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장 쿨한 동네를 ‘드래그 퀸’과 함께

페미니스트 뉴욕에 가다⑥ LGBT운동의 요람 그리니치 빌리지

주연 | 기사입력 2017/03/02 [11:36]

뉴욕의 가장 쿨한 동네를 ‘드래그 퀸’과 함께

페미니스트 뉴욕에 가다⑥ LGBT운동의 요람 그리니치 빌리지

주연 | 입력 : 2017/03/02 [11:36]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는 로어 맨해튼 서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위로는 첼시(Chelsea) 옆으로는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가 있는 동네다. ‘빌리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60년대 카운터컬쳐 운동(counter culture,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반체제, 하위문화 운동)이 탄생된 곳이다. 예술가들의 천국, 현대 LGBT운동의 요람, 보헤미안의 수도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뉴욕의 대표적인 대학 중 하나인 뉴욕대학교(NYU) 또한 이곳에 위치해 있다.

 

이 정도의 이야기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동네겠구나’ 라는 감이 딱 오지 않는가? 그래서 난 이런 힙한 동네라면 그에 맞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어 검색을 시작했다.

 

마침내 찾은 투어가 바로 ‘드림 퀸 투어’(Dream Queen Tour)다. 드래그 퀸(Drag Queen, 여장 퍼포먼스를 하는 남자) 그레이스가 가이드하는 투어인데, 리뷰 평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멋진 옷과 화장 그리고 하이힐 가이드 봉을 들고 카리스마 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은 그레이스를 보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이 투어가 내가 찾던 것이구나.’

 

▶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한눈에 사로잡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던 드래그 퀸 그레이스. ⓒ주연

 

유명 게이바에서 만난 ‘드래그 퀸’ 가이드

 

일요일 오후 3시 30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줄리어스 바(Julius Bar)가 투어 미팅 장소였다. 줄리어스 바는 2016년에 국가 선정 역사적 장소(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선정된 곳이다. 1966년 ‘십-인(Sip-in, 한 모금 마시기) 액션’의 역사적 사진이 찍힌 곳이다.

 

당시만 해도 ‘만약 당신이 게이라면, 들어오지 마시오’ 식의 성소수자 차별 문구가 공공연하게 레스토랑, 술집 밖에 붙어있는 일들이 있었다. 이에 대항하고자 남성 동성애자 단체 ‘마타신 소사이어티’(Mattachine Society)에서 해당 가게에 들어가 스스로 게이임을 밝히고, 자신에게 술을 판매하지 않을 경우 그것에 대한 차별성과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동을 했다. 줄리어스 바도 그들이 방문한 가게 중 하나였다.

 

줄리어스 바는 게이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바텐더는 ‘마타신 소사이어티’ 멤버들이 게이임을 밝히자 술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다. 바로 그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마타신 소사이어티’는 동성애를 정신장애로 규정하며 동성애자에게 술을 판매하지 않는 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진행했다. 현재 줄리어스 바는 뉴욕에서 역사 깊은 게이바 중 하나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도 종종 찾아오는 명소 중 명소이다.

 

줄리어스 바에서 시작한 투어는 미국 동성애자 해방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스톤월 항쟁이 시작된 장소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약 3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중간에 술집에서 술 한 잔씩 하면서 잠시 쉬기도 해서 원래 예상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던 것 같다. 많은 정보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고, 그레이스의 에너지 넘치는 명소 소개와, 요소요소마다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로 인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니치 빌리지, 뉴욕 퀴어 커뮤니티의 역사

 

▶ 미국 동성애자 해방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스톤월 항쟁을 다룬 영화 <스톤월>(롤랜드 에머리히, 2015) 포스터. 그러나 영화는 스톤월 항쟁의 주역을 백인남성 중심으로 ‘표백’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줄리어스 바, 스톤월 인을 비롯해 많은 퀴어(queer) 클럽과 바들이 위치해 있다. 그런 만큼 퀴어 커뮤니티 활동이 많이 있었던 동네이며, 굉장히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특히 1890년대 브리커 스트리트(Bleecker st)는 퀴어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1896년 만들어진 ‘밀스 하우스 넘버 원’(Mills Houst no.1)은 남자들이 자유롭게 파트너를 데리고 와서 방을 빌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곧 이곳은 게이들이 섹스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920년에는 동성애를 금하던 당시 법에 따라 ‘동성애 혐의’로 남성들이 그곳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그 건너편엔 ‘더 슬라이드’(The slide)가 있었다. 이곳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5분을 견디지 못할 가장 타락한 리조트’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단순히 섹스를 즐기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많은 퀴어들이 그곳에서 서로 교류했고 친구를 만들었고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소로 섹스 쇼, 누드 쇼를 하는 ‘더 블랙 래빗’(The black rabbit)이 있었다. 이 두 곳은 얼마 가지 못해 경찰들에 의해 영업 종료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렇게 뉴욕 퀴어 커뮤니티의 초기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모임들에 관한 이야기, 갇혀있던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온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활 이야기는, 얼 린드(Earl Lind)로 태어났지만 제니 준(Jennie June)으로 살았던, 제니의 책 <안드로진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ndrogyne)에 나와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았고, 언젠가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800년대를 살았던 안드로진(androgyne, 남성과 여성이 혼합된 성)의 삶은 과연 어땠지, 여성과 남성의 젠더의 경계를 오가는 삶이 그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너무 궁금해졌다. 그와 함께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이분법적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어쩌면 늘 예전부터 그런 움직임은 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보려고 하지 않았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HIV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기도

 

그리니치 스트리트와 워싱톤 스트리트 사이,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는 세인트 베로니카 성당(St Veronica’s Catholic Church)을 바라보면서 그레이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사실 즐거운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지만 투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미국 퀴어 커뮤니티는 HIV/AIDS로 인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병이 발병했을 때 의료계에서도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고, 동성애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동성애자에게 내려진 천벌’, ‘게이 암’ 등이라 부르며 배척하기에 바빴다. 정부에서도 현황 파악이나 치료제 개발 및 배포에 소극적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감염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시절 남성 동성애자 60~70%가 감염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 시기에 HIV 감염인들을 돕기 위해 나섰던 건 여성들, 특히 레즈비언들이었다. 헌혈을 거부당했던 게이들을 대신해서 헌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간호, 간병을 담당하기도 하고, AIDS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도 힘썼다. 이런 역사에 관해서는 같은 시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HIV 감염인과 게이 커뮤니티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린 거기 있었다>(We were here)에도 나온다.

 

감염인들을 배척하기에 바빴던 그 시기에, HIV 감염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곳이 바로 세인트 베로니카 성당이다. 아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던 그 때, 그 공간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을까? 게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감염인이라서 배척당했던 상처들이 그곳에서 조금은 치유되었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소중한 생을 마감해야 했다.

 

▶ 십자가가 유독 하늘과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세인트 베로니카 성당.  ⓒ주연

 
화장된 친구들의 재를 가슴에 품고 백악관 앞에 찾아가 울면서 그 재를 뿌리며 ‘제발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해 달라’고 외쳤다는 게이들의 이야기를 전한 후, 그레이스는 우리 모두에게 동그랗게 둘러서서 손을 잡고 잠시 그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또한 잘못된 것을 그냥 눈감고 지나쳤던 탓에 희생된 존재들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빌었다.

 

‘이단 클럽’과 급진적 페미니스트들

 

예술가들의 천국, LGBT 운동의 요람, 보헤미안의 수도…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당연히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알려져 있는 ‘헤테로독시 클럽’(Heterodoxy club, 이단 클럽)이 탄생한 곳이다.

 

1912년 유니테어리언(일신론자) 목사 교육을 받고 있던 마리 제니 하우(Marie Jenney Howe)에 의해 만들어진 이 그룹은, 격주로 토요일마다 모여 ‘문화, 철학, 섹슈얼리티의 정통성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토론하며 여성 이슈에 대한 논의와 활동을 했다. 모임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여성 이슈에 관심이 있어야 하며,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가부장적 마인드가 없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멤버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여성들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헤테로독시 클럽 모임은 194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름에 걸맞게 다른 여성 모임이나 단체보다 과격한 의견을 내고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멤버 중 몇 명은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에 깊게 참여하여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다 구속되어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감금 생활을 했다.

 

1960-1970년대 민주당 내에는 ‘여자는 남자를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의견이 아직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뉴욕 여성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도 그와 다른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가장 먼저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여성해방운동’을 하던 여성들이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 정치 참여의 중요성과 영향에 대해서, 그리고 남녀가 동등한 조건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 뉴욕 할렘 출신의 화가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For the Woman's House" (1971) 

 

그리니치 빌리지 여성들은 지역 활동에서도 다양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빌리지에 예술가, 보헤미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마을은 자유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 주변 교통체증 문제에 맞서 목소리를 낸 것도, 그리고 일종의 돈 냄새를 맡고 들어오는 부동산업자들이 더 많은 건물을 짓겠다고 할 때 알콜중독자나 저임금 노동자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노력한 것도 지역 여성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리니치 빌리지는 미국 내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2016년 기준 1평방피트 당 2천 달러, 1제곱미터(0.3평) 당 2만2천 달러라고 한다.)

 

뉴욕에서 가장 힙한 동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겉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을 만든 작은 개개인들의 발자국들이 수도 없이 찍혀있다는 것을, ‘드림 퀸 투어’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화장을 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걸으며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전하는 그레이스를 보면서, 나도 그 작은 개개인들의 발자국을 무심히 덮어버리지 않도록 그 발자국 뒤로 나의 작은 발자국을 어떻게 하면 더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다짐했다.

 

다양한 발자국들이 남아 빛나는 그리니치 빌리지는 정말 모두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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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러스 2017/03/04 [00:55] 수정 | 삭제
  • 뉴욕 기사 시리즈 보면서 투어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깨게 되네요. 박물관 페미니스트 투어 기사 너무 재밌게 봤는데, 빌리지 투어도 좋겠구나 싶어요. 즐거움만 전하는 게 아니라 같이 분노하고, 이번 기사처럼 같이 슬퍼하고 묵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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