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서 죽도록 검색해 찾은 ‘안전지대’

‘친족성폭력’ 이야기⑥ 성폭력피해자들이 사는 쉼터

여름 | 기사입력 2013/11/06 [02:29]

PC방에서 죽도록 검색해 찾은 ‘안전지대’

‘친족성폭력’ 이야기⑥ 성폭력피해자들이 사는 쉼터

여름 | 입력 : 2013/11/06 [02:29]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의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는 어떤 공간인가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집이 출간되었고, 최근에 <잔인한 나의 홈>이라는 영화도 개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친족성폭력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까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열림터가 이사하려고 했을 때, 그곳 주민들이 성폭력 피해자 쉼터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성폭력 피해자를 쉽게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것과 상반된 반응이었다.
 
그래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삶이 독자들의 일상에 가깝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생존자들이 일정 기간 거주하는 쉼터가 어떤 공간인지 설명할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형식은 가상 좌담회로 구성해봤다. 좌담회의 내용은 열림터 입소자들이 쉼터 생활하며 겪었던 일들과 그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참여자는 총 4인으로 진행자인 열림터 활동가 1인과 퇴소자 3인이다.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21세 규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17세 유진, 구직활동 중인 24세 다희이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열림터에 입소하여 어떤 생활을 하며, 퇴소 이후 어떻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 들어보자.
 
가해자가 있는 공간을 떠나 쉼터에 오기까지
 
-열림터 활동가(이하 활동가): 열림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규리: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되었어요. 짐도 안 챙기고 집을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일단 피시방으로 갔어요. 막막했지만 진짜 열심히 검색했어요. 그러다가 상담소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바로 전화했어요. 전화했더니 열림터라는 쉼터가 있다고 했어요. 그 날 바로 입소면접하고 입소했어요. 그때 제가 상황이 급했거든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열림터 선생님이 보기에도 급해 보였나 봐요.
 
유진: 저는 학교 상담선생님과 상담하다가 그 사실을 말하게 되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맨 날 잠만 자고 친구들이랑도 안 놀고 그러니까 뭔가 어두워보였나 봐요. 처음엔 아빠한테 맞는 것만 말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성폭력도 얘기하게 된 거에요. 선생님이 열림터를 알아봐주셨고 입소 면담도 그 선생님이랑 같이 왔었어요. 그때 겁이 나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거니까 믿으면서도 집을 떠나 쉼터에서 살아야한다는 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랑 살게 될 지도 모르니까.
 
다희: 저는 학교 졸업하고 무작정 가출했어요. 그리고 서울로 왔어요. 거기는 지역이 좁아서 소문도 금방 나거든요. 그래서 거기서는 참고 있다가 서울로 와서 무작정 경찰서 가서 고소한다고 하고 이야기했더니 거기서 열림터 알려주셨어요. 그게 시작이에요.
 
-활동가: 처음 집에서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요?
 
유진: 저는 집에서 나가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학교 상담선생님이 집에서 계속 사는 것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봐주신 거라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해자인 아빠 말고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어른이 없으니까 집에 가기 싫으면서도 쉼터 또한 모르는 곳이니까 겁나고 그랬어요.
 
다희: 저는 학교 졸업만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어쨌든 학교는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나중에 혼자 살려면 졸업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졸업한 그날로 서울행 버스 탔어요. 버스 타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서울 몇 번 가본 적도 없고, 고모부가 쫓아올 것 같아서. 고모부집에서 살 때 학교 관련한 것 말고 외출하는 건 거의 허락이 안 됐어요.
저는 열림터 같은 데가 있는 줄 몰랐어요. 아무도 말 안 해주잖아요. 맨날 고모부가 나한테 ‘집 나가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 것 같냐’고, ‘가출하는 애들이 나가서 하는 일이 성매매밖에 없다’면서 욕을 했었거든요. 나도 진짜 그런 줄 알았어요. 아무튼 쉼터라는 건 잠깐만 있다가 다시 집으로 가야 되는 줄 안 거죠. 이렇게 잠도 자고 학교도 다니는 건 줄 알았으면 진작 나올 걸,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규리: 저는 엄마한테 얘기했었어요. 1년 동안 참기만 하다가요. 아빠가 이상한 짓 한다고. 근데 엄마가 나를 막 이상한 애 취급하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그래도 엄마를 믿었거든요.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뭐 그런 생각? 그런데 엄마가 내 예상과 전혀 다르니까 더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며칠을 매일 울다가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근데 아는 게 없으니까 어쨌든 집을 나가서 피시방으로 간 거예요. 찾으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 생각하면 제 자신이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안전하고 든든한 곳 “진짜 집인 거예요”
 
-활동가: 피해자들이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할 때, 외부로부터 도움을 구하고 받는 일도 진행 속도가 빠른데, 모두들 그런 욕구들이 분명했던 것 같아요. 열림터 처음 왔을 때는 어땠어요? 활동가들이나 다른 생활인들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유진: 저는 겁이 많았잖아요. 좀 쫄았던 것 같아요. 내가 젤 나이도 어리다고 해서 무서운 언니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고. 그런데 선생님들이 잘 설명해주시고 처음 열림터 가서 인사하는데 다들 인사 잘해주고 그래서 마음을 좀 놓았어요. 시간 지나면서 계속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웃음) 야간에 숙직하는 선생님한테 계속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식사 준비나 빨래하는 것도 도와주시고. 처음에 진짜 잘 못했거든요.
 
다희: 저는 고소를 하고 열림터 간 거잖아요. 그래서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법적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고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그렇지만, 어떤 도움 받을 수 있는지 그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입소 면접할 때 계속 확인했어요. 아마 그때 선생님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계속 질문을 해서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불안했어요. 다른 생활인들 처음 만났을 때 별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어색하게 인사하고, 방에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날 다 같이 저녁 먹을 때 좀 마음이 놓인 느낌?
 
규리: 맞아요. 저녁 같이 먹는 거, 그거 처음에 저도 울컥했어요. 한 번도 그렇게 같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맨날 혼자 먹었지. 그러다가 같이 먹으니까 가족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안전하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더 이상 맞지 않고 성폭력 당할 일 없고. 집에 있을 땐 아빠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오늘은 또 뭘로 맞을까, 무슨 욕을 들을까 늘 불안했거든요. 근데 쉼터에 있으니까 집에 있을 때보다 안전하고, 혹시 가해자가 찾아오더라도 지켜준다고 하고. 그런 말 해주는 게 정말 든든했어요.
 
-활동가: 그래요, 일상적인 것들을 통해 열림터를 편안하게 느낀 것 같네요. 쉼터에서는 공동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생기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 "새롭게 맺고 배워가는 관계들"  © 일러스트- 정은

유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같이 뭐 만들어 먹거나 고스톱 치거나 그러면 가족처럼 든든했어요. 내가 울 때 같이 있어 주는 거? 그것도 좋았구요. 제가 열림터에서 오래 살아서 열림터를 잘 아니까,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좀 잘 챙겨줬어요. 모르는 것도 가르쳐주고 그러니까 다들 고마워하더라고요.
 
다희: 저도 같이 방 쓰는 애들이랑 잘 지냈던 것 같아요. 가끔 안 좋을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나 말고 또 이런 피해가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그래서요. 근데 여기 애들은 나보다도 어린데 다 그런 일을 겪고도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 것 같아요. 나도 같이 힘내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고.
 
규리: 집에 살 때 밥을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거든요.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도 일하시니까 늦게 오고, 아빠는 뭐 집에 있으면 그날은 집이 조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살다가 열림터 오니까 진짜 집인 거예요. 처음에 진짜 많이 자고 먹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적이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 전학해서 학교 다녔어요. 제가 집에 있을 때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먹는 것에 집착을 많이 했어요. 열림터 식구들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많이 먹으려고 하고. 그러다가 체한 적도 있고. 진짜 싫었던 건, 내가 먹을 것을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누가 그거 건드리면 너무 짜증났어요. 막 범인 잡는다고 난리치고(웃음).
 
새롭게 맺고 함께 배워가는 관계들
 
-활동가: 함께 지내던 생활인들이랑 관계는 어땠어요?
 
유진: 언니들이 그래도 잘 해줬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다 친해져서 맨날 방에서 떠들다가 선생님한테 혼난 적도 있고, 우리끼리 속 얘기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중간에 멈추기가 힘들어요.(웃음) 선생님 욕도 하고 야한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근데 도벽 있거나 거짓말하는 애들 왔을 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물건 없어질까 봐 신경도 예민해지고요.
 
다희: 처음엔 각자 별 터치 안하는 걸 원했던 것 같아요. 나는 내 일 생각만으로도 정신없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새로 온 생활인이 눈치 없게 계속 저한테 말을 거는 거예요. 아휴, 근데 그러다가도 나중에는 좀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방 쓰는 애가 밤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불 켜놓고 있으니까 잠자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나중에는 불은 껐는데 핸드폰을 계속 하니까 그 핸드폰 불빛이 신경 쓰여서 제가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하라고 했어요. 거의 저보다 어린 애들이었는데, 나중에 애들이 그러더라구요. 처음에 언니 되게 무서웠다고.(웃음)
 
규리: 저는 처음에 민정이랑 제일 친했잖아요. 근데 걔가 다른 애한테 제 욕을 한 걸 듣고 제가 가서 따졌어요. 그래서 말다툼을 하다가 민정이가 저를 확 밀쳤는데 제가 뒤로 발라당 나자빠진 거예요. 나중에는 민정이가 제게 사과편지를 쓰긴 했지만 엄청 속상했어요. 그러고 나서 6개월 동안 민정이랑 말을 안 하고 지냈어요. 선생님들은 ‘같이 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말을 안 하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 했지만 전 상관없었어요. 배신감이 컸거든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나,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요.
 
-활동가: 열림터 활동가들과의 관계는 어땠어요?
 
규리: 제가 엄마한테 실망을 하고 집을 나왔잖아요. 그래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엄마처럼 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제 얘기 잘 들어주시고 그럴 때 너무 좋았는데 상담을 시간을 정해서 하잖아요. 다른 애들도 해야 하니까.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순간에 다른 애가 상담하고 있으면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어요. 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데,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것 때문에 짜증도 많이 낸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편애하는 것 같을 때 질투가 났었어요.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애한테 더 신경을 쓰잖아요. 규칙 같은 경우도 누구는 봐주면서 나는 벌칙 적게 하고, 그러면 섭섭했어요.
 
유진: 저도 처음엔 그랬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엄마처럼 해주기를. 근데 생각해보면 나이가 어려서 더 잘해주셨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저보다 어린 입소자 왔을 때 느꼈어요. 내가 제일 막내고, 귀여움 받았는데 내 자릴 뺏긴 느낌?
저는 씻는 것 가지고 선생님이랑 진짜 많이 티격태격했어요. 제가 씻는 걸 좀 싫어하거든요.(웃음)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샤워할 때마다 문 열어서 쳐다보고 그래서 샤워하는 게 싫단 말이에요. 근데 선생님은 씻으라고 하고, 입 냄새 난다고 양치질하라고 하고. 아, 렌즈 안 빼고 자는 것으로도 엄청 잔소리했다.(웃음) 답답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해서 씻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다희: 숙직 선생님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요리하고 계시면 뒷모습이 꼭 엄마 같았어요. 그래서 등 뒤에 가서 끌어안고 그랬어요. 근데 선생님이랑 갈등이 있을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공동체생활이다 보니까 해야만 하는 게 많잖아요.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 전 청소도 천천히 하고 싶단 말이에요.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 내에 하라고 하고. 집에서 고모부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했던 거랑 겹쳐서 힘들었어요. 한번은 선생님이 그렇게 마음대로 살고 싶으면 퇴소하라고 해서, 소리 지르면서 대들었어요. 그때 눈에 실핏줄 터지고, 선생님도 방에서 울고. 힘들었죠.
 
“규칙을 지키는 게 제일 힘들어요”
 
-활동가: 규칙 얘기가 나왔는데 규칙 때문에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다희: 규칙 없이 자율적으로 하면 좋겠어요. 이게 그냥 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규칙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애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자비가 없어진 거예요. 제가 유일하게 열림터에 있으면서 가족이 아니라고 느낄 때가 규칙이 나를 제지할 때에요. 보통 집 같으면 안 했어도 크게 문제가 안 될 텐데, 선생님이 여기는 쉼터라고 하시면서 규칙 얘기할 때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유진: 귀가 시간 지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이게 학교생활이랑 연결이 돼요.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놀면 밤이 되는데 귀가 시간이 있잖아요. 놀다가 중간에 들어가야 되니까 친구 사귀는 게 힘들고. 학교 친구들한테는 이모 집에 산다고 했는데, 통금이 있다고 하면 너무 심하다고 해요. 귀가 시간 좀 늘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있을 때 선미라는 애가 있었는데 걔가 되게 센 애였거든요. 제가 고참이어서 열림터 규칙의 틈새 또한 알고 있잖아요. 선생님들 특징이나 몇 시에 주무시는지도 다 알고 그러니까, 선미가 저한테 자꾸 밤에 선생님 몰래 나가자는 거에요. 계속 꼬시는 데 넘어갈 뻔했죠.(웃음)

 
규리: 저 퇴소하고 나서 외박 제도가 생겼다면서요? 많이 좋아졌네요. 사실 제일 해보고 싶은 게 밤에 남자친구랑 남산타워 가보는 거였는데, 외박이 안 되니까 못 했어요. 전 규칙 때문에 힘든 건 별로 없었어요. 여러 명이 같이 사는 집이니까, 해야 된다고 하면 해야 되나 보다 그러면서 지켰죠. 규칙 잘 지켜서 문화상품권 받은 적도 몇 번 있어요. 규칙이 없으면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활동가: 열림터에서 살면서 본인에게 도움된 것이 있었나요? 퇴소 이후에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어요?
 
다희: 법률 지원받은 건 정말 좋았어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고소했는데, 잘했다고 해주시고, 진술하러 가고 그럴 때 너무 짜증나고 힘들었는데 혼자 아니어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고소하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처음에. 나는 성폭력 피해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경찰조사, 검찰조사 할 때마다 피해 입은 얘기를 계속 묻고 대답하라고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규리: 선생님들이랑 상담하는 것도 좋았고, 클리닉 가는 것도 좋았어요.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내 말을 다 믿어주는 게 제일 좋았어요. 잘했다고 하고, 위로해주니까, 내가 엄마한테 바랐던 것이 여기 와서 된 거에요. (눈물) 지금 혼자 살면서 힘든 부분이 이 부분인 것 같아요. 열림터 살 때처럼 얘기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요.
 
유진: 저는 제주도 갔었던 게 제일 좋았어요. 난생 처음 비행기도 타보고 제주도 가서 테디베어 박물관도 가고. 집에서 살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열림터 있을 때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거 많이 본 것도 좋았어요.
 
-활동가: 그럼, 열림터에서 살면서 아쉽다고 느꼈던 점은 있나요?
 
유진: 병원 갔을 때 주민번호가 이상하잖아요.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관할구청으로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주민번호 대신 전산번호를 부여받아 사용한다.) 시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번호를 주잖아요. 알아서 처리해주는 병원도 있는데 모르는 병원은 계속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봤었어요.
 
규리: 저는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방을 써야하는 게 제일 불편했어요. 화장실도 여러 명이 같이 사용하는 것도. 쉼터 살면서 친해지는 사람이 생겨서 좋았던 점도 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집에서 살 때는 그래도 혼자 방을 썼던 건 좋았으니까 집 생각도 많이 나기도 했었어요.
 
다희: 다들 비슷한 마음인가 봐요. 그래도 다른 거 불편했던 것 생각해보면 저는 귀가 시간이요. 어린 애도 아닌데 귀가 시간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요.
 
쉽지 않은 퇴소 이후의 생활을 꾸려가며
 
-활동가: 열림터에서 살았던 기간이 각자 다른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규리-1년 6개월 이후 자립, 유진-3년, 현재 다른 쉼터 거주, 다희-8개월 이후 자립)
 
유진: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열림터에서 살 줄 알았어요. 근데 규칙을 너무 많이 어기다가 다른 쉼터로 옮기게 되고, 지금은 현재 쉼터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게 목표에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요. 저는 어릴 때 와서 열림터에서 지낸 기간은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규칙 지키는 게 어려웠지만요.
 
규리: 열림터에 와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퇴소했잖아요. 고정 직업을 구하기 전에 퇴소해서 선생님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빨리 나가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 계속 하면서 공부해서 대학 가려고 했는데 몸이 힘들어서 공부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대학에 가고 싶어요.
 
다희: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유진이처럼 미성년 학생들은 당연히 몇 년씩 지내는 게 맞는 것 같고, 저처럼 성인인 경우는 좀 다르겠죠. 제가 퇴소했을 때는 빨리 퇴소해서 혼자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기대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더 열림터에서 지내다가 퇴소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왜냐면 취업을 한다고 해도 중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지금 저처럼 일자리 구하는 게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활동가: 열림터에서 생활하고 퇴소한 이후 이전과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나요?
 
▲ "달라진 건, 친구가 생긴 거예요"   © 정은作
규리
: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신뢰 같은 게 생긴 거요. 전에는 아무도 못 믿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친구가 필요하기는 한데 아무도 믿지 못하니까 계속 혼자인거죠. 열림터에서 살면서 사람들끼리 믿는 것, 그게 가능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친구가 많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사람이 있고, 나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유진: 열림터에서 몇 년 지내면서 규칙을 좀 안 지켰었죠. 규칙이나 선생님들 포함해서 모든 게 익숙하다보니 틈새도 잘 파악하게 되고, 그러면서 어쨌든 쉼터를 옮겼잖아요. 여기 저기 옮겨 다녀야 되는 내 처지가 서럽긴 했지만 그래도 필요했던 것 같아요. 열림터에서는 긴장이 좀처럼 되지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지내다보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쉼터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다희: 지금은 성폭력이 가해자의 잘못임을 분명하게 알거든요. 선생님들과 상담하면서 그 얘기해주실 때 힘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세뇌를 시켰죠.(웃음) 그리고 어쨌든 그때 열림터 와서 법률 진행에 도움 받아서 다행이에요.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도움 계속 받을 수 있고, 저는 자신감이랄까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내 자신에 대해서 더 믿게 된 것이요. 제 생각을 믿고 행동해요. 열림터에 와서 뭔가를 시도해 본 경험이 좋은 것 같아요. 컴퓨터 학원도 다녀보고 편입 준비도 해 보고 자격증도 따고. 그 전에는 저는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선생님들이 저를 믿고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게 해 준 게 고맙죠.
 
-활동가: 현재 다른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유진이를 제외하고 규리, 다희는 혼자 생활하고 있잖아요. 자립생활은 어떤가요?
 
규리: 혼자인 것이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갑자기 새벽에 누군가가 그립거나 얘기가 너무 하고 싶어지거나 하면 울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기특하기도 해요.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 할텐데 하면서 걱정하기도 하고요. 월세 내야 되는 날이 오면 너무 스트레스에요.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있으니까. 모으지도 못 하고. 열림터에서 살 때 생활비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다희: 저도 비슷해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중이라 지금 현재는 좀 더 부담이 있긴 해요.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으니까. 그래서 심리적으로도 힘들기도 하고, 아직 법률이 진행 중이잖아요. 그것도 생각하면 답답하고. 그래도 최근에 다시 상담소 통해서 심리치료 받으면서 도움 받고 있어서 좋아요. 혼자는 아니니까.
열림터 퇴소 이후 같이 지내던 생활인들과 가끔 연락하지만 거의 만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서로 살기가 바쁘니까. 저는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생각은 많이 나요. 열림터 살았을 때 좋았던 기억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활동가: 열림터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인생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 같아요? 아니면, 어떤 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나요?
 
유진: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무사히 하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고, 열림터와 지금 쉼터에서 버틴 내 자신에게 수고 많았다고 해주고 싶을 것 같아요. 쉼터에서 이렇게 긴 시간 보낸 사람은 별로 없을 걸요? 열림터에서 살면서도 가출한 애들도 많았잖아요.
 
다희: 다시 시작했던 시간들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참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기로 한 거였잖아요. 열림터에서 지내면서 저의 다른 삶은 시작된 거 에요.
 
규리: 지금 열림터 퇴소를 한 저를 볼 때 아직 불안하긴 하거든요. 대견하게 느끼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된 것도 열림터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전에 나는 훨씬 더 불안해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리고 혼자 있을 때 힘들어지면 열림터에서 지냈을 때 생각을 하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 그때 잘 지냈었지. 지금도 잘 할 수 있어 그렇게 마음속으로 얘기하면서요.
 
-활동가: 마지막으로 열림터 생활인이나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볼까요?
 
유진: 규칙 잘 지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가출하지 말고 버티라고도 하고 싶어요. 가출하면 정말 답이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잘 참아야겠죠?
 
규리: 열림터에서 살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활동가 선생님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희: 선생님들이 퇴소자인 저에게도 계속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늘 바쁘다고 하시는데, 바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친정 같은 곳이거든요. 주기적으로 연락해주고 만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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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pict 2013/11/06 [16:45] 수정 | 삭제
  • 여러가지 형태의 팀플레이가 존재할 수 있죠. 가정도 하나의 팀이죠. 열림터라는 팀이 있어 상처받은 생명이 세상에 나갈 힘을 얻는 듯 합니다. 친족성폭행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혈연관계에 매몰되지 않으면 여러가지 길이 보이죠. 혈연관계에 갇히면 고통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듯 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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