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22) 프랑스의 어린이 교육

정인진 | 기사입력 2013/11/21 [09:36]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22) 프랑스의 어린이 교육

정인진 | 입력 : 2013/11/21 [09:36]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초등학교 수업 일수가 재조정되다
 
지난 9월 신학기부터 프랑스의 초등학교 시간표가 바뀌었다. 기존의 주 4일 각각 6시간씩 하던 수업을 주 5일로 늘렸다. 정확하게 4일 반! 월, 화, 목, 금요일, 4일은 수업을 5시간 하고 수요일에 나머지 4시간의 수업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계획은 지난 해 1월 중앙정부가 결정했고, 렌의 공립초등학교들은 9월 새 학기부터 이에 맞춰 주 5일 수업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실시해 온 주 4일제 수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비판적인 평가가 이어져 왔다. 하루에 6시간이나 되는 긴 수업은 초등학생들이 감당하기 힘들고, 피곤으로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번 수업 일수 조정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렇게 조정됨으로써 초등학생들은 적어도 오후 4시 15분에는 정규수업이 끝나게 될 것이다. 즉, 8시 45분부터 12시까지 오전수업, 12시부터 오후 2시 15분까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 그리고 다시 2시 15분부터 4시 15분까지 오후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그 이후, 오후 6시 45분까지는 스포츠, 취미를 위한 과외 활동을 하게 된다. 수요일은 오전 수업만 한다.

▲ 토피내(Taupinais)와 게리내(Guerinais) 산책로가 만나는 공터, 아이들의 자전거 타기 수업 풍경.   © 정인진

특히, 정규 수업이 일찍 끝나고 더 많은 시간을 과외 활동에 할애해,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추가 교육을 펼칠 계획이다.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에겐 부족한 학습을 보충해주며, 체육이나 취미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미 준비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수업 일수 조정은 부모가 모두 직장을 다니는 가정의 경우, 수요일에 아이들을 맡기는 비용이 절약되어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에 관해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렌은 중앙정부의 정책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렌의 사립학교들은 재량껏 선택할 수 있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수업
 
프랑스학교 안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그들의 교육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비교적 많은 것 같다. 렌에 머문 얼마 안 되는 기간에도 아이들의 학습 현장을 볼 기회가 참 많았다. 일년에 몇 번 있는 현장 학습을 제외하고는 학교 밖에서 전개되는 수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 관심이 많이 갔다. 이곳에서는 시립도서관, 공원, 유적지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산책로나 들판 같은 야외에서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끌뢰네 마을에서 내가 자주 가는 아삐네(Apigne) 호수를 가기 위해서는 ‘게리내’(Guerinais)나 ‘토피내’(Taupinais) 산책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이 산책로 사이에는 관목들이 숲처럼 자라고 있고, 주말 농장들과 생태 학습장도 자리해 있다.
 
아삐네 호수를 가기 위한 길은 다양하다. 찻길도 있고, 빌렌느 강가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나는 게리내, 토피내 산책로를 가로질러 가는 걸 좋아한다. 아마 이 산책로들이 없었다면, 아삐네 호수를 지금처럼 자주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산책로에는 나처럼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깅을 하거나 개들을 운동시키려고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  게리내 산책로에 버섯을 배우러 나온 어린이들. 프랑스에선 야외수업 풍경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정인진

무엇보다 여기서는 선생님과 현장 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을 자주 만난다. 수업은 매우 다양하다. ‘토피내 생태학습장’에는 늘 아이들로 넘친다. 조랑말을 비롯해 염소와 닭 등 가축들을 키우고 있는 이곳에는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생들도 자주 온다. 또 생태학습장에 마련된 야채밭에는 학생들이 참여 관찰을 하며 키우는 채소들도 볼 수 있다. 이름표가 잘 달려 있는 채소들과 귀여운 허수아비들이 세워져 있는 이 야채밭을 들여다보며 지나가는 것은 즐겁다.
 
아이들의 현장 학습이 ‘생태학습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더 자주는 게리내, 토피내 산책로 곳곳에서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손신호를 하며 도로에서 자전거 타기 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을 만난 건 재작년 가을이었다.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모두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공터와 산책로를 달리며 도로에서 자전거 예절을 학습하고 있었다. 특히, 자전거를 타면서 손신호 보내는 법을 자세하게 배우는 중인 듯 했다.
 
프랑스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려면 미리 해당 방향의 손을 수평으로 들어 신호를 보는 것이 의무다. 이렇게 신호를 보내면, 자동차들과 함께 도로를 좀더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어린이들이 기우뚱, 기우뚱하면서 서툴게 손신호를 연습하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또 지난해 이 맘 때는 버섯에 대해 공부하러 나온 어린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교사와 봉사자로 동반한 몇몇 학부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은 버섯을 따고 있었다.
 
이 아이들처럼 직접 손신호를 실습한 어린이들은 도로에서 더욱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게 될 것이다. 또 직접 버섯을 채취하며 독버섯과 먹을 수 있는 버섯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다면, 11월에는 맛 좋은 ‘세프’(cepe) 버섯을 따러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물쇼, 병아리 만지기…아이들은 뭘 배울까
 
프랑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다채로운 행사들이 많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더욱 똑똑하게,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사들이 시와 민간단체 주도로 풍부하게 열린다.

▲  지난 여름, 렌 시청광장에 열린 ‘도시 농장’ 행사장.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 정인진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들이 모든 면에서 가치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나라보다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들이 부러웠지만, 관점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 중 내가 목격한 것은 ‘서커스 공연’이다.
 
프랑스에는 아직도 서커스 공연이 자주 열린다. 작년 봄에는 ‘메드라노’(Medrano)라는 서커스단의 공연이 여러 날 렌에서 열렸다. 엄청난 규모의 공연 천막이 쳐지고, 매표소 앞에는 프로그램의 주요 사진들을 보여주며 서커스를 광고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펼치는 묘기도 있었지만, 말이나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등이 출연하는 동물쇼들이 공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묘기를 부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매표소 앞에서 망설이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 서커스단은 브르타뉴에서 매우 유명한 듯했다. 여행하면서 이 서커스단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여러 도시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렌을 시작으로 브르타뉴 전역을 순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을 동원한 서커스에서 어린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21세기인 오늘날도 여전히 동물들을 놀이 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안타까운 점을 발견한 또 다른 행사는, 7월에 렌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시농장’(La ferme en ville)이었다. 일주일 동안 열린 이 프로그램을 위해 시청광장은 농장으로 변했다. 광장의 돌바닥 위에 마사토가 깔리고, 한 귀퉁이에는 모형 야채밭도 만들어졌다. 펼쳐진 건초더미 위에서 흥겹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웠다.

▲ '도시농장' 행사장 한 부스에선 병아리를 만질 수 있게 해줬다. ©정인진
꾸미지 않고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돼지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그렇게 키워진 돼지들이 우리 식탁에 고기로 올라온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도, 잔인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건 안타깝지만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을 만했다. 만약 관점 있는 교사나 부모라면, 뒤로 돌아설 수도 없게 설계된 창살 안에 갇혀 사육되는 돼지를 보며, 공장식 사육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지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 부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병아리 직접 만져보기’ 행사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은 전시되어 있는 병아리들을 마음대로 만져보고 안아보고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병아리를 잘 만져볼 수 있게 매우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귀엽다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고 터지는 이 부스는 어느 곳보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 행사에서 아이들의 손에 쉼 없이 시달린 병아리들은 어땠을까?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너무 부족한 우리의 현실도 안타깝지만, 생명을 경시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엇을 가르칠까?’를 생각하면서 교육을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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