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독립 중

<주거의 재구성> 장애여성의 독립 투쟁기

진성선 | 기사입력 2020/09/02 [19:48]

나는 오늘도 독립 중

<주거의 재구성> 장애여성의 독립 투쟁기

진성선 | 입력 : 2020/09/02 [19:48]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 진성선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

 

나는 많은 여성들이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는 “취업, 결혼, 출산”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학습되는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일반적인 여성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인 것처럼 요구되지만, 나는 예외였다. 독립하도록 요구받지도 않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장애여성인 나의 독립은 나이가 들고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해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너 혼자 나가면 제대로 살 수나 있겠어?”

 

나에게 ‘독립’은 내가 ‘일반’사람들조차 어려운 일을 ‘장애를 가진 몸’으로 해낼 수 있는지 증명해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혹여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네가 위험한 일을 당하진 않을까”, “혼자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서 굶어 죽진 않을까” 극단적인 걱정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을 하고 싶어하는 나는 그저 현실을 모르고 남들 하는 건 다 따라 하려는 ‘욕심 많고 고집 센’ 사람이 되었다.

 

▲ 장애 여성이 독립해서 살아가고자 했을 때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려운 법인데 장애인에게는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맞는 조건과 환경이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되고 완벽해지길 강요받는다. 이러한 현실이 조금 더 변화하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기숙사, 새로운 공간으로 몸을 이동한 첫 경험

 

20대 초반 내 용돈을 처음으로 직접 관리하게 됐을 때, 어머니와 매일매일 싸우면서 설득하고 협상했던 지난한 과정을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일을 시도하기도 전에 늘 누군가에 의해 내 미래가 예측되었다. 돌이켜보면 마음속에서 저항감이 들어도 어떤 언어로 말하고 대응할지 몰랐던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매일 조금씩 시도했던 작은 변화들이 불씨가 되어 더 큰 변화를 만들었다.

 

새로운 공간으로 몸을 이동했던 경험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집-학교 간의 통학 거리가 멀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익숙한 집을 떠나 주거환경 등 모든 게 달라진다는 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집에서는 나만의 공간이 없어 가족과 모든 것을 공유해야 했는데, 독립된 공간에서는 내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사생활을 말하거나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또 이전에는 관계의 폭이 넓지 않았던 반면,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 일상을 나누게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친구를 만드는 일이 삶에서 중요해졌고, 분명 전과는 다른 역동들이 쉴 틈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기숙사 내부의 물리적인 접근성만을 본다면 전동휠체어로 다니기에 대체로 편리했다. 장애 학생을 위한 호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출입구와 방의 문턱이 낮고 방 안에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었다. 다만, 나는 실내에서는 휠체어 없이 바닥을 기어서 이동했는데,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기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급한 경우 참느라 종종 곤혹스럽긴 했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적응했고 굴러가기, 엉덩이로 밀고 가기 등 이것저것 다양한 방식을 터득해갔다. 사실 방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거실을 사이에 두고 다른 방과 분리되어 있어 독립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컸고 그걸 포기할 바에야 이런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 일생 생활에서 사용하는 전동휠체어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휠체어 리프트.  ©진성선


그러나 휠체어로 이동하며 기숙사까지 오르내리는 길은 곳곳이 위험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겨울에 눈이 내려 바닥이 꽁꽁 얼면 썰매장이 될 정도로 경사가 가팔랐다. 실제로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해마다 하나둘씩 썰매를 끌고 나와 즐겁게 탔다. 교내에 통행하는 차량은 물론이고 바퀴가 쭉- 미끄러져 헛도는 상황에서 나 역시도 발이 묶이게 되었다.

 

반대로 뜨거운 여름이 되면, 아슬아슬하게 경사로를 오르던 중에 모터가 과열돼서 연결선이 녹아버렸고 휠체어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경사를 내려오다가 고장으로 급정지하는 바람에 몸이 튕겨 나와 휠체어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그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기숙사 내부의 접근성이 편리하더라도 교내의 경사가 심하고 수평이 맞지 않는 길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자취생활 도전! 내 몸으로 쌓는 노하우

 

몇 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 보니 통금시간과 지켜야 하는 규칙들에 답답함을 느꼈다. 남은 학기는 기숙사에서 살지 않기로 결심했고, 방학 기간은 인근의 오피스텔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크게 반대했고, 경제적 지원을 일절 하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하지만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독립의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생활비 대출을 해서 보증금을 마련했다.

 

모아둔 돈이 한 푼도 없던 터라 월세 5만 원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창문이 없는 4평짜리’ 가장 작은 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휠체어는 밖에 세워두어야 했고, 활동지원사와 일상적인 보조를 받는데 동선이 꼬이기 시작했다. 창문이 없어서 불을 끄면 한밤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암흑 같았다. 햇빛이 들지 않고 환기가 안 되는 구조는 빨래도 잘 마르지 않을뿐더러 감기에 한 번 걸리면 꽤 오랜 기간 낫지 않았다.

 

나는 일상의 거의 대부분 시간을 활동지원사와 보내는 만큼 ‘보조를 받는 몸’과 ‘공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신체 보조를 받으면 활동지원사와 내가 같이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다. 자칫 동선이 겹쳐 부딪히면 다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을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방과 화장실과의 거리, 자주 사용하는/중요한 물건, 체력을 최소화하면서 출근 준비 시간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면서 집 안 구조를 배치하게 된다. (두 명의 장애여성이 살 때, 협소한 공간에서 네 명이 동시에 움직일 동선을 확보하고 같이 조율하는 건 꽤 복잡하고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매일 활동지원사와 몸으로 만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만큼 이용자 중심의 공간 세팅을 빼놓을 수 없고, 이건 내 삶의 주도권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 화장실 이용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몸에 맞게 제작한 나무 발판  ©진성선


첫 자취생활의 경험은 이후 집을 구할 때 어떤 조건과 환경이 필요한지 세밀히 고민하게 해주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구하면서 ‘창문이 크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최우선으로 신경 썼을 만큼 주거환경이 나의 건강과 일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만의 원칙들을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했고, 만약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라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집 구하기, 보호 밖에 없나?

 

그동안은 막연하게 집을 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집을 알아보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필수적인 기준으로 두면 고를 수 있는 집은 열 건도 안 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전세 계약을 7차례나 거절당했다. 이유를 물어봤을 때 집주인들은 특별한 대답 없이 죄송하다고만 하거나 터무니없는 논리로 황당한 변명만 늘어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집 안에서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전을 누가 책임 지나?’라는 말이었다. 들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장애를 이유로 거부하는 건 차별이라고 말했으나 오피스텔 관리자는 ‘내부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나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을뿐더러 행여나 집 안에서 다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의 주체는 나다. 내게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정중함과 건물 임대인으로서 가진 의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태도는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항상 친절한 태도로 일관하며 대상화한다.

 

집을 구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어렵사리 계약이 성사되어 이제부터는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었지만 역시나 그럴 리가 없었다. 임대인은 결정을 번복하면서 거절을 했다. 나는 다른 전략을 고민하는 동시에, ‘방 안에 휠체어를 들여놓지 않고 흔적 없이 이 공간을 깨끗이 사용할 것이며 사는 동안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입으로 설명해야 했다. 아무리 내가 급한 상황이더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지만, 반복되는 차별 상황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타협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거 같다.

 

임대인과 집 계약이 성사된 후에도 마무리 단계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을 겪으며,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 더 깊게 들어왔다.

 

우리 집은 드라마 스튜디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의 몸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띄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번에 각인된다. 독립하기 전, 나에게 붙은 ‘지체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똑같은 장애를 가진 쌍둥이 자매’라는 타이틀은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대체 나를 어떻게 아는 건지…” 늘 의문이었다. 우리 가족을 만나면 사람들은 “힘들겠다, 대단하다”며 예상 가능한 반응을 보였다.

 

▲ 부산으로 떠난 첫 가족여행, 바다를 보며 찍은 사진  ©진성선


20대 후반이 된 지금,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아도 이러한 시선은 여전하다. 장애여성이 몇 호에 사는지, 우리 집에 활동지원사가 몇 명이 오는지, 내가 언제 출퇴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뒤, 경비아저씨는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발걸음 소리’가 시끄럽다고 한다며 민원을 전해줬다. 나는 방 안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걸을 수 없는데…?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층간소음의 주범으로 의심받고, 바퀴 자국이 나서 벽이 더러워졌다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더 황당한 건 대청소하는 날, 비장애인들은 요구받지 않았지만 나는 바닥에 왁스 칠을 한다며 아침 8시까지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관리사무소에 따져 물으러 갔을 때 내 몸을 아래위로 쓱 훑어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지면서 ‘또다시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하나’ 복잡한 심경이 되는 것이다.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지자체에서 혼자 사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소화기, 화재 경보 센서 등을 무료로 설치해주는 사업이 떠오른다. 화재 시 빠른 대응이 가능하지만, 당사자가 설치 여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는 순간, 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게 정당해진다.

 

다양한 몸들을 위한 주거를 상상하며

 

이후 나는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운 좋게 가족 중 한 명이 청년임대주택에 당첨이 되었고 당분간은 얹혀살기로 했다. 제한된 6년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곳’, ‘잠시 머물다가 가는 임시거처’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필요한 가구를 구매할 때도 ‘평생 살 수 있는 집이 생기면 더 좋은 걸 사야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미래를 계획하면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라기보다, 누워서 잠을 자는 공간 이상의 의미로서 잘 생각되지 않았다.

 

임대주택은 예측 불가능한 ‘로또’ 같은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길 간절히 바랐다. 집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임대주택을 신청해보기로 했고, 그 전에 당장 출퇴근거리가 가까운 집이 필요했다, 은행에서 내 명의로 첫 대출을 받고 집을 계약해야 하는 중대한 결정이 기다렸다. 주변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고 조언을 구하면서 하나씩 준비해나갔지만 낯선 경험이 주는 불안과 설렘, 커다란 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임대주택의 경우 자격 기준이 까다롭고 수요와 비교해 공급이 적기 때문에 더욱 기준에 포함되기가 어렵다. 최근에 주거약자용 주택이 나와 경사로와 화장실 내부에 접근성 등을 고려해서 설계했는데, 같은 전형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장애인이라도 자격이 되지 않는다. 주거약자용이라고 하더라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집 구조에서는 인터폰과 전등 스위치 등 사소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이 독립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관점과 경험이 반영된 주거 설계가 필수적이다.

 

▲ 집 안으로 전동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경사로(좌). 전등 스위치가 높아서 앉은 상태에서 불을 켤 수 있도록 집안 곳곳에 붙여놓은 버튼식 조명(우).  ©진성선


독립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어떻게 관계 맺고 싶은지 등 삶의 주도권을 획득해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그 과정을 하나씩 거쳐나가면서 지금도 일상의 차별에 맞서 변화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자원과 관계에서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동료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내 삶을 온전히 ‘운’에 맡겨야 한다. 대부분의 주거 정책이 ‘정상가족’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점도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장애여성들끼리 살아야 되나?”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몸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갈 데가 없고 단편적인 국가정책안에 몸을 끼워 맞춰야 하는 현실이다.

 

나의 미래도, 미래의 주거도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모을 때 다양한 주거에 대한 더 많은 상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 도배방지 이미지

  • 소소 2020/09/03 [15:55] 수정 | 삭제
  • 장애인주거권에서 물리적 접근성만 겨우 떠올리는 현실에서 무엇이 더 이야기되어야 할지 고민을 던져주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ㅇㅇㅈㄷ 2020/09/03 [15:21] 수정 | 삭제
  • 글도사진도 잘 봤습니다. 내 몸에 맞는 인테리어 DIY가 조금 더 일상가까이 접근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운은 2020/09/03 [14:33] 수정 | 삭제
  • 눈에 띄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보장받기 힘든 삶이라는 게 생각만 해도 싫은데.. 그러고보니 많은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장애가 있다고, 혼혈이라고.. 남과 다르다고 특별히 꽂히는 관심과 약간의 무시와 동정을 담은 시선들.. 그걸 견디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