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 낯선 몸과 함께 살아가기

반다의 질병 관통기①

반다 | 기사입력 2015/09/27 [10:20]

아픈 몸, 낯선 몸과 함께 살아가기

반다의 질병 관통기①

반다 | 입력 : 2015/09/27 [10:20]

※ 2015년 <하늘을 나는 교실> 가을 학기에 “질병과 함께 춤을!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수업을 개설한 반다(조한진희)님의 ‘질병 관통기’가 4회 연재됩니다. <하늘을 나는 교실> 시간표 및 수강 신청 페이지 http://bit.ly/1OYb8rb

 

친구들에게 ‘철인 28호’라고 불렸던 나

 

알람을 손에 쥐고, 삼분만 이분만 일분만.

 

실눈으로 시침을 보다가 최후의 마지노선이 막 지나갈 무렵, 헐레벌떡 이불에서 몸을 꺼낸다. 수영가방을 챙겨들고 5분 동안 거의 전력질주 끝에 수영장에 도착한다. 거의 어김없이 지각을 하지만, 수영을 하고 난 뒤의 개운한 맛이 좋다. 그 개운함 때문에 다음날 다시 전력질주를 하게 된다. 수영이 끝나면 건물 뒤 등나무 벤치에서 모닝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고 사무실에 가서 할 일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수영과 함께하는 아침은 삼십대 들어 4년 넘게 이어진 일상이었다. 수영은 오랜 취미이기도 했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철인3종 경기에 나가기로 한 친구들과의 약속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친구들은 종종 나를 ‘철인 28호’라고 불렀다. 철인3종 경기에 참여하는 건, 그 별명에 걸맞게 이십대 초반부터 친구들과 도모한 장기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알람시계가 최후의 마지노선을 한참을 지나도 여전히 몸은 이불 속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하룻밤 훌쩍 새며 일을 해치우던 체력은 이젠 꿈도 못 꿨다. 낮에도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있기 일쑤고, 겨우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곤 했다. 철인 28호라는 별명은 무색해졌다.

 

몸에서 본격적으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건 중동 지역으로 3개월간 현장 활동을 다녀온 직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푹 데쳐진 시금치처럼 기운이 없고 눅진했다. 몸에서 때 아닌 때 피가 나오기도 하고, 현기증 때문에 출근버스에 서 있는 게 힘든 날도 있었다. 몸살을 앓는 것처럼 어깨와 팔다리가 쑤시고 아팠다. 1년 가까이 몇 군데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지켜보자는 말을 할 뿐이었다. 답답했다.

 

갑상선암이라니…오진인 건 아닐까?

 

▲  [몸, 생태계] 벤 자일스(ben giles)의 콜라주를 모작한 이미지입니다. ©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십만 원을 주고 종합건강검진이란 걸 했다. 결과는 대부분 정상이었는데 단 하나, 갑상선암이 발견됐다. 의사는 1.2cm나 된다며 빠른 수술을 권했고, 간호사는 달력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좀 생각해보겠다며 병원을 나섰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일까, 오진인 건 아닐까? 차에서 창밖을 보면 착시현상이 잘 일어나듯 뭔가 잘못 본 건 아닐까?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암이 맞았다.

 

당혹스러웠다. 갑상선암이 다른 암에 비해선 가벼운 암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던 건, 내가 겪는 이상증세들과 갑상선암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현재 검사 결과로 봤을 때, 갑상선암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이나 증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내가 계속 아픈 원인이 뭐지?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게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질병이란 몸이 살기 위해 보내는 신호라고 했을 때, 몸은 계속 살려달라고 SOS를 보내는데 나는 제대로 수신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웠다. 그냥 이 정도 증세를 안고 평생 살라면 살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이게 바닥이 아니라 더 나빠져 가고 있는 과정 중이라면? 원인을 못 찾아서 치료시기를 놓쳐버린다면? 불안했다.

 

그리고, 갑상선을 제거해 버리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걸까? 암세포가 아직 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는데, 예방 차원에서 예민한 호르몬 기관인 갑상선을 당장 제거해 버린다? 정말 해야만 하는 걸까? 갑상선을 제거하고 나면 보통 체력이 저하된다던데, 지금보다 몸이 더 약해지면 어쩌지?

 

의사에게 물었다.

“혹시 수술 이후에 제가 겪는 현기증이나 이런 게 심해질 수도 있을까요?”

“그건 모르죠.”

의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한 것이었지만 다시 당혹스러웠다. 혼란스러웠다.

 

가족과 지인들은 갑상선암 수술을 독촉했지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의사들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내 몸을 읽는 것 같았다. 내가 겪는 증세와 통증은 여러 검사에서 발견된 원인이 없었으므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다. 갑상선센터의 의사는 내 몸에서 갑상선만을, 내과의사는 내 몸에서 현기증만을 보는 것 같다. 의사들은 자신이 보아야 할 전문 분야가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그 모든 게 연결된 총체적인 내 몸을 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의료전문인은 의사지만 결국 내 몸을 총체적으로 보며 고민해야 하는 건 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다. 두려웠다.

 

내게 맞는 치료를 찾아 나서다

 

몸과 질병에 대해서 내가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을 찾았다. 이렇게 많은 환우회 온라인 카페가 있다는 것과 대형서점엔 암 섹션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것만 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정보인지 광고인지 모를 자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건강 혹은 질병을 둘러싼 산업이 엄청나다는 걸 실감했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불안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너무 쉽게 속는다는 글도 많았다.

 

나는 여러 책을 읽고 환우회 정보들을 검토한 끝에 한의학과 대체의학에 눈을 돌렸다. 이미 서울의 손꼽히는 대형병원은 몇 군데나 방문했었다. 갑상선암을 수술하라는 것 이외에 내가 겪는 증세와 질환에 대해 어디에서도 적절한 치료법을 제시받지 못했던 터였다. 무엇보다 한의학이나 대체의학이 서양의학보다는 질병과 몸을 좀더 총체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신뢰감이 들었다.

 

▲  나는 한의학과 대체의학에 눈을 돌렸다.   © 반다

 

내가 만났던 한의사나 대체요법사는 진단을 할 때 기계가 알려준 수치도 고려했지만, 환자가 몸에서 느끼는 증세나 현상도 주요 단서로 고려했다. 나는 각종 의료검사 기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수치화해서 보여준다는 게 놀라운 첨단과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환자 몸의 특성을 구석구석 살피고 환자와 대화를 통해 진단하는 과정이 왠지 더 정밀하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증세 별로 지정해 준 정기 검진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한의원와 대체요법사에게 지도받은 대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활습관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음식은 물론 튀긴 음식, 밀가루, 설탕, 백미를 완전히 끊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생활리듬을 맞추고, 현기증이 심하지 않은 날에 한해 아침마다 햇살을 받으며 집 앞 산길을 걸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날은 네 시간 이하로 제한했고, 잠들기 전 스트레칭과 족욕을 했다.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특이한 치료를 하진 않았다. 된장국에 나물 같은 평범한 음식을 신선하게 만들어 먹고, 침뜸 치료를 하고, 외출할 때는 도시락을 챙겨가고. 피로감이 쉽게 들 수 있는 시끄러운 도심엔 잘 나가지 않았다. 생활 전반에서 몸에 이롭지 않은 것들을 삭제한 평범한 생활이었다.

 

몸일지를 쓰며

 

하지만 그 평범한 생활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았고, 매일 잠들기 전 몸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몇 시에 일어나고 잤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고, 몸의 이상 증세 정도, 기분은 어떤지 기록했다. 처음엔 내가 규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기록이었지만, 내 몸을 더 잘 돌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환자가 되어서도 일하듯 빡세게 산다며 주위에서 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에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현기증 때문에 출퇴근이 힘들어서 결국 휴직계를 낸 상태였고, 3년 동안 공들여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를 앞두고 중단된 상태였다. 나는 질병을 내 몸에서 빠르게 떠나보내고 싶었다. 물속에서 땀이 나게 수영을 하고 밤새 일도 하는 일상으로 꼭 돌아가고 싶었다.

 

식이요법을 지도해준 분은 ‘질병이란 몸에 찾아온 손님’이라며, 극진히 대접해서 떠날 수 있게 해주라고 했다. 질병은 죽음으로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에서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질병이 와서 몸을 쉴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덧붙이면서.

 

엄격하게 생활을 관리하며 사는 게 재밌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몸을 이렇게 극진히 돌봐준 적 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며 보내려고 노력했다.

 

▲   몸일지를 쓰다.  © 반다

 

질병에 포박된, 낯설고 종잡을 수 없는 내 몸

 

사실 내가 힘들었던 건, 여러 규칙을 지키며 사는 것보다 내 일상이 온통 질병으로 점유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1년만 그렇게 치료기간을 보내면 회복될 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몸이 회복되는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거의 3년을 그렇게 보냈다. 나의 하루는 몸에 신선한 음식을 넣어주기 위해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의무적으로 운동을 하고, 치료를 받으러 다녀오면 끝났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질병에 포박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질병을 경험하며 나는 ‘몸의 존재’임을 매순간 인식해야 했다. 정확히는 몸의 눈치를 자주 보게 되었다. 시내 대형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반나절을 보내고 들어 온 날, 이 정도 피로감을 과연 몸이 견뎌줄까 걱정했다. 또다시 때 아닌 때 피가 나오는 게 아닐까, 몸의 반응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좀 좋아서 컴퓨터 앞에서 꼬박 네 시간 동안 작업을 했더니,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검은색 선글라스라도 끼고 있는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또다시 시작되는 강력한 현기증. 그 전주만 해도 아침 운동 때 산길을 달려가도 현기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몸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질병은 내 몸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몸은 낯설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소한 약속을 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내 인생을 계획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어차피 계획을 해도 그게 지켜질 수 있을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몸’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난감했다.

 

질병을 경험한다는 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질병에 걸린다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을 때, 어항 속에 돌 하나 더 얹어지는 게 아니라고, 어항에 핏물이 한 컵 부어지면서 그 물의 밀도가 변하는 일이고 어항 속 생태계가 변하는 일이라고, 질병 하나가 내 삶에 쏙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내 일상이 다시 구성되는 일이며 동시에 내가 기획했던 미래가 무효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일인데,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중증질환에 걸릴 거라는 예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떻게 일상을 살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질병 앞에서 더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건 내가 그만큼 건강에 대한 과신과 오만이 있었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사회엔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적다.

 

더 많은 질병 이야기가 소통될 필요가 있다

 

물론 질병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차고 넘친다. 텔레비전에서는 종일 몸에 좋다는 음식 정보가 쏟아지고, 질병을 극복한 인간승리 사연 혹은 비참한 죽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틈새로 질병에 대한 불안을 담보로 한 사보험 광고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 개인이 질병 앞에서 겪었던 혼란과 그 과정을 관통하는 일상의 이야기를 나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어디서나 만나기 쉬운 사랑이야기를 보며 자신의 사랑관계를 돌아보거나 여러 상황 앞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듯, 질병도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고령화 시대 중증질환은 필연이고, 심지어 요즘의 중증질환은 점점 더 연령과 상관없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질병을 대비해서 보험을 더 가입해야 한다기보다, 질병이 왔을 때 본인이 어떤 선택과 대처를 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질병을 관통해나가는 과정도 내 삶의 일부임을 알고, 질병이 내 삶을 다 점유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죽음에 대한 사색이 확산되면서 중환자실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죽음을 떠올려 봄으로써 삶을 다시 묻게 되듯이, 질병을 질문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안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때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사소하고 평범한 질병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질병에 대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늘 말리는 친구가 있다. 질병에 대한 낙인 때문이다. 나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결혼을 안 해서…’ 사회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경험했고, 또 하고 있는데,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유통되지 않는 건 정말 질병에 대한 낙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사실은 나도’, ‘사실은 내 동생도’, ‘이건 우리 가족만 알아, 꼭 비밀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처음 아플 때부터 동료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곤 했는데, 그건 내가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런 ‘질병 낙인’이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미 몇 차례 공개적으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 자리에 나선 적이 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는 얼만큼 내 경험을 드러낼 지 갈등하는 나를 보았다. 최근 질병 낙인 앞에서 위축감을 느꼈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우리들의 질병 이야기가 고립되지 않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사회에 일상적이고 소소한 더 많은 질병 이야기가 돌아다니게 되는 걸 보고 싶다. 그럼으로써 누군가 질병 앞에서 외로움과 혼동을 조금 덜 겪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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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5/10/01 [20:28] 수정 | 삭제
  • 말씀하신대로 질병낙인과 편견, 오지랖같은 동정으로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와 조금 벗어나지만, 질병이 생겼을 때 글쓴이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하루 4시간이하로 컴퓨터 보기, 설탕/밀가루 등 일체 먹지 않기,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수면하기 수시로 족욕과 침치료, 외출할 때 도시락 싸기 등등을 지키는 건, 지금의 한국에서는 일정수준의 경제력과 재택근무 가능한 능력, 여건이 되는 직장인/자영업자 아니고서는 100%혼자 자급자족하며 살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쓴님은 자신이 한 생활을 '생활 전반에서 몸에 이롭지 않은 것들을 삭제한 평범한 생활이었다'고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성인이 그 누구의 경제적 도움없이 의식주에 관한 비용 전부를 100%자급자족하며 저 생활과 생계를 위한 생활을 양립할 수 있을까요? 최소한 주거비라도 부모에게 물려받아 여유시간 많은 일을 하는 대신 급여가 낮지만 남는 시간만큼 여유시간으로 저런 생활하며 살지 않는 이상..
    님이 한 생활이 전 지금의 한국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활'이라 생각하고, 님께서 그런 생활을 하며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경제력과 누군가의 원조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결국, 지금 상황의 한국에서는 건강하려고 해도 결국 자본유무에 따라 건강이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듭니다. 하루벌어먹고 살기 힘든 일용자 수준은 아니지만, 회사 잘리면 몇 개월 빌붙일 데도 없는, 수중의 돈이 많지 않고 의지할 가족/친지없는 독신성인에게 과연 저 생활이 가능할까요?
  • darkblue 2015/09/29 [10:20] 수정 | 삭제
  • 중증질환에 걸릴거란 생각을 해본적 없었단 얘기에 찔끔하네요. 저도 기사 보면서 같이 생각해볼게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