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 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에겐 ‘소리 내어 외쳐야만’ 하는 말이다. 성소수자들도 “우리가 여기 있다”(관련기사: “우린 퀴어이고 여기 있다. 익숙해져라” http://ildaro.com/8132)고 외치고 있고, 성폭력 위협에 노출된 여성들도 “우리는 여기 있고 이제 말한다”(관련기사: “우리가 말한다, 이제는 들어라” http://ildaro.com/8150)고 외치고 있다. 장애인들, 이민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토요일에 서울 대학로에 있는 ‘책방이음’에서 <보통이 아닌 날들>(미리내 엮음, 양지연 옮김, 사계절, 2019) 북토크가 진행됐다. 행사는 북트레일러 상영으로 시작됐는데, 영상의 마지막은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문구로 끝났다. 이 책의 저자인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막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보통이 아닌 날들>은 우리에게 아직 낯선 일본 소수민족인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들의 에세이를 ‘가족사진’을 매개로 엮어 낸 책이다. 이번 북토크 행사에는 저자들 중에서 재일조선인 여성단체 <미리내> 대표 황보강자 씨와 <사카이 무지개회> 대표 박리사 씨가 참석했고, 2016년에 발간된 일본어 버전의 편집자인 오카모토 유카 씨, 책의 감수를 맡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조교수가 동석했다.
“‘보통’이라고 상징되는 것들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출판사 측의 설명처럼 북토크 현장도 ‘보통이 아닌 날들’을 살아온 여성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증명’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위안부’ 증언 충격…페미니스트 재일조선인들이 모이다
황보강자 씨는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조직 <미리내>에 대해 소개했다. 28년 째 활동하고 있는 <미리내>는 1991년, 역사적인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씨의 증언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황보강자 씨가 설립한 ‘조선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명칭이 변경된 단체다.
“미리내는 재일조선인 여성단체로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히고 처음 나오셨을 때부터 시작했어요. 1992년 12월에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에 오셨을 땐, 할머니를 간사이 지역(오사카, 교토, 고베 등이 포함)에 초대해서 지역을 돌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을 진행했어요.”
<미리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 사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재일조선인 여성의 삶, 스스로의 문제를 들여다보기로 한 거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제일동포를 호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나, 책에선 필자들의 역사성을 반영하여 ‘재일조선인’이라고 함)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또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공부도 했죠.”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일본 여성들도 있지만, 사실 거기에 우리가 끼어서 활동하긴 어려웠어요. 미국의 페미니즘에서도 흑인 페미니즘 운동이 별도로 나왔던 것처럼, 일본 여성과 우리가 놓여있는 위치가 달랐거든요.”
1993년, 황보강자 대표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는 재일조선인 여성이니까, 큰 희망을 가지면 안 된다. 실망이 크니까 처음부터 포기해라’고 냉정하게 말하시던 어머니,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불가능했지만, 너는 새로운 세대니까 남성을 보좌하는 역할만 하지 말고 자립해서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러니까 일을 가져라’고 독려하던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앨범을 정리하면서 많은 사진을 발견했어요.”
그 시절 재일조선인에게 ‘사진’은 여러 의미를 가진 소중한 매개체였다. 고향 땅을 떠나온 사람들이 고향과 가족과의 끈을 놓지 않고 연락을 이어가고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편지와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여행 등의 모습을 찍은 사진 속엔 행복함이 담겼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 당하는 비참한 삶이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도, 사진의 특별한 의미 중 하나였다.
황보강자 대표는 이런 ‘가족사진’을 가지고 더 많은 재일조선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가족사진을 매개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세대에서 나와 딸의 세대로 이어지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역사를 더듬어 보고 싶었습니다. 마이너리티(비주류)라 불리며 차별 받는 이들의 삶을 지탱해준 동력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렇게 <미리내> 회원들는 가족사진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족사진’을 매개로 마이터리티 여성들이 만나다
“<미리내>에서 가족사진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질문도 했어요. ‘어떤 이유로 이 사진이 존재하게 된건지’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물어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죠.”
이렇게 사진으로 소통하던 여성들은 각자의 가족사진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이니치’ 가족사진전>이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리게 되었고, 2002년 3월엔 한국의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열렸다.
사진 전시를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통해 <미리내>는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의미가 생기게 된 거죠.” 광주비엔날레 땐 우즈베키스탄 동포들의 사진 작업을 한 작가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후 하와이 이민사를 연구하는 故 앨리스 윤최도 만났고, 입양인 작가 미희-나탈리 르무안느의 사진을 접하고 가족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리내>는 재일조선인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차별 받는 여성들과도 교류했고, 피차별부락 여성들과 만나게 되었죠.”
국내에선 생소한 단어인 피차별부락은 ‘현대 일본 사회에 진짜 이런 게 아직까지 남아있다고?’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상하고도 잔인하게 차별을 받는 집단이다. 계급 사회인 전근대 시절의 ‘천민’ 계급을 일컫는데, 가축을 도살하거나 가죽을 만드는 등의 일을 하던 천민들은 메이지유신으로 1871년 ‘해방령’(차별적으로 부르던 호칭을 폐지하고 ‘평민’으로 승격)을 통해 공식적으론 천민 지위에서 벗어났지만 ‘신평민’이라 구분되었고, 그들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도.
“피차별부락은 굉장히 심한 차별을 겪고 있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결혼 전에 상대방이 피차별부락 출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그게 밝혀지면 상대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히죠. ‘부락 피가 흐르는 아이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얼마 전까지 피차별부락 지역에 살고 있으면 취직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에요.”
공통의 사회적 차별의 경험은 여성들을 더 가깝게 했다. 하지만 서로 몰랐던 이야기도 많았던 탓에, 여성 이슈를 주제로 서로 말하고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 현재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같은 경험이 많이 있었어요. 저는 물론 57년생이지만요.(웃음)”
황보강자 대표는 그런 경험이 큰 공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민족 ‘아이누’(현재의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 살던 선주민으로, 1855년 일본과 러시아의 ‘일노통호조약’을 통해 일부가 일본령으로 확정됨) 여성들도 만나게 되었고, 몰랐던 서로의 역사와 교차점도 발견하게 되었다.
“피차별부락 같은 경우엔 원래 오래 전부터 그런 곳들도 있지만, 전쟁 후 빈민가가 되어서 부락이 된 경우도 있는데 거기엔 재일조선인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누’는 원래 일본인이 아니라 전혀 다른 민족이었는데, 일종의 식민 지배를 당한 거죠. 아이누인을 일본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봤고 아이누 민족의 문화도 많이 없앴어요. 또 일제 강점기 땐 강제노동자로 들어온 조선인 남성들이 아이누 여성들과 결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남성들이 해방 후에 여성들을 버리고 조국으로 돌아가 버렸죠.”
서로의 삶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되어 있었다. 몰랐던 서로의 역사를 배우고 삶을 공유함으로써 든든한 연대자가 된 건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국적이 없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고 투표도 못하잖아요. 하지만 다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여성들은 그런 부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차별 없는 일본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 몫을 위해 같이 활동해주었어요. 우리가 바라는 걸 실현해주는 그런 역할을 했죠.”
가족사니까 감추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보통이 아닌 날들>을 감수하고 추천사를 쓴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또한 재일조선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보탰다. “일본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당황했던 순간, 내가 일본인과 다른 한국인이라는 깨달았다”는 말에 저자들도 맞장구치며 “장래에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주로 파친코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재일조선인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무척 제한적이었고, 여성의 경우에는 더더욱 성공 사례나 역할 모델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에선 ‘한국인의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의 이야기가 주로 조명되지만 사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조경희 조교수는 “이 책 속 재일조선인 이야기는 한국에선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기모노를 입고 찍은 사진, 아버지가 (일본)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만이 아니라, 소수자들이 어떻게 차별을 받았으며 그 차별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저한테 딸이 둘 있는데 한글 이름을 쓰거든요.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심한 차별을 받았어요. 한번은 교과서에 독도 문제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멋대로 점령하고 있다, 한국이 나쁘다고 교사가 말한 거죠. 또 그 교사가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이름을 부르면서 제 딸한테만 그냥 ‘너’라고 부르고 이름을 안 불렀어요. 그런 차별이 존재하니까 어머니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셨죠. 그래도 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해야 한다, 어머니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일본에서 일본 사람이 될 수 없는데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사셨거든요. 어머니한테 ‘뭔가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고 하는 박리사 대표는 책을 쓰게 되면서 어머니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책의 다른 저자이자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아라가키 야쓰코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엄마에게 일본인이 되길 강요했던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힘
가족사진 하나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이야기는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삶들의 역사를 담은 책이 되었다. 일본에서 책이 출판된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저자들은 이 책이 담지 못한 이야기가 더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족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는데, 알고 보니 장애인 언니가 죽을 때까지 가족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거였다”는 후기를 접했던 것처럼, 가족사진으로 남지 못한 역사도 있다. 소수자 여성들의 역사 기록은 이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 여성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해 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한국에 찾아올 거라고도 귀띔했다.
<보통이 아닌 날들>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활동을 일본 각 지역 및 전 세계에 있는 마이너러티 여성, 모국을 떠나 이민자가 된 여성들과 교류하며 모색하고 싶다. 세상은 인종, 민족, 젠더라는 관념 하에 여성의 존재를 배제하고 그들의 표현을 부정해 왔다. 이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강력한 힘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힘이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마이너리티 여성들의 교류와 역사 기록의 방법을 인도할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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