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라서 더욱 은폐되는 ‘데이트 강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6. 십대 데이트 폭력

나랑 | 기사입력 2015/08/05 [14:55]

10대라서 더욱 은폐되는 ‘데이트 강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6. 십대 데이트 폭력

나랑 | 입력 : 2015/08/05 [14:55]

※ 일다의 신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발간 기념으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십대의 성적 행동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십대간 성폭력은 오히려 방치된다.   ©pixolga

 

카톡으로 만난 열일곱 지윤과 경주의 사례

 

17살 지윤이(가명, 여성)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선생님에게 지난 주말의 일을 털어놓았다.

 

“게임 사이트에서 만났어요. 제가 엄마아빠랑 말이 안 잘 통하거든요. 형제도 없고 학교 친구들한테도 속 얘기를 다 안 해요. 김경주 걔랑은 말이 잘 통했어요. 카톡도 수시로 주고받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한 비밀도 다 털어놨어요. 카톡하기 시작한 지 열흘쯤 됐나, 홍대 앞에서 만났어요. 외모가 사진보다 별로긴 했는데 카톡에서 되게 자상하게 해줘서 사귈 마음도 있었어요. 믿었기 때문에 DVD방도 같이 간 거예요. 그렇게 갑자기 덮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한테 친절하게 해줬던 게 스킨십하려고 밑밥 깐 거였나 봐요, 어이가 없죠. 키스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손이 가슴으로 오는 거예요. 처음엔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하는 거예요. 짜증내다가 다음에는 어떻게 할 지 몰라서 그냥 다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머릿속은 복잡했죠. ‘임신할 수도 있는데 어떡하지?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내가 첫 경험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망했다’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못했냐고요? 거기서 소리 지르면 카운터 아저씨한테 제가 십대인 거랑 술 먹은 거 다 들키는 거잖아요. 경찰서라도 가게 되면 엄마아빠 난리 나요. 절 집에 가둬놓을걸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 받고 센터에 교육을 받으러 온 17살 경주(가명, 남성)는 이렇게 말했다.

 

“아, 진짜 억울해요. 이거 때매 수업정지 먹고 쪽 팔려서, 진짜… 전 동영상에서 본 거랑 친구들이 얘기해 줬던 거 그대로 한 거예요. 중간에 걔가 하지 말라고 한 것 같긴 한데, 여자들이 다 조금씩은 빼잖아요. 그리고 DVD방 가기 전에 술 먹으면서 걔가 먼저 볼에 뽀뽀했어요. 먼저 꼬리쳐 놓고 아우, 진짜… 그렇게 싫으면 DVD방에서 도망갔으면 됐잖아요. 그리고 저 만나러 나온 거면 그거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게임 사이트에서 만나서 오프라인에 나온 여자애들은 다 쉬운 애들이라고 형들이 그러던데요. 제가 그 날 데이트 비용도 많이 썼어요. 이주일 치 용돈 다 털었는데… 억울해요.”

 

십대의 성관계에 대한 통계, 남녀 차이 드러나

 

데이트 성폭력은 주로 성인, 그 중에서도 20-30대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십대 또래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십대의 성을 ‘보호해야 할 성’으로만 간주하고 성적인 행동을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 십대간 데이트 성폭력은 오히려 방치되고 드러나지 않는다.

  

▲  성교육 시간에 연애를 주제로 조별 작업을 하는 중학생들.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서울시와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진행한 <2013년 청소년 성문화 연구조사>에 따르면 중학생의 37.8%, 고등학생은 46.3%가 연애를 하고 있다. 이 조사는 서울시 소재 중학교 2학년 1천103명, 고등학교 2학년 및 특수집단 청소년(보호관찰을 받고 있거나 쉼터에 살고 있는 청소년) 1천2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신체 접촉이 없다’고 응답한 9.3%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애 관계에서 신체 접촉을 하고 있었다.

 

‘첫 성관계를 했던 경로’에 대해,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응답을 제외하고 남자 고등학생은 ‘둘 다 원해서’가 19.0%로 가장 높았고 ‘내가 원해서’가 6.4%, ‘상대방이 원해서’가 6.1%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자 고등학생은 ‘상대방이 원해서’가 11.5%로 가장 높고, ‘둘 다 원해서’ 5.6%, ‘내가 원해서’ 1.0% 순이었다.

 

남학생은 ‘서로 원해서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학생은 ‘상대남성이 원해서 이에 응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응답률이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조사 결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성관계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남자 고등학생은 ‘호기심으로’가 9.1%로 가장 높았고, 여자 고등학생은 ‘거절하기 힘들어서’가 5.3%로 가장 높았다. 또 ‘첫 성관계가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졌는지’ 묻는 질문에 남자 고등학생은 ‘서로 원해서’ 13.9%, ‘술 마신 상태’ 6.9% 순으로 응답한 반면, 여자 고등학생은 ‘술 마신 상태’ 6.8%, ‘서로 원해서’ 3.9% 순으로 응답했다.

 

한편,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이로 인한 십대간 데이트 성폭력 피해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사귀기로 하면 바로 상대의 알몸 사진, 성기 사진을 요구하거나 자기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 헤어진 후에는 복수심에 이를 유포하거나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청소년 성문화 연구조사>에서도 연애를 하면서 ‘커플 앱을 사용해봤다’가 36.6%, ‘스킨십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적 있다’가 13.0%, ‘성적인 내용의 문자(채팅)을 주고받았다’가 10.4%로 드러났다.

  

‘손잡기에서 성기삽입까지 한 큐에’ 스킨십의 시나리오

 

십대간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와 그 특징은 무엇일까?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기획부장은 “십대가 연애를 하게 되면 여자든 남자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킨십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스킨십의 진도를 나갈수록 남자와 여자의 인식이 다르다는 걸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십대남성들은 남녀 간 스킨십이 ‘손잡기→ 어깨 손 올리기→ 키스하기→ 애무하기→ 성관계’ 이렇게 쭉 나간다고 생각해요. 야동을 보면 중도 하차가 없고 한번 시작하면 무조건 성기 삽입까지 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십대남성들은 스킨십을 하면 당연히 성관계까지 한 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죠. ‘상대가 약간 빼긴 하지만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요.”

 

이렇듯 십대남성들이 ‘스킨십 진도 나가는 것’을 연애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또래 여성들은 ‘나는 스킨십을 어디까지 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이 별로 없다.

 

“나는 어디까지 원하는지, 내가 원하는 스킨십은 어떤 것인지 탐색할 기회가 십대여성들한테는 너무 없었던 거예요. 십대여성들의 성적인 시나리오를 성관계까지 넓히는 게 필요해요. 대부분 십대여성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건 ‘키스’까지고, 그 다음은 ‘내가 원하지 않으면 상대가 안 하겠지’ 막연하게 기대만 해요. 상대가 성관계를 요구하면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하게 되죠.”

 

데이트를 하다 남성이 갑작스럽게 성관계를 시도하면 여성들은 당황하고 갈등하면서 강력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남성은 상대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관계를 수락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추후에 그것이 성폭력이었다고 말하면 남성은 위 사례의 경주처럼 “그때 거부하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왜 성폭력이라고 하느냐”고 반발하기 십상이다.

 

성적 의사소통을 배울 기회가 없는 십대들

 

▲  로빈 월쇼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공격적인 성행동을 하도록 사회화된다.”

 

신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부제: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로빈 월쇼는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이기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성관계에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여성을 자기 자신의 바람과 욕구를 가진 평등한 파트너로서가 아닌 단지 성관계를 위해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법을 학습한다. 이를 통해 남자아이들은 여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성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며, 설혹 상대 여자가 내켜 하지 않아도 집요하게 구슬리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다고 인식하기에 이른다.”(98p)

 

남성들이 자라면서 쉽게 접하는 야동은 성기중심적인 성행위만을 보여준다. 또래 남성이나 윗세대 남성을 통해 학습하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학습하는 성교육 내용에는 남녀의 즐거운 상호 작용으로서의 성관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98p)

 

미디어에서도 여성을 벽에 밀치고 기습 키스하기, 뺨을 때리거나 거칠게 손목을 잡고 끄는 등의 행위가 ‘폭력’이 아닌 낭만적인 사랑으로 그려진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여성들도 ‘남성들이 묻지 않고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걸 꼭 물어봐야 아느냐”면서 성행위에 있어서 수동적인 위치를 자처하는 것. 또, 오히려 여성들이 왜곡된 통념을 더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중학생들한테 ‘남성의 성욕은 조절 가능하다’를 O, X로 물으면 오히려 남학생들은 O라고 대답하는데 여학생들이 X라고 대답해요. 남학생들은 본인의 경험상 O인거고 여학생들은 ‘남자들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 여자가 몸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X인 거죠. 그런 통념을 갖고 있을 때, 밀폐된 공간에서 상대가 성관계를 강요해오면 강력하게 거부하기 힘들어요.”(박현이 기획부장)

 

성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뒤집고 성적 의사소통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적인 제도는 성교육 시간이다. 그러나 초, 중, 고등학교에서 해마다 15시간 실시하는 성교육은 독자적인 수업이 아니라 도덕, 체육, 과학, 가정 등 교과에서 조금씩 다루어 합해서 15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내용 또한 성기 구조나 임신, 출산 등 ‘성 생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성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십대를 성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숙선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책임상담원은 “피임에 대해 교육하려고 하면 어른들이 ‘아니 애들한테 그런 걸 왜 가르쳐?’ 이런 반응을 보인다. 교육을 통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해야 되는데, 교육을 하면 성에 대한 정보를 줘서 (성행위를)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가 생겨서 상담실에 오면 그때서야 교육을 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  성교육을 받는 여자 고등학생들.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데이트 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첫 성경험을 데이트 성폭력으로 겪는 십대여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상대남성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그것을 ‘성폭력’이라고 이름 붙이기 힘들뿐더러, 설사 성폭력이라고 인지한다고 해도 부모나 교사 등 어른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성경험이 비난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피해를 입은 십대여성은 적절한 사후 대응을 하지 못하고, 가해를 한 십대남성도 교정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가해 행동을 반복하게 될 소지가 크다.

 

미국의 경우 ‘데이트 폭력’ 문제는 십대들에게 특히 강조된다. 허민숙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이러한 인식은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됐다.

 

“가정폭력 가해자를 봤더니 이미 데이트 때부터 폭력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십대일 때부터 폭력을 막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거죠.”

 

미국은 22개 주에 ‘십대 데이트 폭력에 관한 주(州)의 법’(Teen Dating violence state laws)이 제정돼 있어서 학교장이나 이사, 운영위원회가 책임지고 학교에서 ‘데이트 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예산을 편성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가해자 되지 않기’, ‘피해자 되지 않기’, ‘피해자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가’, ‘피해자가 왜 도움 청하기를 망설여서는 안 되는가’ 등을 교육한다.

 

또한 국가가 민간에 위탁한 형태로 ‘십대 데이트 폭력 긴급전화’(National Teen Dating Abuse Hotline)가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허민숙 연구교수는 “십대 또래 간 데이트 폭력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사회적 메시지인 셈”이라고 설명한다.

 

욕망만이 연애가 아냐…”사랑의 폭을 넓혀줘야 해요”

 

▲  성교육 시간에 조별 토론을 하는 남자 고등학생들.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우리 사회도 이런 제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방안과 더불어, 십대를 성적인 주체로 인정하고 남-녀 분리된 성역할을 떠나 다양하고 풍성한 연애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십대가 연애를 하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몰라요. ‘성적인 행위, 이벤트, 선물하기, 누군가한테 자랑하고 싶은 관계, 내가 부를 때 찾아와주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 이 정도 기대가 전부에요. 사랑의 폭을 넓혀줘야 해요. 연애에는 스킨십, 열정, 욕망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친밀감을 나누고 관계에 헌신하는 것,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교육해야 합니다.”(박현이 기획부장)

 

“데이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십대남성에게는 상대를 배려하고,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와 영향을 고려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어요. 십대여성에게는 좋은 관계에서도 상대가 나를 불쾌하게 한다면 그 불쾌함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홍숙선 책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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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hscc7047 2015/10/25 [21:11]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입니다!
  • gyk 2015/08/07 [19:37] 수정 | 삭제
  • 박현이 선생님 말씀 참 좋다.
  • 라됴 2015/08/06 [13:06] 수정 | 삭제
  • 좋은 정보네요.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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