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 퀴어 아트’

페미니스트 뉴욕에 가다⑧ 가슴 뛰게 하는 미술 작품들

주연 | 기사입력 2017/03/30 [10:39]

뉴욕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 퀴어 아트’

페미니스트 뉴욕에 가다⑧ 가슴 뛰게 하는 미술 작품들

주연 | 입력 : 2017/03/30 [10:39]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뉴욕에서 ‘박물관/미술관 가기’는 뺄 수 없는 ‘투 두 리스트’(To-do-list) 중 하나다. 그리고 뉴욕의 유명한 박물관/미술관 중 어디로 갈까 결정하는 건, 시간이 한정적인 여행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꼽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꼭 가야 할 것 같고, 뉴욕에 왔는데 현대미술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MOMA(The Museum Of Modern Art)도 가야 할 것 같고, 아름다운 건축물의 위엄을 자랑하는 구겐하임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도 있고, 신진 아티스트를 접할 수 있는 뉴뮤지엄도 있고… 그 외에도 손꼽을 수 있는 곳들이 더 있다.

 

이렇게 갈만한 박물관/미술관이 많은데 또 다른 곳을 추천한다고? 라고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페미니스트들에게 특별히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

 

‘여성 아트 센터가 아닌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

 

▶ 브룩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 소개 책자 ⓒbrooklynmuseum.org

이번 여행을 위해서 뉴욕에 있는 ‘뮤지엄’과 ‘페미니스트’로 검색을 했을 때, 정확하게 그 단어에 들어맞는 박물관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브룩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이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통해 맨해튼과 바로 이어져 있는 브룩클린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브룩클린의 센트럴 파크라고 할 수 있는 프로스펙트 파크(Prospect Park) 옆에 있다.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박물관이며, 약 150만 개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1895년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룩클린 박물관은 이집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집트와 아프리카 예술품 컬렉션이 뛰어나다. 나도 아프리카 섹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Elizabeth A. Sackler Center for Feminist Art)이다. 그렇다, 브룩클린 박물관에는 ‘여성 아트 센터’가 아닌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가 있다. 이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2002년 브룩클린 박물관은 엘리자베스 A. 새클러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최초로 페미니스트 아트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아트’라는 말을 견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한 아티스트인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가장 유명한 작품 <더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를 기증받았다. 그것을 계기로 2007년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가 설립되었고, 이후 이 작품의 영구 전시가 시작되었다. 이곳은 ‘페미니스트 아트의 서사(epic)’라 불리는 <더 디너 파티> 외에도 기획전을 통해 다양한 페미니스트 아트를 소개하고 있으며,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교육 및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39명의 역사적인 여성들을 초대한 ‘더 디너 파티’

 

센터의 대표 작품이자 페미니스트 아트의 대표 작품이기도 한 <더 디너 파티>(주디 시카고, 1974-1979)는 서구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전설적인 그리고 실존한 여성 39명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이다.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세로 크기가 1463×1463cm인 거대한 작품이다. 삼각형을 이루는 한 면당 13개의 테이블, 총 39개의 테이블 위에는 39명의 여성의 이름이 수놓인 테이블보가 덮여 있다. 그 위에 둥근 모양의 도자기 접시, 포크와 나이프, 와인 잔이 놓여 있다.

 

▶ 브루클린 박물관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에 기증된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더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    

 

각 면은 ①선사시대부터 로마문명 ②그리스도교 시대 초기부터 종교개혁 ③미국 초기부터 여성혁명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스 여신, 아마조네스, 사포, 엘리자베스 1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잔 B 앤써니, 버지니아 울프 등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테이블들이 놓여 있는 바닥은 헤리티지 플로어(Heritage Floor)라 불리며, 999명의 여성의 이름이 적혀있다. 사회에 공헌을 했거나 여성의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된 활동을 했거나 여성의 역사에 기여를 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은 6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약 4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완성되었는데, 대부분 자원봉사였다고 한다. 단순한 만들기와 가사일로 치부되었던 바느질, 자수 등을 활용함으로써 여성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여성의 성기인 버자이너 모양을 한 꽃으로 만든 도자기 접시 또한 그 아름다움과 대담함으로 큰 평가를 받았다.

 

나는 <더 디너 파티>의 거대한 크기로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놀랐지만, 찬찬히 보면 볼수록 그 세밀함과 촘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진 테이블 주변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으면서 테이블에 초대된 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 사람을 초대한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어 낸 많은 예술가,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마주했다.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이렇게 맘 편히 와서 구경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치 내가 정말 끝내주게 멋있는 여성들이 모이는 거대한 파티에 초대된 것 같아 한껏 상기되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파티에 모인 39명의 여성들이 어떤 음식을 나눠먹었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그 파티가 어디에선가 행해졌을 것 같아서 ‘거기 갔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마저 들 정도였다.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감히 내가 평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 느끼면 될 것 같다. 다만 사전에 39인의 여성들에 대해서 조금 알고 간다면 그들의 테이블을 보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다. 작가가 왜 이 사람의 테이블에 이런 모양의 디자인을 했을까? 라고 자신만의 추측을 하며, 조금 더 흥미로운 상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전시는 역시 브룩클린 박물관이죠”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에서는 기획전도 계속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2016년 10월 21일부터 시작되어 2017년 3월 5일까지 전시된 비벌리 뷰캐넌(Beverly Buchanan)의 “폐허와 의식”(Ruins and Rituals)이 열렸다. 과거에는 주디 시카고, 키키 스미스(Kiki Smith) 등 유명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의 전시는 물론이고 글로벌 페미니즘, 뉴페미니스트 영상 전시, 그리고 미국 여성참정권 운동을 한 이들과 관련된 “여성을 위한 투표”(Votes for Women) 등 다양한 기획 전시를 하면서 페미니스트 아트를 보여주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브루클린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페미니스트 친화적인 박물관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편에서, 페미니즘 투어 가이드였던 벡스(BEX)도 “페미니즘 관련 전시는 역시 브룩클린 박물관이죠”라고 이야기했었다.

 

특히 올해 뉴욕 여행 계획이 있다면, 브룩클린 박물관을 필수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아트 센터 10주년을 기념하여, 작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긍정의 한 해: 브룩클린 박물관에서 페미니즘 다시 상상하기”(A Year of Yes: Reimagining Feminism at the Brooklyn Museum)라는 기획 아래 다양한 열 개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브룩클린 박물관 1층에 있는 기념품 매장엔 페미니스트 티셔츠 및 머그컵 등 ‘페미니스트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놓치지 말고 들러보길 추천한다. (※브룩클린 박물관 홈페이지: brooklynmuseum.org)

 

예술의 거리 소호에서 찾은 ‘게이&레즈비언 박물관’

 

▶ 레슬리-로먼 게이&레즈비언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Marilyn Minter: Pretty/Dirty Blue Poles 2016 

예술의 거리 소호(SOHO, South of Houston. 하우스톤가와 커널가 사이의 화랑 밀집지역), 많은 아트 갤러리들이 있는 그 곳에 가면 다양한 예술가와 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이름 있는 큰 패션 브랜드 매장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예전만큼의 명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아직도 소호라는 이름에서 예술의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 소호에 가게 된다면 들려보기를 추천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레슬리-로먼 게이&레즈비언 박물관(Leslie-Lohman Museum of Gay and Lesbian Art)이다.

 

설립자인 찰스 레슬리(Charles Leslie)와 프릿츠 로만(Fritz Lohman)은 1969년에 게이 아티스트들을 위해 작은 전시를 열었다. 생각보다 열띤 반응을 보고, 커뮤니티에 게이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980년대 게이 커뮤니티가 에이즈로 고통 받고 있을 당시 목숨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아티스트들도 있었다. 그들의 사망 후, 유가족들이 그들이 게이였다는 사실을 지우거나 숨기기 위해 작품을 버리거나 훼손하는 것을 목격한 레슬리와 로만은 그 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어둡고 우울하고 슬펐지만 살아가고자 함께 힘을 모았던 그 역사의 순간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커뮤니티를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한 그들이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작품 보존과 전시 활동을 조금 더 원활히 하기 위해 1987년 비영리단체로 승인받으려고 신청했는데, 미국 국세청에서 단체 이름에 ‘게이’라는 말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승인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접하니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신청을 거부한 대한민국 법무부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반대한다는 것,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씁쓸해졌다. (지난 3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사단법인 설립 불허 가처분 취소소송(2016누54321)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다행히도 단체는 1990년에 승인을 받았고, 2011년에는 그동안 LGBTQ 관련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주로부터 정식으로 박물관 승인을 받았다. 이제 이곳은 미국 최초의 게이&레즈비언 박물관이 되었다.

 

우리를 기다리는 ‘페미니스트 아트’와 이야기들

 

우스터 스트리트(Wooster St)에 위치하고 있는 레슬리-로먼 게이&레즈비언 박물관은 조금 큰 갤러리 정도의 규모로, 볼 작품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지만 기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 레슬리-로먼 게이&레즈비언 박물관 홈페이지: leslielohman.org)

 

▶ “컷 업: 퀴어 콜라주 프랙티스” 기획전 중에서 수잔 라이트(Suzanne Wright) <에잇 셔틀>(Eight Shuttles, 2016)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컷 업: 퀴어 콜라주 프랙티스”(Cut Ups: Queer Collage Practices)라는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14명의 퀴어 아티스트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가 사진, 잡지, 그림 등의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각각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흥미로웠고 1970-1980년대 게이 포르노그래피를 활용한 작품들에서는 유쾌함이 느껴졌다.

 

그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수잔 라이트(Suzanne Wright)의 작품인데, 작가는 공상과학, 우주여행 등의 이미지와 에로틱한 이미지(작가의 아버지가 숨겨두고 있던 포르노그래피 잡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를 결합하여 작품을 구성하였다. 어떤 장소나 시간 혹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문(Portal)이라고 하는 것을 여성의 ‘성 해방’과 연결하여 표현하고 있었다. 대담하고 시원하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표현이 좋았고(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도 있으니까.) 여성의 성기와 오르가즘을 재치 있으면서 그야말로 폭발력이 느껴지도록, 굉장히 에너지 있게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크고 이미 명성이 드높은 유명한 박물관/미술관 이외에도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그동안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해주는 작품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약간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이든 재미있게 즐길 열린 마음이 있으면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보이는 것을 보는 것과, 그것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열심히 찾아서 볼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 중에, 우리가 들어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들이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일이 몰려올 때 조개‘만’ 줍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개 말고도 다른 것들, 버려지는 것들이 없도록 주변을 보는 사람들이니까.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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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련엔딩 2017/04/07 [17:27] 수정 | 삭제
  • 뉴욕,퀴어,미술관. 어울려요~ 뉴욕에 가고픈 이유가 점점 늘어나네요 :_
  • ㄴㅍ 2017/04/05 [21:39] 수정 | 삭제
  • 디너파티ㅠㅠㅠ 책으로만 접했는데 죽기 전에 꼭 눈으로 봐야할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ㅜㅜ 꼭 보러가야 겠어요.
  • 모아 2017/03/30 [21:48] 수정 | 삭제
  • 더 디너 파티는 직접 작품을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리고 뭣보다 페미니스트 굿즈 쇼핑이 하고싶네요ㅎㅎ
  • Ara 2017/03/30 [17:21] 수정 | 삭제
  • 어딜 가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가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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