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또 다른 자아, 사샤 피어스
비욘세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로서 활동할 때, 그리고 솔로 데뷔를 통해서도 독립적인 여성상을 추구하고 남성들의 부당한 행동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쳤다면 지금의 비욘세는 없었을 것이다.
비욘세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가수 활동을 하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대중 앞에 선 자신이 과연 진짜 자신인지, 둘을 구분할 수 있는지 회의했다고 한다. 앨범 [Beyonce]를 발표하기 전까지, 실제 자신과 음악가로서의 자신을 구분하는 듯했다.
비욘세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고 좀 더 폭넓은 음악을 해나가며, 직접 그러한 생각을 표현한 작품의 시작은 아무래도 [I Am… Sasha Fierce]가 아닐까 싶다. 비욘세는 사샤 피어스(Sasha Fierce)라는 또 다른 자아를 내세우며, 두 가지 컨셉을 한 장의 앨범에 담았다. 이때 비욘세는 발라드 넘버를 소화하는 쪽이었다면, 사샤 피어스는 강렬하고 섹시한 댄스 음악에 집중하며 좀 더 거칠고 섹스어필하는 존재였다. 사샤 피어스 역시 본인이었지만, 이런 구분은 성녀/창녀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 If I Were a Boy/ Single Ladies
비욘세는 이전에도 많은 작품을 통해 여성의 파워와 주체성을 이야기했지만, 끊임없이 남성과 대조하는 모습이었고 이성애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놓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시지 전달에 있어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기 비욘세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불과 [Beyonce] 앨범을 내기 여덟 달 정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I Am… Sasha Fierce] 이후에 발표한 앨범 [4]에서는 “Run The World (Girls)”를 통해 여성의 힘 모으기를 외치는 앤썸(anthem, 성가)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금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줬다.
▷ ***Flawless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앨범 [Beyonce]는 비로소 비욘세 그 자체가 된 순간이었다. 미국 내 페미니스트들에게 끊임없이 이슈가 되었던 비욘세는 갑작스럽게,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앨범 [Beyonce]를 발표한다.
앨범 전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가 하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셀프 타이틀 앨범이었다. 일종의 선언과 같은 작품이었다. 작품성에 있어서도 자신의 고향인 휴스턴 특유의 힙합을 담아내고,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디바로서의 역량을 뽐내는 데 성공했다.
비욘세는 이 작품을 통해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보여줬던 맥락들을 작품 안에 담으며, 비욘세는 결국 비욘세 자신이고 그 자체라는 것을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꺼낸다. 성녀의 이미지도, 악녀의 이미지도, 대중 가수의 이미지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의 이미지도 모두 비욘세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다.
But why do we teach girls to aspire to marriage and we don’t teach boys the same?
▷ Formation
이후 비욘세는 6집 [Lemonade]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인다. “미국인 중 가장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이는 흑인 여성입니다”라는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말콤 X(Malcolm X)의 말을 인용하고, ‘테니스 여왕’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 배우이자 가수 젠다야 콜맨(Zendaya Coleman)과 같은 흑인여성 스타들과 함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였다.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에릭 가너(Eric Garner) 등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흑인들의 어머니도 등장한다. 전반적으로는 바람을 피우는 남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기존 작품에서 선보였던 맥락도 담긴 듯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 설정을 통해 비욘세는 비로소 ‘블랙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비욘세는 이 작품을 통해 미러링(거울처럼 상대의 언행을 따라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비추어 보여주는 것) 방식을 이용하고, ‘남자는 필요없다’는 메시지를 작품의 구성과 퀄리티를 통해 보여주었다. 앨범 제목이 할머니가 해줬던 이야기에서 따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비욘세는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에서 여성의 존재감과 힘을 싣는데 성공했다. 이 앨범은 흑인여성을 위한 앨범이고자 했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해내었다.
팝 스타의 페미니즘은 더 중요해질 것
지금까지 비욘세 디스코그라피의 변화를 통해 그가 전달한 이야기의 변화, 그리고 그가 말한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견고해졌고, 또 설득력이 강해졌는지도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지금의 비욘세에게는 부끄러운 순간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이러한 과정을 보며 무언가를 깨닫거나 얻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비욘세는 앨범 발매의 형식이나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올해의 앨범’으로 평가받을 만큼 뛰어난 구성과 작품성을 선보이고 있다.
비욘세는 성공한 팝 스타로서 페미니즘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혹자는 비욘세의 페미니즘이 힙하고 쿨한 것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페미니즘은 그렇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페미니즘이 힙하고 쿨한 것이고 ‘소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페미니즘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며 더 많은 이에게 노출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혹은 어떤 형태의 페미니즘만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비욘세가 지금까지 보여준 페미니즘은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Beyoncé - Flawless (Remix) ft. Nicki Minaj http://bit.ly/1rSrYLP ※ Beyoncé - Formation http://bit.ly/2hnYysi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
블럭의 팝 페미니즘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