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필자 블럭]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미디어 속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마돈나(Madonna)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마돈나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198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이자 히트 싱글인 “Like A Virgin”은 제목부터 강렬했고, 마돈나는 이후 작품을 통해 성녀/창녀 이분법을 깨는 것은 물론 기성 매체가 기대하는 ‘여성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기에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등장은 팝 페미니즘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팝 음악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곡이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고 주목을 받으며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데뷔하여 성공을 거둔, 페미니즘 관련한 메시지와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 높은 성과를 낸 팝 디바가 두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심지어 2018년인 지금까지 음악 생활이나 여러 방면에서 비교할 때 마돈나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음악가가 있다. ‘블랙 팝’이라는 단어와 함께, 팝 음악의 새 역사를 쓴 자넷 잭슨(Janet Jackson)이다.
자넷 잭슨은 1980년대에 데뷔했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동생이며, 잭슨 파이브(Jackson 5) 등으로 이름을 알렸던 잭슨 가의 막내다. 마이클 잭슨의 존재감이 워낙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넷 잭슨이 저평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상당히 많다. 이것이 자넷 잭슨이 첫 번째로 과소평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팝 음악사에서 마이클 잭슨의 위대함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자넷 잭슨은 그와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음악적 성과를 거둔 뮤지션이다. ‘운명적으로 남성 형제에게 가려진 여성’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부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넷 잭슨은 자넷 잭슨이고, 마이클 잭슨은 마이클 잭슨이다. 자넷 잭슨의 커리어에 있어 마이클 잭슨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부분은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이 동등한 위치와 인지도를 가지고 함께 곡을 발표한 적은 있어도, 자넷 잭슨이 마이클 잭슨의 ‘후광에 가려졌다’는 표현은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1980년대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Control]과 [Rhythm Nation 1814]는 지금까지도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음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발표한 [janet], [Damita Jo]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여성의 성적 욕망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동시에 기존 남성의 시각이 바라는 방향과 무관하게 표현했다. 여기서 자넷 잭슨이 과소평가되었다고 보는 두 번째 이유가 나온다.
자넷 잭슨은 그 어떤 여성 팝 음악가보다 먼저 주체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했다. 제목처럼 ‘나는 내가 통제한다’는 “Control”부터 ‘네가 최근에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묻는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며 남성들에게 추태를 부리지 말 것을 경고하는 “Nasty”까지 [Control] 앨범에 담긴 메시지는 별도의 기사를 써도 될 정도로 풍성하다.
[Damito Jo]를 비롯해 자넷 잭슨은 여러 작품에서 자신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표현했다. 현재의 시류에서는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앨범이 1990년대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자넷 잭슨이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은 현재의 모습인데, 자넷 잭슨의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은 음악가가 모두 높은 성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비욘세(Beyonce), 리아나(Rihanna)와 같은 유명한 팝 스타를 비롯해 네이오(NAO), 켈라니(Kehlani) 등 최근 많은 주목을 받는 팝 음악가들이 모두 자넷 잭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이들이 모두 흑인여성 음악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넷 잭슨은 지금의 음악가들에게 많은 길을 터주고 또 길잡이가 되어줬던 셈이다.
또한 [The Velvet Rope](1997)의 수록곡 중에서는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한 곡 “Together Again”이 LGBT 커뮤니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Free Xone”에서는 LGBT 커뮤니티를 향한 지지의 목소리도 낸다. 에보니(Ebony) 매거진과의 대화에서 그는 ‘사람들이 날 게이라고 생각하든 그렇게 부르든 상관없다’고 한 바 있다. 앨런 다운스(Alan Downs)라는 심리학자는 이 앨범이 LGBT 커뮤니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분석했을 정도다. 자넷 잭슨은 수익의 일부를 미국 에이즈 조사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뉴욕 프라이드 행진 때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2017년에 진행했던 [State of the World Tour]에서는 자신이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파시즘, 가정폭력 등에 맞선다는 걸 분명하게 전달했다.
무엇보다 그가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말 뛰어난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영상, 안무, 비주얼 등 다양한 측면에서 팝 스타답게 팝 음악의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로 자넷 잭슨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가 과소평가를 받아온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평가와 더불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흑인이고,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과소평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 가수 최초로 MTV에 뮤직비디오를 상영한 것이 불과 1980년대의 일이다. 그 시절에 들어서야 대중음악 내 인종차별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훌륭한 작품을 남겨오면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자넷 잭슨이지만, 사실 그가 과소평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니플게이트(nipplegate)라 불리는,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의 가슴 노출 사건 때문이다. 슈퍼볼 공연은 미국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여기서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와 함께 공연하던 도중 유두가 노출됐다. 이에 대해 사고인지 연출인지 의혹이 일었고 엄청난 비난과 함께 방송 심의 관련한 파장을 가져왔다. 이 사건 이후로 자넷 잭슨은 큰 타격을 입었고, 한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에 발표한 [Unbreakable] 이후 자넷 잭슨은 조금씩 전성기 때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음악가는 마돈나와 자넷 잭슨, 그리고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뿐이다. 자넷 잭슨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는 기록이다. 지금도 앨범을 만들고 투어를 돌고 있으니, 자넷 잭슨이 앞으로 또 어떤 움직임과 음악을 선보일지 기대될 수밖에 없다.
※ 자넷 잭슨 "Control" 공연 (American Music Award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mvwm_oPM-UY ※ 자넷 잭슨 "Together Again" M/V https://www.youtube.com/watch?v=vfK5QhZ9u7o ※ 자넷 잭슨 "Unbreakable" 공연 (World Tour 2015 Chicago Theatre) https://www.youtube.com/watch?v=PD3wvPCCb40 ※ 자넷 잭슨 State of the world tour 2017 Chicago https://www.youtube.com/watch?v=2nwdT5qbM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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