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나같은 일을 겪는 태국 여성들이 없길”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두 아이 데리고 한국을 떠난 태국 여성

레티마이투(한가은) | 기사입력 2020/09/05 [19:12]

“다시는 나같은 일을 겪는 태국 여성들이 없길”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두 아이 데리고 한국을 떠난 태국 여성

레티마이투(한가은) | 입력 : 2020/09/05 [19:12]

*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 레티마이투(한가은) 님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 2019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공동행동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 행사에서 왼쪽이 필자 레티마이투 씨의 모습.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태국에서 만난 ‘와’씨는 첫 인상이 인상적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해오며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녀는 한국 남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둘을 혼자서 양육하고 있었지만, 인터뷰하러 온 이유는 아이에게 아빠를 찾아주거나 양육비를 받기를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태국의 엘리트 여성인 와씨가 겪은 일들은 한국 사회의 이주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배제, 그리고 차별이 얼마나 지독한지 보여준다.

 

태국에서 한국인 남자친구와 3년간 동거하며 출산

 

대부분 결혼이주여성들이 연애가 아닌 국제결혼중개업을 통해 짧은 시간에 만남을 가지고 서로 동의하면 곧바로 결혼 및 혼인 절차를 밟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몇 가지 정보만 알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와’씨는 출발점이 조금 달랐다.

 

그녀는 아이 아빠를 태국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싱가포르에 유학하던 차에 태국에 여행을 왔고, 지인의 소개로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와씨는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월 4천 달러급여를 받는 보수가 높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소통이 잘되어서인지 금새 친해졌고, 마음이 맞아 연애를 시작했다. 와씨의 어머니는 딸이 좋은 직장을 구해 막 일을 시작했는데 왜 한국 남자와 사귀면서 먼 한국에 가려고 하냐며 반대하셨지만, 와씨는 그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할 마음만 있으면 지리적 거리는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그는 군입대 문제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와씨도 남자친구와 같이 유럽 유학을 가기 위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독일 유학 비자를 받기가 좀 더 쉬었던 반면, 와씨는 태국 사람이기 때문에 비자 발급을 받기 어려웠다. 그가 먼저 유학을 떠났다. 와씨는 혼자서 그의 부모와 같이 2~3개월을 살았다. 그러나 마냥 남친 없이 그 집에서 머물기가 불편해 태국으로 돌아왔다.

 

남자친구는 2개월 동안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가족 몰래 태국으로 와씨를 만나러 왔다. 와씨는 어머니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제안했으나 그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3년 동안 두 사람은 와씨가 마련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 아이가 생겼고, 이윽고 남친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친의 어머니가 태국으로 아들과 손자를 보러왔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들을 닮은 모습을 보고서 어머니의 화난 마음도 누그러진 것 같았다. 남친의 어머니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태국에 온 김에 태국과 한국을 왕래하면서 사업을 벌였고 그 덕에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다.

 

아이 아빠의 방치로,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

 

처음에는 몰랐지만, 와씨는 동거 기간이 길어지면서 남자친구가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가 태국에서 장사하는 한국 친구와 동업을 했다가 사기를 당해 돈을 날려버릴 때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유학도 중단하고 태국에서 사기를 당한 것 모두 와씨 때문이라며 그녀를 탓했다. 와씨는 남친이 사업이 망해서 화를 낸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냥 받아주었다. 그는 자신이 사 온 강아지를 와씨가 안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렸을 때도 엄청나게 화를 냈고, 강아지가 마신 물을 와씨에게 던져 튀기게 했다. 감정 기복이 점점 심해졌고, 기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왔다갔다 했다.

 

처음에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둘째가 생기자 그는 정말 잘 대해주는 것 같았지만, 곧 달라졌다. 와씨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무시하고 낮게 보는 경향이 있음을 느꼈지만,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고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7년, 와씨는 아이 아빠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폭행의 증거를 남기거나 경찰에 신고하고 싶지 않았다. 남친이 외국인이어서 폭력으로 잡혀가면 태국법으로 처벌받고 여기서 체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남친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아이들과 한국에서 살았을 때, 와씨와 아이들은 남친의 부모가 장사하는 곳 한쪽 방에서 지냈다. 그런데 아이들도, 와씨도 비자가 없는 상태로 3개월 무비자 기간이 초과되자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했다.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 서류를 다 준비했지만 남친은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았다.

 

와씨와 아이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으려면 남친과 혼인신고를 한 후 국제결혼가정으로 F-6비자를 받고, 아이들은 한국 국적자로 신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한국까지 왔는데 혼인신고는커녕 와씨와 자녀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미등록자가 된다는 것은,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가기도 쉽지 않다. 설사 어린이집 원장이 받아준다고 해도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와씨가 한국에 왔지만 남자친구는 그동안 부모 집에서 함께 살지 않았다. 와씨는 태국에서부터 남친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과, 그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마련한 서류도 확인했다. 그의 어머니는 와씨에게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다면 참고 살고,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가서 혼자 키워라,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국에 두고 가면 내가 케어주겠다’고 했다.

 

▲ 조사팀은 태국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을 찾아가 현황을 듣고, 태국 이주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공조 방안을 모색했다. 태국 여성기금(Foundation for Women) 방문 때의 모습.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생활비로 일주일에 만원?

 

태국에서 월 4천 달러를 벌었던 와씨는 한국에 온 후 남친의 어머니로부터 1주일에 1만원을 받아 사용했다. 아이에게 우유를 사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이 너무 비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친의 어머니는 처음에 잘 대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같이 돌봐주지 않았다. ‘내 아들이 사랑하면 나도 사랑한다. 내 아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나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와씨는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미등록자 자진출국 기간에 자녀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와씨와 같이 어떠한 이유든 간에 비자 기간이 초과되어 미등록으로 한국에서 거주한 경우, 거주 기간만큼 벌금을 내야 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미등록기간에 자진출국을 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재입국할 때 제한이 없다. 만약 와씨가 이 기간을 놓치게 된다면 후에 단속에 걸렸을 때 강제출국과 함께 5년 동안 한국으로 입국을 못 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와씨는 그 시기에 귀국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인천공항에서 세 모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한테 붙잡혔다. 아이들의 이름이 한국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와씨는 아이들의 국적이 태국이고 한국 국적자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출입국 직원이 알아볼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조사 시간이 길어져서 와씨가 예약한 비행기를 못 탄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행기 일정을 바꿔야 하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었지만 출입국 직원은 그런 것까지 봐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눈물이 줄줄 쏟아져서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출입국 직원한테 따졌다. 한국에서 1년만 살았는데 아이들의 한국말이 유창했다. ‘왜 우리 엄마를 울게 하냐’고 말하고 와씨를 안아주었다. 당시 큰 아이가 8살이었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성숙해져 있었다.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함께 있어 든든했다.

 

어떤 배경을 가졌든,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위치는

 

‘와’씨의 상황은 결국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한국이 아닌 태국에서 만났고, 연애를 했고, 혼인신고를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여러모로 자유로웠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이주여성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를 낳고, 한국에 오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에서 이주여성이란, 자신이 본국에서 어떤 일을 했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한국에 오면 그저 이주여성인 것이다. 와씨는 자신의 부모한테 소중한 사람이며, 공부도 할만큼 했고, 좋은 직장이 있었으며, 엘리트 계층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온 여성이지만, 한국에서는 존중받지 못한 채 수동적인 위치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이 이주여성들에게 갖는 선입견과 배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사례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 아빠가 보내온 한국어로 된 문자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아이들 보고 싶다, 나는 아이들 보고 싶고, 아이들 잘 키우리라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와씨는 도대체 그가 왜 이런 문자를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한국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숨겨진 뜻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눈치였다. 아이 엄마로서 약간의 희망을 담은 그 눈빛을 보며,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통역 지원: 니감시리스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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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9/12 [12:32] 수정 | 삭제
  • 우아 진짜 이런일들은 언제까지 반복될까.. 진짜 화나고 안타깝다
  • ㅇㅇ 2020/09/10 [18:14] 수정 | 삭제
  • 도대체 책임도 안질 거면서 ㅋㄷ 왜 안쓰지 ㅎㄴ들.
  • 지랄병났네 2020/09/10 [17:35] 수정 | 삭제
  • 지랄병하고 자빠졌네 코피노인지 뭔지 맨날 그 소리던데 한국인이 가서 물으면 코피노 일본인이 가서 물으면 자피노 중국인이 가서 물으면 챠피노가 되는 새끼들인데 무슨 지랄 났다고 피해자니 뭐니 씨부리냐 비싼 밥 쳐 먹고 할 일 어지간히도 없나보네
  • 코코 2020/09/08 [09:23] 수정 | 삭제
  • 다른 아시아 국가까지 가서 이주여성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운동가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지는 기사입니다. 유입국의 여성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멋지네요. 연재도 잘 읽고 있어요.
  • mlra 2020/09/07 [15:52] 수정 | 삭제
  • 정말 너무 화나고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