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청도 주민들과 함께 한 72시간의 기록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필자 박이은희 님은 <밀양을 살다> 공동 저자이며 여성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편집자 주]
지금이 ‘꽃 같은 시절’ 아니고 뭣이여
“디모(‘데모’의 사투리)가 다 뭣이다요?” “상전 앞에서도 헐 말을 허는 것이 디모라네.” “스무 살 때 서방 징용 갈 때 허고 서른 살 때 산사람한테 감자 줬다고 갔을 때는 찍소리도 못 허고 오는 매만 맞았는데, 아흔 살 때 디모한다고 가서는 악이라도 쓰고 왔응게 그것이 꽃 시절 아니고 뭣이여.”
2014년 12월 17일. 밀양과 청도에서 할매와 할배, 언니들이 꼬박 72시간 동안 전국 열한 곳 저항의 현장을 찾아가는 “밀양․청도 72시간 송년회” 셋째 날.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할매들께 참아왔던 질문을 던졌다. 정말 지금이 꽃 시절이냐고.
지난 수년간의 싸움을 소회하면서 이남이 할매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전국 안 다녀 본 곳이 없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본 사람 미국 사람들이 다 찾아왔더라고 했다. 그녀의 얼굴엔 자존감의 빛이 역력했다. 청도 삼평리 이억조 할매의 말이 실제 사용하는 경상도 방언인지를 찾지는 않았다.
“철탑 막는다고 싸우면서 힘들고 뭐시 안될 거 같을 적에 항상 ‘사모 팔모’가 생기더라고. ‘별에 별 꼴. 별에 별 꼴’도 다 보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항상 헤쳐 나올 묘수가 생겨났고,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별난’ 사람 구경도 많이 했다는 뜻이라고 삼평리 부녀회장 이은주 씨가 풀이해줬다.
순례의 마지막 일정으로, 전남 나주에서 한전 집들이가 있는 날이다. 한전은 신문, 방송에 떠들썩했던 강남의 구 본사 땅을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고 팔았고, 나주 수천 평의 땅에 새 본사를 지었다. 오늘이 개청식, 순례자들 말로는 집들이가 있는 날이다. 미리 알고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라는데, 72시간 마지막 여정의 타이밍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아침 7시, 식사를 마치고 서울을 출발해 나주 초입에 다다른 시간은 정오를 넘었다. 전남 경계를 지나면서부터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20분만 달리면 한국전력공사 ‘새 집’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멈추어 섰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시동이 걸렸다. 버스에서 와~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연이어 깔깔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어르신들은 기꺼이 안방을 내주는데…
“한전의 신 사옥은 부지 5만6천276㎡, 건물 4만6천286㎡로 (…) 창의적인 패시브 기법의 녹색 빌딩, 지속 가능한 에너지 자립형 빌딩 (…) 신재생에너지 등을 통해 친환경 건물로 조성 (…) 에너지 절약 스마트 빌딩으로 건설됐다.” (헤럴드경제 인터넷 판, 2015년 1월 2일자)
수만 평의 넓은 부지는 이미 형광 색의 경찰들로 에둘러 싸여져 있었다. 멀리 우뚝 솟은 한전의 건물이 보였다. 그 앞의 넓은 도로의 이름은 ‘전력로’이다. 국무총리며 지방의 ‘고관대작’들이 모여 잔치를 여는 날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민들은 대문 안마당을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다.
밀양으로부터 할매, 할배들이 가득 탄 버스가 도착했다. 낯익은 얼굴들이 연이어 보인다. 피켓을 들고 미동도 않고 다부지게 서 있는 저 조그만 할매는 누구지? 1인 시위에 이골이 난 듯 자연스럽지만 성성한 기운이다.
가까이 보니 이순출 할매다.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할매들 말이 놀라워 여기(밀양)서 자주 쓰는 말인지를 물었을 때 “나는 앞으로 살아갈 우리 후손들 생각나서 그 말 몬 쓰겠더라” 했던 그 할매다. 말씨며 품새가 조용하고 고운 할매가 오늘은 저리 짱짱하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대표, 김준한 신부는 성토했다. “한전 사장이든 부사장이든 사람이 오면 우리 어르신들은 기꺼이 안방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전은 오늘 같은 잔칫날, 마당에조차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80을 훌쩍 넘긴 할매가 노란색 바리케이트를 계속해서 우르르 넘어뜨린다. 이어 모두 손 피켓을 흔들며 춤추고 노래했다. 트로트 ‘황진이’를 개사한 곡이다. “한평생을 바쳐서 농사만 지었는데 송전탑 웬~ 말이냐.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런 경사스런 날에 할매, 할배들이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남의 집에 들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밀양과 청도를 대표한 두 명의 주민 품에 비단 보자기를 두른 푸짐한 마늘 한 단과 가슴 가득 마른 쑥이 안겨져 있다. 그들의 뒤로 두 개의 손 피켓이 나란히 보였다.
“마늘. 한전! 이것 먹고 먼저 사람이 되어라!” “쑥. 한전! 이것 먹고 먼저 사람이 되어라!”
경찰 바리케이트를 뚫고 한전 사옥 마당으로
야전 사령관 별명을 가진 한옥순 할매의 목소리가 경찰들을 향해 날아든다.
“눈 오는데~ 여그 뭐 할라꼬 왔노~? 밀양에 철탑, 너그들이 다 세왔다! 아나~?”
이 살얼음판에 걷기조차 불편한 할매들이 대체 어떻게 저 경찰 바리케이트를 뚫고 사옥 마당으로 들어온 것일까. 할매들이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모습들을 보고 난 후에야, 나는 그간 대한민국 경찰들의 그 어이없는 짓들을 귀찮다는 핑계로 대충 넘겨 왔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분명 방조이고 묵인이며 명백히, 동의다. 부끄러웠다.
평소 따뜻하고 정 많은 그 할매들로부터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것은 막 끌려가고, 쇠사슬, 이런 것들 속에서 우리는 진짜 쨉도 안 되는 엄청난 힘이 펼쳐져 나온다고, 말로만 듣던 그 서슬 퍼런 분노였다. 너희 한전과 경찰들이 이런 넌센스, 장난 같은 짓들을 제 아무리 수십 년 해왔다고 한들, 옳지 않은 일이라면 단 하나도 한 순간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준엄하면서도 깐깐한 호령이었다. 매서웠다.
오후 한시에 시작된 한전의 집들이 집회는 매서운 추위의 눈보라 속에서 날이 저물도록 계속 되었다. 누구도 미리 버스에 탑승하지 않았다. 할매, 할배들은 무엇이라도 깔고 앉아 호통치고 외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날 모든 일정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던 두 명의 대책위 활동가가 나왔을 때, 비로소 끝났다. 두 명의 청년들이 일일이 버스에 올라 인사를 했을 때 다시 환호성과 박수와 깔깔거리는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3일 내내 타고 다녔던 그 버스를 타고 다시 밀양으로 가고 싶었다. 72시간 길 위의 송년회는 그들 집의 대문에 다다르고서야 끝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김옥희 씨에게 안부 겸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구미현 형님’ 집에 모여 파마를 하고 있다고 또 깔깔 웃었다. 그리고 지난 밤 밀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예전 인심 좋던 시절, 함께 탔던 관광버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두 돌아가며 노래 한마디씩을 부르고 장단 맞추면서 신나게 ‘놀면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밤 12시에 도착했다.
지난 10년간의 분함과 원통함, 요구가 가득 담긴 한전 집들이 집회 결의문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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