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필자 블럭]
얼마 전, 세계 최대 음악축제 중 하나인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이 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코첼라 밸리에서 열리는 대형 음악 페스티벌로, 1999년에 처음 열렸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규모를 늘려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20만 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축제에 몰려든다. 지금까지 뛰어난 라인업 구성은 물론 투팍(2Pac)의 홀로그램 무대까지 다양한 시도와 무대 연출을 보여줬다.
코첼라는 처음에는 록 페스티벌이었다. 백인, 밴드 위주의 록 음악에서 변화를 가져온 건, 2008년 프린스(Prince)와 2010년 제이지(JAY-Z)가 헤드라이너로 등장하면서부터다. 페스티벌에서 인종의 벽을 먼저 깬 것은 장르의 벽을 무너뜨린 전설 프린스였고, 래퍼가 솔로로 헤드라이너를 맡게 된 것은 제이지가 처음이었다.
이후 라인업의 음악이 조금씩 바뀌었고, 장르의 벽은 빠르게 허물어졌다. 세계적인 디제이 중에서도 높은 음악성과 흥행의 성격 모두 갖추고 있다면,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헤드라이너로서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디제이 중에는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가 헤드라이너로 선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헤드라이너 명단에 밴드가 없는 첫 번째 해가 되었다. 위켄드(The Weeknd), 비욘세(Beyonce), 에미넴(Eminem) 모두 랩, 알앤비 범주에 있는 음악가다. 특히 비욘세는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지난 20년 가까이 여성 헤드라이너는 뷰욕(Bjork)과 레이디 가가(Lady Gaga)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비욘세의 등장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코첼라 첫 ‘흑인 여성’ 헤드라이너로 공연한 비욘세
비욘세는 이날 자신의 에너지와 음악가로서의 역사와 맥락, 그리고 예술적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각종 매체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비욘세 무대에서 가장 토대가 된 것은 흑인 대학 문화다. 에너지 넘치는 단체 군무, 화려한 응원 문화와 고고, 가스펠 등 문화적 자산이 되는 넘버를 일종의 응원가나 앤썸(anthem)처럼 사용하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한 성격은 대학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의상에서도 잘 드러났다.
여기에 비욘세는 자신의 고향인 휴스턴 특유의 ‘찹드 앤 스크류드’(chopped & screwed, 기존의 곡을 느리게 늘리고 피치를 낮추는 방식) 스타일을 기존 음악 곳곳에 새롭게 녹여냈다. 동시에 다양한 아프로(Afro) 리듬과 최근의 경향인 자메이카의 댄스홀 음악까지 담아서 최근 흑인 문화의 정수를 보여줬다.
여기에 자신의 남편이자 먼저 코첼라 헤드라이너를 경험한 바 있는 래퍼 제이지, 그리고 동생이자 멋진 인디 뮤지션인 솔란지(Solange)는 물론, 이전에 함께 그룹을 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가 오랜만에 재결합하여 무대 위에 섰다.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지금의 비욘세가 있기까지 바탕이 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3인조 걸그룹이다. 비욘세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등장 전, 시스터후드(자매애)에 관한 테드 강연 중 일부를 들려주기도 했다.
게다가 곳곳에 급진적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말콤 엑스(Malcom X),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재즈 보컬 중 한 명이자 흑인 민권운동에 힘썼던 니나 시몬(Nina Simone)의 목소리를 더하여 무대의 의미를 완전하게 채웠다. 두 시간 가까이 선보인 공연의 의상은 하이엔드 브랜드인 발망(Balmain)의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이 맡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욘세의 무대는 이처럼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며, 소셜네트워크에서는 #Beychella(Beyonce의 Coachella라는 의미)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고, 많은 언론이 이 무대를 따로 보도할 정도로 특별했다.
비욘세 무대 아래도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나 비욘세가 헤드라이너로 섰음에도, 무대 아래에서는 고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비욘세가 코첼라 무대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유색인종과 여성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주는 동안, 그 현장에서도 성추행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대형 페스티벌 내에서 성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친구들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 설령 친구들과 같이 있더라도 사람이 많은, 밝은 곳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아니, 사실 그렇지도 않다. 수많은 인파 속 사람과 사람이 가까운 틈을 타 뒤에서 엉덩이를 만진다거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할 것 같은 음악축제에 와서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불편을 겪는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은 2017년에 미국 주요 페스티벌에 다녀온 5백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기사로 실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페스티벌에 가본 미국여성 중 92%가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애초에 성추행이 가능한 환경이라는 것.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에서 성추행을 겪는다는 것은 몹시 화가 나는 일이다. 틴 보그(Teen Vogue)는 피해자 증언 다수를 기록하여 공개하기도 했다.
영국 레딩 페스티벌에서는 즐거운 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강간범 두 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스웨덴 최대 음악 축제인 브라발라 페스티벌에서는 네 건의 성폭행, 스무 건에 달하는 성추행 사건이 신고되어 결국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해를 거듭할수록 페스티벌의 수는 많아지고 그 규모도 커지지만, 늘어나는 수익만 고려할 뿐 안전한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축제 측의 문제도 남아 있다. 축제의 무대 위를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만큼, 무대 아래 현실도 정면으로 직시하고 여성들의 경험과 요구를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 기사 좋아요 1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블럭의 팝 페미니즘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