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온 자이니치, ‘한국인’의 기준을 묻다

재한재일(在韓在日)은 잉여 주민인가?

조경희 | 기사입력 2020/09/29 [16:16]

한국으로 돌아온 자이니치, ‘한국인’의 기준을 묻다

재한재일(在韓在日)은 잉여 주민인가?

조경희 | 입력 : 2020/09/29 [16:16]

※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돌아온” 낯선 동포들, 재한재일(在韓在日) 가시화하기

 

사람들이 보통 초면에 자신의 출생지나 자라온 환경까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자기소개를 할 때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나 학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학교 강의를 할 때도 그렇다. 부산이나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청진이나 연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는가. 나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게 뭐 어때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한국인’의 기준은 그 정도로 열려있지 않다. 제도의 면에서도, 인식의 면에서도 그렇다. 17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겪은 여러 문제들을 기록해놨어야 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한국에 온 초기에는 불쾌한 일들이 제법 많았다. 어떤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인사하고 대화하면서도 “실례지만… 국적이…”라고 물어본다. 옆에 있던 나를 알던 선생님이 왜 몰랐냐는 듯 “일본분이야~” 참 쉽게도 말한다. 이 대화는 모든 것이 엇나갔다.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해서 국적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그나마 정답이라면 “고향이 어디세요?”가 되겠지만, 그런 것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본에서 왔다고 “일본분”이라 부르는 것도 참으로 일방적인 호명이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되는가?” 이 질문도 많이 받아봤다. 호칭의 문제는 늘 간단하지 않다. 호칭은 호명하는 사람과 호명되는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고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행위수행적(performative)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혹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재일교포’에서 ‘재일동포’로, ‘재일한국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호칭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일본말 그대로 ‘자이니치’(在日)라는 호칭을 종종 쓰긴 하지만, 이것 또한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자이니치’라는 낯선 호칭을 마치 올바른 용어인 마냥 해맑게 부르는 상황에서는 약간의 경계심이 작동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나는 한국에 사는 재일조선인들이 겪은 제도적 문제들과 일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재일조선인들의 한국 이동은 과연 ‘귀환’인가 ‘이주’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기에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거나 또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해도, 재일조선인들에게 자신들의 뿌리(roots)와 고향(home)이 있는 한국에서의 거주는 단순한 해외이주와는 다른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일본에서의 영주권을 포기하고,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걸고서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선택하는 재일조선인은 극히 소수다.

 

학문의 언어로는 귀환이주(return migration)다. 즉 2세대 이상에 걸쳐 해외에 거주한 후 고국으로 귀환하는 현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외국으로 이주한 것은 아니지만 모국으로 귀환했다고 하기도 애매한 귀환+이주. 향후 30년을 살았다고 해도 ‘리얼 한국인’이 되기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재한재일’ 혹은 ‘재한자이니치’라는 복잡한 호칭을 굳이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 예방접종, 입학통지서…번번이 마주친 ‘자기증명’ 과제

 

‘재한재일’(在韓在日)이라는 형용모순과도 같은 우리의 존재 방식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기에는 그 규모와 파급력은 결코 크지 않다. 우선 주로 나처럼 국적이 한국인 재외국민들은 통계 자체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 특히 재외국민 주민등록 제도가 시행된 2015년 1월 이후, 출입국통계에서 ‘재외국민’ 항목이 제외되면서 그 수는 더더욱 불투명해졌다. 얼추 통계를 잡아보면 1만5천5백명 내외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한국을 떠난 경우도 다수 포함되기 때문에 여전히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중국 조선족 동포(72만8천539명, 2018년 12월 기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게다가 재한조선족들에게 있어서의 대림동, 재한고려인들에게 있어서의 동대문이나 안산에 해당하는 집거지가 우리에게는 없다. 서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자 개별적인 생활을 보낸다. (그래도 장소에 기반한 커뮤니티가 없다고 해서 네트워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한재일에게는 한일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이동과 정착과정에서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다만 이와 같은 생활패턴의 분산성은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재한재일을 보다 비세력화하고 비가시화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2015년 이전까지 한국의 주민등록제도 적용에서 제외된 재한재일의 지위는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모든 ID시스템에서 제외되었던 우리는 행정기관, 학교, 은행, 병원 등에서 늘 자기증명의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자녀들의 지위였다. 엄마의 일본 영주권을 자동적으로 물려받았다고 어느 날 아이의 주민등록은 ‘말소’되었다. 주민센터는 우리를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했다.

 

“아이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못 받았어요. 한 장 복사해주세요.”

“한국 국적인데 주민등록이 왜 없어요? 없으면 해당자가 아닙니다.”

“재일동포이고 이 지역에 사는 주민 맞습니다.”

“주민등록 말소자는 입학이 가능한지 어떨지 모르니 초등학교에 직접 확인하세요.”

 

이렇게 초등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기 위해, 예방접종을 맞추기 위해 행정기관과 보건소, 병원과 학교를 오가면서 힘겹게 나와 아이 정체의 정당성을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눈앞의 사람이 아닌 제도와 규칙만을 뚫어져라 보는 주민센터 직원과는 몇 번 말다툼을 벌였다. 답답함으로 큰 소리를 냈다가 더 서러움이 북받치기도 했다.

 

▲ 필자가 보낸 국민청원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답변 (2012년 10월)

 

마침 비슷한 경험을 가진 재한자이니치 당사자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남성 연구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었다. 주민등록법, 여권법, 해외이주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 각종 법을 같이 공부했고, 각 담당부처에 국민청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기자들이나 변호사들을 만나고, 기사도 냈고 소송 준비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재한재일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필자는 여기저기서 발표를 하고 기사도 내왔지만, 여전히 발표할 때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당사자들이 더 알려야 한다”는 꾸중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 과연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인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도의 틈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당한 장을 갖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몇 번이던 반복하기로 했다.

 

▲ 재외국민 주민등록 관련 행정자치부 홍보 자료

 

이 와중에 2015년 재외국민들도 외국 영주권을 유지한 채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었다. 법 개정이 우리의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재미동포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해도, 그동안 재한재일이 일상적으로 겪었던 어려움이 대폭 해소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한국의 주민등록제도, 열 손가락 지문을 통해 출생부터 사망까지 모든 개인정보를 통합시키는 거대한 ID시스템에 이제 재한재일도 편입되었다. 일본에서는 과거 외국인에게만 지문날인이 의무화되어, 1980년대에는 재일조선인들이 반(反)차별을 지향해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펼쳤다. 그토록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던 지문날인인데, ‘조국’에 와서는 스스로 제도에 포섭되기를 원하는가. 여기에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차이와 함께, 포섭과 배제의 사이에서 비(非)-국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가진 딜레마가 있다.

 

놀랍게도, 여전히 ‘잉여’ 주민

 

그런데 이처럼 해결할 듯 보였던 재한재일의 제도적 문제는 그 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한국인과 결혼한 재한재일 3세 김명향은 과거에 주민등록이 없다는 이유로 자녀의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15년 재외국민 주민등록을 마치고 구청에서 당당하게 다시 보육료 지급을 신청했으나 놀랍게도 또 거절당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육료 지원 선정기준’을 보니 신설된 재외국민 주민등록을 한 사람은 신청 자격 조건에서 제외되었다. 즉 새로운 ‘이등 주민’들을 제외한다는 조항들이 각종 복지지원 시행규칙에 일일이 추가되고 있었다.

 

특히 보육료 미지원 문제는 수년 전부터 당사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사안이었다. 보육료 지원은 일반주민은 물론 다문화가정에도 열린 제도다. 일반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복지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다문화 지원에서도 제외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재한재일은 과연 무슨 존재인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김명향은 지인과 함께 보육료 지원에 대한 평등권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청구를 결심하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보육료 지원을 “미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이자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보고, “국내 영주 거주 의사가 불분명한 재외국민까지 확대…하는 것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귀환동포들을 인권과 복지의 관점보다는 국가의 인적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2015년 11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재외국민 유아를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권위법상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이라며 시정 권고를 했다.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논란이 된 시점에서 자이니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적 대응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 몇 명의 법조인과 언론인, 활동가와 연구자 등이 중심이 되어 헌법소원을 추진 지원하였다. 결과적으로 소송 시작으로부터 2년 이상이 경과된 2018년 1월, 헌법재판소는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전원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김명향은 “(일본의) 특별영주권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고통 속에 싸워 얻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아이 보육료를 가지고 이걸 포기하라고 하는 건가. 고향땅인 한국에 와서 내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이범준, 「재일동포 3세 엄마들의 헌법소송 투쟁기」, 『주간경향』 2017년 9월 19일자 등 참조) 자이니치의 역사를 고집함으로써 발생하는 귀찮고 불편한 현실에 대해 그들은 지금도 정직하게 용감하게 대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해외 영주권자’에 대한 곱지않는 시선이 존재한다. 일부 특권층에 의한 소위 ‘원정출산’ 및 병역기피 문제, 재외국민 자녀 특별전형, 그리고 최근에는 납세의무 없는 해외거주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 부여 등이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그러나 재한자이니치에게 일본 영주권은 편의나 특권이 아닌,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꾸지 않고 조선적/한국적을 유지한 결과로서 가지는 기본적 인권이다. 일본은 지금도 가족들이 사는 집인데, 거기서 살아온 증거로서 가지는 영주권은 외국의 국적만큼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도 다문화적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자이니치 3세, 4세들은 ‘재외국민’이면서도 동시에 ‘다문화’적 존재다. 특히 민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한국어 습득의 어려움은 외국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실질적으로 한국어 교육 지원과 같은 다문화 지원이 필요한 존재지만, 그들은 일본 국적자가 아닌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또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재일동포인데 한국어 지원을 받을 수 없을까요?”

“한국 국적이죠? 내국인은 다문화 해당자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와서 한국어가 아직 서툴러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럼 일본인으로 귀화하시지 그랬어요. 그러면 대상자가 되었을 텐데요.”

 

과거처럼 자이니치를 대놓고 ‘반(半)쪽발이’로 취급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국민/다문화로 이분되는 한국사회의 제도와 인식에서는 자이니치들의 서투른 한국어와 ‘일본스러움’은 언제든지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만난 재한재일 여성들은 “어학당을 다니고 싶어도 아이를 키우느라 그러지 못했다”, “엄마로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적을 유지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똑똑하고 한국어가 유창한 ‘대한외국인’을 선호하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말이 서투른 재외국민’이 설 자리는 있는가. 이처럼 평등과 차이의 양립이라는 오래된 쟁점을 제도와 인식의 수준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코로나 시대, 또다시 밀려난 ‘주민의 권리’

 

앞에서 살펴본 보육료 소송은 주류사회(한국인)와 소수자(자이니치)들이 서로 마주치며 복합적인 토론과 숙고의 과정에서 대항 담론을 만들어낸 성과였다. 즉 공공성 속에서 타자를 고려하는 법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하나의 모델을 잘 보여줬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재난 시대에 드러난 것은, 당사자들의 인정투쟁의 성과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는 채 묻어가는 현실이다. 서울시의 재난긴급생활비 지급과정에서 애초 재한자이니치들이 거부되었던 사실은 나를 또다시 경악하게 했다. 즉시 정보교환을 하고 재외동포 활동가와 함께 문제 제기를 했더니 서울시는 신속히 방침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그저 몰랐을 뿐, 의도적인 차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에는 의도적 차별이 아닌 무지와 무관심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차별을 양산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우리는 ‘잉여’ 주민으로 남아야 하는가?

 

▲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관련 민원결과 방침변경 내용

 

신청하다가 거부된 사례를 보면, 공무원들은 재외국민 및 재외동포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경우도 많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재외동포를 지역주민으로 취급하는 시스템과 인식의 근본적인 부재를 시정해야 한다. 보육료 소송에서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면 그 내용을 다른 복지 시행규칙에도 반영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호소와 고발에 의존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 자체가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고 있다.

 

한국의 초기 코로나 방역체제가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재난지원금 지급도 신속히 진행되었던 것은 국가 차원에서의 IT 인프라와 주민등록제도를 바탕으로 한 개인정보 DB가 일상적으로 정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재난 시에 ‘큰 정부’가 발휘하는 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사회적 관리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차별이나 격차, 사각지대에 대해서 사람들은 예외적이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행정 안전망에서 미리 제외되는 사람들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상상 이상으로 둔감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점도 기억해둬야 한다.

 

▲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민변 공익변론센터, KIN(지구촌동포연대)가 공동 기획하여 ‘코로나 시대 재외동포와 이주민이 직면하는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사회토론회를 개최했다.

 

복수의 홈(home)에 대한 정당한 권리

 

재한재일의 요구는 자신들에게도 복지 지원금을 달라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7백만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이미 다문화, 다국적 집단으로 거듭났다. 그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역사적 무관심도 크게 작용하였다. 자이니치들의 인정투쟁은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의 표명이자, 소수의 ‘잘사는 나라’에서 온 자신들의 문제가 늘 외면되는 현실을 시정하려는 것이다.

 

“재외국민도 국민입니다.” 이 같은 국민주의 논리를 벗어나 ‘거주’를 바탕으로 한 주민권의 논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내국인을 핵심으로 하고 그 주변부에 재외국민, 외국적 동포, 탈북자,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등을 조건부로 배치하는 선별적이고 위계화된 주민관리를 다시 봐야 한다.

 

이동하는 삶에 따라 정체성이 자동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즉 A→B→C가 아닌 A+B+C처럼 중첩되어가는 경험과 이야기 중 한 가지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제도와 인식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재한재일에게 일본은 자신의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자 지금도 가족들이 사는 고향이다. 한편 한반도에 산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인 제주나 경주, 그리고 과거에 방문한 평양이나 원산을 동시에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상상하고 일상적으로 경계를 허물어가는 것, 한국에서 자이니치로 산다는 것은 귀찮지만 그런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남・북에 걸친 상태를 특권으로 보는 주류사회의 시선에 대해 재한자이니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경험을 역사화하고, 나고 자란 일본과 조국 한반도의 이중(삼중)의 이동권을 정당한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즉 복수의 홈(home)에 대한 권리이다. 홈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동과 함께 중첩되어 가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 이 글은 「낯선 이웃, 재일조선인」(『황해문화』 2016년 봄호)을 바탕으로 수정·보완한 내용입니다.

 

[필자 소개] 조경희. 일본 출생. 성공회대 열림교양대/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역사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 일본학, 식민주의, 이주, 소수자 문제 등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주요 공저로 『전후의 탄생: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2013)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2013) 『아시아의 접촉지대: 교차하는 경계와 장소』(2013)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2017) 『〈나〉를 증명하기: 동아시아의 국적, 여권, 등록』(2017) 『두번째 ‘전후’: 1960-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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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m 2020/10/02 [16:56] 수정 | 삭제
  • 상당히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는, 민망하지만 잘 알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져있던, 현재진행형의 일이네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 j 2020/10/02 [12:03] 수정 | 삭제
  • 제도라는 게 포용이 먼저가 아니라 배제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이제 미래는 포용과 이해로 가야하지 않을까, 안그러면 디스토피아가 될텐데 하는 위기감이 들어요. 그런차에 좋은 독서를 했습니다. 새로운 배움을 얻게 해준 기사 잘읽었습니다.
  • ㅇㅇ 2020/09/30 [13:37] 수정 | 삭제
  • 나도 자이니치분 만났을 때 내가 이해도가 많이 딸린다는 걸 알게됐는데 좀 찔리네요..
  • 그렁 2020/09/30 [10:44] 수정 | 삭제
  • 행정이 이해를 못한다는 말이 맞을 거 같습니다. 배운 게 없어서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독자 2020/09/30 [09:02] 수정 | 삭제
  • 힌국인이란 무엇일까.. 관념이 실제로 사람들을 배제하고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걸 느낄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