어있다.” 쩝…. 내 이름 석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나중에 또 따귀를 때려달라고 말하게 될지 모른다. 힐링캠프라는 TV프로그램을 두고 ‘해명소’라고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던데, 어쩌면 이 글은 나 혼자 진행하는 힐링캠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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