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를 알고 있나요?

모로코에 의한 지배와 수탈, 우리도 연관되어 있다

시미즈 사츠키 | 기사입력 2020/09/19 [15:30]

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를 알고 있나요?

모로코에 의한 지배와 수탈, 우리도 연관되어 있다

시미즈 사츠키 | 입력 : 2020/09/19 [15:30]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대서양 연안에 있는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이국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모로코와 접하고 있지만, 서사하라(Western Sahara)는 그 모로코에게 45년간이나 실질적인 지배를 당하며 독립을 저지당하고 있다.

 

서사하라와 관련된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저항의 수레바퀴-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2019년 11월)를 펴낸 신고 케이코(新郷啓子) 씨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서사하라 독립운동을 지원해 온 신고 케이코 씨(왼쪽), 신고 씨가 쓴 책 『저항의 수레바퀴-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임팩트 출판사)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사는 신고 케이코 씨는 40년 가까이 서사하라의 ‘사하라 위’(서사하라 사람들이라는 뜻)의 독립을 지원해왔다. 계기가 된 것은 1983년,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할 때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을 요구하는 서사하라와 독립운동 조직인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반(反)체제를 표방하는 모로코 유학생조차 서사하라 독립에 대해서는 애매한 의견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 신고 케이코 씨는 더욱 의문을 갖게 됐다.

 

“관련된 책을 읽고, 저도 독립을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서 프랑스의 서사하라 지원단체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파리의 ‘폴리사리오 전선’ 대표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어요.” 그 후 번역 등의 활동을 했다. 20년 전에 스페인 그라나다로 이주한 후에도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서사하라는 왜 21세기가 된 지금도 모로코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2,700km에 달하는 모래의 벽과 난민캠프

 

‘사하라 위’(서사하라 사람들)는 모리타니아(Mauritania) 사람들과 유사한 아랍 문화를 갖고 유목민으로서 살아왔다. 19세기 말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서사하라는 1960년대에는 유엔의 탈식민지화 리스트에 올랐었다. 하지만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이 전개되며 1974년에 ‘대(大)모로코주의’를 주장하는 모로코와, 모로코에 대항하는 모리타니아가 이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양국의 서사하라 영유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1975년 모로코 국왕이 35만 명을 동원한 관제 데모 ‘녹색행진’을 계획하여 서사하라를 침공했다. 공습을 받은 사하라 위는 1976년에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RASD) 건국을 선언했다.

 

1991년, 유엔에 의한 평화안에 서사하라 독립운동 조직인 ‘폴리사리오 전선’과 모로코 간에 쌍방이 합의하여 유엔 서사하라 주민투표감시단(MINURSO)이 발족한다. 그러나 모로코가 방해하여 현재까지도 주민투표는 실시되지 않았다.

 

“사하라 위는 일단 정치적 해결을 선택한 이상, 그 해결 방식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유엔과 모로코의 고착상태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다시 한번 평화회담 테이블에 앉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라고 신고 씨는 전한다.

 

현재 프랑스가 모로코를 강력히 지지하는 한편, 아프리카연합과 중남미, 남아시아 제국에서는 서사하라를 국가로 승인한 나라가 많다.

 

서사하라는 문어를 포함해 풍부한 수산자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료의 원료가 되는 인광석의 세계적인 산지다. 모로코는 이러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서사하라의 지배권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1988년에는 모로코가 서사하라 중앙부를 남북으로 약 2천7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분리벽 ‘모래의 벽’을 건설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벽과 똑같은 구조다. 높이 2미터 정도로, 벽의 서쪽에는 모로코의 실질적 지배지이다. 동편은 폴리사리오 전선에 의한 사하라 위 해방구이지만, 대부분 사막이라 취락은 적다. 분리벽 가까이에는 지뢰가 묻혀 있다.

 

▲ 서사하라 지도. ‘모로코 점령지-모래의 벽-사하라 위 해방구’가 표기되어 있다.  ©페민 제공

 

모로코와 모리타니아 침공에 의해 많은 사하라 위가 동측의 알제리아로 피난하고, 사막 가운데에 난민캠프를 만들었다. 큰 캠프 집합체가 5개,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의 관청이 선 구역도 있다. 난민캠프 사회는 유엔과 EU로부터 오는 원조물자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몇 번이나 난민캠프와 점령지를 방문한 신고 케이코 씨는, 계속 저항하는 사하라 위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제정의가 우군이니,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신념으로 관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독립 이후에 나라의 중추를 짊어지게 될 젊은 세대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긴 점령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모로코 쪽 생각을 갖게 된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점령이 길어지면서 더욱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시중에 나온 ‘모로코산 문어’는 실제로는 서사하라산

 

독립을 위한 ‘인티파더’(봉기)를 한 사하라 위는 모로코 당국에 체포되어 부당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활동가 아미나투 하이달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강제실종과 고문 피해도 겪고 있습니다.”

 

▲ 아미나투 하이달(Aminatou Haidar) 씨의 모습. 모로코에 대한 저항독립 운동으로 2019년 ‘라이트 라이블리후드 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신고 게이코 제공


“EU 중에는 서사하라를 국가로서 승인한 나라는 없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서사하라를 지원하는 나라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나라에 대해 모로코는 경제 관계를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사하라 거리에는 모로코군이 사하라 위를 감시하고 있다.

 

EU가 개입한 이후, 특사가 파견되는 등 국제사회는 서사하라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모로코는 이를 거부하며 서사하라에 대한 탄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슈퍼마켓(한국도 마찬가지)에서 팔고 있는 ‘모로코산 문어’는 서사하라산”이라고 신고 게이코 씨는 지적한다.

 

일본에서 1992년에 다다 요코(多田謡子) ‘반권력 인권기금’(29세에 세상을 떠난 여성변호사 다다 요코를 기념하기 위해 유산 등으로 1989년 설립된 기금. 매년 12월 다다 요코 반권력 인권상을 수여함)이 현지에서 활동하는 ‘전국 사하라 위 여성연합’에게 인권상을 수여한 바 있다. 또한, 작년에는 연구자와 저널리스트, 뜻있는 시민들이 ‘서사하라 친구 모임’을 설립했다.

 

신고 케이코 씨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서사하라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지지하고, 국제연대를 강화해 모로코에 대한 대항을 표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보도 기사입니다. 시미즈 사츠키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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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0/09/25 [20:08] 수정 | 삭제
  •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네요ㅠㅠ
  • 나단 2020/09/22 [15:02] 수정 | 삭제
  • 지구상에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는 자체로 안타깝습니다. 동참가능한 일에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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