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현실을 고발한 ‘힙합’<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말하기> 143 Band와 파라다이스독일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리타님이 번역, 해제를 달아 소개합니다. 베를린의 정치그룹 국제여성공간(IWSPACE, International Women Space)이 제작한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으로, 이주여성과 난민여성으로 구성된 팀이 다른 난민여성들을 인터뷰하여 1인칭 에세이로 재구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젊은 두 뮤지션 파라다이스(Paradise)와 다이버스(Diverse)는 ‘143 Band’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한다. 두 사람은 아프간에서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를 결성한 2008년 이래 수 년 간 지속적인 살해 위협과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시달렸다. 특히 여성인 파라다이스는 기존 성역할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큰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결국, 2015년 경 망명길에 올랐다.
아래 소개하는 노래 두 편은 아프가니스탄의 열악한 여성인권 현실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힙합 장르에 담았다.
인생의 비극(Tragedy of Life) -143 Band
(rap 1절)
아빠, 아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잖아
(코러스)
(rap 2절)
날마다 커져가는 그녀의 고민
그녀 같은 아이들이 차고도 넘쳐
※ Tragedy of Life 뮤직비디오: https://bit.ly/2QyB05g
고통의 땅(Land of Pain) -143 Band
(rap 1절)
난 도망치려 했지, 그런데 내 등에 칼이 꽃혔어
내 얼굴은 불태워졌네, 이슬람의 이름으로
산이 쏟아져 내렸지, 내 온 몸에
말하려 했지, 그런데 내 말은 잘려나갔어, 여자라서
난 아니라고 말했어, 난 죽지 않았다 말했어
남편은 날 강간할 수 있어
오! 사람들이여! 날 동정하진 마
(코러스 1)
(rap 2절)
언젠가 난 자살할지 몰라, 무자비하게
이봐 잘 들어, 내가 자유와 희망을 말할 때
나도 여자야 네가 그렇듯
아프가니스탄! 사연많은 나라
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물었어, 남자앤가?
여자, 약해빠진, 베일 뒤집어쓴
다 엿 먹으라 해, 난 큰소리로 울부짖네
※ Land of Pain 뮤직비디오 https://bit.ly/2QxOttX
[번역자 노트]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힙합
춤, 음악, 패션 장르로서의 힙합은 1960~1970년대 뉴욕의 흑인 클럽들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힙합이 근래 무슬림 여성들의 스토리텔링 도구이자, 소셜미디어에서 각광받는 라이프스타일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독일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흥미로운 발표를 들었다. 이 컨퍼런스는 ‘Rocking Islam’이라는 타이틀로, 신세대 무슬림들이 대중음악을 통해 정체성을 수립해나는 현상-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 및 아랍권의 젊은 스타들이 패션, 대중음악, 소셜미디어에서 무슬림 정체성을 기존 대중문화 코드와 버무려 드러내며 인기몰이를 하는 것-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자리였다.
여러 발표 중에서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 연구자인 파트마 사기르(Fatma Sagir)는 특히 무슬림 여성 셀러브리티들에 주목했다. 디지털 세계에서 스카프를 쓴 여성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쿨함’(Coolness)을 구현하고 있는데, 이를 다양한 ‘여성성’ 카테고리(몸, 얼굴, 옷차림, 시선과 제스처, 액세서리 등)에 따라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국 힙합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2세대 무슬림 이주민 Mona Haydar의 사진과 영상을 데이터로 수집해 기존의 무슬림 여성에 대한 규범과 기대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 대조한다. 지금까지 스카프와 부르카로 상징된 이 여성들의 몸이 ‘보이지 않는(invisible) 존재’로 소외되거나, 이슬람 포비아를 촉발하는 부정적인 도화선으로 취급되었다면, 신세대 셀럽과 뮤지션들은 스스로를 의외의 모습과 언어, 몸짓으로 드러낸다.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스스로를 무슬림으로 정체화하지만, 몸매를 드러내는 저지를 입고 빠른 랩을 구사하며, 힙합을 춘다. ‘공공장소에서 먹거나, 춤추거나, 빨리 움직이지 말 것’이라는, 이슬람 율법이 여성들에게 정한 행동양식과는 정반대의 파격이다.
연구자는 이들 여성을 꼭 정치의식이 투철한 액티비스트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뚜렷한 목적을 띤 캠페인이 아니라 대개는 쿨하게, 자유롭게 살고픈 청년의 자의식과 욕망을 표출하는 활동으로 봐야한다는 것. 영어를 쓰는 뮤지션들의 경우, 서구 사회에서 이주민 1~3세대로 살면서 직면하는 이슬람 포비아, 정체성의 혼란, 부모 세대의 압력, 힘겨웠던 이주의 기억을 자신들에게 친숙한 매체와 장르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목을 끄는 많은 여성 무슬림 스타들이 북미 지역에 거주하며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창작 환경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을 시작한 ‘143 Band’은 더 대단해보인다. 정부와 보수 종교 세력 등의 계속되는 압력과 협박에도 사회 다수인 젊은이, 여자아이들, 서민들의 삶의 현실을 노래로 얘기해왔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이 고도로 집중되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상품을 연신 내놓는 K-POP에 익숙한 내 눈과 귀에는 ‘143 Band’의 뮤직비디오가 좀 투박한 인상이 들지만, 뮤지션이 조금이라도 독립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 논란거리가 되는 요즘 세상에서 ‘143 Band’의 진정성은 빛이 난다. 아프간의 전통 음악을 재해석해 녹여낸 느린 비트와 서정적인 멜로디, 언어의 생소함도 불구하고 나를 음악에 온전히 집중시킨다. 뮤지션 파라다이스와 그녀의 파트너 다이버스가 앞으로도 오래 무대에 서길 바란다.
[필자 소개] 하리타(정세연)- 독일살이 4년차. 온갖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 곤두서있다. 일다에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칼럼을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2017)를 출간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사회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젠더와 이주, 섹슈얼리티,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글쓰고 행동한다. 하리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초록’. facebook.com/haritamoon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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