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 해경과 가수 요조 이야기

[까페 버스정류장] 우리의 글로 이어진 관계

박계해 | 기사입력 2013/12/23 [19:41]

항해사 해경과 가수 요조 이야기

[까페 버스정류장] 우리의 글로 이어진 관계

박계해 | 입력 : 2013/12/23 [19:41]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하하하.”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갔어요. 고등학생들은 정말 진지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했어요.”
“고생했어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을 거야.” 

 
▲ 대추차는 카페 버스정류장의 겨울 단골 메뉴이다.  © 일다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대추차를 잔에 따라 건네자 그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지금 카페 맞은편에 있는 함창중고등학교에 특강을 다녀온 참이다.

 
해경. 그녀는 마치 잠긴 대문 앞에서 밤을 새기라도 한 것 마냥 문을 열자마자 성큼 발을 들여놓은 오늘의 첫손님이다.
“생각보다 일찍 문을 여시네요. 열 한 시에 연다고 되어있어서 걱정했는데........”
“아, 아주 드물게 부지런을 떨기도 한답니다. 오늘은 아주 새벽부터 의욕에 넘쳐서 열한 시를 기다리기 힘들었어요. 하하하.”
“아, 다행이다, 부산에서 첫 기차를 탔는데 도착하니 열시 좀 넘었더라고요. 괜히 주변을 배회하다가 와 본 참인데 딱 여시기에 어찌나 반갑던지요.”

 
눈동자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언젠가 한번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어머나, 그럼 일부러 우리 카페를 찾아오신 건가요?”
“네, 실은 목포에서부터 온 거랍니다. 여기 숙박시설이 없을지도 몰라서 어제 부산역 주변 호텔에서 자고 아침 댓바람에 다시 나선 거지요.”
“맙소사! 맞아요, 목포는 지지난 핸가........ 해양대학에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멀기도 하고 교통편이 쉽지 않아서 하루 전에 출발했어요. 맞아, 자가용 없이는 하루가 꼬박 걸리더라고......”
“해양대학이요? 저, 거기 졸업했는데....... ”
“아, 대학에서 강의한 게 아니고 여름방학 교사 연수가 거기서 열렸던 거죠. 강의 한 꼭지 맡아서........”
“아, 네.......”

 
이 때 함창고등학교의 G선생님이 카페에 들렀다. 4교시가 비어있어서 점심시간과 연결하여 외출한 것이었다. 나는 대추차를 잔에 따라 건네며 G선생님에게 해경을 소개했다.
 
: 이 분이 오늘 우리 첫손님이신데 부산에서 오셨대요.
G: 아, 우리 해떴다(계해라는 이름에서 따온 별칭) 선생님 책 때문에 팬이 된 거구나.
해경: 아니요, 제가 요조라는 가수의 팬인데 요조씨 음반이랑 책을 다 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에 요조씨가 이 카페에 다녀간 얘기를 썼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와 보고 싶었어요.
: 아이구, 요조씨도 자기처럼 이렇게 느닷없이 다녀 간 건데....... 예고편도 없이요. 여기 이야기 써도 되냐, 사진도 실어도 되냐, 고 해서 영광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나긴 하네. 그리고 책 나오면 들고 온다더니 바빠서 못 오나 봐요. 혹시 그 분이랑 잘 아세요?
해경: 아뇨, 언젠가 그분이 진행하는 음악방송에 제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분이 읽어주면서 ‘제가 받은 편지 중에 가장 인상적이군요’ 라고 했어요. 제가 바다 위에서 보낸 편지였거든요.
: 바다 위에서요?
해경: 네, 저는 항해사거든요. 한 번 배 위에 오르면 보통 7개월 후에나 돌아와요.

 
언제나 머릿속이 온통 아이들 생각으로만 가득 찬 G선생님은 ‘항해사’란 말에 화들짝 반가워하며 해경에게 직업 특강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마침 항해사가 꿈인 학생과 불과 이틀 전에 진로상담도 했다면서, 안되더라도 그 아이만큼은 꼭 좀 만나달라고.
 
해경은 흔쾌히 그러마고 했고, G선생님은 부리나케 학교로 돌아가(길만 건너면 함창중고등학교다)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긴급 특강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해경이 수업을 하러 떠난 사이 나는 요조씨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우리 카페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당신의 팬이 찾아왔다. 빠른 시일 내에 책을 들고 오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을 확 사버릴 거다’라는 협박(?)문자.
 
그리고 답장을 받았다. ‘수일 내로 반드시 책을 들고 가리라’는.
 
작년 봄. 아니, 봄이라기엔 너무 겨울처럼 느껴졌던 쌀쌀한 때에 요조는 우리 카페에 왔다. 그리고 한 번 더 다녀갔다. 같이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와 친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어쩐지 그녀에 대한 결례 같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는 공인이니까, 그녀가 이 시골 읍내의 카페를 찾아온 것은 익명성의 자유가 좋아서일지도 모르니까, 그녀와 나의 거리를 결정하는 것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주고 싶다.
 
놀러왔다가 느닷없이 강사로 파견나간 해경은 카페에 외등을 켤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커피 한 잔을 아쉬운 듯 아껴먹은 그녀는 천천히 외투를 입고 가방을 어깨에 멘 다음 말했다.
 
“이번에 배를 타면 이제 일곱 달 후에나 육지로 나오는데 며칠 안 남은 휴가 중 하루를 이곳에 오는 데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요조와 해경과 나는 우리가 쓴 글로 이어진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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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ei 2014/02/18 [00:19] 수정 | 삭제
  • 저두요~~~~선생님!! >< 꼭 가겠습니다.~~^^
  • 버스정류장 2014/02/14 [18:28] 수정 | 삭제
  •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러 오도록!
    나는 네가 매우 보고싶다!!! 혜정아~~~~
  • hyei 2014/02/12 [20:49] 수정 | 삭제
  • 선생님~저 혜정이예요. 저 요조 굉장히 좋아했어요.(과거형이라니ㅋㅋ)우연히 요조책이 나온걸 봤는데 그냥 흘려봐서(아마 포장이된 상태였을거예요) 오오..그녀가 다녀갔다니!! >< 몇 달만에 들어왔는데 정말 잘 읽고갑니다. 선생님도 안녕하신것 같아 마음이 좋네요.
  • 버스정류장 2013/12/27 [17:17] 수정 | 삭제
  • 그리하여 요조양은 두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약속도 잘 지키는 아가씨였습니다^^.) 이번에는 오시는 분들에게 그녀를 열심히 소개해서 시골 카페의 위상을 잔뜩 높였습니다. 멀지 않으면 여행길에 들러주세요.
  • razybird 2013/12/25 [04:31] 수정 | 삭제
  • 우연이 만들어낸 그 인연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작년부터 소소하게 한여름과 한겨울을 피해서 오랜 친구와 둘이 여행을 다녀오곤 하는데...
    저도 그 글을 통한 인연으로 까페에 닿는 일이 있으면 좋겠네요.
    기약할수는 없지만 그 날까지 무사평온 이름대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까페 버스정류장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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