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도 ‘나답게’…비혼여성 공동체의 화두는 상호돌봄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비혼들의 비행, 비비

| 기사입력 2020/10/14 [16:55]

노년에도 ‘나답게’…비혼여성 공동체의 화두는 상호돌봄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비혼들의 비행, 비비

| 입력 : 2020/10/14 [16:55]

*기자단은 7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획을 통해 만났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 속에서 ‘일’하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삭제되는 관점이 무엇인지 묻고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은 그렇게 탄생한 여덟 편의 기사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자단]

 

나는 ‘비혼’(非婚)을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처음 접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결혼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비혼의 삶은 나의 이상이었다. 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앞으로도 나에게 만족스러울 삶이 무엇일지 찾아나가고 싶다. 비혼을 택해 비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사회는 이성애 혼인과 혈연 가족을 ‘정상적 관계’로 보았고, 복지와 제도는 그 ‘정상성’에 부합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졌다. ‘정상성’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제도 바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경쟁에서 각자 ‘잘’ 살아가는 것이 비혼의 이상과도 같이 얘기되곤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더이상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달리기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 지원과 제도의 미비,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가족’의 지원 없이 비혼여성은 어떻게 아프고 늙어갈 수 있을까. 익숙했던 내가 변해가는 것을 무너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노인여성 생활공동체를 준비하는 비혼여성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 공간비비에서 열린 “저기 비혼여성이 오고 있다!”   ©공간비비

 

비혼여성의 독립과 연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화두, ‘돌봄’

 

비혼은 혼자서 살아내는 ‘단독비행’처럼 얘기될 때가 많지만 동시에 ‘따로 또 같이’ 살아온 비혼공동체가 있다. 결혼하지 않고, 원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이 꼭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관계들을 이뤄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작은 움직임들이었다. 바로 ‘비혼들의 비행’(이하 ‘비비’)이다.

 

비비는 전주여성의전화의 비혼여성 소모임을 통해 서른 전후의 여성들이 ‘나답게 살기’ 위해 2003년 처음 모였고, 2006년 ‘비혼여성들의 공동체’로 정체화했다. 또 이들은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을 만들어 비혼여성과 지역사회 여성들의 네트워크 공간이자 비혼여성의 삶을 사회에 알리는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간비비는 올해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2020 성평등 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여성노인 공동체 주택 준비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비혼여성 공동체로 돌봄을 고민해온 비비는 돌봄이 필요하게 될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상호의존과 돌봄을 비혼 할머니가 되었을 때에도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사는 것이 비비다운 노년일지 고민하고 있다. 비비의 김란이, 봄봄, 이미정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비혼공동체 비비와 공간비비에 대해 알고 싶어요.

 

봄봄: 공간비비는 비비 멤버들과 다른 비혼여성들을 포함해 11명의 조합원이 운영하고 있어요. 공간비비를 이용하는 분들은 50여 명의 비혼/기혼여성들고요. 조합원 11명 중에서 저희 세 명이 공간비비에서 상근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이들의 모습. 왼쪽부터 김란이, 봄봄, 이미정.   ©촬영: 이지구

 

김란이: 공간비비 조합원들의 2/3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1인가구 네트워크지만, 생활공동체를 표방하거든요. 공간비비는 네트워크 공간이에요. 정보나 자원을 연계해준다거나, 모임을 하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서로 나눠요. 조합원들은 이곳에서 직장, 주거, 가족 이런 고민을 나누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고 있어요.

 

Q. 오랜 시간 함께 해오셨으니 비비 안에서 서로에 대한 돌봄도 이뤄졌을 것 같아요. 비비에게 돌봄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란이: 2003년에 소모임으로 시작해 2006년부터 우리 스스로를 비혼여성 공동체로 소개했을 때부터, 비혼여성 공동체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고민해왔어요. 30대 때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고, 개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필요했어요.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면서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중요해졌죠, 또 우리만 살 수는 없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공간비비를 만들었어요.

 

관계라는 건, 결국 어떤 방식이든 돌봄을 통해서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공동체도 결국 돌봄이고, 살아가는 것도 결국 돌봄이고, 관계도 돌봄이고.

 

봄봄: 비비는 늘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화두로 잡아왔는데, 거리감만 다를 뿐 어떤 방식으로든 구성원들이 ‘부모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돌봄이라는 주제는 비혼여성 자신의 노화에 대한 문제이면서, 더불어 부모 돌봄의 문제이기도 해요. 우리는 혼인하지 않고 법적/제도적 틀에서 벗어난 비혼여성들이 노년의 삶에 필요한 돌봄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여성노인 공동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Q. 비혼여성으로서 돌봄에 대한 고민은 부모를 돌보는 것이 한 축이라면,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이 다른 한 축이라는 얘기네요. 비비의 구성원이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때 비비 내에서 돌봄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김란이: 비비는 오랜 시간을 같이하다 보니 서로의 삶에 대해서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고 무엇이 힘든지, 가족 상황은 어떤지를 거의 알고 있거든요. 누가 아프면 우리나라는 일단 가족이 책임지잖아요. 가족돌봄이 안 되면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러지 못하면 더 어려움에 처하는데…. 가족이 돌봐줄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사회 서비스가 아니라 신뢰하는 비비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비비 내에서는 나를 의탁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생기죠.

 

▲ 2019년 “비혼여성, 부모돌봄의 경험을 나누다” 행사에서.   ©공간비비

 

이미정: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만났을 때는 비혼인 게 서로 좋고 즐거웠어요. 근데 그 이상 만나다 보니까 서로가 각자 질환이나 질병으로 아플 때가 생기더라고요. 친한 사람이 장기입원이나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간병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지인들 중에 간단한 수술을 하는 경우에 머리를 감겨준다든지, 식사를 챙겨준다든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준다든지. 혼자 살아가는, 기혼인 분도 한두 분 있었는데,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경우에 도움을 요청하시면 우리가 가서 그 사람의 아픔이라든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돌봄을 함께 나눴어요.

 

병원 간병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요청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개인은 가족이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하고, 가족이 아닌 친구의 손을 빌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돌봄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보호자가 동반하거나 상주해 개인이 간병에 큰 책임과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희생이나 봉사를 강요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해, 사회 안에서 누구든 간호간병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Q. 비비 구성원들 간의 돌봄은 부모돌봄과는 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김란이: 병의 원인이나 치유가 분명하지 않은 질병을 경험하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의 삶을 공부했어요. 공부하지 않으면 점점 그 친구에게 공감하기 어려웠고, ‘정상’을 자꾸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었죠. 가족은 사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돌보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아니어서 생기는 ‘거리감’ 때문에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공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서운한 게 있으면 말하고, 모르는 주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을 거쳤어요.

 

또 다른 차이는 수술 동의권이 혈연가족에게만 있다는 점이에요 그 혈연 중에서도 부모 또는 오빠를 찾죠. 제가 옆에 있어도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원가족과) 전화로 연결해줘야 했어요. 성인인데 환자가 직접 서명하면 안 되느냐고 요구했지만, 돈이랑 책임소재 때문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Q. 비비 구성원들은 현재 1인가구로 같은 공공임대주택 안에서 살고 있잖아요? 노인여성 생활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미정: 각자의 삶의 형태와 기호를 따르다 보니, 전주시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우리에게 적합하고 입주하기도 손쉬운 방법이었어요. 지금 20가구 정도가 1인가구로 살고 있는데 느슨하고, 원할 때는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더 나이가 들고, 고령사회에서 고령화된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될 거잖아요, 그렇다면 비혼인 나는 누구랑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1인가구로 따로 살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해진다든지, 질환이 생겨서 혼자 독립적인 삶을 꾸리지 못한다면 노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우리가 노인이 되더라도 수동적으로 갇힌 노인보다는, 나와 우리가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움직여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독립적인 주거, 경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의 책임을 우선하지만, 노인여성 공동체로 살게 될 때는 개인의 영역이 축소되고 불편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보호받는 노인으로서가 아닌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공간비비 상근활동가 이미정 씨.   ©공간비비

 

Q. 주체적인 노인여성 공동체에 대한 기획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비 구성원들 다수가 50대인데, 왜 지금 노인여성 공동체를 준비하는 건가요? 

 

김란이: 지금 사는 곳은 기한이 있어요. 반영구임대라서 50년인데, 그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다른 주거를 찾아야 하거든요. 그전에, 우리가 무언가를 도모하고 움직일 수 있을 때 이걸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빠른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노인여성 공동체 해외 탐방을 갔을 때(비비는 2019년에 노년여성 공동체 주택인 프랑스 ‘바바야가의 집’과 영국 ‘뉴그라운즈’를 방문했다), 그분들이 우릴 보고 너무 딱 좋은 나이에 시작한다고 했어요.(웃음) 그분들은 60대 넘어서 준비하기 시작해서 10년, 20년 지나고 난 뒤에야 현실화가 됐죠. 그러다 보니까 처음에 도모했던 사람들은 10%도 입주를 못했거든요. 뉴그라운즈는 6명 중 1명, 바바야가는 20%만 입주했어요.

 

환상이 그저 쥐어지지는 않을 거잖아요. 삶은 계속 준비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비비는 시기를 따로 정한 게 아니고 그때그때 주어지는 걸 고민하고 있어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까. 이 고민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왔고. 우리는 ‘적응의 여왕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웃음) 이 고민들 속에서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독립과 연대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 돌봄 아닐까.

 

이미정: 우리 사회에서 50대는 해야 할 게 많고 사회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나이로 보는 그런 기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르다고 판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해야 70-80대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가서 공동체를 꾸리려고 하면 아마 우리에게는 자원을 모을 힘이라든지, 사회적 동의를 얻어낼 힘이라든지 그런 게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을까.

 

노인공동체가 지역에 있긴 했어요. 실버타운의 개념으로 노인들이 주체적으로 사는 공동체가 있다는 걸 알아서 좀 희망을 얻었고, 우리는 비혼이라는 우리만의 특색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노년여성 공동체를 생각했을 때 주거는 당연히 따라오는 문제 같아요. 비비가 한국에서 주거공동체를 만든다면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됩니다.

 

김란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돈이 있어서 원하는 주택을 지으면 되지만.(웃음) 지금 지자체가 제공하는 사회주택은 너무나 획일적이에요. 계급과 젠더, 장애 여부 등 개인마다 차이가 얼마나 많은데 청년이다, 노년이다 하면서 하나의 범주로 퉁쳐서 함께 살라는 게 말이 되나요. 그리고 저소득이라는 이름으로 특징 지어두니까 ‘못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낙인찍힌 달까요? 그 사람들은 수혜를 받는 사람들이지, 각각 독립적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얘기되는 거예요. 시민권이 아니라 복지수혜처럼 되는 거죠.

 

비비가 지향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들의 시민권이 보장되는, 우리가 최종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는, 그리고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우리의 가치와 지향이 보장되는 공동체에요. 일단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주택이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곳은 저소득이나 노인, 이런 식으로 대상을 구분 짓고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운영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직접 운영을 맡겨보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어요. 각자한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돌볼 수 있는 게 어떨까 하고요. 그리고 원한다면 평생 자기가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그런 주택이었으면 좋겠어요.

 

Q. 비비가 만들 비혼노인 여성공동체는 어떤 특색을 가진 공간이 될까요?

 

김란이: 노년이 되면 다른 공간보다 주거 공간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노년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겠죠.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삶을 기획하고 협업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공동체 비비와 공간비비가 함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어요. 나중에는 그 공간 자체가 역동적이 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집 안에서 무언가를 도모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2019년 비비에서 개최한 <비혼여성을 위한 사람책 도서관> 행사에서  ©공간비비

 

Q. 비비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자 앞으로도 계속될 건 ‘공부’인 것 같네요. 당연하게 보이는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세요. 

 

김란이: 돌봄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고,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져요. 그런데 사실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정상적’인 사람들만 살아가는 사회는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게 사회인데,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생각해보는 게 중요해요. 어떤 성별은 돌봄은 너무나 당연히 ‘받는 거’라고만 생각하죠. 돌봄노동은 성별화되어 있어요.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계속 공부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해왔어요. 공부 덕분에 가능했고, 당면한 주제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삶을 더 상상해볼 수 있었어요. 공동체가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람들이잖아요.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시도해보고 다시 이야기하고 고쳐나가는 과정들을 통해 공동체는 유지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계속 부모돌봄의 키워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게 뻔하고 다들 하는 거 같지만 그 안에 엄청난 것들이 있다는 거죠. 보호자의 어려움, 끝없는 시간과 고민,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돌봄에 대해 알 수 없어요. 사회적 돌봄이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봄이 왜 중요하고 왜 힘든가에 대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Q. 노인여성 공동체를 준비하며 공부해나가면서 생긴 개인적인 변화가 있나요? 또 이 공동체에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얘기해주세요.

 

봄봄: 40대가 되니까 생활공동체 안에서 몸이라는, 이 육체성이 너무 확연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외면하고 싶었어요. 노인여성 공동체 얘기를 할 때도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불평하고(웃음). 노년이라고 하면 내가 내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떠올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게 되면 노년에도 ‘받아들임’이 어렵지 않을 것 같거든요. 공부와 논의의 과정 안에서 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들이 생긴 것 같아요.

 

이미정: 1인 가구로 살았던 경험이 저한테는 지금도 좋고 만족스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나이 들어 돌봄을 필수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리란 게 예상이 되죠.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가족이랑 비비가 가장 가까운 지인이에요. 이 지인들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서 ‘돌봄을 서로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죠. 제가 이제 일인가구로서 살아갈 수 없을 때, 공동체에 적응해야 하는 것들(웃음). 혼자만 이기적으로 살 수 있는 미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동체에 같이 기여하는 삶을 꿈꿔보고 싶어요. 계속 삶의 훈련인 것 같아요. 공동체 인간으로서의 훈련.

 

봄봄: 자기돌봄과 상호돌봄이 공존하며 균형을 이루고, 서로 지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답게, 함께 살기

 

비비는 ‘나답게 살기 위해’ 비혼을 택했고,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서로가 필요하기에 생활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여성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서로와 이어지기 위해 서로를 돌봐왔던 만큼, 비비에게 나이가 들고 연약해지는 것은 물론 두렵기도 하지만 마주해야 하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공부하며 적응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비비를 만나고, 비혼으로 늙어갈 용기가 조금 더 생긴 것 같다. 비비는 다양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 나다울 수 있기 위해 노력해왔다. 비비를 만나며, 나답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가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들을 되묻고, 다른 삶을 인정하고 시도하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혼이어도, 아파도, 노년이 되어도, 돈이 없어도 나답게 그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기에.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페미니즘으로 노동을, 노동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성평등 노동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회원모임 <페미워커클럽>을 통해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삶에 박혀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 가입 및 소모임 참여는 kwwa@daum.net 메일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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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0/10/17 [10:56] 수정 | 삭제
  • 벌써 노년을!!이라고 생각했다가 마음 고쳐먹었어요 ㅎㅎ
  • lrh 2020/10/15 [17:01] 수정 | 삭제
  • 오, 이제 한국의 노인여성 공동체에 외쿡에서 탐방 오는 겁니까! ^^ 좋은 모델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전국 시도 단위별로 하나씩은 있어야죠. ㅎㅎ
  • 2020/10/15 [10:16] 수정 | 삭제
  • 비혼여성들의 모임이 이렇게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 있다니 놀랐습니다. 비비! 너무 멋져요. 한번 찾아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