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자

내 집 마련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1/28 [14:53]

집을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자

내 집 마련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

박주연 | 입력 : 2020/01/28 [14:53]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가령 나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무주택자’라는 항목에 체크를 해야 할 때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왜 내가 무주택자인가? 의문도 든다. 엄연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집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다니.

 

이렇게 사는 건 불완전한 삶이라는 의미일까? 혹은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살고 있지만 그 열악한 공간은 진정한 집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은근 전달하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집 아님’(비주택) 논의라도 실컷 해볼 텐데, 이 사회가 분명하게 구분하는 건 ‘가진 자와 없는 자’(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이다. 그리고 소유하지 못한 자는 소유하려는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중인 사람, 즉 ‘소유하려는 자’로 인식된다. 이 모든 중심엔 ‘소유’가 있다.

 

이러한 소유 중심의 구분이 정당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려는 사람의 사회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 ‘소유한 사람 vs 소유하려는 사람’이라는 구도는 ‘빌려 쓰는 사람’의 사람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킨다고 지적하며, “이건 부당하지 않은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다.

 

▲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영등포구 청년주택 건립을 둘러싸고 지역주민 반대에 대응했던 활동사진.  ©박주연 기자

 

‘무주택자’가 아닌 ‘빌려쓰는 사람’의 존재를 알리고 ‘빌려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달팽이유니온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빌려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20일 서울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빌려 쓰는 사람들의 공공주택을 향한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내 뒷마당에서는 안 돼. 공익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속한 곳에는 손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일을 반대하는 행동을 뜻함) 실태를 고발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공공주택에 들어오는 ‘청년’은 위험한 사람?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는 여론이 생기면 그 해결책으로 ‘공공주택’이 등장한다. 무섭게 치솟는 집값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청년들을 위한 공공주택/임대주택/청년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발표를 내심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2013년 박근혜 정부도 청년 행복주택을 서울 내 7개 지역구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지역구로 선정된 곳 지역주민들이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극심한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목동의 경우엔 결국 행복주택지구지정이 취소되었다.

 

▲ 지난 20일 서울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빌려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토론회에서 발표 중인 권지웅 민달팽이유니온 이사.     © 일다(박주연 기자)

 

목동 행복주택을 둘러싼 님비 현상을 목격하고 그에 대응하는 활동을 했던 권지웅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고민했던 내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토론회에 갔는데 목동은 이미 (인구가 많아서) 교통체증이 심하고 학교 정원도 초과할 정도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마이크를 뺏고 ‘청년주택에 들어온 청년이 아이들을 해치게 하면 책임질 거냐?’고 말씀하신 분도 있고 ‘솔직하게 집값 올리고 싶은 거 맞다. 그치만 나 때도 (돈 벌기) 힘들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긴 했지만요. 주민들이 정말 교통난이 문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니까 실제로 그게 문제라면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과 적은 주거비로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 중 누구의 욕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긴 했어요.”

 

그런데 그런 고민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작년에 목동 1-3단지 용도 변경이 승인되어서 5,100가구 추가 건축이 가능해졌어요. 재개발 사업성이 높아진 거죠. 2013년 행복주택 때 짓겠다고 한 게 2,800가구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 일에도 반대가 있어야 하는데, 반대가 없어요. 행복주택 땐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주민 안전과 교통난 등을 무시하는, 행복과는 먼 정책’이라며 반대했는데 말이죠. 그럼 그때의 반대는 뭐였을까요?”

 

권지웅 이사는 “행복주택(임대주택)과 재건축주택(분양주택)이 ‘같은 기준’으로 처리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 두 주택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다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니까 “재건축 주택은 되고 행복주택은 안 된다면, 이건 주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님비 현상은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 특정 시민의 주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권지웅 이사의 분석이다.

 

▲ 2019년 12월 23일 진행된 ‘청년공공주택 건축허가서 제출 기자회견’ 모습     ©민달팽이유니온

 

‘상생학사’ 탄생 과정에서 사라진 목소리들

 

특정 시민의 주거권이 침해받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생이 학교 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숙사가 마련되는 건 기본적인 환경 조성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의 기숙사 건립/증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대사업자, 그러니까 소유한 자들이다.

 

2015년 한양대학교에서 기숙사 건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 주변 임대사업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임대사업자분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기숙사 건립을 반대했던 이유는 ‘이미 공실이 많은데 기숙사가 들어서면 임대사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었다.” 권지웅 이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생을 이뤄냈다고 하지만, 결국 그 논의에서 사라지고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청은 기숙사 건립 허가를 계속 보류하다가 2019년 상생학사라는 모델을 만들었어요. 기숙사 대신 원룸을 기숙사로 쓰자는 거죠. 집주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집을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양보’하고, 성동구청과 한양대가 월세를 각각 7만5천원씩 지원하고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보증금 2,900만원을 지원. 학생들은 보증금 100만원과 월세 25만원으로 원룸을 구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분명 성동구청의 노력과 임대사업자, 학교, LH의 협업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이 안에서 ‘빌려 쓰는 사람의 처지는 어디로 갔냐’는 거죠. 한양대학교 원룸촌인 사근동은 원룸으로 쓰이는 특정 규모의 건물 82%가 불법 건축물이에요. 옆집 알람 소리도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 되는 곳들이 허다합니다. 왜 이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요? 성동구청은 무엇을 근거로 기숙사 건축 허가를 반려하고 있는 걸까요?”

 

질문을 던진 권지웅 이사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소유한 자(완성된 상태)의 불안과 소유하려는 자(미완성, 과정상 임시적 상태)의 불안이 다르게 취급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과정에 놓인 사람들의 불안은 당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소유한 자들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생계가 위협받는다는 등)을 더 큰 불안으로 생각하며 해결해야 할 가치가 더 큰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렇듯 ‘소유한 자 vs 소유하려는 자’라는 소유 중심의 프레임에선 소유한 자가 우선시 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소유하려는 자가 아닌 ‘빌려 쓰는 자’의 삶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빌려 쓰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권지웅 이사는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며, 더 나아가 “빌려 쓰는 사람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구성하는 걸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정치적 목소리를 갖는다는 건, 빌려 쓰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권리와 국가, 관계맺음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빌려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토론에 참여한 홍수경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입주 조합원, 권영실 변호사,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왼쪽부터)     ©일다(박주연 기자)

 

그렇다면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현대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이유가 재산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존중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한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정당정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법을 통한 안전망을 만드는 일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공공주택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대한 법적인 대응 방안을 설명했다.

 

“별도의 불허가 사유가 없는 한, 인근 주민의 막연한 우려나 정서 등으로 인한 민원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거부하는 건 위법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는 어렵더라도, 의무를 소홀히 하는 담당 기관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권영실 변호사는 “공정과 정의에 관한 모든 문제를 법으로 접근하긴 어려움이 있다. 법은 최소 조건만 보장하고 그 이상을 규정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송은 현실적으로 오랜 기간과 비용도 소요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법적인 해결보다는 기존의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청년층의 주거에 대한 권리 강조, 문화적 성숙도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하며, 권영실 변호사는 주거권과 관련한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공공주택 님비 현상은 주거권 침해다

 

현재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입주 조합원인 홍수경 씨는 “공공주택에서 살아가면서 내 집 없이 빌려 쓰는 삶도 사서 쓰는 삶만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제 공공주택이 아닌 곳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홍수경 조합원은 “동네가 슬럼화된다, 문란해진다, 교통체증이 발생한다는 등을 이유로 공공주택 반대를 외치는 걸 보면서,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거부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청년도, 빈민도, 장애인도, 탈북민도, 성소수자도, 난민도 또 어떠한 사회적 소수자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때야 지역주민으로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자격 같은 게 생기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전 국민의 꿈이 ‘내 집 마련’인 것처럼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내 집 마련을 응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굳이 내 집을 마련하지 않아도 지역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말로 홍수경 씨는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로 가기 위한 시작점을 짚었다.

 

권지웅 이사는 앞으로 민달팽이유니온이 “님비로 인한 주거권 차별을 금지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은 물론이고, 제도 개선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 님비방지법 제정 논의, 건축허가 심의 기준 개선, 주택 관련 인권침해 민원처리 지침 신설 등 제도적 방법을 고민하며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소유한 사람 vs 소유하려는 사람’의 구도를 깨고 ‘빌려 쓰는 사람을 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오드리 로드(미국의 시인, 흑인 페미니스트,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저자)가 이야기했던 “주인(아버지)의 도구로는 주인(아버지)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정상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려면,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과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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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라 2020/01/31 [22:21] 수정 | 삭제
  • 문제의식이 참 좋네요
  • 풀잎 2020/01/30 [20:26] 수정 | 삭제
  • 어디선가 지금도 자본주의 너머에서 애쓰는 이들의 노고를 새삼 알게된 기사네요 고맙습니다
  • 리턴 2020/01/29 [16:10] 수정 | 삭제
  • 진짜로. 왜 꼭 사야하냐. 집은 많은데 왜 내가 살 곳은 없냐구. 토지개혁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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