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업무 습관을 못 버려서 번아웃됐죠”<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현주: 커피 체인 지점장, 함부르크※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편집자 주
현주 이주 이력서
이주 10년차. 2007~2009년 호주 2년 반 거주 2009년 독일에 워킹홀리데이로 도착 2011년 독일인과 결혼 2013~2017년 독일 <발작> 커피 함부르크 매장 매니저 및 점장으로 근무 2018년 퇴사 후 병가 2019년 현재 출산 준비 중
현주의 이주는 ‘이렇게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저널리즘을 공부했지만 늘 영화를 사랑했던 현주는 영화 배급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3년 가까이 일하면서 현주는 매일 병드는 기분이었다. 영화 수급사 직원으로서 배급사 및 제작사 직원들을 접대하면서 의지에 상관없이 술을 마셔야 했고, 비정규직 동료가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걸 봐야 했고, 초과 근무는 물론 주6일 근무도 일상이었다.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사고 6개월 치 어학원을 등록했다. 이때 도망치듯 호주로 떠난 것이 독일로의 정착으로 이어질지는 꿈에도 모른 채, 현주는 길 위에 섰다.
무작정 떠난 호주, 외로움보단 해방감이 느껴졌다
어학 비자로 호주에 도착한 현주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동트기 전 집을 나서며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생활비는 틈틈이 햄버거 가게 등에서 일하며 충당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갑자기 떠났지만 현주는 그 외로움이 좋았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외로움보단 해방감으로 와 닿았다. 촘촘한 그물망 같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안에서 감정 소모할 일이 전혀 없었다. 1년, 2년이 지나도 그런 삶이 좋았다. 계속 호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그러던 중 호주에서 만난 많은 유럽 친구들이 유럽도 한번 경험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왔다. 유럽을 생각하자 현주의 머릿속에 늘 꿈꿔왔던 영국의 필름 스쿨이 떠올랐다. 한 달간 유럽을 여행하며 그 필름 스쿨을 찾아갔지만, 현주는 규모와 커리큘럼 등 모든 면에서 실망했다. 하지만 유럽을 좀 더 길게 머물며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호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파트너가 독일에 있다는 점도 컸다.
그때 현주는 아껴두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2009년은 독일과 한국 간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으로 독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처음 열린 해였다. 현주는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독일로 떠났다. 1년간 유럽의 많은 도시를 둘러보고 호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었다.
독일 북도시 ‘함부르크’에서의 정착
현주는 독일의 많은 도시 중 북쪽에 위치한 함부르크(Hamburg)에 도착했다. 독일 최대 무역항인 함부르크는 독일인들도 ‘가장 차가운 도시’라 부르는 곳이다. 함부르크에서 지내는 동안 현주는 스산하고 음침한 유럽 기운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다. 공교롭게도 그해 여름은 이상기온으로 추운 날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외롭고 차가워 보였다. 현주는 따뜻하고 밝은 호주에서 지내다 와서 두 나라 분위기가 더 비교됐다고 한다.
하지만 현주는 그리운 호주에서 먼, 차가운 도시 함부르크에 정착하게 된다. 1년이 지나고 파트너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언어가 서툴던 정착 초기엔 일관성 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독일 관료제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결혼 후, 거주 허가 비자를 받기 위해 결혼 증명서 등 수십 장의 문서를 챙겨 관청을 찾았을 때 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당신 독일어 잘 못 하지? 그럼 나가. 난 당신이 들고 온 서류를 읽을 의무가 없어.”
현주는 “그렇게 관청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다른 동네 관청을 찾았을 때는 3분 만에 행정 처리가 끝났다”며, “독일 사회가 외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경험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주의 경험대로 독일에 사는 이주민이라면 대부분 독일 관료제에 대해 끔찍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느 담당 공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진행되는 행정 절차와 소요 시간도 다르다. 무엇보다 공무원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책임 권한을 두고 있어, 정확한 정보나 일관된 규칙이 없다.
현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베를린에서 처음 비자를 연장하러 갔을 때 담당 공무원에게 들은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서류를 제출하고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말을 꺼내자 그가 나에게 한 말,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마. 서류를 보고 질문 사항이 있으면 내가 묻겠어.”
발작 커피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점장이 되다
결혼 이후, 독일어 공부를 이어가며 취업 준비를 하던 현주는 먼저 독일어로 말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이를 위해 함부르크에 있는 글로벌 커피 체인점을 검색해 이력서를 다 보냈지만 ‘저널리즘을 공부한 너의 학력과 기업의 업무가 맞지 않는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현주는 그래도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독일의 커피 체인점인 ‘발작 커피’(Balzac Coffee)에 이력서를 보내면서 편지를 썼다. 나의 학력과 이력이 발작 커피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저 학생처럼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기다린 끝에 한 지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지점장이 이주자인 데다 독일어도 능숙하지 않은 나에게 아르바이트 기회를 준 것은 베트남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 시작하면서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었고, 모르는 게 있으면 일하면서 배우라고 기회를 줬거든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고, 6개월 만에 매니저로 승진할 수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나 일반 직원은 지점장이 고용자(Arbeitgeber)이고, 매니저와 지점장은 본사가 고용주이기 때문에 매니저가 되고 나서는 본사에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계약서도 새로 썼다. 매니저는 매장 전체 매출을 관리하기 때문에 신용등급확인서와 범죄경력증명서도 제출했다.
매니저로 열심히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지점장이 갑자기 일을 관두게 됐고 본사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지점장을 구해서 보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니저였던 현주는 공백이 생긴 지점장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배운 업무수행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부재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 새 직원을 채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직원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바리스타와 관련된 직원 교육’ ‘전날 매출 정산해 본사에 입금’ ‘시스템으로 부족한 재고 주문’ ‘배달 물품 확인’ ‘직원 근무 일정 관리’ ‘신규직원 채용 및 계약서 작성’ ‘분기별 직원 평가’ 등 수많은 지점장의 업무를 현주는 매니저 월급을 받으며 수행했다. 남편을 비롯한 독일 친구들이 현주에게 냉정하게 충고했다.
“현주, 넌 매니저로 계약했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만 대우를 받고 있어.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너의 계약서에 없어. 넌 잘못 일하고 있는 거야.”
현주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일하는 지점에 문제가 생기는 게 싫었다. 마치 지점장이 있는 것처럼 모든 과제를 수행했다. 결과는? 본사에서 이 지점에 지점장이 없다는 걸 까맣게 잊었다. 보통 지점장이 없으면 온갖 불만 사항이 접수되고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달이 지나고서야 본사에서 매니저인 현주에게 연락이 왔다.
“현주 매니저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한다. 본사에서는 임원진 면접을 제안하며, 이후 지점장을 맡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두 달간 당신은 지점장의 업무도 수행했으니 그간의 월급은 지점장 수준으로 추가 지급하겠다.”
이때 현주는 깨달았다. 독일에서는 계약서에 명시되어있는 업무 사항에 대해서만 수행해야 한다는 것과 그 이상의 업무를 수행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한국식 업무수행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지 또한 알게 됐다.
이후 임원진 면접을 통과한 현주는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한 발작 커피 지점에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지점장이 됐다. 한 지점을 이끄는 지점장이자 동시에 직원(매니저 제외)을 채용하는 ‘고용자’가 됐다. 관리자가 되고 나서 현주는 독일 조직 사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위에서 오는 압박이나 스트레스는 없지만 아래로부터의 스트레스가 큰 곳.”
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스트레스
현주는 관리자로 일하면서 본사로부터 업무 압박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업무상 정해진 원칙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현주를 힘들게 한 건 아래로부터의 스트레스였다. 그 스트레스는 그의 내면에 깊이 박혀있는 한국식 문화와 독일 문화 간의 큰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직원들은 손가락에 작은 티눈이 나도 병가를 내고 일주일간 나오지 않았고, 새벽 가게 오픈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갑자기 휴가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병가로 빠진 직원으로 인해 비는 업무 공백은 메우지 않으면 그만이었는데, 현주는 그게 잘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끄는 지점에 무언가 부족함이 생기는 게 싫었다.
“직원들의 업무 공백을 제가 채우려고 하니까 남편을 비롯한 독일 친구들이 충고하더라고요. 그건 너의 일이 아니라고요.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게 있다면 본사에 전달하면 그뿐이라고.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제가 한국 문화에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직원들에게 현주는 ‘고용주’인 지점장이다 보니 사람을 채용하거나 신규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한번은 공대를 졸업한 독일 남성이 직장을 구하기 전에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현주는 그를 채용했지만, 그는 현주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늘 현주를 상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번은 직원 한 명이 커피 원두량을 두 배로 넣고 있는 거예요. 너무 놀라 물었죠. 왜 교육받는 대로 하지 않고 커피를 두 배 넣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 독일 남성 직원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지점장이 독일어가 완벽하지 못해서 잘못 일하고 있다면서요.”
그 독일 남성 직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원칙대로라면 원두량을 두 배 넣는 게 맞다. 현주가 다른 원두 그램 수를 맞춰놓았던 것은 들어가는 물의 양을 1/2만 들어가게 세팅해놓았기 때문이었다. 화가 치솟았지만, 그 독일 직원에게 왜 잘못된 커피 원두량을 직원들에게 넣으라고 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바리스타 자격증도 없는 그는 기다렸다는 듯 커피 관련 책을 펼치며 말했다. 여기를 보면 그렇게 되어있는데, 당신이 제대로 이해 못 한 것 같다고. 그래서 현주는 커피 물이 내려오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이 있으면 여기를 봐. 내가 원두량을 그렇게 조정한 건 물을 반만 세팅해놨기 때문이야.”
이런 일은 한두 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번은 현주에게 한 직원이 자꾸 돈을 훔치는 것 같으니 체크하라고 보챘다. 현주 역시 계산대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걸 알고 있었으나, 해당 직원이 계산을 잘못하고 있는 거라 믿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상황을 알고 있다고 답했더니, 그 독일 남자 직원은 “당신 나라에서 남의 돈을 훔치는 게 어느 정도의 일인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큰 범죄야. 빨리 체크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했다.
현주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 독일 직원이 어떻게든 다른 직원들 앞에서 지점장이 망신당하길 바란다는 것을. 이 문제의 직원은 단 한 번도 현주와 둘이 있을 때 대화를 한 적이 없고, 늘 모든 직원이 함께 있을 때만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 계산이 맞지 않은 건 현주의 짐작대로 한 직원이 돈을 훔친 게 아니라 계산을 잘못한 것으로 밝혀졌고, 현주는 그 독일 남성 직원을 해고했다.
번아웃 증후군…독일에 살면서 한국식으로 일했다
그래도 현주가 5년 가까이 지점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직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물품 주문부터 매출 보고, 인사관리까지 넘쳐나는 현주의 독일어 서류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그래서 일을 그만둔 지금도 이들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남았다.
하지만 현주의 업무 스트레스는 줄지 않았다. 퇴사하기 1년 전쯤부터는 온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병원에서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당장 퇴사할 것을 권했다. 현주는 우선 1년 병가를 냈다. 독일에서는 병가를 낼 때 병명에 대해 말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에, 본사에는 무슨 병으로 인해 병가를 내는지 말하지 않고 진단서만 제출했다.
병가를 낸 후 3개월은 고용주가 월급 100%를 지급했고, 나머지 병가 동안은 의료보험 회사로부터 급여의 70%를 받았다. 1년이 지났지만 현주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퇴사했다. 5년 가까이 일한 발작 커피를 퇴사한 후에는 노동청(Arbeitamt)에서 바로 실업급여(Ạrbeitslosengeld)를 받을 수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현주의 경우, 1년간 월급의 70%를 받았다. 동시에 언어, 직업 교육 등 받고 싶은 교육을 다양하게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발작 커피에서 일할 때 외국인이라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어요. 제가 스스로 몸에 밴 한국식 업무 습관과 방식을 버리지 못해 병이 난 거죠. 너무 다른 독일과 한국 문화 차이를 당시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독일에 살면서 한국식으로 일했던 거죠.”
병가와 퇴사 후 휴식을 취하며 현주의 몸은 많이 회복됐고, 바람대로 임신하게 되었다.
‘무계획’이 나의 계획, 새로운 출발선에서
10년 넘는 현주의 이주 역사를 살펴보면 그는 언제나 ‘무계획’으로 움직였다. 비자 취득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고 원하는 곳으로 떠났다. 처음엔 호주로 떠났지만 독일에 정착하게 됐고, 그저 독일어 향상을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그 가게를 이끄는 지점장이 됐다. 우선 시작하고 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부지런함과 한번 책임지기로 한 일을 끝까지 해내고 마는 근성 때문으로 보인다.
10년 가까이 독일에 살았지만 현주는 “지금도 독일에 사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사실 현주는 어디에서 살아도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학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사람 간에 유지되는 적당한 거리감’이다. 현주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인 셈이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터라 호주의 따스한 햇볕이 그립기도 하고, 독일 아닌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도 현주는 이제 독일에서의 삶이 편하다.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되 누군가 도움을 청했을 때 타인으로서 도와줄 수 있는 선까지만 도와주는 경계가 지켜지는 나라, 현주에게 독일은 그런 곳이다.
현주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에서 정해놓은 규범을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사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 (원하지 않은) 관심과 동시에 질책을 받는지, 그로 인해 얼마만큼 자신을 끝없이 검열하고 의심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스러지는지 나 역시 숱하게 겪고 보았다. 한국에서 전혀 겪지 않았던 무수한 차별이 존재하지만, 반면 합의되지 않은 거리감으로 인해 불편하고 불필요한 질문과 관심에 시달리는 일이 없는 이주민의 일상, 그래서 외국에 살며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차라리 한국보다 편하다는 현주의 말이 일부분 수긍됐다.
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이주 생활을 잘 꾸려온 현주는 출산을 앞두고 새 출발점에 섰다.
“전 일에서 큰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어떤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왔어요. 지금 당장 계획은 없지만 호주와 독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니, 출산 후 다시 주어질 새 일을 잘 해낼 거라 믿어요.”
현주가 사는 함부르크와 내가 사는 베를린에는 10월 중순부터 습한 추위(Das nasskalte Wetter)가 찾아왔다. 한국 겨울과는 반대로 햇볕이 거의 나지 않고 습한 북독일의 겨울을 나는 일은, 매년 힘겹다. 그저 조용히 겨우 내내 피울 마음의 장작을 모을 뿐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주의 순산을 바라며.
[독일의 출산 지원책과 임산부를 대하는 태도]
독일 합계출산율은 최근 4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연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59명으로 2015년보다 7%(1.5명) 증가했다. 출산율은 이주민 증가로 인해 높아졌다. 독일 국적 여성의 출산율은 2015년 1.43에서 2016년 1.46으로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외국인 여성의 출산율은 2015년 1.95에서 2016년 2.28로 증가했다.
출산과 관련한 독일의 대표적인 지원 정책은 총 14개월 동안 출산 직전 월급의 약 65~67% 정도로 지급하는 ‘부모수당’과, 시간제로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며 주 25~30시간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수당 플러스’가 있다. 이와 관련해 독일 역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 비율이 너무 낮아서, 부부나 파트너 중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은 한 명도 2개월은 반드시 써야 하는 규정이 있다.
또 독일 연방 정부는 ‘임산부 지원 전화’(Das Hilfetelefon für Schwangere in Not)를 운영 중이다. 무료 전화인 ‘0800 40 40 020’은 24시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 상담원을 통해 임산부는 익명으로 관련 상담이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주민을 위해 상담 전화는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터키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등 17개 외국어로 제공된다. 임신이나 출산 관련 내용이라면 누구나 상담받을 수 있다. 전화 외에도 홈페이지(geburt-vertraulich.de)에서 1:1 채팅 등을 통해 익명으로 상담받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현주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정책은 ‘예비부모수업’(Der Babyvorbereitungskurs)이다. 산모와 파트너가 함께 듣는 이 수업은 출산 후 여성의 몸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이로 인해 어떤 새로운 관리와 돌봄이 필요한지, 파트너가 해줘야 하는 역할 등에 대해 자세히 배운다.
현주는 출산 후 집에서 조산사(Hebamme)의 도움을 받는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이 경우 ‘예비부모수업’을 매주 약 3시간씩 7회 들으면 의료보험회사에서 100% 비용을 지원한다. 독일에서 ‘조산사’는 전문 직업 교육을 받은 전문직으로, 출산 후 신생아의 건강관리와 산모와 태아 보호를 위해 필요한 여러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고 상담해주는 역할을 한다.(한국에서는 자격증 필요) 의료보험사는 신청자에게 출산 후 3개월까지 조산사 비용을 지원해주며, 조산사가 일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 이내에 한해 원하는 만큼 신청할 수 있다.
한편 현주는 임신 후 임산부를 대하는 한국과 독일의 ‘태도’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먼저 독일 병원이나 출산 관련 모든 기관에서는 임산부를 ‘산모’ 또는 ‘(예비)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따라서 ‘아빠’나 ‘보호자’란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현주의 경우에도 유전적 질병 확인을 할 때만 검사가 필요하므로 병원으로부터 생물학적 아빠가 누군지 질문받았다.
임산부를 ‘환자’처럼 대하지 않는 것도 두 국가의 다른 점이다. 현주는 “임신 후 한국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뭐 하면 안 된다, 뭐 먹으면 안 된다 등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 많았고 권하는 검사와 예방접종도 너무 많았다”며, “독일 병원에서는 좋아하는 음식 많이 먹고 덜 익은 계란 정도 조심하라고 조언하는 것에서 그쳤다”고 말했다.
※ 필자 소개: 채혜원. 독일 베를린 거주. 한국에서 우먼타임스, 여성신문 기자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International Women Space’ 멤버로 활동 중이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유럽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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