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 비련의 여주인공은 이제 그만
세계적인 스타, 동시에 늘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음악가 비욘세(Beyonce)의 곡 중에는 페미니즘과 색채의 곡이 유난히 많다. 비욘세 특집을 한 번 다뤄야 할 정도다. 그중 상대적으로 초기에 발표한 곡이며 ‘여성의 힘 모으기’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곡이 바로 “Irreplaceable”이다.
함께 곡을 쓴 니요(Ne-Yo)와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지만, 이 곡은 많은 이들에게 페미니즘의 방향으로 해석된다. 또 이별 노래를 이야기할 때에도 항상 포함된다. 그만큼 곡의 완성도와 흥행 성적이 좋기 때문이다.
Standing in the front yard, telling me how I’m such a fool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Beyonce의 “Irreplaceable” 중에서
곡의 내용은 여성이 애인인 남성에게 떠나라고 하는 내용이다. 사실 단순히 떠나라고 한다기보다는, 여성이 그동안 애인에게 해준 것이 많은데 상대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내가 준 건 다 두고 떠나라’고 말하는 이야기다. 곡 후반부에는 ‘내가 너의 전부가 아닌데, 아무것도 아니게 된들 어떠냐’, ‘널 대체하는 건 너무 쉬우니까 난 슬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곡을 비판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과연 여성의 재력이 현실적인지, 혹은 애인을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 헤어짐의 모습이 그렇게 뻔할까
위의 곡은 이성애 관계에 한정된 가사라, 이성애중심의 관계 상정을 탈피하는 것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이야기해야 할 과제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성애 연애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구조적 문제다. 앞서 “Irreplaceable”이라는 곡을 소개한 이유도, 이별에 관한 숱한 곡들이 남성은 매정하게 차는데 여성은 돌아와 달라며 호소하는 슬픈 이미지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러한 공식은 점차 깨져가고 있는데, 그 방향은 여러 가지다. 더욱 남성중심이 되어 여성이 다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남성이 여성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상대에게 이별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비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Love Yourself”를 들 수 있겠다. 이 곡은 이별의 원인을 제공한 여성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내용인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My mama don’t like you, and she likes everyone -Justin Bieber의 “Love Yourself” 중에서
반면, 이별 이후 여성이 꿋꿋하게 괜찮다고 말하거나 이별의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곡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곡들은 가부장적 남성 관념이나 그들이 만든 ‘순종적 여성’ 혹은 ‘수동적 여성’ 이미지에 저항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지금까지 남성이 기준이 되어 여성을 타자화하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현실 속 여성들의 모습에 비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관계에 성역할을 뒀고, 그 안에서 역할놀이를 하듯 그 이미지에 충실하려 했다. 그러한 여성 이미지는 연애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여성은 ‘의존적인 존재며, 감정적이고, 정숙해야 한다’는 편견을 고착화하는 것으로 견고하게 이어졌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그리고 이별 전후의 상황은 멀리 보면 구조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연애에서 남성이 주도권을 쥔 모습은 결혼 후 남편과 아내의 불균형한 지위와 경제권의 차등이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러 매체와 텍스트에서 조금씩 제기되고 있지만, 연애에서도 성별로 부과된 이분법적 편견을 타파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필요하다.
# 이별 후 ‘생존’을 이야기하는 여성들
비욘세의 “Irreplaceable”처럼 이별 후 자신감과 자존감 있는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는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별 후 그 상황을 이겨내는 것, 나아가 ‘생존’을 이야기하는 곡도 있다. 여기서 ‘이겨낸다’는 표현은 이별 후 당사자인 여성에게 닥친 감정이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별 후 더욱 잘 살 것이며, 강한 마음을 먹겠다고 하는 갈래도 있다.
발매 이후 꾸준히 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곡, 얼마 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진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글로리아 게이너(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의 가사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곡 “Survivor” 역시 ‘나는 생존자다’라고 말한다. 두 곡은 네가 떠나도 나는 잘 살아갈 것이며, 살아남을 것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Go on now go, Walk out the door,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 중에서
그렇다면 왜 ‘생존’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연애와 이별은 데이트 폭력, 이별 후 살인사건 등 여성혐오 범죄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하나의 곡에서 이러한 맥락까지 온전히 이어가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에서 “Because of You”로 잘 알려진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곡 “Stronger”,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의 “Fighter”, 데비 르바토(Demi Levato)의 “Warrior”를 보면 하나같이 전투적으로 삶에 임하는 자세가 느껴진다.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인들의 실제 이별의 상황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여성들이 이별에 임하는 자세는 더욱 강하고 씩씩하고 전투적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표현은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Roar”에서도 찾을 수 있다.
Bet you think that everything good is gone, Baby you don’t know me, cause you’re dead wrong -Kelly Clarkson의 “Stronger” 중에서
# 슬픔이 자존감을 해치지는 못하게
‘그대여, 날 떠나지 말아요’ 류의 노래는 예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네가 떠나도 나는 괜찮다’고 얘기하는 곡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로빈(Robyn)의 “Dancing On My Own”은 제목 그대로 ‘네가 떠났으니 난 내 춤을 추겠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유명한 팝송 중 하나인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You Oughta Know”는 ‘네가 날 떠나도, 너는 날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내 삶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늘 중요하다. 그래서 끝으로 이런 곡들을 추천해봤다. 한국 곡 중에서, 비록 곡의 말미에 이별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애즈 원(As One)의 “천만에요”가 이별 후에도 자신은 멀쩡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다 더 쿨하고 멋진 곡을 듣고 싶다면 한소현의 “Go Away”를 추천한다.
그런 변명 따위 그만해/ 이제 울고불고 안 해
※ Beyonce - Irreplaceable M/V http://bit.ly/1erKGEE ※ Kelly Clarkson - Stronger M/V http://bit.ly/1agTI5w ※ Robyn - Dancing On My Own M/V http://bit.ly/1gXCtEV ※ 한소현 - Go Away 콘서트 영상 http://bit.ly/2o7FH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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