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하하하.”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갔어요. 고등학생들은 정말 진지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했어요.” “고생했어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을 거야.”
해경. 그녀는 마치 잠긴 대문 앞에서 밤을 새기라도 한 것 마냥 문을 열자마자 성큼 발을 들여놓은 오늘의 첫손님이다. “생각보다 일찍 문을 여시네요. 열 한 시에 연다고 되어있어서 걱정했는데........” “아, 아주 드물게 부지런을 떨기도 한답니다. 오늘은 아주 새벽부터 의욕에 넘쳐서 열한 시를 기다리기 힘들었어요. 하하하.” “아, 다행이다, 부산에서 첫 기차를 탔는데 도착하니 열시 좀 넘었더라고요. 괜히 주변을 배회하다가 와 본 참인데 딱 여시기에 어찌나 반갑던지요.” 눈동자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언젠가 한번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어머나, 그럼 일부러 우리 카페를 찾아오신 건가요?” “네, 실은 목포에서부터 온 거랍니다. 여기 숙박시설이 없을지도 몰라서 어제 부산역 주변 호텔에서 자고 아침 댓바람에 다시 나선 거지요.” “맙소사! 맞아요, 목포는 지지난 핸가........ 해양대학에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멀기도 하고 교통편이 쉽지 않아서 하루 전에 출발했어요. 맞아, 자가용 없이는 하루가 꼬박 걸리더라고......” “해양대학이요? 저, 거기 졸업했는데....... ” “아, 대학에서 강의한 게 아니고 여름방학 교사 연수가 거기서 열렸던 거죠. 강의 한 꼭지 맡아서........” “아, 네.......” 이 때 함창고등학교의 G선생님이 카페에 들렀다. 4교시가 비어있어서 점심시간과 연결하여 외출한 것이었다. 나는 대추차를 잔에 따라 건네며 G선생님에게 해경을 소개했다. 나: 이 분이 오늘 우리 첫손님이신데 부산에서 오셨대요. G: 아, 우리 해떴다(계해라는 이름에서 따온 별칭) 선생님 책 때문에 팬이 된 거구나. 해경: 아니요, 제가 요조라는 가수의 팬인데 요조씨 음반이랑 책을 다 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에 요조씨가 이 카페에 다녀간 얘기를 썼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와 보고 싶었어요. 나: 아이구, 요조씨도 자기처럼 이렇게 느닷없이 다녀 간 건데....... 예고편도 없이요. 여기 이야기 써도 되냐, 사진도 실어도 되냐, 고 해서 영광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나긴 하네. 그리고 책 나오면 들고 온다더니 바빠서 못 오나 봐요. 혹시 그 분이랑 잘 아세요? 해경: 아뇨, 언젠가 그분이 진행하는 음악방송에 제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분이 읽어주면서 ‘제가 받은 편지 중에 가장 인상적이군요’ 라고 했어요. 제가 바다 위에서 보낸 편지였거든요. 나: 바다 위에서요? 해경: 네, 저는 항해사거든요. 한 번 배 위에 오르면 보통 7개월 후에나 돌아와요. 언제나 머릿속이 온통 아이들 생각으로만 가득 찬 G선생님은 ‘항해사’란 말에 화들짝 반가워하며 해경에게 직업 특강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마침 항해사가 꿈인 학생과 불과 이틀 전에 진로상담도 했다면서, 안되더라도 그 아이만큼은 꼭 좀 만나달라고. 해경은 흔쾌히 그러마고 했고, G선생님은 부리나케 학교로 돌아가(길만 건너면 함창중고등학교다)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긴급 특강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해경이 수업을 하러 떠난 사이 나는 요조씨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우리 카페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당신의 팬이 찾아왔다. 빠른 시일 내에 책을 들고 오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을 확 사버릴 거다’라는 협박(?)문자. 그리고 답장을 받았다. ‘수일 내로 반드시 책을 들고 가리라’는. 작년 봄. 아니, 봄이라기엔 너무 겨울처럼 느껴졌던 쌀쌀한 때에 요조는 우리 카페에 왔다. 그리고 한 번 더 다녀갔다. 같이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와 친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어쩐지 그녀에 대한 결례 같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는 공인이니까, 그녀가 이 시골 읍내의 카페를 찾아온 것은 익명성의 자유가 좋아서일지도 모르니까, 그녀와 나의 거리를 결정하는 것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주고 싶다. 놀러왔다가 느닷없이 강사로 파견나간 해경은 카페에 외등을 켤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커피 한 잔을 아쉬운 듯 아껴먹은 그녀는 천천히 외투를 입고 가방을 어깨에 멘 다음 말했다. “이번에 배를 타면 이제 일곱 달 후에나 육지로 나오는데 며칠 안 남은 휴가 중 하루를 이곳에 오는 데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요조와 해경과 나는 우리가 쓴 글로 이어진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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