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사진 촬영도 피했던 내가 관객 앞에 섰다!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④ 아픈 사람의 책임

나드 | 기사입력 2020/07/23 [14:33]

20년간 사진 촬영도 피했던 내가 관객 앞에 섰다!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④ 아픈 사람의 책임

나드 | 입력 : 2020/07/23 [14:33]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아픈 사람들의 책임은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붉은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별표를 그렸다. 2년 전쯤 읽었던 <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 씀, 메이 번역, 봄날의 책, 2017)를 다시 펼쳤는데 ‘아픈 사람의 책임’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박혔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고 건강을 돌보는 절대적인 책임 외에 다른 책임에서 자연스럽게 면제된다. 그래서 다른 책임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오랜 시간의 질병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책임감은 마음에 균열을 냈고, 주저하던 내 등을 떠밀었다.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그동안 썼던 글들을 뒤적였다. 그중 두 개의 글을 고르고 [아픈 몸들의 질병 사사로 만들어지는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리허설. ‘사이’라는 음악에 맞춰 헤엄치듯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사진: 김덕중


모자를 벗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내가 낭독극 지원을 주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대에 서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나는 무엇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방송반 활동을 하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책상다리에 걸려 넘어져 턱을 다쳐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스물여섯에 재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손상된 턱관절에 염증이 심해지면서 턱뼈가 녹아내렸다. 아래턱뼈는 뒤로 밀려들어갔고, 위턱뼈는 위로 들렸다. 턱뼈에 연결된 치아는 교합이 완전히 어긋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어졌다. 모자를 눌러써서 내 얼굴과 시야를 가렸다.

 

세번째 수술을 받아서 회복되던 중에 갑자기 전신의 근육경련과 경직이 시작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고 단단한 끈처럼 연결된 근육이 사방에서 잡아당겼다. 조금씩 회복되던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몸이 굳어지면서 얼굴에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의 정도와 방향에 따라 얼굴 근육은 급격히 수축되고 변형되었다.

 

수술 후 잠시 벗었던 모자를 다시 눌러 썼다. 이후 오랜 기간 재활에 몰두했지만, 자궁과 난소의 질환까지 겹쳐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노력만큼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육체의 아픔만큼 마음의 벽도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낭독극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문자와 메일을 받은 순간에도, 귀찮음과 두려움의 감정이 설레임을 압도했다. 내 몸이 언제 통증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데 매주 연습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얼굴 근육이 갑자기 수축되면 숨쉬기도 힘들어지는데 괜히 시작한 일이 아닐까? 이십 년 가까이 사진 찍는 것도 피했는데, 모자를 벗고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 연극연습 중, 세번째 수술 후 근육경련이 일어났던 기억속으로 들어가자 눈물이 쏟아졌다.   ©다른몸들


단절된 길 끝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낭독극이니까 내가 쓴 글에 낭랑한 목소리와 좋은 발음만 필요한 줄 알고 참여했던 내 예측은 첫날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빠빠(연출가)가 여러 음악을 틀며 몸을 마음껏 움직여 보라고 이야기하자, 모두의 얼굴엔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스트레칭하듯이 몸을 펼치기도 하고 걸음을 걸으며 팔을 펄럭이기도 하면서 굳어있던 몸을 이완시켰다. 공간에 음악과 나만 존재한다는 상상을 하며 내 감정과 근육과 움직임에 집중했다. 몸을 옭아매던 족쇄가 서서히 느슨해졌다.

 

그리고 소리를 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 안의 소리가 나를 이끌어가게 하라는 빠빠의 말이 처음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소리는 몸보다 더 많이 갇혀있었다. 듣기 좋은 소리라고 받아들여지는 일정 범위 이상의 소리는 불편하다는 편견이 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통곡을 하고 고함도 지르면서 슬픈 감정에 휩싸이다가, 다른 이의 후련한 외침에 덩달아 가슴이 시원해지기도 했다.

 

매주의 연습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첫날은 다른 사람이 고른 ‘현재’와 ‘미래’ 두 장의 감정 카드를 나머지 참여자들이 연기했다. 닫힌 문 카드를 고른 타인의 답답함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기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돈이 흩날리는 카드를 골랐다는 이야기에 로또 당첨되는 상황을 연기하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다른 날에는 서로의 인생 그래프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슬픔의 순간으로 잠시 접속했다.

 

비난하는 사람과 변명하는 사람이 되어 역할극을 하는 시간은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비난하는 역할을 맡고 머뭇거리다, 여러 의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진을 했던 의사, 내 얼굴을 물건 취급하던 의사, 환자의 아픔에 아랑곳하지 않던 의사…. 입을 열어 비난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아파서, 약자라서, 소용없어서 내뱉지 못한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괜찮지 않아도, 살기 위해서 다른 일이 더 급했으므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시간. 오래 지나 이제 괜찮아졌다고 믿었던 시간. 비난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어가자 가슴 속에 쌓여있던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이 터졌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괜찮은 것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존재했다.

 

모두 다른 질병을 가진 여섯 명은 놀이처럼, 연극처럼 연습하며 목소리도 몸짓도 서서히 자연스러워졌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함께하면서 점점 친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서로의 아픔을 솔직하게 나누면서 빛깔이 다른 아픔들에 귀 기울였다. 조현병, 크론병, 난소낭종, 디스토니아, 유방암을 겪어내는 삶들은 나와 다르면서도 또 많이 닮아있었다.

 

▲ 연습 첫날, 나는 미래에 원하는 카드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열기구 사진을 골랐다.  (사진 출처: pixabay)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첫날 내가 고른 두 장의 현재와 미래의 카드처럼 내게 둘 사이의 간극은 늘 아득했다. 한 귀퉁이에 놓인 빈 의자처럼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하늘의 열기구처럼 바람을 타고 날기를 갈구했다. 질병은 이십년 동안 내 길을 가로막았고, 내가 기대했던 모든 길은 끊겼다. 그 단절된 길 끝에서 오래도록 멈춰있다가 글을 쓰면서 세상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이 징검다리가 되어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픔 창고의 빗장이 열리다

 

돌이켜보면 질병은 원하던 길을 가로막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아직도 막혀버린 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지 못했고 새길이 내가 원하던 미래와는 다른 것이라도, 끓긴 게 아니라 다른 길이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걸 내 걸음이 이미 증명하고 있었다.

 

‘내게 허락된 상황을 충만하게 경험하고 목격하고 표현하면서 한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두려워하던 순간들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대에 서는 건 여전히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조금씩 두근거렸다.

 

고통을 글로 쓰는 것이 엉켜있던 아픔을 가지런하게 하는 일이었다면, 소리 내고 몸을 움직여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의식하지 못했던 ‘아픔 창고’의 빗장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지나간 기억속으로 들어가 나를 표현하다 보면, 둑이 무너진 것처럼 슬픔과 서러움의 감정이 쏟아져 나와 당황하기도 했다. 괜찮아졌다고 여겼던 일들이, 별거 아니라고 외면했던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휘저어놓기도 했다. 함께하는 이들의 고여있던 슬픔이 터져나오는 순간에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같이 흐느꼈다. 아픔은 터져나왔고, 스며들었고, 연결되었다.

 

고통을 목격하고 표현하는, 아픈 사람의 책임은 나와 타인을 함께 확장시켰다. 가장 익숙한 경험을 통해서 생소하고 낯선 세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유예되었던 책임을 다할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우리는 함께 서로의 아픔을 목격하고 나누고 표현할 것이고, 그만큼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당신이 우리의 삶이 담긴 연극을 관람함으로써, 진실한 목격자가 되어 새로운 여정을 함께 완성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필자 소개: 나드.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스물여섯에 특별한 백수가 되었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유학 가고 싶다는 계획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성실한 환자가 되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가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다섯 번의 수술을 받고 나니 이제 고통이 친구 같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늘 있지만,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제대로 아프고, 정확하게 슬퍼하고, 넉넉하게 감사하고, 빠짐없이 감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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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 2023/04/13 [22:07] 수정 | 삭제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제목처럼 저도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햇살 2020/08/01 [00:05] 수정 | 삭제
  • 나드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아픈 몸을 살며 주체적으로 대하려는 단단한 태도와 긍정적 마인드, 깊이 보는 통찰력...제 블러그에 공유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읽을게요
  • soo 2020/07/25 [17:19] 수정 | 삭제
  • 연출자분이 보통분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분들도 너무 대단하세요..
  • 아픈몸 2020/07/24 [14:29] 수정 | 삭제
  • 아픈몸을살다.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파도미안하지않습니다. 라는 제목도 참 좋다.
  • ㅇㅇ 2020/07/24 [00:05] 수정 | 삭제
  • 쿵쿵 내 마음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타인의 글을 보며 타인의 경험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지는 게 참 오랜만의 일이라 여운이 많이 남네요
  • 마두 2020/07/23 [16:27] 수정 | 삭제
  • 연극 공연 정말 좋았습니다. 배우분들이 직접 쓴 글을 보니까 또 다른 감정이 드네요. 몸이 말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조금은 성장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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