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사태…복장 논란 아닌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폭력’

정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 대응책 마련해야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9/16 [19:16]

원피스 사태…복장 논란 아닌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폭력’

정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 대응책 마련해야

박주연 | 입력 : 2020/09/16 [19:16]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선거 활동을 하는 장면이 화제를 불러왔다. ‘전통적’ 정치인의 모습에서 벗어난 스키니 진과 자켓 차림의 카말라 의원의 모습은 SNS에서도 큰 반응을 얻었다. 그가 신은 운동화가 특히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캐주얼한 브랜드였던 탓에 카말라 의원이 만 55세의,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렇게 여성 정치인의 ‘복장’이 화제가 되는 장면, 기시감이 들지 않은가? 지난 달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일로 ‘논란’이 됐던 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장면이 모두 국회의원의 ‘품격’에 어울리는 복장에 대한 논의라면 카말라 해리스는 괜찮고 류호정은 괜찮지 않았던 게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스키니진은 괜찮지만 원피스는 안 되는 거였을까? 50대 의원이 쿨하게 입는 건 신선한 일이지만 20대 의원이 또래답게 입는 건 건방진 일일까? 아니면 국회의사당 안에서만큼은 진중하게 보여야 하는걸까? 그 진중함이라는 건 어떤 복장에서 나오는가? 아니, 애초에 왜 ‘여성’ 정치인의 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많은걸까? 왜 사회는 그들의 복장에 이리도 집착하는걸까?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고, 9일 유튜브 중계된 라운드테이블 <남성독점 정치에서의 여성혐오>에서 이 같은 문제를 다뤘다. 2020년에도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9일 열린 "남성독점 정치에서의 여성혐오" 라운드테이블에서, 김은희 한국여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논란’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KaG28Hs-TSo)

 

원피스는 어쩌다 ‘문제적’ 복장이 되었나?

 

여성 정치인의 복장,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수없이 나왔는데 지금 다시 원피스가 논란이 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얘기한 김은희 한국여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여성 정치인과 복장/패션을 둘러싼 사례를 설명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국회에서 여성 정치인에게 요구된 복장은 ‘치마’였다.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1993년 미국의 바바라 미컬스키 하원 의원이 국회에서 여성들이 치마 정장 혹은 원피스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에 반발해 바지 정장을 입는 운동을 벌인 일”을 설명했다. 미국 정치에서도 여성 정치인이 바지를 입는다는 건 ‘국회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걸 문제 삼고 변화를 이끈 여성 정치인들 덕분에, 비로소 바지 차림이 가능해 진 거다.

 

한국에서도 1993년 환경처 황산성 장관이 바지 정장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건방지다는 비방을 들었다. 1996년엔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이 여성 의원 바지 입기 운동을 벌인 일도 있다. 그러니까 여성 정치인이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된 건 고작 약 20년 전이다.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국제 정치에서 국회의원의 복장 규정은 “종교적 상징성, 상업적 광고, 정치적 견해를 포함하고 있는 슬로건이나 복장을 엄격히 금지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2013년 영국 국회에서 ‘No more page three’ 티셔츠를 입고 타블로이드 잡지의 선정성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진 사례, 2017년 미국 여성 하원 의원들이 국회에서 맨팔을 드러낼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진행했던 ‘민소매 금요일’(Sleeveless Friday) 운동”도 소개했다.

 

이러한 흐름을 보았을 때, 2020년 한국에서 벌어진 ‘원피스 논란’은 더 의아할 수밖에 없다. 바지 차림도 아니고, 정치적 견해를 담은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단지 ‘복장 논란’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과연 류호정 의원을 둘러싼 이 ‘원피스 논란’은 어디서, 왜 발생한 걸까? 이는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여성 정치인’의 존재와 위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연결된다는 것이 김은희 객원연구원의 주장이다. 그는 너멀 퓨워(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대학 사회학과 연구교수)의 저서 『공간 침입자』(공적 영역이나 고위층에 배제되었던 여성과 소수자들이 진입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다룸)의 내용을 설명하며, 현재의 남성 중심 정치에서 여성 정치인이 “공간 침입자로 여겨진다”고 했다.

 

“여성은 규범으로서는 비가시적이지만, 규범을 벗어난 이탈자로서는 매우 가시적”이라는 모순적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어떠한 불완전함이라도 쉽게 지적되고 과장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고 능력을 보여야 하지만, 능력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성과 남성은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평가 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그렇기에 ‘원피스 논란’을 그냥 복장 문제로 보거나, 남성적인 정치 공간에서 구조적으로 여성혐오가 작동하고 있다는 정도의 논의뿐만 아니라, 이게 정치 공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은희 한국여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이 2016년 국회의회조합(IPU)에서 각국 여성 의원들의 경험을 조사한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KaG28Hs-TSo)

 

2016년 국제의회조합(Inter-Parliamentary Union, IPU)에서 39개국 55명의 여성 의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여성 의원에 대한 성차별주의, 성희롱 그리고 폭력”(Sexism, harassment and violence against women parliamentarians)에 따르면 81.8%가 정신적 폭력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44.4%가 살해, 강간, 납치, 폭행의 협박을 받은 적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25.5%였다.

 

이번 ‘원피스 논란’ 때 류호정 의원에게 가해진 악플 세례와 무차별 비난도 정신적 폭력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정치 영역에서 겪는 여성의 문제를 젠더 기반 폭력으로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이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10년대”라고 얘기한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앞으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이로 인한 광범위한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여성 정치인이 겪고 있는 ‘논란’을 다른 여성들이 계속 보게 되면, 그들이 정치에 진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게 되고, 또한 그렇게 여성 정치인이 줄어들어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젠더 관점이 부족하게 되고, 정치에서 다양성이 대변되지 못하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성중심 국회에 여성 정치인을 위한 안전장치 필요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서고 있다. “엠네스티 같은 인권단체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스웨덴도 정치 영역에서 여성들이 겪는 폭력을 전반적으로 조사하는 보고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관련 규제나 제도를 마련한 나라들도 있다. 볼리비아는 의회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고, 캐나다는 의회에서의 성희롱 규제가 있다. 스위스에선 국회의원이 익명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독립적인 폭력 방지 및 괴롭힘 방지 기구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다른 나라에선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폭력 철폐를 위한 독자적인 법률이나 규제가 만들어 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마련된 게 없다”고 꼬집었다.

 

“지금 국제사회에선 정치영역, 의회는 물론이거니와 선거 활동 중에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주목 받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지난 선거에서 여성 정치인의 포스터가 훼손된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기억나는가?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해결했는가? 해당 여성 정치인이 부담 없이 계속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누가 케어하고 있는가? 없다.”

 

라운드테이블이 열린 9일 오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병석 국회의장을 방문했을 때 “국회 내 성폭력과 혐오 문제를 다룰 인권센터 설치를 제안”한 것을 언급하며, 김은희 객원연구원은 이제 한국 정치도 제도의 공백을 채우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폭력을 종식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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