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영화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니가 있는 마을

이내 | 기사입력 2014/07/03 [22:11]

삶이 영화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니가 있는 마을

이내 | 입력 : 2014/07/03 [22:11]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내 노래여행의 베이스캠프 ‘카페 버스정류장’

 

“안녕하세요. 저는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의 전속 가수 이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면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그렇게 마이크도 앰프도 없이 노래를 시작하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처음 듣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관객은 단 한 사람일 때도 있고 카페 1층을 가득 메울 때도 있다. 연령대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     매달 셋째 주 일요일,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에서 이내의 브런치 공연 <이야기+밥+노래>가 열린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의 오래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옆에 자리한 ‘카페 버스정류장’은 2014년 나의 노래 여행의 출발지, 혹은 베이스캠프쯤 될 것 같다. 혼자 도시 속을 걷다가도 카페의 주인장 박계해 선생님의 “이내∼”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떠오르면 활짝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3월, 친구를 따라 소문으로만 듣던 함창에 들렀다. 기회가 되면 노래를 시킬 것이라는 친구의 계략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햇볕이 따뜻하고 오래된 간판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함창 읍내에 인위적으로 꾸며 둔 것은 하나도 없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 주인은 우리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찾아온 듯 반겨주었다. (이 날의 느낌은 노래로 만들어 두었으니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래를 짓는다는 것의 기쁨이 이런 것이다.)

 

박계해 선생님은 아무 경계 없이 도시 사람들을 맞이해준 것처럼, 나에게도 거침없이 노래를 시켰다. 그 자연스러움 때문인지 나는 마침 그 곳에 있던 기타를 들고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던 그 날, 잊지 못할 세 가지의 장면이 있다.

 

#1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서, 계해님이 소개를 하겠다고 하셔서 나를 소개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마침 그 곳에 있던 손님들을 한 명 한 명 일러주신다. 시집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네 아가씨, 자주 놀러 와 일손은 돕는 마을 주민, 카페에 작은 전시를 하고 있는 수공예가 등등, 노래를 들어줄 사람들을 소개해 주신 것이다. 그런 경험도, 기분도 난생 처음이었고 나에게는 두고두고 행복해지는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2

노래를 몇 곡 부른 후 갑자기 계해님이 나에게 카페의 주제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며 10만원의 선금을 투척, 1년의 기한을 주셨다. 의뢰의 느낌이라기보다 응원의 용돈 같았다. 노래만 부르며 한번 살아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던 시기였기에, 그 돈은 다음 여행 자금이 되었고 그 여행은 다음 공연들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노래는 한 달 안에 완성되었다!!

 

#3

“그러면(도대체 어떤 맥락의 ‘그러면’이었을까) 이내씨, 매달 여기 와서 공연해. 오늘이 셋째 주 일요일이니까 매달 셋째 주 일요일 어때?” 그렇게 화통하고 깔끔하게 매달 <이야기+밥+노래>라는 공연이 결정되었고, 말 그대로 매달 공연을 이어가서 7월 20일이면 벌써 네 번째 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크게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때그때 적당한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낮 12시에 모여 이야기와 밥과 노래를 나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계해님이 “이내∼”하고 부르면 테이블로 달려가 손님의 소개를 받고 주제가를 부른다. 그러면 따뜻하게 여행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여비에 보태라고 앨범도 흔쾌히 사 주신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따뜻한 풍경을, 그것도 매달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카페 주제가의 가사를 공개해야겠다. 함창이라는 마을을 처음 만난 날의 일기를 거의 그대로 옮긴 노래이다.

 

   [니가 있는 마을] (부제: 카페 버스정류장)  이내 작사 작곡

 

   1. 지붕 위의 해, 한 걸음 물러서 있어도

   충분히 따뜻한 니가 있는 마을

   기차역 옆 버스정류장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지만

   다만 온기로 채우고 기다리는 너른 집 한 채

   신발을 벗어버리자 짐을 내려놓자

 

   2. 안녕하세요, 한 발짝 물러서 있어도

   마음껏 맞이하는 다정한 얼굴

   웃음만큼 따뜻한 차 한잔 나누자

   주인도 손님도 아닌 사람이 되어

   커피만큼 향긋한 시간을 나누자

   어제도 내일도 잠시 내려놓고

 

   3. 나무 위의 달, 반으로 잘라 놓아도

   충분히 아늑한 니가 있는 마을

   마당도 옥상도 활짝 열어놓고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네

   여행자의 노랫소리 귀 기울이네

   마음을 열어 두었구나 쉬어가라고

   마음을 열어 두었구나 쉬어가라고

 

‘떡이 생기는 시 모임’과 함께한 기적같은 시간

 

노래짓고 부르는, 이내   © 일러스트- 김혜리

계해님으로부터 이곳에서 특별한 모임이 있다는 얘길 듣고 (전속 가수답게) 그 모임의 3주년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백석의 생일날 시작되었다는 시를 암송하는 모임 ‘떡생시모’(떡이 생기는 시 모임)는 만들어진 배경부터 기적 같은,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고 했다. 계해님은 이 모임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말씀하셨지만, 나에게는 삶이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원래는 다섯 명이 격주로 모여 암송한 시를 낭송하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는데, 3주년을 맞아 특별히 다른 모임들을 초대했다. 시를 짓는 모임 ‘들문학회’와 귀농자들이 모여 만든 외서마을 도서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임 ‘노래하나 햇볕 한 줌’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여 카페 1층을 가득 채웠다.

 

‘떡생시모’에서 백석의 시를 하나 암송하면, 내가 답가를 부르고, 들문학회에서 자작시를 낭독하고, ‘노래하나 햇볕 한 줌’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반복하며 웃고 떠들고 귀 기울이고 박수치고 눈물을 흘리며 밤이 깊어지고 시가 번져나갔다. 누군가가 시를 썼던 시간, 누군가가 시를 암송하며 보낸 시간, 귀 기울여 듣는 이의 시간이 만나자, 지금 여기에 머문 사람들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났다.

 

‘떡생시모’의 꿈은 ‘시의 번짐’이라고 한다. 그 반짝이는 가능성을 목격한 나는, (자랑스러운 카페 버스정류장의 전속 가수로서!) 그 꿈을 함께 이루고 싶어졌다.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bombbara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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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정류장 2014/07/10 [23:28] 수정 | 삭제
  • 그 꿈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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