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필자 블럭]
글쓰기와 페미니즘 실천
나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칼럼을 쓰고 있다. 동시에 음악이나 문화와 관련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느끼겠지만 나 역시 수많은 사회 문제를 하루가 머다 하고, 아니 요즘은 한 시간 단위로 접하는 것 같다.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를 수시로 접한다. 이에 대항하는 활동이나 성명에 동참하거나 가끔 후원금을 입금하고는 한다.
나는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일다> 편집장님과 대화를 나눈 뒤로는 사람을 지칭할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성별을 따로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 사람을 단순개체처럼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작품을 접하더라도 일차적으로 보이는 부분 외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맥락을 읽어보려 애쓴다. 당연히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문장은 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곳이 어느 매체든, 페미니즘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일종의 생활운동일수도 있다. 직업 자체가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실천하는 것은 내 평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음악이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정작 마감에 몸이 밀리다 보니, 마감을 지키는 것조차 버겁다. 기록에만 신경을 쓰고 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어딜 가서든 그런 발언을 접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또 여성주의에 반하는 내용의 글을 쓰도록 요구 받을 때는 다른 방향을 제안하거나, 그게 수용되지 않는다면 거절할 때도 있다. 늘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어느 곳에서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왜 가요가 아닌 팝에 대해 얘기하냐고?
팝 페미니즘에 관해 쓰다 보니, 왜 하필 가요가 아닌 팝 음악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눈앞에 쌓여있는 한국 음악과 음악 시장의 문제점은 이야기하지 않고 왜 먼 나라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 주된 지적 내용이다.
그에 대해 답하자면, 우선 내 성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나 싶다. 싫어하는 것, 좋지 않은 작품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글을 처음 쓸 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점이다. 팝 음악 시장이 페미니즘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온 것은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이 있는 논의도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 팝 음악가들을 모두 활동가라고 보긴 어렵지만, 꾸준히 페미니즘을 재생산하고 기존의 논의를 존중하는 동시에 깨뜨리며 한 단계 나아가는 작업을 보여준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팝 페미니즘을 좋아한다.
가령 팝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앞선 연재에서 설명했듯이 세대가 계속 교체되고 있다. 마돈나(Madonna)와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세대를 지나 지금은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넘어 또 다른 세대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에 마돈나가 만들어낸, 그리고 레이디 가가가 만들어낸 논의는 존중받으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막연히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기성 논의에 무조건 저항하며 반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행동과 역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걸 또 깨고 나가는 것이다.
또한 팝 페미니즘은 여성의 힘 모으기에 관한 앤썸(anthem), 폭력, 퀴어 등 다양한 분야를 조명하고 있다. 그게 내가 팝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쓴 소리보다는 좋은 선례를 제시하고 싶다
이에 반해 한국의 음악에 관한 페미니즘적 비판은, 등장하는 소재가 제한적인 것만큼이나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보아도 바뀌는 것 하나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점차 힘이 빠지거나 동력을 잃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써야 할 글과 쓰고 싶은 글이 나뉠 때가 종종 있다. 어느 한 쪽에서는 나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 음악과 음악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장이나 환경을 향한 쓴 소리는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다만 소재가 주류든 비주류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악인이 있으면 그에 관해 글을 쓴다. 이러한 점이 장점으로 통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도 아쉽게 느낄 때도 있다.
최근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AMA 시상식 생중계 때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두고 ‘공연녀’라는 단어를 붙여 논란이 되었다. 음악계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페미니즘 이슈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분노에 차서 대응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힘이 빠지며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갈등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내가 지향하는 여성주의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여전히 팝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꺼내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례와 새로운 영감, 혹은 선례를 제시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팝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내 글만이 아니라 여성주의에 관한 자료와 글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그게 내가 글을 써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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