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월드’에서 길 잃은 소녀들의 욕구

비어있던 시간에 이름 붙여준 소설/연극 <항구의 사랑>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4/22 [19:40]

‘이성애 월드’에서 길 잃은 소녀들의 욕구

비어있던 시간에 이름 붙여준 소설/연극 <항구의 사랑>

박주연 | 입력 : 2020/04/22 [19:40]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그러게, 그건 다 뭐였을까? 14살의, 17살의 내가 좋아했던 언니들, 아침 등굣길 그들과 수줍게 주고받던 편지들, 모든 사랑 노래가 날 위한 노래 같던 순간들, 친구들과 돌려보던 팬픽들, 때때로 별 이유 없이 어긋나고 흔들리던 감정들. 그리고 상처받고 외로웠던 나.

 

▲ 김세희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민음사, 2019) 표지


지난여름 어느 날 소설 『항구의 사랑』(김세희 작, 민음사)을 단번에 읽어내린 후, 도저히 정의할 수 없었던 나와 너,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이 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올여름을 앞둔 4월의 어느 날 연극 <항구의 사랑>(강윤지 각색, 연출)을 본 후, 밀려드는 기억의 조각조각들이 또 한 번 날 사로잡았을 때 생각했다.

 

이제 그 ‘소녀’들의 욕구와 사랑을 제대로 호명할 필요가 있다고.

 

이름 없는, ‘소녀’들의 욕망

 

연극 <항구의 사랑>은 2007년, 대학생인 준희(백혜경 역)가 학창시절 친구 인희(강다현 역)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준희는 딱히 인희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갑자기 ‘너희 학교 앞’이라며 연락하고 나타난 인희를 불편하게 여긴다. 이제 6cm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자신과 달리 고등학교 시절과 변하지 않은, 짧은 머리에 흘러내리는 힙합 바지에 워커를 신은 인희의 모습을 철없다 여기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의 인희와 대화하면서, 준희는 인희와 선 긋기라도 하려는 듯 달라진 자신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과거의 이야기를 끌고 오는 인희를 밀어내던 준희는 인희가 건넨 마지막 한마디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라는 물음에 ‘그땐 다 미쳤었어.”라고 답한다.

 

▲ 김세희 원작, 강윤지 각색/연출, 극단 Y 제작. 연극 <항구의 사랑> 중 준희와 인희.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은 2002년의 고등학생 준희는 친구 규인(박소진 역)과 함께 팬픽을 공유하고 학교의 유명 커플에 관한 소문을 나눈다. 같이 누워 서로 바라보고 뒹굴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때때로 누군가를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찰떡같아 보이던 그들의 관계가 흔들리는 건 민선 선배(강서희 역)가 등장하면서다. 준희의 시선을 사로잡은 민선 선배는 준희에게 ‘토끼’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준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준희는 혼란스럽다. 자신의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민선과의 관계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인희처럼 유별나게 ‘남자애 같고, 티 나는’ 사람과는 멀리하고 싶은 마음까지 뒤섞여 버렸으니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 준희, 인희, 규인, 민선. 네 명의 ‘소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욕구와 마주했다가 상처받고 달아난다. 정말 그건 뭐였을까? 한때 지나가는 열병 같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 않은 그 감정은 어떤 이름과도 들어맞지 않은 이상한 욕구였을까?

 

여자애라서, 소녀라서, 여학생이라서…

 

대학생이 아니라 ‘여대생’이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도 준희처럼 하이힐을 신고 휘청거렸고 이제 ‘여자’가 되었으니 살도 빼고 화장도 해야 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남자친구와의 섹스 경험을 고백할 땐,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사회가 말하는 이상적 여성이 되기 위해 내 몸에 맞지 않는 박스에 몸을 구겨 넣었다.

 

때때로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욕구는 이름도 없이 덮어졌던 탓에 좀처럼 다시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드러낼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소녀’ 시절에만 머물러야 했으니까. 결국 한참 길을 돌고 돌아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난 그 욕구에 이름을 찾아줄 수 있었다.

 

▲ 연극 <항구의 사랑> 중 규인과 준희.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여성들 간의, 동성 간의 끌림은 언제나 ‘소녀스러운 일’로 치부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여성’이 되려면 그런 감정에 휩싸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자애들끼리는 그럴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감정이니까.

 

심지어 그 끌림은 남성들 간의 의리나 우정 같은 것으로도 포장되지도 않는다. ‘우정도 사랑도 아닌’ 이상하고도 모호한 감정, ‘소녀’라는 유예된 어떤 단계로 설명될 뿐이다.

 

이런 취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학연구자 박차민정은 책 『원본 없는 판타지』(오혜진 기획, 후마니타스, 2020년)에서 식민지 말기 시대 여성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여학생 집단에서의 “동성연애”는 꽤 흔했던 일이었음에도 특별히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성애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였을 뿐이다.

 

“현루영은 「여성과 동성연애 문제」라는 글에서, ‘동성연애’는 오히려 성적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사춘기에 여학생들을 이성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줌으로써 순결을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여학생들의 ‘동성연애’는 어디까지나 이성애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하고, 다만 이 단계에 고착될 위험 역시 있기 때문에 여학생을 지도하는 부모와 교사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박차민정, ‘친밀성과 범죄, 그리고 병리학’, 『원본 없는 판타지』 중에서

 

이렇게 여성들의 끌림을 ‘온전하지 않고, 완성될 수 없는 감정’으로 보는 건 준희의 시대에도, ‘걸크러쉬’ 용어가 난무하는 2020년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고 기사: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다 ‘걸크러쉬’야? http://ildaro.com/8527)

 

보이시하다는 게 뭘까

 

거기다 여성 간의 끌림 사이에 ‘보이시(boyish)한 소녀’까지 등장하면 그에 관한 오해와 편견은 한층 더 강해진다.

 

<항구의 사랑>의 인희만 봐도 그렇다. 보통의 ‘소녀스러움’에서 벗어난 그의 모습은 또래 집단에서 껄끄러운 존재로 취급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남자가 되지 못한 미완의 존재’ 혹은 ‘남자가 되고픈 존재’로 늘 의심받는다. 대학생이 된 준희가 인희를 성장하지 못한 존재로 여기며 부끄러워하고 그와 한 부류로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보이시한 여성이 일종의 남성으로 취급될 때가 있다. 바로 그를 향한 다른 여성들의 끌림을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적 욕망으로 해석해야 할 때다. ‘여성은 남성을 좋아한다’는 대전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되니까.

 

도대체 그 남성이라는 게 뭐길래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회가 요구하고 규정한 성별 이분법 속에서 인희 같은 인물들의 욕구는 멋대로 재단되고 또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항구의 사랑>에서 인희의 몸(가슴)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인희 본인이 아니라 그걸 본 준희였다. 우린 사실 인희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쉽게 인희를 ‘남자를 흉내 내던 소녀’로 여긴다. 머리가 짧아서?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녀서? 남자 아이돌 춤을 춰서?

 

인희에게 ‘어떤 모습일 때 행복한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또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지’ 질문을 던진 적도 없으면서 그냥 ‘보이시함’으로 퉁 치는 건, 이 ‘소녀’들의 욕구를 제대로 호명해선 안 된다는 의도가 숨겨진 게 아닐까.

 

그 ‘소녀’들이 지금 여기 있다

 

책 <항구의 사랑> 마지막엔 “(자신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을 소설로 썼다는 김세희 작가의 말이 있다.

 

▲ 연극 <항구의 사랑> 중 준희와 민선.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나 때는 말야, 운동화 신고 체육복 위에 교복 치마를 입고 팬픽 썼다’며 그 ‘한 때의 일’을 떠올리자는 게 아니라, 연극 속 규인이 “그때 그 시절 네 마음, 내가 알아. 내가 봤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린 분명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를 목격한 일이 있고, 사실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이기도 했다는 것. 그걸 기억하고 그 의미를 찾자는 거다.

 

우리에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다움을 잃지 않고 나를 사랑하려는 욕구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대상이더라도 그를 향해 달려가는 사랑의 욕구가 있었다. ‘소녀’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정상성’을 강요하는 ‘이성애 월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희미해져 가거나 삭제를 요구받을 뿐이다.

 

연극 <항구의 사랑>은 준희가 그토록 자신과 분리하고자 했던 인희에게 편지를 쓰며 끝난다. 편지에서 준희가 하는 말은 인희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많은 ‘소녀’들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준희, 민선, 인희, 규인. 그 ‘소녀’들을 다시 목격했다. 그들이 여전히 여기 있다는 것도.

 

-연극 <항구의 사랑>은 서울 신촌극장에서 4월 25일(토)까지 공연하며 자세한 내용은 신촌극장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theatresinchon 트위터 @theatre_sin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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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오 2020/04/29 [14:20] 수정 | 삭제
  • 아이고 놓쳤다~ 또 해주세요 공연
  • R 2020/04/24 [09:12] 수정 | 삭제
  • 와. 항구의 사랑이 연극으로도 나왔구나. 연극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이야기!
  • 지아 2020/04/23 [20:19] 수정 | 삭제
  •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났어요. 공연은 못보겠지만 책은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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