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평론가이자 음악웹진 “웨이브”(weiv)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드러내는 힙합음악
힙합 음악에서 자신의 불행한 가정사를 드러내는 가사는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래퍼가 부모 중 한 사람의 부재, 가난이나 환경의 어려움 등 ‘이렇게 밑바닥에서 자랐다’는 내용의 가사를 쓴다.
불우한 과거는 곧 자신의 시작점이 바닥이라는 것을 말하며, 이후 ‘여기까지 왔다’는 성공을 부각하며 스스로 이뤄낸 것들의 대단함을 이야기한다. 가족은 한 개인의 입신양명에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자수성가’ 서사에서 말하는 과거는 은연중에 성공을 말하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또 특정 형태의 가정을 다른 가정 형태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성공을 말하려는 의도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겪은 아픈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경향이 생겼다. 자신의 가족사를 더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때 얼마나 괴로웠는지에 초점을 둔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래퍼들은 ‘고통’ 자체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이제 경력을 막 시작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자수성가 이야기를 늘어놓는 래퍼들과는 조금 다르다.
로직(Logic)의 무료공개 곡 “Roll Call”
이러한 맥락에서 몇 개의 곡을 소개하려 한다. 우선 로직(Logic)이라는 래퍼가 무료로 공개한 곡 “Roll Call”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직은 대스타가 멘토가 되어 신인을 발굴하고 키우는 최근의 추세와는 달리, 직접 만들어 무료로 공개한 믹스테입만으로 이름을 알린 드문 경우다. 자신을 “영 시나트라(프랭크 시나트라를 말함)”라고 부르기도 하는 로직은, 친구들과 곡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인디펜던트 활동을 하던 중에 메이저 매체와 기획사의 눈에 띄어 정식 계약을 맺었다.
인디펜던트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존중을 받으면서 메이저 데뷔 앨범을 준비하던 그는 지난해 “Roll Call”을 공개하며 또 한번 화제를 낳았다. 이 곡은 아웃캐스트(Outkast)의 “Ms. Jackson”이라는 곡의 비트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Ms. Jackson”은 아이를 양육하는 일과 결혼이 현실이며 힘들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Roll Call”에서 로직은 자신의 가정환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코카인중독자 흑인 아버지와 알코올중독자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엄마와 살았지만, 자신에게 “깜둥이(ni**a)”라고 부르며 괴롭히는 엄마가 싫어 가출했다. 보통 혼혈인 흑인 래퍼들은 ‘한 방울 법칙’(One-drop rule)에 따라 ‘ni**a’라는 단어를 가사에 아무렇지 않게 쓴다. 한 방울 법칙이란 과거 인종분리 정책 때문에 생긴,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거꾸로 흑인 사회 내에서 이들을 ‘우리’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로직은 절대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Nate”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곡으로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Nate”도 있다. 이 곡의 가사는 어렸을 때 갱단의 일원이자 마약상인 아버지를 보면서 느꼈던 것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모습을 회상한다.
래퍼는 당시 어린 아들의 눈으로 보았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첫 번째 벌스와 두 번째 벌스의 시작과 끝을 각각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건 사람을 죽이는 거였어”, “어렸을 때 바랐던 건 돈을 많이 버는 거였어” 라고 붙이며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음악적 커리어에 있어서는 비교적 쉽게 풀렸다. 어릴 적부터 오드 퓨처(Odd Future)라는 크루(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와 어울렸고, 크루가 유명해지면서 함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이름 있는 래퍼들과 함께 작업하며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빈민가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힙합의 매력에는 자기 과시나 혹은 깊은 성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음악으로 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어떤 해답을 내놓거나 상황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적나라하게 자신이 처해온 상황들을 늘어놓는다. 그의 가사는 돈, 마약, 총기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나 범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대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복잡하게, 때로는 안타깝게 느껴진다.
※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Nate” 유튜브 영상
일라이자 블레이크(Elijah Blake)의 “6”
여기, 어릴 적 겪은 폭력을 그대로 드러낸 곡이 또 있다. 일라이자 블레이크(Elijah Blake)의 “6”이다. 이 곡은 6살 때 아버지에게 벨트로 맞은 그 시점부터 아버지라는 존재가 준 트라우마에 관해 얘기한다. 곡을 직접 작사한 일라이자 블레이크에 따르면, 생물학적 아버지는 여섯 살 때부터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줬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6”라는 곡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자신이 느낀 감정,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을 꺼내놓고 있다.
일라이자 블레이크는 2012년 앨범 [Bijoux 22]를 발표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어셔(Usher)의 “Climax”를 포함해 많은 곡에 참여하며 작사, 작곡을 했다. 노래도 되고 춤도 된다는 회사의 소개와는 무관하게, 그는 지금까지 꾸준히 어두운 분위기와 느린 템포의 알앤비 트랙을 만들어왔다.
한동안 잠잠했던 일라이자 블레이크는 EP 공개에 앞서 “6”, “Fallen” 두 곡이 붙어있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그가 메인스트림 가수로 도약하기 위해 빠른 비트의 리드미컬한 곡을 고민했을 때, 소속사 대표이자 멘토인 노아이디(No I.D.)가 ‘좋은 음악은 통한다’고 말하며 최근 샘 스미스(Sam Smith), 존 레전드(John Legend) 등 발라드 넘버 가수의 상승세를 언급하면서 이 곡을 첫 싱글로 내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6"는 개인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일라이저 블레이크의 넓은 음역과 가창력을 전면으로 선보이는, 개인의 서사를 힘있게 드러낸 좋은 곡이다.
※ 일라이자 블레이크(Elijah Blake)의 “6” 유튜브 영상
‘흑인 커뮤니티 내 가정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
‘아프리칸-아메리칸 커뮤니티 내에서의 가정폭력’ 이슈는 미국 사회에서 꽤 긴 시간 동안 다뤄졌다. 관련된 논문이나 책도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요한 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발표된 논문들 중 다수는 참여관찰의 자세보다는 분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또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이 후에 또 다른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나, 가정 내 남성성과 여성성의 불균형이 후대에 학습 효과를 낳는다는 점 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세 곡의 가사를 토대로 폭력가정의 구성원들의 생애를 재구성해보면, 이러한 이론이나 논문이 짚지 못하고 있는 면모가 보인다.
세 곡 모두 화자는 자신과 부모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작업을 하고 있어, 흔히 얘기되는 ‘학습되는 가족’보다는 운명공동체로서의 가족(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개념에 더 가깝다. 가족구성원 간의 유대 관계가 흐릿하며,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족을 관찰하고,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족구성원을 타인으로 간주하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사들은 최근 더욱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보수 정권인 레이건과 부시 집권 시기(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 래퍼가 되면서, 힙합 가사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2000년대 중, 후반까지 가능했던 메인스트림 랩 스타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줄어들며, 음악 시장과 개인의 삶 모두 넓은 바깥 세상을 지향하기보다는 안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생겼다. 스웩(swag)이라 부르는 자기 과시와 화려함, 서사 내용에서의 빈부 격차 경향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흑인 사회 내 가정폭력과 같은 문제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이야기에 가깝게 서술해왔고, 커뮤니티 내의 문제점은 특정 소수만이 꺼낼 수 있었다. 흑인 가정 내의 폭력과 같은 문제를 꺼내는 건 일종의 ‘내부고발’ 행위에 가까웠고, 그래서 몇몇 여성 래퍼들은 커뮤니티의 남성중심적 상황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감싸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내부 문제를 끊임없이, 다양한 측면에서 꺼내고 있다. 그만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관련 기사: 웨이브 weiv, 양재영, [us line] Ain’t Nuthin’ But A She Thang | 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이번에 소개한 곡들에서 공감이 가는 것은 운명공동체로서 가족을 바라본다는 관점이다. 운명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중에는 헤어질 수 있지만, 구성의 시작에 있어 입양 등의 변수를 제외하면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선택하지 못한다. 각 구성원이 서로를 선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함께 지내야 할 때, 그만큼 더욱 서로의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거리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일종의 ‘의무’로서 복종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세 곡에서는 이미 폭력적인 부모를 만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부모를 더 이상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조차 이상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 일생에서 더 크게 차지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애증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극단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을 추천한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오늘의 이야기를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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