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 팝음악에 담긴 한심한 남자들의 모습
아쉬운 일이지만, 기존의 곡들 중에 이성애 관계를 이야기하는 곡이 대부분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쓰인 곡이 많다. 이성애중심의 세상을 반영하는 일이며, 그래서 그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성애 관계 내 문제들을 답습하는 곡이 많지만, 그것을 고발하는 곡들도 존재한다.
고발의 방식에는 남자들이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이야기하는 곡도 있다. 사실 팝음악에는 ‘남성의 한심함’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도 존재한다. 하지만 남성이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수에 해당한다. 그것은 여자친구와 이별 후에 후회하며 말하는 내용에 가깝다. 다수의 곡 중에 하나를 꼽자면, 과거 인기를 누렸던 보이밴드 엔 씽크(N Sync)의 곡 “Gone”이다. 떠나간 연인을 두고 후회하는 내용이다.
and maybe I was too blind to see that you needed a change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힙합/알앤비 내에서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내 남성들의 허세를 비판하는 음악가들이 있었다. 현재는 그런 가사를 쉽게 발견하긴 힘들다. 과거 음악의 수에 비해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곡의 수가 꽤 비중이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솔트-앤-페파(Salt-N-Pepa), 퀸 라티파(Queen Latifah) 등이 그러한 곡을 썼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최초로 정규 앨범을 발표한 여성래퍼이자 힙합 내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엠씨 라이트(MC Lyte)다.
1988년에 발표된 엠씨 라이트의 데뷔 앨범 <Lyte As A Rock>에는 페미니즘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다. 이후 한동안은 그러한 메시지를 찾기 힘들어 아쉬웠는데, 최근 엠씨 라이트는 흑인사회 내에서 ‘여성들 간 힘 모으기’를 이야기하는 큰 존재로 돌아왔다.
데뷔 앨범의 수록곡 중 “I Cram To Understand U”는 거리를 전전하는,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남자애인을 한심하다는 듯 가차 없이 비난한다. “Paper Thin”라는 곡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옛 남자친구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그 안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는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용하고, 학대하고, 거짓을 말하는 태도를 담아낸 것이다.
TLC의 “노 스크럽스”(No Scrubs)나 로린 힐(Lauryn Hill)의 “Doo Wop” 역시 커뮤니티 내 남성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넌 답답해, 한심해’라고 말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연애담과는 조금 다른,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젠더 권력과 그것이 작동하는 현실을 짚어낸 것이다. 이것을 특정한 개인의 경험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간과 공간이 다른 지금, 한국에서 이야기해도 효력이 있을 만큼 보편성을 담고 있다.
Baby girl! Respect is just the minimum -로린 힐(Lauryn Hill)의 “Doo Wop”
# 반어적인 선언 ‘남자처럼 살 거야’
여성뮤지션이 아예 ‘남성의 모습’을 자칭하며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곡은 씨애라(Ciara)의 “Like A Boy”, 비욘세(Beyonce)의 “If I Were A Boy”다. 씨애라는 ‘그들처럼 쓰레기도 버리고, 돈도 벌고, 바람도 피우고, 거짓말도 하며, 새벽에 몰래 다니자’고 이야기한다. 비욘세 역시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순종하는 여성을 데리고 살겠다’고 말한다.
What If I had a thing on the side, made you cry
물론 이들이 말하는 남성이 전체 남성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내용의 곡들이 왜 여럿 나왔을까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에서도 박지윤의 “난 남자야”와 같은 곡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고려해보자.
You don’t listen to her, You don’t care how it hurts,
# 다른 관계에 대한 목소리, 그리고 상상
시간이 지나며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들이 팝 음악 시장에 속속 등장했다. 이들은 조금은 다른 모습의 관계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꺼낸다. 샘 스미스(Sam Smith),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부터 슈라(Shura), 시드(Syd) 등 핫한 신인 음악가까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한 이들은 이제 많아졌다.
특히 프랭크 오션은 “We All Try”라는 곡에서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다고 믿지 않아, 사랑과 사랑 사이에 있다고 믿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Forrest Gump”나 “Bad Religion”과 같은 곡을 통해 자신의 ‘다른’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샘 스미스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이 게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던 이야기를 MTV라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꺼내기도 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꾸준히 이야기한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는 트로이 시반(Troye Sivan)도 커밍아웃한 팝 음악가인데, 꾸준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가 하면 “Youth”를 비롯한 몇 곡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연애를 비주얼로 선보이기도 했다.
my youth is yours
다양성과 상상력, 그리고 관용을 키울 수도 있는 것이 팝 음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팝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튄다’는 수식어를 받는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비롯하여 수많은 팝스타가 때로는 어떤 이들의 롤 모델이 되며, 때로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 독특하네’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사회가 가질 수 있는 포용과 상상의 폭을 형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 Ciara - Like A Boy(Official Video) http://bit.ly/2pNVB5y ※ Lauryn Hill - Doo Wop(Official Video) http://bit.ly/QxlrrY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블럭의 팝 페미니즘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