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너머의 삶을 만드는 장애여성들

<거북이 시스터즈> 박김영희, 정영란을 만나다

하금철 | 기사입력 2015/06/07 [15:29]

‘가족’ 너머의 삶을 만드는 장애여성들

<거북이 시스터즈> 박김영희, 정영란을 만나다

하금철 | 입력 : 2015/06/07 [15:29]

<일다>와 제휴 관계에 있는 언론 <비마이너>(beminor.com) 제공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7년, 각자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 세 명의 장애여성이 있었다. 박김영희, 정영란, 박순천. 각각 소아마비, 골이형성부전증, 척추만곡증과 저시력장애를 가지고 있는 1급 장애여성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3년 <거북이 시스터즈>(이영 감독)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기기도 했다.

 

장애여성에게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가족’ 밖에서의 독립 실험은 이들의 삶에 무엇을 남겼을까? 그리고 이들이 여전히 꿈꾸고 있는 ‘새로운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들의 도전은 ‘정상가족’의 밖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사회 한쪽 힘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지금, 그녀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여 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에 <비마이너>는 “거북이 시스터즈”를 만나봤다. 개인 사정 상 박순천 씨는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다.

 

▲  “거북이 시스터즈.” 왼쪽이 박김영희, 오른쪽이 정영란 씨.   © 비마이너 beminor.com

 

휠체어 타고 ‘가족의 그늘’에서 나온 세 사람

 

서른한 살의 나이에 처음 홀로서기에 나선 정영란 씨는 그전까지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학교도 다녀본 일이 없었고, 27살이 되어서야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몇 번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의 장애여성들의 모임인 ‘빗장을 여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말조차 아직은 낯설었던 그때, 이들은 장애여성이 집안에서 나와 직접 사회와 부딪쳐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빗장을 여는 사람들’을 통해 만난 정영란, 박김영희, 박순천 씨가 집을 구해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여성 세 명이 편히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째로 전세금 마련의 과제가 이들에게 주어졌다. 우선 정영란 씨가 아버지에게 ‘나를 학교에 보내줬다면 들어갔을 비용을 안 썼으니, 그걸 일시불로 달라’며 1천만 원을 받아냈다. 박김영희 씨가 또 일부를 보태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대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휠체어를 탄 이들이 들어갈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세 사람은 서울 고덕동에 있는 한 반지하 집을 택해야 했다. 그곳이 유일하게 계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해결 과제는 먹고 살기 위해 당시 생활보호법의 지원을 받는 ‘수급자 되기’. 별다른 소득원이 없던 이들에게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셋 중 부모님이 일정한 재산과 소득이 있던 정영란 씨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나머지 두 명은 어찌어찌 수급자가 되었지만, 박김영희 씨의 경우 남동생까지 1년에 한 번 부양의무자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직계 1촌 이내로 좁아졌지만, 당시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이보다 넓었던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하는 조건이 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여전히 장애인들이 ‘가족의 그늘’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 사회의 암묵적 요구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혈연 관계여야만, 결혼을 해야만 가족인가요?’

 

“우리가 그때는 의욕이 넘쳐서 동사무소를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장애여성 셋이서 같이 살고 있는데 지원받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그랬더니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가 ‘그룹홈이냐? 아니면 쉼터냐?’ 이렇게 물어요. 그런 거 아니라고 설명했더니 그 사회복지사가 뭔 소리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더라구요. 그리고는 종이 한 장을 내미는데,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표 같은 거였어요. 그걸 보여주면서 사회복지사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임대아파트라도 얻고 싶으면 장애남성과 결혼해라’ 그러더라구요.” (박김영희)

 

세상의 시선으로는 “거북이 시스터즈”는 이해 불가한 조합이었다.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가족이 부양을 책임져주거나(혹은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거나), 그것이 힘들면 장애인생활시설에 맡겨지는 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답안지의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혼의 장애여성 세 명이 함께 살고 있으니 자신들을 하나의 가구로 인정해 달라고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출현에 당혹스러워한 것은 동사무소만이 아니었다. 세 장애여성이 함께 산다는 소문이 돌자 ‘도와주겠다’는 선의의 목적(?)을 가진 이들이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이들의 말에는 항상 빠지지 않는 물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목사님이나 수녀님이 같이 계시냐?’, 그도 아니면 더 직접적으로 ‘관리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장애인이 사회로부터 공적이든 사적이든 지원을 받고 싶다면 기존의 가족(또는 시설)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압박이었던 셈이다.

 

▲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이영 감독, 2003) 중에서.   © 비마이너

 

그러던 와중에 반지하 생활을 청산할 기회가 주어졌다. 박김영희 씨가 생활보호대상자 청약 임대아파트에 선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셋이 함께 들어가 살기엔 좁은 평수였다. 사실은, 세 사람이 같이 들어가 사는 것은 허락조차 되지 않았다. 이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부양가족이 아니라서, 세대주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함께 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겪는 불편함은 구체적인 일상으로까지 파고들어왔다. 아파서 병원에 가도, 동거인이 보호자로서 서명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정영란 씨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때였는데, 보호자 동의는 오로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당에 가 계신 부모님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자연스레 고민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맞춰지게 되었다.

 

“아무리 같이 살아도 우리는 입원할 때 확인서 작성조차 해줄 수 없는 남남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때부터 6개월 이상 같이 살면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해주고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결혼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 살면서 의지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정영란)

 

함께 살며 의지하는 관계라면 당연히 ‘가족’이죠

 

이런 불편함을 겪어가면서까지 장애여성들이 동거를 유지하고 이를 ‘가족’ 관계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와의 동거나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그런 불편함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면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거북이 시스터즈”는 이런 삶의 방식을 통해, 기존의 ‘제도적 가족’ 관계를 통해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을 어떤 삶의 윤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생활과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주자는 원칙 같은 게 있었어요. 이를테면, 누군가가 늦게 들어오게 되어서 전화로 ‘나 오늘 늦어’ 그러면 더는 물어보지 않는다거나. 물론 뜻하지 않은 간섭을 하게 될 때도 있었고, 간섭과 관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고 갔지요. 그래도 기존의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들어서는 순간, 간섭이 마치 권리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어요.” (박김영희)

 

“혈연 가족의 테두리에서만 살았다면 저는 쉽게 안주하며 살았을 거예요. 내가 애써 뭘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다 하셨으니까. 우리 셋이서는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존에 대한 것을 직접 해내지 않으면 안 됐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져야만 한다는 강함을 길러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건 고정된 성역할에 붙잡히는 다른 방식, 그러니까 결혼 같은 것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정영란)

 

이들이 이렇게 몸으로 직접 부딪쳐본 가족과 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한 고민들은 1999년에 장애여성공감이 펴낸 잡지 <공감> 2호의 주요 논의 거리가 되기도 했다. 무려 16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읽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얘기들이 많다. 그만큼 장애여성을 둘러싼 조건이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 터.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부부에게는 많은 혜택들이 주어진다. 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없다면 아마 결혼식을 올린 많은 부부들이 혼인신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결혼으로 형성된 가족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이유는 ‘가족’이 보호되어야 할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

 

한국 장애여성의 결혼률이 매우 낮은 것은 장애여성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편견의 결과로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지만 남녀관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장애여성도 있다. (…) 새롭게 나타나는 장애여성 정책들은 장애여성의 결혼률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한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할 생각이 없는 장애여성의 삶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도 모색되지 않고 있다.” -<공감> 2호

 

생활동반자에게 법적 권리가 인정된다면…

 

박김영희, 정영란, 두 사람의 생각도 이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이들은 현재 각자의 집을 마련해 살고 있지만, 결혼이 아닌 방식의 삶의 결합을 선택한 이들이 여전히 자신들과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장애여성의 동거에도 혼인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꿈꾸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도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라는 것뿐이죠. 이제는 장애여성이 누군가와 동거할 경우 이들에게도 부부에 준하는 혜택을 주고, 법적으로도 그 관계를 인정해 줘야 해요.” (박김영희)

 

장애여성뿐만 아니라 결혼 외의 방식으로 다양한 삶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현재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추진되고 있다.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주도로 법률안을 만들고, 법안 발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법은 혈연 또는 혼인 외의 사유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활동반자 관계의 성립과 효력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이외에도 생활동반자 관계가 법적 권리의 사각지대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폭력처벌법, 국민건강보험법, 의료법, 임대주택법 등의 개정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거북이 시스터즈”도 생활동반자법이 기존의 낡은 가족 테두리를 넘어 장애여성의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거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장애여성의 삶의 어려움이 다 해결되지는 않겠죠. 이 법이 장애인의 일상 생활 지원, 소득 보장 같은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성에게 차별적인 결혼 제도 바깥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장애여성의 독립을 위한 소중한 씨앗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려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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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5/06/13 [20:49] 수정 | 삭제
  • 정말 좋은 기사네요.. 정독했습니다.
  • Silee 2015/06/10 [20:15] 수정 | 삭제
  • 결혼이 필수가 아니게 된 지금 장애여성들에 대한 의식전환과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제정은 꼭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던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수 있어야 하는게 맞겠죠. 진성미 의원님 지지해요
  • 일상의 회복 2015/06/09 [00:37] 수정 | 삭제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거북이 시스터즈]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세분과 함께했던 시간을 지금도 잊을수가없습니다. 장애여성잡지 [공감]의 이동권 자립권 등에 대한 글들은 비장애여성들에게도 여성현실을 직시하고 공론화하고 투쟁하는 '교과서'였습니다. 이후로도 박김영희님 등의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를 내시는 다양한 활동과 비례대표후보출마 등의 모습에 늘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번 '생활동반자법'은 장애여성가정 등 여성가정들과 동성애자가정 등 진정한 가족 모두에게 뜻깊은 시작이겠습니다.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등 다양한 현실의 주체들이 이성애자남성(또는 비장애인)이라는 호주(관리자 또는 기도) 없이 시민으로 인정되는 진정한 시작이겠습니다. 기사 고맙습니다.
  • 고물상 2015/06/08 [14:47] 수정 | 삭제
  • 멋집니다! 동반자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해준다면 훨씬 좋은 가족 관계들이 늘어날 것 같아요.
  • 비바 2015/06/08 [09:26] 수정 | 삭제
  • 결혼이라는 틀거리의 만행이군요.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단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진선미 의원이 새로운 지평을 여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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