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좋은 시골에서, 행복한 사람은 누구?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③

명심 | 기사입력 2016/07/10 [22:25]

인심좋은 시골에서, 행복한 사람은 누구?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③

명심 | 입력 : 2016/07/10 [22:25]

※ ‘문화기획달’에서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으로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를 진행 중입니다. 이 캠페인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 안에서 제기된 쟁점과 대안에 대해 예민하게 짚어보는 연재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귀농여성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장소, 마을회관

 

농촌에서 여성들의 수고는 집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살롱드마고’(지리산 여성전용 생활창작공간)에 모인 동네 여자들의 토크파티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농촌에 온 여성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장소인 마을회관에 한 번 들어가 보자.

 

▶ 남자 출입문과 여자 출입문이 따로 있는 마을회관.  남자들의 방으로 들어가는 남자들의 출입문이다.   ⓒ 문화기획달

“마을회관에 가면 남자들이 들어가는 문과 여자들이 들어가는 문부터 다르잖아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자들 방이 있고, 여자들은 그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는데 부엌이랑 바로 연결되어 있어요. 남자들 방에는 앉는 자리에도 서열이 있는데 제일 나이 많은 어른부터해서 서열대로 앉더라고요.”

 

“마을 행사 때 음식 하러 미리 와서 준비하고 일하고 있는 언니들을 보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그게 당연한 문화가 됐고, 그걸 따르는 할머니, 그리고 그 밑에 마을 언니들이 있잖아요. 일이 힘들고 하기 싫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시댁 다시 가는 느낌, 그게 재현되는 거예요, 마을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혼재해 있는 느낌이 너무 싫은 거죠. 언니들을 밖에서 편하게 만날 때랑 마을회관에서 만날 때랑 묘하게 느낌이 달라요. 남편이 남자 방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정말 짜증나고요. 이 마을의 갈등을 왜 아무도 못 느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다들 모여서 같이 밥을 해먹잖아요. 전에 회관에서 봤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쟁반을 던지다시피 주면서 ‘빨리 가져가. 아유, 죽지도 않아, 저것들은.’ 이러는데 너무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끔찍했어요. 몇 십 년을 그렇게 사신 거 아니에요.”

 

집과 마을에서 여성은 남성의 시중을 드는 존재다. 반면 남성은 허울뿐인 권위의식으로 특권을 누리며 산다. 할머니들도 할아버지들 밥상 차려주는 게 지겹다고 하시면서도, 가부장제 안에 갇힌 채 지긋지긋한 노동을 형벌처럼 받아들이며 차별에 길들여져 왔다.

 

공동체문화가 살아있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마을, 아련한 향수처럼 남아있는 고향마을의 실체는 할머니와 언니들의 노동으로 얼룩져있었다. 여기에서 즐거운 사람은 누구인가? 이 안에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지켜내야 할 가치와 문화와 전통은 무엇일까?

 

농촌의 부녀회는 남자들 내조모임?

 

마을행사나 공동체 활동에서 남녀 성역할이 뚜렷이 구분되는 부분이 너무 불편해서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기혼여성들의 경우엔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다음 사연을 들어보자.

 

“달집태우기 하는데 남편이 마을에서 총무를 맡아가지고 온 거예요. 내가 뭐 해야 돼? 이랬더니, 남편은 ‘내가 총무지, 네가 총무 마누라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다’고 해놓고는 회의를 몇 번 갔다 오더니, 그렇지만 이번에는 네가 나가야 된다, 이러면서 그래왔다는 거예요. OOO 마누라도 그랬고, △△△ 마누라도 그랬고. (연좌제네, 연좌네.) 그렇지. 기존에 했던 관행이 있으니까. 자신이 맡은 역할 때문에 나도 그 일을 따라가서 해야 된다는 거에 대해서 남편도 부담감을 갖고 있지만, 본인도 남성들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은 거죠. 내려온 지 2년밖에 안 되고, 서열로 뭉친 무리에서 오래 되지도 않은 사람이 다른 행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거예요. 게다가 시골이라는 데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한테 트랙터도 빌려야 되고, XXX씨랑 산에 일하러 같이 가야 되고, 이런 게 엮이니까 빠져나올 수가 없겠더라고요.”

 

▶ 마을회관 여자들의 출입문은 부엌으로 연결된다. ⓒ문화기획달

“나의 철학과 선택을 고수할 수 없는 게 농촌에서의 관계인 거예요. 서울 같으면 다시 안 만나면 그만인데, 일을 같이 해야 되니까 얼굴을 볼 수밖에 없고. 농촌이라 더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그래서 달집태우기 총무 마누라 노릇을 했잖아요. 여자들은 달집태우기 행사하는 3일 내내 음식을 했어요. 달집 만들기 전에 남자들이 나무 하러 가고, 달집 만들고, 태우고, 마지막에 달집 치우기까지 내내 끼니를 차려줘야 돼요. 나는 직장일이 있어서 정작 달집 태우는 당일 날 일을 못했는데, 얼마나 언니들 눈치를 봤는지 몰라요. 남자들이 일했으니까 여자들이 밥을 해라 이건데, 직장일 안 하는 사람들도 집에서 노는 거 아니거든요. 다 같이 모여 노는 게 너무 당연하게 좋다? 좋은지 안 좋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전 안 즐거웠어요. 달집태우기 하는 3일 내내 결국 남자들은 술 마시고 놀았어요. 여자들은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나서, 아유 이제 끝났다, 이러면서 집에 갔고요. 나는 즐겁지 않았어요.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남자들이 사회단체나 마을 일에서 직책을 갖게 되면, 여자는 부록처럼 따라가서 일을 해야 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누구누구 마누라 노릇이다. 어떤 동아리 모임의 회장 부인은 동아리 회식 때마다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관례다. 방범대원 부인들은 마을 족구대회 때 음식을 전담한다. 족구대회에 참가하는 남자들의 부인이나 지역단체 여성활동가와 그 단체에서 동원한 마을여성들은 서빙과 설거지를 위해 차출된다. 마을마다 있는 청년회는 남자들의 모임이고, 별도로 청년회 부인모임이 결성된다. 바로 청년회를 위한 내조모임이 되겠다.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농촌의 부녀회다. 부녀회가 부녀들의 삶이나 복지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부녀회는 마을의 대소사 때마다 음식을 담당하고 관에서 하는 행사, 축제에 동원되는 조직이다. 면민의 날, 족구대회, 경로잔치, 고로쇠축제, 이런 행사 때마다 부녀들을 조직해서 음식, 서빙, 설거지를 맡긴다. 못 먹던 시절, 특별한 음식을 해먹던 문화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인데, 여성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억지스러운 가부장적 성역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술 먹고 노는데 술상을 차려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매한 사각지대, 비혼여성

 

그렇다면 농촌의 비혼(非婚)여성들의 삶은 어떠할까? 마을에 행사가 있어서 마을 부녀들이 동원되어도 비혼여성들은 열외이다. 자유롭다면 자유롭고, 소외된다면 소외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애매한 지위가 가능한 이유는 1인 비혼가구를 정상적인 형태의 가족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 그래서 마을에서 유령처럼 지내거나 아니면 마을의 도우미(여성의 경우) 또는 돌쇠(남성의 경우)가 되거나.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비혼여성들이나 비혼남성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혼자 왔다고 했을 때, 괜히 짝 지어주려고 하는 할머니들 많았어요. 집구하러 다닐 때, 뭐 하러 집구하러 다니냐, 우리 집에 방 많다, 그냥 들어와서 살아라, 하면서 아들 사진 내미시고. 아랫마을에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시켜준다고 하면서 ‘근데 흠이 하나 있는데 나이가 좀 많아, 마흔일곱. 괜찮잖아?’ 이러면서 제 의견은 묻지도 않아요. 거기 가면 그 집이나 땅이나 다 아가씨 거 될 거라고 자꾸 들이미는데, 나중에는 애인 있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너무 물어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혼자 산다 그러면 피곤해서 결국 거짓말을 했어요. 남편이 러시아에 있는데 러시아가 너무 추워서 1~2년만 시골 와서 살기로 했다고. 혼자 살면 자꾸 갖다 붙이고, 연락하고 찾아오고. 상대방이 호의를 보였을 때, 내가 좋아서 그런 건지 마을 사람이라서 잘 해주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고 선물을 했을 뿐인데, 그쪽에서는 오해를 하고, 받고 왜 먹고튀냐, 이런 식으로 나온 적도 있어요.”

 

▶ 여자들의 토크파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있는 참여자들. ⓒ문화기획달

 

비혼여성의 경우 결혼제도 안에 갇혀있지 않은 덕분에 마을에서 성역할에 대한 강요가 적고 부녀자들의 노동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농촌여성 대상 설문조사에서 비혼여성들의 40%는 ‘농촌의 성문화가 평등하다’고 대답한 배경이 추측되는 대목이다. 반면, 정상적인 인격체로 보아주지 않는 주변의 인식 때문에 결혼을 종용당하는 성가심을 견뎌야 한다. 마을 행사나 모임도 가족중심적인 형태가 많아, 참여하면 겉돌기 쉽고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농촌에서 여성의 삶은 녹록치 않은 것이다. 다음 여성의 사례를 들어보면 혼자 사는 게 더 막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아는 사람 차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마을 아이들 10여명이 주인 없는 차인 줄 알고 완전히 부수고 망가뜨린 적이 있었어요. 경찰에 신고해 과학수사대가 와서 감식하고 범인들을 찾아냈더니 동네 아이들이었어요.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아이들을 비롯해 부모님과 조부모, 친척들까지 수십 명이 기다리고 있었고 처벌 없이 그냥 넘어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중 한 명은 ‘마을에 계속 살 거면 그냥 봐주라’고 했어요. 내가 배우자나 가족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혼자라 무시당하는 것 같아 무척 속상하고 마을에 실망했어요. 결국 차는 폐차했고 수리비로 200만원 받는 걸로 끝냈어요.”

 

이게 바로 ‘주인양반’ 없이 마을에서 살기 위해 받는 수모이다. 이쯤에서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보자.

 
그 놈의 ‘주인양반’

 

토크파티가 시작되기 전 펼쳐진 연극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집 계약을 하지 못했을 때도 얼굴 없는 ‘주인양반’이 거론되었다. 농촌에서 여성의 지위를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이것이다. 여성의 주인, 남편이다. 부부 사이의 권력 관계를 내포하는 이 단어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힘의 우위를 결정하고 서열을 나타내는 상징이 들어있다. 여기에서 형성된 지배 관계가 마을에서의 성역할 규범으로 이어지고, 성 인지도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다시 부녀자(기혼여성)와 혼자 사는 여자(비혼여성)로 나뉘게 된다. 부녀자는 마을에서 부려도 되는 여자를 뜻하며, ‘혼자 사는 여자=남편 없는 여자=주인 없는 여자’라는 공식 속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다른 남자가 건드려도 된다’는 인식으로까지 이어진다. 여성은 어느 편에 서나 약자이고 희생자가 되는 구조다. 가정에서부터 여자는 남자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이분법적 구도를 깨지 못하면 아무리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 해도, 남성이 여성 위에서 군림하는 구조는 우리 자식들에게도 넘어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적인 언어와 행동들을 살펴보면 폭력의 구조를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서는 너무 버젓이 농담이랍시고 성희롱을 해요. 본인은 악의가 없이 한다고 하는 말인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불쾌해 하거든요. 오늘도 식당에 가서 남자들을 만났는데 누구 ‘젖’이 어쩌고 이런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옆에 있던 남자는 ‘야, 너는 본 거야?’ 이러면서 오히려 맞장구를 치구요. 성희롱적인 언어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 같아요.”

 

“마을마다 놀러가고 하면 남자들이 하는 행사에 여자들을 끼게 해서 억지로 술 먹으라 하고, 노래 부르라 그러면 부르고, 버스에서 춤추고 몸 부딪히고 하면서 불쾌할 때가 많아요. 작목반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를 갔는데 포르노물을 가지고 와서 영상을 틀더라고요. 너무 심해서 못 볼 지경이라 끄라고 했는데,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황당한 일이었어요.”

 

“면사무소에서 부녀회장들이랑 같이 야유회를 갔는데, 거기에서 면사무소 직원 중 하나가 여자들을 꼬집고 엉덩이를 만진 적이 있었어요. 다음날 면사무소 가서 소리 지르고 싸우면서 고소한다고 했더니 ‘니가 봤냐? 증인 있냐?’ 이러더라고요. 정년퇴임 얼마 안 남은 사람이라고 고소까지는 하지 말아달라고 옆에서 사정해서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소동을 한 번 피우고 난 뒤에 면사무소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어요. 여자 면사무소 직원들이 고마워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평소에도 그렇게 손버릇이 안 좋았나 봐요. 그 사람 위에도 술 먹으면 집적거리는 사람이 또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자중한다고 하대요.”

 

잦은 술자리가 이어지는 농촌의 일상에서 술을 핑계로 흐트러지는 분위기를 틈타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면서 말하는 일, 여성의 신체에 접촉하고 만지는 일은 이곳에서 성희롱, 성추행 사건이 아니라 가벼운 농담이나 격의 없는 친근함으로 둔갑한다. 이런 언행을 저지하는 사람도, 장치도 없다. 친하게 알고 지내는 처지에 얼굴 붉히기 싫어서 불쾌해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일을 주도하고 시작하는 누군가가 있다. 잠시 뒤에 그 정체를 밝혀보자.

 

▶ 여자들의 토크파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현장.   ⓒ 문화기획달

 

‘모든 조직이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농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마을의 유지나 재력가가 권력을 갖고 마을 위에서 군림하려는 문화가 있다 보니, 지역사회에서 자치적인 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경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지역에서 단체 일을 오래 했는데, 일하는 과정에서 만난 외부인사가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거예요.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는데, 이런 말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진보적인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지역단체나 기구가 모여서 하는 회의, 행사는 99% 정도가 남자예요. 일단 남자들만 모여 있는 자리는 재미가 없고 남자 냄새가 풀풀 나죠. 지역발전협의회나 농민회, 청년회뿐만 아니라 최근에 결성된 지역연구모임 등 이런 데도 다 남자들이예요. 모든 단체나 조직이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7년 전쯤에 초등학교 인조잔디 공사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는데 교장, 교감, 인조잔디 회사 사장, 찬성하는 주민들이 주축이 된 자리였어요. 인조잔디에 반대하는 글을 교육청에 올렸던 여자주민 한 명도 참석했는데, 그 회의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 한 명을 험한 말로 인신공격을 했어요. 내가 뭔가 나서서 말을 하고 싶은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돼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인조잔디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각본을 다 짜놓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자리였어요.”

 

결국은 힘의 문제, 권력의 문제다

 

결국 권력과 폭력이었다. 마을에서 재력을 갖고, 이를 통해 힘을 행사하고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자들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술자리에서 여성을 성희롱하고 비하하고 추행하는 남자와, 여기에 동조하며 한 술 더 뜨는 남자들 사이에도 권력 구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런 자리에는 꼭 상식 위에 서려는 자가 있다. 멀쩡한 정신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인격적으로 무시해도 된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 선을 넘고 상식을 깨뜨린다. 그의 입에서는 ‘여자 젖탱이가 어쩌고…’ 이런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온다. 그 사람은 마을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말, 이런 행동을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해도 돼. 나는 아무도 못 건드려. 내 눈 밖에 나면 너는 이 동네에서 못 살아.” 이걸 본인이 알고 주변인들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관계가 마을의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소작을 하는 사람들 간의 서열이 분명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의 관계가 자식들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직 귀농귀촌인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인근의 초등학교에는 부모 대의 지주와 소작농의 지위가 아이들에게 대물림 되는 실정이다. 이미 형성된 권력과 이것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이 농촌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촘촘하고 해묵은 힘의 우열, 마을을 지배하는 질서에서 힘없는 자, 마을에서 아직 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약자이고, 이 중에서도 여성은 완벽한 약자이고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힘의 우위에 따라 관계의 역학 관계에 지배를 받지만, 여성의 경우는 이것이 성적 대상화와 맞물리면서 성희롱, 추행, 무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농촌에서 여성은 쉽게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남자들의 내조자이자 마을의 도우미가 된다. 귀농한 남성들은 곧 농촌의 질서에 함몰되고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도시에서라면 입에 담지도 못할 음담패설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술자리, 1년에 몇 번 안 되는 노동집약적 일에 동원되면서 집안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누리려는 허세, 거친 입담과 마초 행동을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농촌의 가부장적 문화는 농촌에 온 남자들을 쉽게 전이시킨다.

 

농사일에서 여성들이 해내고 있는 몫, 살림과 육아의 가치,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권력의 틀을 깨고 가부장제가 심어놓은 인지 프로그램을 지우고 농촌여성들이 자존감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개인의 인격과 소신과 가치를 거래의 조건으로 걸지 않고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을 푸는 것이 우리들의 <토크파티> 다음의 과제로 남았다.

 

일단 우리는 만났다. 첫 번째 토크파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에서 여성들은 그동안 농촌에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툭 터 넣고 이야기하면서 불편함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어질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에서 지역 내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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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원 2016/07/15 [20:01] 수정 | 삭제
  •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 만들어가야죠~ 농촌이야말로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한 곳 아닐까요? 멋집니다!
  • 야반 2016/07/14 [23:01] 수정 | 삭제
  • 농촌의 분위기는 매우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지요. 심지어 작은학교는 학교운영위원장의 강압적 분위기로 굴러가기도 합니다..ㅜ.ㅜ 빌어먹을 세상!! 응원하며 보겠습니다.
  • Ari 2016/07/14 [17:57] 수정 | 삭제
  • 그 동네가 유독 그런걸까요? 안그런 시골도 있는데.. 조선시대 같네요. 언니들 힘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응원함다.
  • 산처럼 2016/07/14 [11:26] 수정 | 삭제
  • 농촌이 도시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다는 기사를 봤어요.애당초 시골에 대한 환상이 없었기에 놀라지 않았는데 여기 구체적인 사례가 있네요. 안봐도 본것같은 기분이에요. 노후 전원생활 꿈도 꾼 적 없지만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 ㅇㅇ 2016/07/13 [14:27] 수정 | 삭제
  • 공감 백배!!!
  • 애독자 2016/07/13 [12:58] 수정 | 삭제
  • 좋은 지적, 깊은 공감입니다. 우리 사회 운전문화에 대해서도 부탁드립니다.
  • 독자 2016/07/13 [12:42] 수정 | 삭제
  • 기사 정말 응원합니다. 시골 귀농처 알아볼때 가부장성 태스트 같은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살기좋은 마을= 젠더 평등한 곳 이럴게 홍보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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