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정의 없인 자긍심도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의 메시지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6/10 [12:37]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정의 없인 자긍심도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의 메시지

박주연 | 입력 : 2020/06/10 [12:37]

6월은 퀴어대명절이라고 불리는 ‘퀴어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열리는 일명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다. 보통 때라면 각국에서 퀴어 인권 행사들이 열리고 특히 퍼레이드 소식으로 들뜰 때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하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자긍심의 달 관련 행사와 퍼레이드가 쉬는 걸로 결정되거나 연기되었다. 온라인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 곳들도 있다.

 

그리고,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금 자긍심을 축하하기보다는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대낮에 아무런 이유 없이 백인 남성 경찰에 의해 목을 눌려 살해당한 사건을 기점으로 인종차별(Racism)과 반흑(Anti-Blackness) 정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퀴어 인권단체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자긍심의 달 축하 메시지 대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 연대하며 ‘정의 없인 자긍심도 없다’(No Justice No Pride)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   ©Netflix

 

이런 시기이다 보니 미국 퀴어 인권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인, 흑인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 마샤 P. 존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The Death and Life of Marsha P. Johnson, 데이비드 프랑스 감독, 2017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마샤 P. 존슨이 퀴어 커뮤니티에 남긴 것

 

1992년 7월 6일, 만 46세의 나이로 사망한 마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 없이 자살로 결론 냈다. 영화는 25년이 지난 후, 마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혼자 조사에 나선 성폭력 생존자이자 반성폭력 운동가인 트랜스젠더 여성 빅토리아 크루즈를 좇는다. 그러면서 마샤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를 흑인이자 트랜스여성, 성판매여성, 그리고 인권운동가로 살았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명한다.

 

또한 미국 경찰과 사회가 마샤의 죽음을 방치한 것이나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마샤와 그의 친구들을 주변부로 밀어내려 했던 것이 인종차별, 계급차별, 트랜스젠더 차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마샤 P. 존슨은 현대 미국 퀴어운동의 주요 기점이 된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이 시작된 현장에 있던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게이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 모여 있던 퀴어들은 그동안 반복되어 온 경찰의 폭력적인 불시 단속에 반발했다. 경찰에 맞선 그들의 행동은, 차별과 혐오에 지친 퀴어들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인 스톤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샤는 그 역사를 만든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마샤와 그의 친구 실비아 리베라(Sylvia Rivera, 1951-2002. 라틴계 비백인이며 마샤와 함께 트랜스젠더 운동사의 주요 인물)를 비롯한 비백인 드랙퀸/트랜스베스타잇(당시 용어와 달리 현재는 주로 트랜스젠더로 해석된다)들의 역할은 스톤월 항쟁 이후 탄력을 받은 백인 동성애자 중심의 ‘게이 해방운동’(Gay Liberation Movement) 속에서 흐릿해진다.

 

▲ 1973년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 행진’에서 실비아 리베라가 연설하는 장면   ©Netflix


1973년, 지금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 행진’(Christopher Street Liberation Day Rally)에서도 드랙퀸들이 제일 뒤로 밀려났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드랙퀸들의 모습이 너무 ‘유별’나서 부끄럽다며 행진 앞에 서는 걸 반대한 탓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실비아 리베라의 연설은 그런 상황을 정확하게 비판한다.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오른 그는 자신도 게이 해방운동에 힘써왔지만, 지금 게이 해방운동이 중산층 백인 동성애자 중심으로, 그들의 목소리만을 반영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난 오늘 하루 종일 여기 올라오려고 애썼어요. 감옥에 있는 당신의 동성애자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요. 그들은 매주 내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구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중략) 당신들은 나한테 숨어라,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죠. 난 더 이상 못 참아요. 전 맞아봤고, 코도 부러져봤고, 감옥에도 가 봤고, 직업도 잃어봤고, 집도 잃어봤어요. 게이 해방운동을 위해서요! 근데 절 이렇게 취급할 수 있죠? 당신들 대체 왜 그래요?”

 

당시의 게이 해방운동이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소수 집단을 배제했던 문제는 지금과도 완전히 무관하진 않다. 2015년에 개봉한, 스톤월 항쟁을 담은 영화 <스톤월>(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주요 배역들을 백인으로 구성해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미디어, 특히 영화/TV에서 비백인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일, 혹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면서 사실과 상관없이 백인을 중심에 두는 일)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마샤 또한 당시 게이 해방운동을 이끌었던 ‘게이해방전선’(Gay Liberation Front)에 합류해 활동했지만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주에도 게이 활동가 모임에 갔는데 남성 동성애자들은 한 명도 나한테 와서 인사를 안 하더라. 인사하더라도 인사‘만’ 하고 급하게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 1973년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 행진’에서 마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   ©Netflix


마샤는 1970년 실비아와 함께 ‘거리 트랜스베스타잇 행동 혁명가들’(STAR: Street Transvestite Action Revolutionaries)을 설립한다. 비백인 게이, 드랙퀸, 트랜스베스타잇 그리고 홈리스 퀴어 청소년과 퀴어 성노동자들을 위해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 쉼터를 만들어 운영했고, 감옥에 갇힌 드랙퀸/트랜스베스타잇을 구명하는 일을 했다. 마샤는 본인 또한 집이 없는 상태로 전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STAR를 이끌며 많은 이들을 위해 애썼다.

 

하지만 STAR는 오래 가진 못했다. 1973년 행진에서의 일 이후, 실비아는 게이 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그만뒀고 뉴욕을 떠났다. 길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STAR는 당시 주류 게이 인권운동이 보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거리의 비백인 퀴어들, 청소년들, 젠더규범에 어긋난 드랙퀸과 트랜스베스타잇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활동은 이후 트랜스젠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비백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죽음

 

영화는 마샤의 업적을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당시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여 주는 한편, 반성폭력 운동가인 빅토리아 크루즈를 통해 마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마샤의 죽음이 타살일 수도 있다는 증거들이 분명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하지만 죽은 자(마샤)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자(경찰)들은 침묵한다.

 

▲ 마샤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고자 고군분투하는 빅토리아 크루즈의 모습  ©Netflix

 

그리고 영화엔 또 다른 죽음이 등장한다. 2013년 8월 뉴욕 할렘 거리에서 제임스 딕슨이라는 남성에게 두들겨 맞아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5일 만에 사망한 트랜스젠더 여성 이슬런 네틀스의 죽음이다. 가해자는 이슬런이 ‘일반 여성’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트랜스 여성인 걸 알게 되자 ‘속았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때렸다고 증언했다.

 

이슬런의 가족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가해자가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로 일반 살인범보다 높은 형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가해자는 ‘패닉 방어’(Panic Defense)를 통해 혐오범죄에서 벗어나며 결국 예상보다 낮은 12년형을 선고 받았다.

 

1992년 마샤의 죽음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자살로 종결되었고, 2013년 이슬란의 죽음은 ‘내가 널 때리거나 죽인 건 네가 트랜스/퀴어인 걸 알게 되어 놀랐고 무서워서’라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패닉 방어)로 덮였다. 여전히 미국은 50개 주 중 오직 10개 주만이 가해자가 ‘패닉 방어’를 핑계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영화가 1992년 마샤의 죽음 이후 20년 뒤인 2013년에 죽은 이슬런 네틀스 사건(영화 속에서 현재인 2016년에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다루는 이유는 단지 마샤와 이슬런이 ‘흑인’ 그리고 ‘트랜스여성’이기 때문은 아니다. ‘흑인 트랜스여성’의 죽음이 여전히 사회에서 방치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방치되고 있다는 건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29명, 2018년 26명, 2019년 26명, 2020년에도 벌써 12명의 트랜스젠더가 살해당했다. 공식 집계된 통계만으로도 그렇다. 그 중 대부분이 비백인이며 트랜스젠더 여성인데, 특히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의 비율이 높다. 미국에서 ‘일반인’들이 살인 사건으로 죽는 경우가 1년에 19,000명 중 1명 정도라면 흑인 트랜스여성의 경우엔 1년에 2,600명 중 1명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영화에는 빅토리아와 그의 친구가 이슬런 사건 재판정에서 만나 “예전엔 이런 죽음들이 더 많았잖아. 지금은 언론이 취재라도 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 미국 HRC에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3명 중 1명이 빈곤 상태이며 흑인 트렌스젠더의 41%가 홈리스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인 평균의 5배이다.   ©Human Rights Commission


흑인 트랜스 여성의 경우, 인종차별과 트랜스젠더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탓에 직장을 구하기 더 어렵고, 가족에게 내쳐지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경제적인 위치가 취약하며 폭력적인 상황을 쉽게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슬런처럼 직장에 다니고 있고 자신을 지지하는 가족이 있는 이도 차별과 혐오범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죽음, 이 죽음을 둘러싼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슬런의 사건에 연대하는 활동가가 그의 죽음에 관심을 표하지 않는 퀴어 커뮤니티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 재판정은 사람들이 꽉 차야 한다구요. 다들 동성결혼은 지지했잖아요. 이 거리에서도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행진을 했잖아요. 그런데 (시스젠더, 백인)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동성결혼까지만 챙기곤 다 가버렸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그냥 두고 말이에요. LGBT라더니 T(트랜스젠더)는 어디로 간거죠?”

 

영화가 공개된 2017년 이후 3년이 지난 2020년은 어떤가? 그 죽음들은 멈췄나? 미국에서 다시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촉발시킨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5월 27일에도 흑인 트랜스젠더 남성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 마샤 P. 존슨 연구소 홈페이지 사진. 우리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 연대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을 고민할 수 있다.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할 수도 있고, 관련 단체를 후원할 수도 있다. 한국 내의 흑인과 연대자들이 한글로도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고, 유튜브에서도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스톤월 항쟁은 스톤월 ‘폭동’(Riot)으로도 불린다. 아예 당당하게 그렇게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항쟁 혹은 저항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만, 유리창을 깨고 경찰차를 부쉈고 불을 지른 ‘폭동’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어떨까? 우리는 표면적 행위에 주목하는가,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과정에 주목하는가.

 

흑인 부치 레즈비언 스토르메 딜라비에도 기억하자

 

“스톤월은 저항이었다. 항쟁이었다. 불복종이었다. 폭동이 아니었다”는 말을 남긴 스토르메 딜라비에(Stormé DeLarverie)는 스톤월 항쟁이 시작되던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현장에서 처음으로 경찰에게 주먹을 날린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경찰과 대적한 부치 레즈비언 중 하나로도 언급된다. 드랙킹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평소에도 양복 등의 남성복을 자주 입었다고 한다. 스톤월 이후엔 ‘게이 해방운동’에 참여해 다양한 활동을 지속했다. 뉴욕의 레즈비언 술집/클럽의 가드로 오래 활동한 탓에 ‘레즈비언 수호자’라 불리기도 한 그는 2014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스톤월 항쟁에서 경찰과 대적한 흑인(a African American Mother and a White Father) 부치 레즈비언(a butch lesbian) 스토르메 딜라비에(Stormé DeLarverie, 1920-2014)  © The Peace Museum

 

※ 참고자료

-‘Rapping with a Street Transvestite Revolutionary - an interview with Marsha P. Johnson’, <Street Transvestite Action Revolutionaries: Survival, Revolt, and Queer Antagonist Struggle>, UNTORELLI PRESS

-Black Trans Women Are Being Killed. Could Paying Them Help Stop This? (yes! Magazine 2019년 11월 12일자)

-HRC 연간자료 Violence Against the Transgender and Gender Non-Conforming Community in 2020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루인, ‘피해자 유발론과 게이/트랜스 패닉 방어’,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루인 외 지음, 권김현영 엮음, 교양인, 2018) 중에서 

-책 <트랜스젠더의 역사>(수잔 스트라이커 지음, 제이·루인 번역, 이매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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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yuter5768 2020/06/16 [23:17] 수정 | 삭제
  •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파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또 먹먹해졌습니다. 혐오로 죽임을 당하고 혐오로 잊혀져간 목소리들이 있었음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며 함께 우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 아픔을 나누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더 평등해지길 바라며 마음을 모으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과거의 사람들도 현재의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사람들과도.. 그게 연대감이겠죠.
  • 사미 2020/06/15 [20:42] 수정 | 삭제
  • 글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인권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게되었어요. 미국에서 백인 중심의 퀴어운동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힌 비백인 트랜스젠더들의 삶이 왠지 요즘시사하는 바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같은 소수자성을 공유하면서도 누군가는 같은 방식으로 배제되고.. 패닉방어라는 정당방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법이 누구의 편에 서서 만들어지는지, 안타깝고 슬퍼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독자 2020/06/10 [15:51] 수정 | 삭제
  • 혐오를 거두라! 정의 없이 프라이드도 없다는 외침에 동참합니다!
  • 퀴어 2020/06/10 [13:57] 수정 | 삭제
  •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파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또 먹먹해졌습니다. 혐오로 죽임을 당하고 혐오로 잊혀져간 목소리들이 있었음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며 함께 우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 아픔을 나누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더 평등해지길 바라며 마음을 모으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과거의 사람들도 현재의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사람들과도.. 그게 연대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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