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삼평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지난 7월 2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 345kV 송전탑 23호기 공사가 재개된 이후 나는 이 곳 삼평리에 상주하고 있다. 내 나이 스물 넷.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피서철이니 놀러 가고도 싶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곳에 왔다. 내가 삼평리에 와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전이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법을 악용해 주민들의 동의 없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는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작년 삼평리로 농활을 온 뒤 이곳 할머니들과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붉은색 ‘결사항쟁’ 깃발이 나부끼는 농성장 문을 열 때마다 할머니들이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신 것도 따스했지만, 결정적으로 할머니들에 반하게 된 건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였다. 할머니들은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시집와, 남편과 시댁 어른들을 위해 하루 종일 대가족의 식사 준비와 빨래 등의 일거리를 하면서 청춘을 다 보내고, 자식들 위해 한 평생 농사지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분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한전의 부당한 공사에 맞서 ‘안 된다’고 반기를 든 거다.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마을이장이 주민의견서를 한 사람의 필체로 날조한 것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승인하면 무조건 합법적으로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송전탑이 실어 나르게 될 전기가 만들어지는 핵발전소가 위험천만하다는 사실도, 할머니들이 보기에는 ‘똑바른’ 일이 아니었다. 원래 계획됐던 송전선로 노선이 갑자기 변경되어 삼평리를 지나가게 된 것도 억울한 일이었다. 송전탑 공사 부지와 인접한 논과 땅 주인들이 대부분 혼자 사는 70대, 80대 할머니들이다 보니 조금 가깝게 세워져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 한전의 안일함과 오만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할머니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얼굴 맞대며 살아온 할머니들 사이에는 ‘의리’가 넘쳤다. 그녀들은 매일같이 농성장에 모여 밥을 해먹었고 민화투를 쳤다. 때때로 형사와 한전직원들이 공사장 부지를 기웃거리면, 그간 당한 설욕을 갚기라도 하듯 시원한 욕 한 바가지씩을 퍼부어주었다.
정보에 발 빠른 ‘쌍둥이 과수원’ 부부와 지역 사정에 귀가 밝은 60대 부부는 송전탑 공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가지고 와, 할머니들과 함께 반대 투쟁을 논의해나갔다. 주민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번을 서서 돌아가며 천막을 지켰다. 그러던 2012년 7월부터 대구와 경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끈이 닿게 되면서 수많은 발걸음들이 농성장을 찾아주었다.
2년만에 기습적인 공사 재개
그렇게 할머니들은 총 3기 중 완공된 2기를 뺀 나머지 한 기인 23호기 송전탑을 2년 동안 막아내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반성은커녕 또 다시 오만을 거듭했다. 지난 7월 21일 새벽, 한전은 한 마디 공지도 없이 공사를 재개한 것이다. 할머니 열댓 명을 통제하기 위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공권력의 규모와, 인간의 맨몸뚱이만으로는 감히 대적할 수도 없는 자본의 거대한 규모가, 할머니들을 압도해왔다.
공사가 재개된 지 오늘로 16일째를 맞는 8월 5일 오전, 평소 아픈 허리 때문에 걸음이 느린 소골댁 할머니(김선자, 75세)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공사 부지에 포크레인을 반입하겠다며 한전 직원 세 명이 할머니가 앉아있던 의자를 강제로 들어올리면서 할머니의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소골댁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간 뒤, 이어댁 할머니(이억조, 75세)는 공사장으로 들어서는 포크레인 앞을 가로막으며 느릿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안전모를 쓴 시공사 직원들과 제복을 입은 경찰 수십 명이 할머니를 둘러쌌다. 경찰 한 명이 다가가 할머니를 말리려고 하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한전아, 너무너무 억울해. 땅 밑으로 지나가게 해달라는 게 잘못이가!”
이어댁 할머니는 천막으로 와서도 소리치며 울었다. 공사장 부지로 들어간 덤프트럭은 레미콘 차가 들어설 진입로를 닦기 위해 진흙바닥에 돌멩이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내게 그 돌멩이 소리는 할머니의 생애 동안 당신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이 짓누르고 억눌러왔던 삶의 무게같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며 그만 울라고 했다. 며칠 전 레미콘을 막아내다 경찰에 끌려 나왔을 때도 할머니는 오히려 뒤에 빠져 있던 나를 걱정하면서 ‘송전탑이 망가져야지 사람이 망가지면 안 된다’고 걱정했었다.
그런데, 정작 망가지고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었다. 아직도 할머니들은 2년 전 시공사가 고용한 용역깡패들의 폭언과 폭행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억울함과 한이 풀릴 수 있도록 한전에서는 공사 전 적어도 사과부터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한전은 사죄와 대화의 자세는커녕 공권력을 동원해 갑작스럽게 공사를 재개하며 하루하루 더 숨을 조여오고 있는 것이다.
‘경찰인지, 한전의 사설 용역인지’ 분간이 안돼
2년 전, 경찰은 용역깡패가 할머니들한테 자행한 폭력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경찰의 방관에 기세가 등등해진 시공사 직원들은 더더욱 노골적으로 할머니들을 조롱하고 협박을 일삼았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경찰은 방관을 넘어서 적극적인 진압에 나서고 있다. 할머니들은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손자 같은 의경들이 명령 받고 와서 고생한다고 측은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경찰이 한전의 사설용역인지, 한전이 경찰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8월 4일, 이현희 청도경찰서장은 오전에 공사장 정문 앞 병력을 철수시키며 공사 자재를 반입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남긴 말은 경찰이 한전의 사설 용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까지 한전이 헬기 비용으로 2억원 넘는 비용을 추가 지출하였으니 이제 공사장 정문을 열겠다’고 한 것이다.
이현희 경찰서장은 이 발언으로부터 한 달 전쯤인 7월 7일, 청도경찰서 71대 서장 취임사에서 ‘경찰의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경찰서장의 행동은 말과 다르게, 한전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요구를 기꺼이 무시하였다.
한전 측도 이에 뒤질세라 퍽 경찰 흉내를 잘도 내고 있다. 한국전력 대구경북지사장은 8월 4일 오후 4시경, 공사장 앞을 막아선 주민과 연대자들에게 ‘현행범은 민간인이 체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채증조와 체포조가 출동하도록 명령했다. 채증조와 체포조는 한전 직원들로 꾸려진 민간인 조였는데, 문제는 한전 직원이 경찰 병력을 움직이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한전 대경지사장으로부터 ‘경찰 동원해서 할머니들 들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한전 직원이 경찰에 지시 사항을 전달하자마자 할머니들이 경찰에 들려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할머니들의 ‘불복종 투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지금 삼평리는 경찰과 한전의 폭력 진압으로 하루하루 전쟁터와 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할머니들은 그저 예전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백 보 양보해서 도시에 하듯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은 높은 비용 문제와 ‘전례가 된다’는 이유를 들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있다.
유신정권 말기에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36년 동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만으로 어디에든 송전탑을 세울 수 있도록 악용되어 왔다. 송전탑 공사의 부지 선정과 주민 동의 절차가 결여된 채 진행 중인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대화를 하자는 주민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렇기에 한전은 주민들이 제대로 된 동의절차를 밟은 적도 없는 송전탑 공사에 대해 '대승적 합의'라는 거짓말로 포장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공사를 당장 멈추고 주민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편, 또 다른 고민도 있다. 우리는 할머니들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삼평리에 올 수도 있지만, 할머니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삼평리에 올 수도 있다. 나는 지중화의 실시 여부나 송전탑의 완공 여부에 따라 할머니들의 투쟁이 단순히 실패나 성공으로 가늠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같이 국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할머니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최초의 반대와 불복종으로서의 송전탑 반대 투쟁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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