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에서 ‘안전’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교육” 국제심포지엄 열려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7/14 [11:23]

디지털 플랫폼에서 ‘안전’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교육” 국제심포지엄 열려

박주연 | 입력 : 2020/07/14 [11:23]

6일 사법부가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였던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후, 국내외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법부도_공범이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번 판결을 진행한 강영수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국민청원 서명이 44만명을 돌파했고, 사회 각계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외침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사실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할 때다. 여전히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법부와 검경찰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고, 미성년자 성착취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져야 하며, 터무니 없이 낮은 처벌 형량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교육’이다.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성교육이 학부모들로부터 ‘문제적’이라고 지적받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이 많아지는 이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주최로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교육”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 7월 8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교육” 온라인 국제심포지엄 웹자보

 

PC통신 시절부터 ‘여성혐오’ 일상화, 디지털 성범죄의 토양

 

지금 청소년 세대를 디지털 문화에 매우 친근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칭한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 세대가 “다양한 미디어를 동시에 활용하며 미디어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도 개입하는 주체”이면서 한편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이나 정체성을 좀 더 극화하여 지각하고 동조하는 집단 극화 현상”을 띄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투브와 같은 추천 알고리즘 기반의 플랫폼을 이용하다 보니, 자신이 이미 동의하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됨으로써 취향과 정치적 성향이 강화된다”는 것.

 

때문에 김수아 교수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동 또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며 반(反)페미니즘 정서가 중요한 문화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PC 통신 초기(1990년대)부터 여성 이용자에 대해 언어 성희롱을 하고 배척했던 역사가 있으며, 군가산점 제도 위헌 판결(1999년)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혐오 표현이 일상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여성들은 이 남성들의 성희롱과 여성혐오적 표현을 피해 회원제를 통해 ‘안전한 공간’을 구축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히려 오픈된 온라인 공간은 남성 다수의 공간처럼 보이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남성 중심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혐오’ 정서가 유머로 소비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발표자료 중.


“디씨인사이드(국내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아침에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라’는 안부인사를 하는 글에 전혀 상관 없는 여성의 사진을 올리는 일들이 있었다. 여성의 비키니 사진 등 신체가 드러나는 사진을 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여성 신체를 대상화하는 문화가 생긴 거다.”

 

‘여성신체 이미지’ 주고받는 남성문화, 성폭력에 둔감

 

요즘 흔히 말하는 밈(Meme, 인터넷에 부유하는 유머러스한 사진이나 영상) 문화까지 가세하여 “밈이 차별, 비하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밈’이기 때문에 비판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김수아 교수는 “이로 인해 안티-페미니즘과 여성혐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각들이 익숙해지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란물을 ‘짤방’으로 소비하고 여성혐오를 ‘밈’으로 소비하며 같이 공유하고 ‘즐기는’ 남성들의 문화가 디지털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문화적 배경이 되어왔다”는 분석이다.

 

이런 남성문화가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과 만나 ‘단톡방 성희롱’, ‘n번방’, ‘웰컴투비디오’ 등을 만들었다는 것. 앞으로의 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교육이 시급하고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김수아 교수는 이러한 “온라인의 특성을 인식하도록 하고,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안전’을 논의하는 디지털 리터러시(독해) 교육”이 필요하며, “남성과 여성을 각각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으로 구분해 온 젠더/섹슈얼리티 규범을 해체하도록 독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격자(이미지 수신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드설 커스틴 하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사회학과 연구원은 디지털성범죄 예방을 위해선 특히 “’목격자(이미지 수신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그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 7월 8일 한국양성평등진흥원이 주최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교육” 온라인 국제심포지엄에서, 시드설 커스틴 하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사회학과 연구원의 발표 자료 중.


하더 연구원은 “디지털성범죄에선 주론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가 있지만, 그 둘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이미지를 수신 받는 사람들 혹은 그걸 목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산자와 피해자, 그리고 피해영상/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유포받은 수신자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수신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고, 그들은 복잡한 입장에 놓여 있으며, 각 사건에서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2017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2개월 이내에 타인의 허락 없이 전송된 그 타인의 나체 혹은 속옷만 입은 이미지나 영상을 수신한 적이 있냐’는 문항이 있었는데, ‘있다’고 답한 청소년 중에서 5명 중 1명 꼴로 수신 받은 이미지를 ‘다른 누군가에게 보냈다’고 답했다 한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지 수신자가 다시 공유자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하더 연구원은 이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선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모르는 척하려는 청소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상담전화, 경찰 등에 신고하는 방법을 알리는 교육, 피해자의 연대자/지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때론 “비동의 이미지를 ‘지우고 무시하기’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건 유포자/공유자가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대응하는 방법이다.”

 

시드설 커스틴 하더 연구원은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하는 행동을 ‘일반적인 행동’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특히 “‘남자애들은 다 그래’ 라는 식의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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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7/15 [12:08] 수정 | 삭제
  • 디씨의 폐해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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