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에서 안전하게’라는 말이 일종의 안부인사처럼 되어버렸다. 정부나 언론에서도 안전하게 집에서 지내라는 말을 반복한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타인과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있는 공간에 머물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빠져있는 질문이 있다. ‘누가 그 안전한 집을 담당하고 있는가?’ ‘누구의 노동으로 안전한 집이 담보되고 있는가?’이다.
가족 구성원이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부터 매 끼니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까지의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건 대부분 엄마/부인/딸로 호명되는 여성이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여성들이 늘어난 가사노동 및 돌봄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16일 개최한 <코로나19 위기를 넘어, 성평등 노동으로> 온라인 토론회에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직장에선 불이익, 집에선 ‘독박돌봄’ 위기에 놓인 여성들
한국여성노동자회 김명숙 활동가는 코로나19 위기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5~6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여성노동자 318명이 응답한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재 실직 상태(8.2%)이거나 실직 후 재취업(2.5%)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중 10.7%로 실직을 경험한 여성이 10명 중 1명 꼴이었다. 세부적으론 20대, 비정규직, 서비스 종사자 및 판매 종사자, 소규모 사업장의 비율이 높았다.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업무 강도가 높아지거나, 재택근무 혹은 가족돌봄휴가 사용을 거부 당하거나 오히려 무급휴가를 강요 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53.6%나 되었다. ‘아프면 3~4일 쉰다’는 방역 수칙을 따를 수 없는(쉴 수 없는) 경우도 12.4%였다. 특히 유급연차나 병가가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부담이 되는 건 가정 내 돌봄노동이다. 5명 중 3명이 코로나 이후 돌봄노동이 증가했다고 했다. 전업주부, 기혼, 동거 가족 수가 많을수록 돌봄노동 시간 증가량이 많았다. 2~4시간 증가했다고 한 응답자가 17.2%로 가장 많았지만 6시간 이상 증가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13.8%로 뒤를 이었다.
가족 내 돌봄노동의 분담에 대해 ‘독박돌봄’을 하고 있다는 비율이 33.5%나 되었다는 점을 미뤄보면 여성의 돌봄노동 시간 증가가 필연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가장 힘든 돌봄노동으로 ‘세끼 식사준비’가 38.5%로 가장 높았고 ‘온라인 수업 및 과제 챙기기 등 아이들 학습지도’가 15.1%, ‘청소 등 증가한 집안일’이 12.8%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런 돌봄노동 부담으로 인해 5명 중 2명이 ‘노동 중단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집에 두고 출근해야 하거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매우 높다(16.8%)와 높다(19.6%)고 답한 사람이 약 35%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금노동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이 48.6%, 전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이 15.1%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도 업무가 늘어나고 집에서도 돌봄노동의 부담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노동 지속 의지가 높다는 것이기도 하고, 여성들 또한 임금노동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거나 그만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해 타격 받은 일자리는 ‘여성이 다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기존의 성별 불평등 위기와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가 중첩되었다”며 “영국 여성예산그룹(Women’s Budget Group)에서 현재의 이 위기를 ‘위기들의 충돌’이라고 진단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초래하는 것 또한 젠더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특히 그런 위기 속에서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된 ‘대면’이 새로운 불평등의 요소로 등장한 점에 주목”했다. “그 ‘대면’은 서비스직 등 여성적 노동의 구성 요소”라는 점에서 “감염병 시대 일자리 위기와 노동안전 위험은 곧 ‘여성적 위기’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시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일자리는 돌봄(care)과 환대(hospitality) 노동이며,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 정책이 이런 대면 노동 업종, 여성집중 업종이 아니라 “항공업, 해운업, 자동차, 조선 등 대규모 전통적 남성집중 업종에 지원을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결국 성별 불평등 위기를 낳았다.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대면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복지시설, 서비스 직종의 노동자들의 안전대책이 부실했던 점”도 비판했다. “특히 방역 점검이 불가능한 개별 가정에서 일하는 방문돌봄노동자에 대한 안전대책이 부실”했던 것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을 모두 불안하게 했다.
가족돌봄휴가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김원정 부연구위원은 “고등학교 이하 자녀 있는 임금노동자 중 가족돌봄휴가 사용이 12.9%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업주를 향한 조금 더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한 반면, “가족돌봄휴가 제도를 쓰는 신청자의 여성 비율이 62%로 남성의 3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고민과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도 “비대면 산업 육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면서 여성 일자리 위기 대책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분명 성별에 따른 일자리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부재하다는 거다. 또한 “디지털 돌봄, 돌봄로봇 사업 추진” 등이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지적·감정적 활동이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돌봄노동 과정을 비가시화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라지는 여성 일자리에 대한 대책은?
이렇듯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안전하고 평등한 노동 환경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논의나 대책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여성노동자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꼽은 것 중 상위를 차지한 건 재난 시 기본소득 지급(19.8%), 사회적 돌봄시스템 재구성(13.8%),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가사노동자 노동법 적용(13.4%), 상시적 기본소득 지급(11.7%) 순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김명숙 활동가는 몇 가지 노동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먼저 7월 현재 여성취업자 중 숙박 및 음식점업 11만8천명, 도매 및 소매업 8만8천명, 교육서비스업에서 6만7천명의 취업자가 감소한 점을 짚으며, “이런 업종이 소멸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편될 수 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에 적합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2분기에만 41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그 중 여성이 25만명”이라며 ‘실직 여성 재취업 촉진’과 ‘비정규직 여성 해고 방지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환경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노동법을 마련하는 일”과 현재 정부가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에서 “자영업자, 기업, 노동자 모두 자신의 소득기반으로 고용보험을 납부하는 방식의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꼽았다.
돌봄의 재구성, ‘상호돌봄’ 시스템 구축해야
김명숙 활동가는 또한 “앞으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멈출 수 없고 필수적인 ‘돌봄’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원활하게 제공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핵심이 되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회적 돌봄시스템을 재구성하기 위해선 상호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돌봄 뉴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났듯이 “돌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이 돌봄노동을 저평가하여 ‘여성에게 적합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시킨 부분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다.
“이미 유럽 등의 국가에선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더 나은 대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엔 지난 5월, 간호사나 요양보호사, 준의료활동 종사자와 의료시설에 근무하는 청소원이나 구내식당 직원 같은 지원인력을 모두 ‘필수 노동자’로 정의하고 임금을 인상했다.”
임금뿐만 아니라 “돌봄노동자 1인당 배정된 돌봄 대상자 수를 조정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현재 보육교사가 돌보는 1인당 아동 수나 간호사 1인이 돌보는 환자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요양보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돌봄대상자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회적 인식을 변화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김명숙 활동가는 “우리 사회에서 돌봄과 무관한 인간은 없다. 단지 누군가의 돌봄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허용되는 부정의와 불평등이 있을 뿐”이라며 “현재 여성에게 집중된 무급 돌봄노동을 전체 사회구성원들이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돌봄 역량을 갖출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가정 내 가족 구성원 간 상호돌봄, 가정과 공공 돌봄기관 간 돌봄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등 돌봄 책임이 분산되고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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