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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둘러싸고 ‘성별’과 ‘인종’ 문제가 만날 때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13) 릴리 알렌 “Hard Out Here”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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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번 마일리 사이러스에 관한 글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다양한 층위의 논의를 원하여 문제적인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불평도 없다. 다만, 나의 의도와 관련 없이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까 걱정했다. 당연히 나는 성의 상품화를 찬성하지 않고, 성별 문제와 인종 문제가 만났을 때의 복잡함과 심각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월크’(Twerk, 흑인여성의 섹스어필 춤)를 춘 것과 관련하여, 그녀의 언론 대응 방식이나 논의의 일부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더욱 깊은 고민을 안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오늘 또 이 화두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난 글(‘마일리 읽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에서 가장 큰 키워드는 성 상품화, 인종 문제 두 가지였다. 이 두 가지 주제를 그대로 가져온 곡이 나타났다. 3년만에 컴백한 릴리 알렌(Lily Allen)의 “Hard Out Here”이다.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릴리 알렌(Lily Allen)
릴리 알렌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어릴 적부터 록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데뷔 후에는 팝음악을 하였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영미권 각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밝고 경쾌한 음악 속 거칠고 날카로운 가사가 가장 큰 특징이다.

 
돌아온 그녀의 곡 “Hard Out Here” 역시 마찬가지로 밝은 팝 사운드 위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곡의 메시지는 아주 명확하다. 첫 번째 가사에서는 팝 문화, 힙합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이 계급화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가사에서는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며, 후반부와 후렴구에서는 지금의 세태가 부당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한다.
 
릴리 알렌의 메시지는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는 것이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보이지 않은 차별로 인해 여성들이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 ‘상품화’ 같은 단어를 콕 집어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 남성 스타들이 차, 여자 자랑을 늘어놓는 점이나, 여성들이 살 빼기를 강요 받는 점 등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뮤직비디오는 가사가 담긴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한다. 포주처럼 보이는 기획사 사장이 지속적으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다 시키는 것은 물론, 지방흡입수술 장면도 등장한다. 더불어 올해 상반기에 외설 논란이 있었던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Blurred Lines”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장면도 등장한다.
 
“Hard Out Here”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요소는 최근 뮤직비디오들의 클리셰(Cliché, 진부하리만큼 틀에 박힌 표현)이다. 여성 백댄서들이 춤을 추고, 그 여성들의 몸을 보여주기 위해 세차 씬을 집어넣고, 비싼 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그러한 부분에 해당한다. 다른 뮤직비디오들의 정형화된 모습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작품은 메인스트림(mainstream, 주류)에 등장하는 일부 뮤직비디오들이 아직도 마초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여성들을 들러리 세워 여러 성적 코드들을 이용한다는 점을 일종의 패러디 방식으로 비판하고자 하였다.
 
뚜렷한 의도와 화면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뮤직비디오는 약간의 문제를 낳았다. 역시 여기서도 트월크(Twerk) 춤을 선보인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또 백댄서 다수가 흑인이었던 점, 다른 살색의 두 여성은 자켓을 입은 반면 흑인여성들은 바디 수트만 입었다는 점을 일부 팬들이 지적하였다. 그녀 역시 인종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릴리 알렌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성별에 따른 역할 기대에 집중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하기도 하였다.
 
제작 과정에서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만큼 그녀의 감수성이 민감하지 못한 점도 일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실제 다른 뮤직비디오들에서 등장하는 댄서들이 흑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뮤직비디오 속 백댄서들은 그러한 클리셰(Cliché)를 완성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 19세기 서구 인종주의 희생양이 된 사라 바트만(Sarah Sartijie Bartman)
왜 다른 뮤직비디오들은 백댄서로 흑인여성을 사용하고, 그녀들은 트월크를 출까? 남성뮤지션의 백댄서로 등장한 흑인여성들의 트월크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도 불렸던 사라 바트만(Sarah Sartijie Bartman, 툭 튀어나온 커다란 엉덩이에 긴 성기를 가진 아프리카 여성을 유럽에 데려와 쇼를 하게 만들고, 죽은 후 사체까지 해부하여 박물관에 전시했던 19세기 서구 인종주의의 폭력을 보여주는 사례)을 떠올렸다.

 
트월크가 흑인문화의 전유물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바라보고 상업화하는 주류 시선이 가진 폭력성은 여전하다. 한 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도 여성의 큰 엉덩이는 섹슈얼함의 상징인 동시에 남성들의 노골적인 관심 대상이다. 여성들이 큰 엉덩이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보정물을 넣고 수술하는 것은, 그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관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
 
어쨌든 릴리 알렌은 그런 부분들을 다 비판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뮤직비디오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아닌 표현이기 때문에, 간과하는 부분이나 욕심에 비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가사를 귀담아 듣지 않으면 그냥 달달한 팝 곡이라는 것이 이 곡의 가장 큰 함정이지만 “Bitch”라는 단어의 사용은 여전히 거슬린다. 그녀가 이 단어를 왜 이렇게 부각하는지는 전에 썼던 이 글을 다시 보면 좋을 것 같다. (힙합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을 꼬집은 래퍼)
 
“Hard Out Here”는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곡이기에,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나는 무언가에 답하기보다는 읽는 이에게 질문하기 위해 글을 쓴다. ‘주체적 감상’ 혹은 ‘의심하는 것’은 삶의 질을 키워준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태도들이 페미니즘과 밀접한 부분이기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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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28 [00:10]  최종편집: ⓒ 일다
 
jodiemhy 13/12/06 [09:28] 수정 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hard out here'가 주류 랩 비디오를 패러디하는 방법으로 여성들의 몸의 상품화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은 릴리알렌 본인이 트위터를 통해 해명했고, 곡의 가사에도 나타나 있죠. 그렇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줄곧 말해왔듯이 의도와 결과/영향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힙합 뮤비들에서 몸을 드러내는 의상을 입고 트워킹을 하는 여성들이 나오더라도, 그 클리셰를 재현하면서 릴리알렌 또한 흑인 여성들의 몸을 무대 위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샤 시디키 (Ayesha Siddiqi)라는 비평가는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워킹을 하고 흑인 여성 백댄서들을 고용하면서 그녀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구로 사용한다면, 릴리알렌은 흑인여성들을 자신이 음악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들며 탓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릴리알렌이 '난 뇌가 있으니까 널 위해 엉덩이를 흔들 필요 없어' 라고 노래할 때, 그녀가 비판하는 것은 여성들을 상품화하는 남성들의 시선 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랩퍼들의 뮤직비디오에서 춤추는 흑인여성들은 뇌가 없어서 트워킹하고 있습니까? 릴리알렌 본인보다 덜 깨어있고, 그래서 착취당하면서 그 사실조차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hard out here' 에서 보여지는 릴리알렌의 페미니즘은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페미니즘입니다. 여성들 사이의 연대 없는 페미니즘에 대해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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