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랙(Drag)을 하는 이유

[Let's Talk about Sexuality] ‘드랙킹’ 퍼포머의 정체성

아장맨 | 기사입력 2018/09/18 [18:23]

내가 드랙(Drag)을 하는 이유

[Let's Talk about Sexuality] ‘드랙킹’ 퍼포머의 정체성

아장맨 | 입력 : 2018/09/18 [18:23]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 Abnormal 팀의 패션필름에 출연했을 때 필자(아장맨)의 모습.  ⓒ촬영: 윤희지

 

나에게 드랙(Drag)이란…

 

‘드랙’(Drag)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먼저 내가 생각하는 드랙을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드랙을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하여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에 반대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형태로 표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공동체에서 폐쇄적인 장소를 빌려 공연을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표현의 방식이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였던 최현숙 씨가 선거 유세를 할 때 등장하기도 했고, 이제 많은 드랙 퍼포머들이 무대를 만들거나 참여할 뿐 아니라 sns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며 자신을 드러낸다.

 

내게 드랙은 ‘정치적 의미’를 갖고 본인의 성향과 지향하는 아름다움 등이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나길 원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성복장 도착증이 계기가 된 크로스 드레싱(cross dressing)이나, 개인적인 활동으로서의 남장 혹은 여장, 분장, 코스프레, 남성복을 선호하는 부치에 대해 ‘드랙 수행’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드랙-퀸’(Drag queen)에는 익숙해도, ‘드랙-킹’(Drag king)이란 개념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드랙퀸에 익숙한 사람들도 대부분 게이클럽 무대 위의 시스젠더 게이 드랙퀸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 탓에 드랙퀸이라고 하면 남성이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특징들을 수집해 극단적인 경지까지 끌어올린 모습만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사실 드랙은 성별 반전이 아니다.

 

드랙킹은 여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드랙퀸 또한 남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 여성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드랙퀸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드랙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근육질의 드랙퀸, 수염을 기르는 드랙퀸, 여성용 란제리를 입는 드랙킹, 곡선형 몸을 드러내는 드랙킹 등 다양한 드랙킹과 퀸들이 있다. 그런 퀸들과 킹들의 모습은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에서 매우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드랙킹은 여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드랙퀸 또한 남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런던의 여성 드랙퀸들을 만나다” 영상 중 캡쳐. http://bit.ly/2hNPYAZ  ⓒ출처: broadly.vice.com

 

외할머니 앞에서, 생애 최초의 드랙 수행?

 

나는 딸이 셋 있는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첫째 언니와는 8살이 차이 나고, 둘째 언니와는 7살이 차이 난다. 내 주변에서 딸만 셋 낳은 집은 보기 드물다. 자식이 셋인 집도 별로 없거니와, 형편이 넉넉해서 자식을 셋이나 낳는다면 둘째까지 딸일 경우 막내는 당연히 아들이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차녀 뒤로 생기는 딸들은 대부분 지워지며, 나도 원래는 그렇게 됐어야 할 팔자였다. 그러나 1994년 4월, 태아의 성별을 묻는 아버지에게 산부인과 의사는 “아들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하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릴 적부터 내가 어떻게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는지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찝찝한데도” 낙태를 택하지 않고 낳아준 부모에게 내가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끝없이 강조하면서도, “너는 아들 낳으려고 낳은 건데”, “막내는 아들이었어야 하는데” 등의 문장을 덧붙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외할머니와 아버지는 포경되기 전의 작은 남근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웃들이 품에 안고 있는 남자 아이들을 보면 녹아내렸다. “아주 똘똘하게 생기고, 멋있는 걸.” 그들은 팔 다리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해 속싸개에 싸인 아기에게 멋지다고 말할 만큼 남근이 가진 위대한 신화와 가능성에 빠져있었다.

 

나는 눈치가 아주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외할머니 앞에서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외쳤다. 찐 고구마나 비누를 팬티 앞섬에 넣고 큰 보폭으로 걸었다. 외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리면 골반을 흔들며 춤까지 췄다. 이게 내 첫 (드랙)킹잉이 아니었을까?

 

외할머니와는 6살 때, 어머니가 직장을 퇴사하는 동시에 송파구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멀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내가 아들이 아님을 책망할 때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함에도 불구하고 ‘애한테 왜 그러냐’며 크게 화를 냈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걸 어머니께 들켰을 때, 아버지는 “옛날 같았으면 처가 아들도 못 낳으면 두 집 살림 차리는 게 정상이야”라며 적반하장으로 어머니께 화를 내셨다. 나는 경제권을 뺏긴 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대처도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봤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남자가 되고 싶어진 것은 아니었다. 만약 좋은 모델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본 남성들은 과반 수 이상이 무례했으며, 인권 감수성이 없다시피 했으며, 자기애에 빠져있고, 청결하지 못했다. 나는 남들에게 그런 존재로 패싱(passing, 자신의 외양과 행동을 특정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이게끔 꾸미거나 감추는 것)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도 언젠가 남자가 과대평가되어 있단 걸 깨닫길 바랬다.

 

하지만 여자로 사는 것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가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으며,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어느 범주에 속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드랙킹 아장맨으로 첫 데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가족으로부터 내 행동의 모든 것을 교정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태우고 집으로 가는 내내 한국에서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떤 화장을 해야 하는지, 20대 여자에게 어울리는 눈빛과 말투와 미소는 어떤 것인지 설명해줬다. 그 후, 고분고분하게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1년 정도 지내면서 나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빠르게 터득했다.

 

여성들은 너무 많이 죽어나갔고, 그 죽음은 대중의 오락이 되기도 했다. 나는 우울함에 시달렸다. 일단 몸을 옥죄는 브라가 싫었고, 곡선형의 가슴을 드러내는 게 성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공공장소에서 상의를 탈의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러던 중 여자 친구가 ‘여성괴물’이라는 페미니스트 이벤트 그룹에서 드랙킹 퍼포머를 구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내게 그 자리를 추천했다. 그 길로, 나는 첫 드랙킹 퍼포먼스를 ‘유두해방 운동’에 대한 나의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2017년 10월 31일의 일이었다. 맨 가슴을 드러내고 빠른 비트의 곡에 맞춰 립싱크를 하며 춤을 췄다. 관객들은 그 누구도 내 가슴 노출이 성적 뉘앙스를 띄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 아장맨 여성괴물 1차 공연 모습. That Laughing Track 립싱크 중.  ⓒ촬영: 더덕

 

드랙 분장, 통념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과거에 진한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을 때, 친구들로부터 ‘아주 그냥 분장을 했네’ 라고 비꼬는 어조로 비난받았다. 그들에게 화장이란 ‘여성이 욕망 당하고 싶어서’, ‘타인에게 아름답게 관람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의 과한 화장은 더 이상 사회적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기괴한 ‘분장’이 되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내가 드랙을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는 통념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와, 사회에서 화장을 한 여자가 받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랙은 아름다움, 추함과 천박함을 ‘개인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드랙 화장은 정상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하는 화장이 아니다. 그렇기에 드랙이 다양한 아름다움과 추함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통념적인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취향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여성들에게 꾸민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하면 과반수 이상이 “생기 있는”, “섹시한”, “청순한”, “귀여운” 등 사회의(남성의) 기준에 맞춰진 아름다운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신체를 장식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의 꾸밈 산업이 너무 여성에게만 외부의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하다 보니 꾸밈은 여성에게 노동이 되고, 억압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매우 개인적인 기준으로 꾸며진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꾸밈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노출이나 화장, 의상이 ‘타인에게 성적으로 욕망되고 싶은 욕망의 표출’로 읽혀지는 걸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인 우리가 수 없이 들어 익숙한 “저렇게 야한 옷을 입다니”, “문란한 여자가 틀림없다”, “강간당할 만 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이다” 등의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변호가 덜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드랙킹이 남성 미화라고?

 

간혹 드랙킹은 남성을 미화시키며, 성별 이분법을 강화시킨다는 코멘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여자인 내가 여성일 때는 할 수 없는 유두 노출을 남성 분장을 하고 했으니, 남성의 권력이나 남성 신체만이 가질 수 있는 신체의 자주권을 강조하는 게 되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여자일 때도 가끔은 의도적으로, 가끔은 실수로 유두를 노출하고 다닌다. 그때마다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의 노출된 유두가 얼마나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 생생하게 느낀다. 대놓고 시선 강간을 하는 사람들, 손을 대려고 하는 사람들 등 나의 행동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왜곡된다. 애초에 내게 의사라는 게 있다는 걸 잊은 듯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성을 가슴과 성기로 대상화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곡선형 유방과 유두는 존재감이 너무 커서 유두가 드러나는 순간 그들에게 사람인 나는 잊혀지고 내 유두만이 온갖 불필요한 집중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남성 연기를 하며 유두 노출을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건 내 유두가 아니었다. 나는 관객들이 이런 차이를 인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난 내 소위 여성스럽다고 표현되는 신체의 특징들을 숨기지 않는다. 왜소한 키, 얇은 팔 다리와 부푼 가슴을 보여준다. 누가 봐도 여성의 몸이지만 관객들이 나를 남성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내 신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시선이 변한다.

 

나는 내게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남자들을 연기한다. 서구의 중후한 부자 남자, 보수적인 노인층, 폭력적인 예술인 등을 연기하며 공포를 극복한다. 특히 광기가 흐르는 남성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분장도 원래의 살색이 보이지 않도록 창백한 하얀색을 바탕으로 깔고, 눈썹이 과하게 치켜 올려진, 무언가에 분노하는 듯하면서도 웃고 있는, 위화감을 주는 인상을 만든다.

 

나는 광기가 천재성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천재성과 광기는 오직 남자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진다. 성격에 결함이 있어도, 폭력을 휘둘러도, 사생활이 문란해도, 남성에게 재능이 있으면 그는 천재로 남고, 여성은 미친 여자가 되어 병동이나 집 안에 갇혀 불행한 채 죽는다. 나는 그러한 특권들을 누리면서도 특권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득권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성들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했다.

 

지금도 여전히 두렵지만, ‘아장맨’이라는 공연용 자아가 생긴 뒤로는 더 이상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만큼의 공포감은 들지 않는다. 공포의 대상을 따라하며 희화화하며, 관객들과 함께 비웃는다. 그들을 비웃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다. 아장맨이 되면 진정한 ‘주체’가 되는 느낌이 생긴다.

 

아장맨의 세 번째 공연 때, 아버지의 양복을 몰래 입고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지금보다 훨씬 젊고, 사업을 시작해 나이가 든 지금보다 더욱 폭력적이던 시절 아끼는 양복이었다. 그걸 훔쳐 입고 바닥에 굴러가며 먼지를 묻힐 때,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조금이나마 극복했다.

 

▶ 클럽 래빗홀 공연 중인 아장맨. 아버지의 양복을 입었다.  ⓒ촬영: robert micheal evans

 

여성 드랙킹이 받는 제약

 

내가 ‘여성괴물’로 데뷔한 건 행운이었다. 여성괴물 공연에 온 관객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여서 내가 노출을 하는 게 위험하다 느껴지지 않았으며, 성희롱과 성추행도 없었고, 불법 촬영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괴물 데뷔를 마치자마자, 드랙 이벤트를 전문적으로 여는 클럽에서 제의가 들어 왔다. 처음엔 기뻤지만, 클럽은 내가 연기하는 성별과 관계없이 내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노출 허용의 범위를 정해줬다. 그에 따라 유두 노출은 금지됐다. 나는 체구가 작지만 사회가 남성에게 준 당당함을 표현하는데 자신이 있다. 내가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남성 신체(체모, 가슴, 지방의 노출에 뻔뻔한)의 당당함이었는데, 그걸 제지당했다.

 

반면에 드랙퀸은 여성을 연기하는 건데도 남성 퍼포머라는 이유로 유두 노출이 허용됐다. 드랙은 성별 이분법에 저항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본인의 성향과 지향하는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것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가하면 어떤 여성이 드랙 퍼포먼스를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까?

 

클럽 쪽에서는 불특정한 관객들이 여성 퍼포머에게 가할 성희롱, 추행 등을 걱정했을 것이다. 나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하며, 내가 처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성혐오적인 시선(슬럿 쉐이밍 Slut Shaming;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취급하는 것 등)을 걱정하며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규제(유두 노출 금지)를 받아들이고 퍼포먼스를 하는 건, 내가 드랙을 시작한 이유와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드랙킹이나 여성 드랙 퍼포머, 다양한 드랙 퍼포머들이 많이 존재할 수 없고, 가시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서 드랙이 시스젠더 게이 남성의 문화로 정착됐기 때문인 것 같다. 드랙 문화라기보단 ‘드랙퀸’ 문화로 홍보되어, 본인의 드랙에 퀸이라는 라벨을 붙이지 않는 드랙 퍼포머들도 호칭의 편의나 선전 효과를 위해 퀸이라고 소개되곤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드랙의 장르 중 하나인 ‘클럽키드’(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퀴어 클럽에서 드랙아티스트들과 퀴어 패션 영향가들이 마이클 엘리그와 제임스 세인트 제임스를 선두로 두고 클럽키드라는 그룹을 만든 것에서 시작해, 아방가르드적 패션과 쇼킹하고 중성적이고, 젠더를 예상할 수 없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드랙 패션의 한 장르) 계열의 아티스트들은 스스로에게 ‘퀸’이나 ‘킹’ 등의 라벨링을 붙이는 일이 흔하지 않다.

 

한국의 클럽키드 퍼포머 Nix나 Hoso Hailey Sodomite는 스스로에게 성별 라벨링을 붙이지 않고 드랙의 시각적 효과에 더 집중하는데, 그들은 “조금 더 여성스러운 화장을 해라”, “터킹(남성기를 테이프로 고정시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을 해라” 등의 말을 들으며 퀸으로 활동하도록 강요받고,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 ‘드랙퀸’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시스젠더 남성 드랙퀸이 아닌 이상, 드랙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들도 한정된다. 최근 드랙킹 콘테스트를 준비하며 현재 드랙킹이자 벌레스크 퍼포머인 Sapphire Rain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드랙킹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장소와 이벤트가 없다고 했다. 대부분 클럽들에서 섹시한 벌레스크(Burlesque,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한 춤이나 쇼)나 드랙퀸을 원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시스젠더 게이 남성들의 글래머러스한, 섹시한 여성을 패러디하는 퀸 퍼포먼스만 독보적으로 가시화된 탓인지 드랙을 ‘남성의 여장이다’, ‘여성혐오적이다’라고 이해한 데에서 비롯한 비난들이 넘쳐난다. 나는 모든 드랙이 성별 이분법, 사회적 성별 퍼포먼스를 전복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랙=여장’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다양한 드랙 퍼포머들이 가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여성괴물 2차 크리스마스 공연 홍보 사진, 드랙을 하지 않은 필자(아장맨)의 모습.  ⓒ촬영: gara docu

 

드랙킹 콘테스트를 준비하며

 

10월 9일로 예정된 드랙킹 콘테스트 “ALL HAIL”은 드랙킹, 여성 퀴어 문화를 가시화 시키고 싶어서 마음이 잘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 기획하게 된 행사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만, 여성혐오 시선이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한 많은 여성들에게 내가 첫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해방감을 전해주고 싶다. 안전한 장소에서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솔직해지고, 그 모습을 인정받게 해주고 싶다.

 

물론 여성이 안전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최한 이벤트들에 참가했을 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없어 보여 안심하고 있던 때에도 나와 내 파트너는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우릴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할지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드랙킹 콘테스트에서는 성희롱, 추행의 기준을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 둘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의 나이, 성별, 지위 따위와 무관하게 처분할 것이다. 피해자에게 무조건적으로 협조하고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격리시키는 모습을 보여 피해자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게 하고 싶다. 이상적인 모습들이 보여지는 이벤트면 좋겠다. 부조리함을 흡수하게 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도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을 겪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며 살아온 여성(나)에게 왜 네 자신에게, 사회에게 당당하지 못하냐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봤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몸”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나)이 노출을 하는 걸 보면 “대단한 자신감이다”, “정말 당당하다”며 평가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봤다. 그러나 당당함은 본인이 이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야 가능하다. (한국의 수많은 남자들을 보라. 오랜 기간 그들이 성기를 통해 얻어온 ‘신뢰’와 ‘사랑’으로 얼마나 심하게 당당한 자태를 가진 주체가 됐는지.) 드랙킹 콘테스트가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자리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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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8/11/13 [15:04] 수정 | 삭제
  • 사진의 저작권과 출처 좀 명시해주세요 포토그래퍼가 씁쓸해합니다
  • hdpec 2018/10/06 [11:51] 수정 | 삭제
  • 여성 피해자 정체성 닦지 붙이기의 퇴행을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반복한다. 정희진은 사랑과 섹스라는 몸으로 치환된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에게는 가해자라는 낙인 구도로 일관한다. 여성은 능동적 정신이 제거된 수동적 몸 정체성으로 규정되고 남성은 여성의 몸을 유린하는 이성이 마비된 섹스에 굶주린 색마 정체성으로 폄훼된다.
  • 리리 2018/09/22 [15:18] 수정 | 삭제
  • '퀸'이라는 성별라벨링이 싫어서 드랙을 부정적으로 봤었는데, 이 기사를 통해 성별라벨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어 드랙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 orange 2018/09/19 [11:11] 수정 | 삭제
  • 한 번 남자의 드랙킹 쇼를 본 적이 있어요. 이 기사보면서 그때 기억이 납니다. 지금 같으면 환호하면서 분위기를 돋구었을 텐데 그땐 뭐가 뭔지 몰라서(관람 뽀인트를 몰랐음) 박수만 쳤던 기억이 있네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개인의 다양한 표현에 대한 이해와 즐거움이 교류되는 문화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공감 2018/09/19 [03:45] 수정 | 삭제
  • 기사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한국은 여자사람들의 일탈(?)은 일체 허용이 안된다는... (한국의 성평등지수가 지구촌에서 10위라는 가짜뉴스는 지구가 네모나서 그 끝에가면 떨어져죽는다는 가짜뉴스와 흡사한 느낌...)
    10월 9일 공연때는 보다 성숙된 관객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자리가 되길요~
    관객들이 마음의 여행을 떠나며 간접체험해보는 자리가 되길요~
  • 퍼실 2018/09/18 [23:28] 수정 | 삭제
  • 신세계다!!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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