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발달장애 센터를 운영하고 계신 분의 제의로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캠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가끔 이 센터에서 보게 되는 아이들이 내가 만날 수 있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고작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의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하게 된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승낙을 했다.
게다가 나는 간혹 그 어린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왜 이 곳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안돼”, 혹은 “하지마”라는 말을 저렇게 많이 쓰는 걸까? 어린이들에게 이런 부정적인 말들은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이런 말을 피할 수는 없는 걸까하는 생각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나는 좀 다르게 아이들을 대해 봐야지”하는, 제법 야심찬 결심을 가지고 그 캠프에 참석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자신만만함은 첫 날부터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나는 잠시 눈을 판 틈을 타 내 손을 벗어난 아이들을 “누구야!”, “누구야!” 부르기에 바빴고, 다른 선생님들보다 더 많이 “하지마”, “안돼!”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녔다. 결국, 나는 하루도 못 되어서 목이 쉬고 녹초가 되고 말았다. 물론, 나처럼 아이들을 소리 높여 부르며 시끄럼을 떠는 선생님들은 한 분도 없었다. 며칠 동안 생활하면서 잘 살펴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일탈하는 아이들이 파악되기가 무섭게 소리보다 먼저 몸을 움직여 아이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들을 이 곳 선생님들보다 잘 돌보아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진작에 포기하고 빨리 일정이 끝나기만을 고대하면서 캠프를 마쳤다. 프랑스에서 잠시 살 때, 내가 놀란 사실 중 하나가 바로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주 쉽게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의 가족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나는 여러 명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성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 가족들은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그들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더욱이 음악회나 공원 등에서도 이들 발달장애 아동들을 참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부모들 손을 잡고 외출을 나온 아이들은 물론, 교육자들의 인솔하에 단체 어린이들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나라에 비해 프랑스가 이런 장애인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자주 볼 수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는 집안에 장애인이 있을 경우, 그것을 쉬쉬하고 숨기는 것은 예사고, 길에서 그들을 보게 될 경우에도 신기해하거나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들의 시선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곳을 서슴없이 데리고 다니는 그 센터의 선생님들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흐뭇했다. 그리고 힘들고 서툴기는 했지만, 나 역시 그같이 소중한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이 아이들과 생활했던 경험은 그들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치는 데 참으로 값진 기회를 주었다. 더욱이 이들 발달장애 어린이들은 물리적인 뇌 손상 때문에 이러한 장애를 앓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들의 그릇된 양육태도 때문인 경우도 있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우리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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