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까지 노오오오력해야 돼?[Let's Talk about Sexuality] 내겐 너무 뜨거운 ‘연애의 온도’※ <일다>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에세이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의 필자는 <계간홀로> 편집장이며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프런티어, 2018)의 작가인 이진송 님입니다. [편집자 주]
불쑥불쑥 듣게 되는 말들…‘철벽녀’ ‘연알못’
어떤 자리가 끝난 후, 친구가 한 참석자의 이름을 대며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뭘 어떻게 하냐는 거지?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동공에 물음표를 띄웠더니 돌아온 말. “걔가 너 엄청 쳐다봤잖아. 몰랐어?”
물론 그 참석자는 나를 쳐다봤고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어디까지나 활발한 대화와 소통으로만 인식한 차였다. 친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흥, 말줄임표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한테 ‘연애고자’(차별적인 혐오 표현입니다)라고 하려고 했지!
이런 에피소드는 길에서 나눠주는 전도용 물티슈처럼 불쑥불쑥 내 인생에 치고 들어왔다. 나는 이성의 말이나 비언어적 표현을 즉각 로맨틱한 시그널로 이해하거나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목석’이나 ‘연알못’(연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혹은 공기 중에 연애의 농도가 몹시 높은 공간(예를 들면 유럽에 있는 한인민박)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손쉽게 ‘철벽녀’나 ‘이래서 솔로’로 불렸다.
감히 연애하지 않는 주제에 노력조차 안 하는 나
텔레비전 쇼 <마녀사냥>(JTBC 2013~2015 방영)이 인기를 끈 이후 이런 시그널들은 ‘그린라이트’(green light)라고 불린다. 연애와 썸이 자신의 매력과 서열을 증명하는 성적표가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성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에서 그린라이트를 찾아내려고 혈안이다. 인터넷에는 이성의 어떤 행동이 그린라이트라고 보여주는 짤들이 돌아다니는데, 그 중에는 상대방 쪽으로 몸을 숙이거나 머리를 귀 뒤로 넘기거나 배꼽이 보이게 몸을 그 쪽으로 여는 등 일상적이고 사소한 제스처까지 포함되어 있다. 아니 부담스러워서 몸이나 움직이겠냐고요. 내 배꼽에서 너★를★좋★아★해♥라는 네온사인이라도 깜박이냐고요.
이성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그린라이트인가 아닌가에 대한 집착은 <마녀사냥>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넘쳐났다. 연애 상담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 친구들과의 대화, 바이럴(입소문) 광고… 누가 봐도 똥색인데 초록색이라고 우기거나, 초록색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진짜 초록색이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애초에 그린 라이트를 감지하거나 판별하는 능력치도 낮지만, 그것 자체에도 심드렁하고 미적지근한 편이다. ‘그 정도로 긴가민가하면 그냥 넘겨버려도 되지 않을까? 굳이, 굳이 그렇게 사소한 시그널들에서까지 로맨스의 가능성을 쥐어짤 만큼 열심히 로맨틱해져야 할까?’
누군가는 엄중하게 나에게 소리칠 지도 모른다. “네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지!” 나는 대답하겠다. “네, 그래서 못하나봅니다… 그러니 날 좀 놔주쇼.”
세상은 연애하지 않는 주제에 연애하려는 노력조차 않는 나를 매우 괘씸하게 여긴다. 못하는 주제에 정신 승리한다는 말도, 나의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의혹도, 진부해서 시시했다. 호의를 바탕으로 한 응원도 마찬가지였다. “로또도 사야 당첨이 돼!” 시도를 해야 연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당첨이 되고 싶지 않다잖아요. 애초에 연애를 왜 ‘복권 당첨’ 수준으로 부풀리는지도 의문이지만. 내가 말포이(해리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 그가 건방지게 시비를 걸면 주인공들이 “입 닥쳐 말포이”라며 그의 말을 끊는다)도 아닌데 말 좀 하자!
연애의 용광로가 된 사회, 하지만 “좋다고 다 사귀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누구나 ‘뜨거운’ 사랑에 홀딱 빠지거나, 간질간질한 ‘썸’에 ‘심쿵’하거나, 독점적 연애 관계에 진지하고 성숙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급과 제약이 사라진 시대이니 누구나 연애를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면 ‘노오오오력’을 통해 보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날아든다. ‘N포(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함) 세대’ 담론이나, 현대인들은 너무 가볍고 경박해서 진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연애 불가능’의 진단과, 사방에서 연애를 들이미는 ‘연애 과잉’이 공존하는 시대, 2018년의 한국 사회는 너무 뜨거운 연애의 용광로이다.
자고 일어나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연예인의 열애설이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의 공개연애와 관련된 TMI(Too Much Information)가 넘쳐나며, 동물이나 영유아들에게도 로맨틱한 구도나 성별 각본을 부여한다. 학교나 직장, 공공장소, 취미생활 공동체, 어딜 가든 “잘됐으면 좋겠다”는 그린라이트 화살 또는 핑크빛 폭우가 멈추지 않는다. 회사에 처음 입사한 친구들은 연령대가 비슷한 선임들과의 관계를 놓고 “잘해보라”라는 말을 통과의례처럼 들었다고 했다. 잘하긴 뭘 잘해, 회사에서 잘할 거라고는 일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MBC의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도 볼 수 있다. 개그맨 박성광과 매니저는 비즈니스 관계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랑의 스튜디오>가 아니다. 그러나 매니저가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같이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어색하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매번 썸이나 달달하고 어색한 핑크빛 무언가로 포장된다.
일본 만화 <테니스의 왕자>에서는 ‘데즈카 존’이라는 기상천외한 기술이 등장하는데, 데즈카가 보낸 공은 상대가 어디로 받아치든 그가 서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박성광은 매니저를 배려하는 모습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국민남친’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무엇을 하든지 썸이나 이성연애의 관계 안으로 빨려들어 소비되고 독해된다. 나는 이것을 ‘이성애 로맨틱 존’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매트릭스만큼이나 강력한 이성애 로맨틱 존에 있다.
그뿐인가? 대화의 화제는 이성애 연애 관계가 독점하기 일쑤고, 연애하지 않는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솔로’의 원인으로 지목 당한다. “이거 입으면~ 남친 생겨~” 류의 카피가 뷰티 제품이나 의류 광고에서 넘쳐나고, 아직도 연애를 갈망하고 커플을 질투하는 솔로 캐릭터는 유머 자료로 소비된다. 이성(異性)으로 보이는 가까운 두 사람은 바로 연인이라고 여겨지고, 연인으로 발전할 만한 어떤 긴장감을 가진 ‘썸’ 전 단계나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이기를 기대한다.
최근 ‘송은이의 그라데이션 분노’가 SNS를 달구었다. <무한도전> 소개팅에서 김제동이 좋으면 사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하자, ‘싫은가 보지’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구도에 송은이가 결국 폭발하는 영상이다. “그거랑 다르지 인마! 좋다고 다 사귀냐!”
이성 간의 감정을 좋음과 싫음으로 양분하고, 로맨스 가능 여부로만 해석하는 폭력. 이 과열된 온도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모조리 녹여서 하트 모양으로 주조하려고 한다. 그 하트가 ‘이성애 관계, 비(非)장애인, 유(有)성애, 시스젠더(cisgender,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외형상 같은 민족끼리’의 틀 속에서 작동하도록 주조된다는 사실을 숨긴 채.
리얼세상에는 뜨거운 연애와 무관한 이야기도 많아
모두가 연애와 섹스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욕망과 태도, 관계를 맺는 방식과 유형, 관계에 몰두하는 온도, 관계를 맺는 대상의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등은 모두 다르다.
나는 연애에 전력투구해본 적이 없다. 한창 연애를 할 때도,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도,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처럼 격앙되거나 휘둘리지 않았고 일상은 나의 리듬대로 흘러갔다. 그래서 나의 연애는 언제나 ‘충분하지 못한’ 취급을 받았고, 나는 냉정한 연인이자 이기적인 여자였다. ‘네가 아직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나봐서 그렇다’는 말에서 나의 연인이나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기준 미달의 B급품이 되어버렸다.
자신을 모두 잃어버리고,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이라는 압도적인 감정 앞에 철저하게 무력해지거나 자신의 한계를 초과해봐야 ‘진짜 사랑’이라는 사랑의 절대화와 신성화. 그 힘은 강력하고 또 유효했다. 나는 무엇보다, 절절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작가로서의 약점이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글을 잘 쓰려고’ 진짜 연애에 목을 맬 경우에 그 관계 안의 타인을 대상화하거나 도구화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다지 들을 기회가 없었다.
이제는 잘 안다. 유독 이런 ‘리얼리티’,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경험들은 연애, 섹스, 출산, 양육, 군대처럼 우리 사회의 ‘정상성’을 은유한다는 것을.
정상성의 KS마크를 달고서야 받을 수 있는 ‘참 잘했어요’ 도장은 필요 없다. 세상에는 뜨거운 연애와 무관한 글쓰기와 이야기가 많고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그래도 굳이, 굳이 사랑의 정수를 맛봐야만 진짜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적당히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충분히 귀한 일이라고 대답할 테니 지나가시라.
우리 각자의 온도
백 번 양보해서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게 당장 내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적지근하고 심드렁한 현재 나의 태도와 감정을 ‘아직 못해봐서 우매한’, ‘미성숙한’ 것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 정말 미래에 그런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과거가 된 지금을 ‘뭘 몰랐던 시절’로 호명하지 않을 것이다.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연애의 가능성이 아쉬울 수 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르고 지나갈 만큼 미미하고 작은 불씨에 굳이 기름 붓고 부채질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로 꺼져버려도 무덤덤한 사람도 있다. 이것은 내가 연애에 담백하다고 해서 연애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멸시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게는 너무 뜨거운 이 연애의 용광로가 누군가에게는 욕조 속처럼 안락하고 따뜻하겠지.
질문은 명확하다.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몰아넣고 최대치까지 뜨거워지라고, 똑같은 모양의 감정과 관계를 형성하라고 풀무질하는 손모가지는 누구의 것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을 착취하고, 무엇을 지우려고 하는가? 나의 감정이나 연애는 몇 도일 때 가장 맞춤한가?
나는 오늘도 델 듯한 연애의 온도에 땀을 흘리며 깨금발로 폴짝폴짝 뛰고 있다. 명절 연휴에는 또 연애와 결혼에 관련한 잔소리를 들을 것이고, 웹서핑을 하다가 ‘당신이 솔로인 이유’나 ‘연애 점수’ 따위의 페이지를 맞닥뜨릴 것이다.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의 공개 연애를 자꾸 들먹이고, 짚신짝을 맞추듯 나를 아무한테나 갖다 붙일 것이다.
그러니 더 열심히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 모두가 연애와 섹스를 할 당위나, 연애와 섹스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자본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전력 질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폭풍 같은 사랑을 하지 못 해봐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며 주변인들에게 등 떠밀려 얼떨결에 뛰어드는 연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연애를 정의하는 테두리의 안과 밖을 야금야금 허물고 찬물을 끼얹으며 각자의 온도를 지키려는 사람은, 여기 여기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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