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퀴어들의 마을

<주거의 재구성> 집도 가족도 이웃도 ‘퀴어하게’

시시선 | 기사입력 2020/10/15 [17:36]

당신이 모르는, 퀴어들의 마을

<주거의 재구성> 집도 가족도 이웃도 ‘퀴어하게’

시시선 | 입력 : 2020/10/15 [17:36]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실재한다. 여기, 지도에는 없지만 그래서 시작과 끝의 경계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마을이 있다. 망원동에는 퀴어들이 산다.

 

[※ 이 글에서 지칭하는 망원동은 지도에서 정의하는 망원동과는 다릅니다. 퀴어들의 마을 ‘망원동’은 실제 망원동의 인근 2~3개 동네까지 포함하고 있지만, 망원동을 구심점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망원동’이라고 칭했습니다. 구성원들 또한 이 가상의 경계를 가진 동네를 ‘망원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내 독립의 시작

 

2019년 어느 새벽, 쿵쾅거리는 가슴을 한 번 다독일 정신도 없이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몸에 걸친 옷가지와 노트북 그리고 품에 안겨있는 늙은 내 강아지. 그게 내가 이 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빠 그리고 심한 호더(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일종의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 증세를 보이는 엄마와의 한 집 살이 속에 매일 밤 탈출을 상상한 건 맞지만, 이렇게 갑자기 집을 나올 생각은 아니었다. 그날은 큰 싸움 끝에 엄마가 집을 나갔고 나는 아빠에게 분풀이를 당할까 무서웠다. 불안해서 도저히 한 집에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평생 내게 집이란 그런 곳이었다. 잠만 자러 가는 공간. 그렇지만 잠조차 편히 들 수 없는 공간.

 

아빠가 술을 먹고 잠이 든 틈을 타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달칵, 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뒤통수에 닿자마자 나는 큰 길가까지 쉼 없이 뛰었다. 뜀박질한 탓인지 아니면 아빠가 쫓아올까 긴장했던 탓인지 가슴이 쿵쾅대는 소리가 온몸을 웅웅, 울릴 정도였다.

 

새벽에 버선발로 내가 있는 곳까지 와준 애인 윤정의 부축을 받으며, 친구 고은의 집으로 향했다.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그제야 모아놨던 밭은 숨을 크게 뱉었다.

 

달리는 택시의 창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 어느 새벽, 갑작스러운 탈출이 내 독립의 시작이었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와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그게 갑작스러운 내 독립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찾아서 

 

친구 고은은 제게도 좁을 7평짜리 원룸에 살면서 선뜻 나와 내 강아지에게 몸 누일 자리를 내줬다. 친구의 호의로 작은 원룸에 자그마치 셋이 살게 된 것이다. 덕분에 당장의 걱정은 덜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 살 집을 구해야 했다.

 

그동안 내가 봐온 대부분의 사람은 으레 학교나 직장 등 자신의 공적 생활을 기능적으로 해내기 용이한 위치로 집을 골랐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앞으로의 거주를 ‘자취’가 아닌 ‘독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출로부터 시작된 새 삶이었지만, 잠시 머무르는 임시의 삶이 아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진짜 삶’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마땅히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본가’라는 말 또한 의식적으로 쓰지 않는다.)

 

‘자취가 아니라 독립을 하겠어!’ 이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고른 동네가 망원동이다. 결심이 장대한 것 치고 망원동을 고른 이유는 조금 터무니없었다. 그저 마음 기댈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거. 누군가에게는 ‘고작’일 수 있는 이유였지만 이 동네에 살게 된 이후로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 대출을 낀 월셋집 살이 처지지만, 내 의지로 꾸린 첫 집이기에 애정이 크다.   ©시시선

 

나를 망원동으로 이끈 건 유진과 서연이었다. 유진과 서연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사는 퀴어 가족이다. 그들은 종종 나와 내 애인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만들어주곤 했다. 퀴어 연인이 가족을 이뤄 한 집에 산다는 것. 그 집의 식탁 크기만큼으로 타인에게 온전한 환대를 베풀 수 있다는 것. 그들의 삶에서 나는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 같다.

 

나와 윤정은 유진과 서연의 집에서 누린 환대의 기억을 안고 망원동으로 왔다. 그리고 가족이 되기로 했다.

 

당신이 모르는 망원동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망원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 이런 식일 거다. 요즘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동네, 시장이 유명한 동네 정도.

 

망원역 2번 출구 앞 망원시장 입구를 지날 때면 흥미로운 그림이 펼쳐진다. 한껏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온 젊은이들과 편한 차림으로 장바구니를 든 동네 사람들이 섞여 전통시장을 걷는 모습. 주택가 사이에 작은 카페와 소품샵이 숨어있고, 동네 이름 뒤에 ‘맛집’이 검색어로 붙는 서울의 번화가이면서도 어쩐지 도시보다는 동네라 부르는 게 어울리는 곳. 하여튼 힙한 동네 망원동.

 

그런데 자세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퀴어들이 산다.

 

나는 망원동에서 유진과 서연 외에도 많은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수빈과 다은은 스무 살 때부터 10년을 넘게 만나 지금은 슬하에(?) 강아지 한 마리를 둔 가족이다. 우나와 달기린은 헤테로(이성애자) 중심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의아할 가족이다. 둘은 성별도 다르고 연인도 아니지만, 서로를 돌보는 하우스메이트이다.

 

이들 외에도 망원동에는 나처럼 각자의 삶 속 치열한 싸움 끝에 이곳에 자리 잡게 된 퀴어들이, 자신이 선택한 존재와 가족을 이루고 사는 친구들이 많다.

 

정기적인 모임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도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 보니 자주 모이게 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서로의 집에 놀러 가 시끌벅적하게 저녁 식사를 한다. 지난 추석에는 마치 대가족처럼 다 같이 모여 전을 부치기도 했다.

 

서로 빈손으로 놀러 가는 법이 없다 보니 우리 집 찬장에 남의 집 반찬통이 돌고 도는 건 늘 있는 일이 됐다.

 

급하게 집을 비울 일이 생긴 친구를 대신해 반려동물을 돌봐주기도 한다.

 

친구 금개가 만든 ‘망원동의 친구친구’라는 오픈 카톡방에는 20명 남짓한 동네 퀴어들이 있다. 오픈 카톡방에 초대된 퀴어들끼리는 종종 농가에서 과일이나 반찬을 공동 구매하거나, 반려동물용품을 나눔하고, 동행이 필요한 사람과 병원에 같이 가주기도 한다. 일면식 없는 사이일지라도 같은 동네에 사는 퀴어라는 이유로 소속감과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 추석에 모부(母父)를 만나지 않는 퀴어들. 지난 추석엔 명절 기분을 내려고 다 같이 모여 전을 부쳐먹었다.   ©다은


동네 퀴어 친구들끼리 가장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서로의 안부에 관심 두기이다. ‘정상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숨을 조여오는 팍팍한 서울살이에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의 안위를 챙겨주기.

 

왜 우리 동네엔 퀴어가 많을까?

 

왜 망원동엔 퀴어가 많을까? 동네 친구들과 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하다 보면 꼭 이 주제로 몇 시간을 떠들게 된다. 망원동에는 퀴어 전용 ‘이쪽 술집’이 없다. 그런데 어떤 식당, 술집에 가면 ‘어라? 이 테이블도 저 테이블도 다 퀴어잖아?’ 하는 순간이 자주 있다.

 

한 번은 동네에 비건(vegan, 식물성 음식만 먹으며 동물을 희생시켜 얻은 의류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등도 사용하지 않음) 옵션이 되는 중식당에 갔더니, 자그마치 세 테이블이 동네 퀴어 지인들인 적도 있다. 이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방금 들어온 손님이 동네 퀴어 친구일 때도 별로 놀라지도 않고 인사한다. 그렇게 작은 동네도 아닌데 아주 구내식당이 따로 없다.

 

종종 어떤 가게는 사장님 두 분이 퀴어 부부일 때도 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 다 안다. 그런 가게에서는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니 자주 찾게 된다. 가끔 사장님이 ‘둘이 애인 사이야?’하고 먼저 물어올 때도 있다. 다른 데서는 아무리 애인과 스킨쉽을 해도 ‘자매가 우애가 좋네’, ‘친구랑 진짜 친한가 봐.’ 소리나 듣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가 무슨 지상낙원쯤 되는 건 또 아니지만, 망원동은 적어도 서울살이를 하는 퀴어들에게  그나마 덜 피곤한 동네일 것이다. 동네 아무 식당에 들어가도 가방에 무지개 뱃지를 단 사람이 앉아 있는 동네.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동네. 여자 둘이 스킨쉽을 해도 무난하게 사람들 틈에 묻어갈 수 있는 동네.

 

홍대부터 시작해 상수, 합정을 지나 이제 망원동 집값도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나와 내 친구들은 이 동네를 당분간은 떠날 수 없을 것이다.

 

▲ 6호선 망원역 입구  ©시시선

 

망원동에 퀴어가 많은 이유? 친구들과 내가 추측한 바는 이렇다. 게이는 종로, 트랜스젠더는 이태원이라면 “여성” 퀴어들에게는 홍대가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성” 퀴어 커뮤니티 역할을 하던 홍대의 ‘이쪽 클럽’과 ‘이쪽 술집’을 중심으로 생긴 맥을 이어오다가 치솟는 땅값에 밀리고 밀려 망원동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동네에 진보 정치나 생태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고 한국여성민우회 같은 여성단체들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뭐, 이유가 어찌됐든 이 동네엔 퀴어들이 왕왕 있는 게 사실이다.

 

서로에게 안락한 ‘거실’이 되어주는 퀴어 이웃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 망원동에서 퀴어 친구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삶은 내게 말 그대로 ‘집’이다.

 

나는 평생을 서울의 부모님 집에서 살았지만, 가정폭력 가해자와 심각한 호더의 집에 산다는 것은 그동안 내게 ‘집이 있지만 없는 채로 사는 것’과도 같았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나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도, 누군가를 집에 초대에 환대를 베풀어 본 경험도 없었다. 공간이 실제로 내 주체성 그리고 주변인과의 관계까지도 제한했다.

 

망원동에서 내가 애인과 함께 얻은 집은 사실 집보다는 방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는 크기다. 내게 허락된 물리적 공간은 방 하나 크기지만, 친구들과 함께 구축한 공동체 그리고 가상의 마을 덕분에 심리적으로는 더 넓은 ‘집’에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느슨한 가족이, 그리고 안락한 거실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나는 반려견 핼리와 함께 사는 퀴어 커플 수빈과 다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둘은 핼리의 엄마야 아니면 언니야?” 수빈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도 언니도 아닌데? 그냥 핼리한테 나는 수빈이야. 다은은 다은이고.” 그래, 우리는 정상성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서도 제 손으로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 그날 수빈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퀴어하다’는 건 어쩌면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더 퀴어한 것을 꿈꾼다. 나와 내 친구들이 서로의 연인 혹은 친구와 법적 가족이 되는 꿈. 신혼부부 전세대출 같은 제도를 통해 2인 가구에 걸맞은 주거 공간을 보장받는 꿈. 복잡한 서울과 값비싼 망원동을 벗어나서도 지금처럼 다 같이 이웃사촌, 아니 이웃가족으로 사는 꿈.

 

나와 친구들이 망원동에서 하는 이 시도가 더 멀리 확장될 수 있기를,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주거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이 퀴어해지는 것이다.

 

(* 글에서 언급된 인물들의 허락을 받고 작성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 Q 2020/10/17 [10:55] 수정 | 삭제
  • 망원쪽으로 집값 따라서 가는 거겠죠. 거기도 비싸져서... 그래도 퀴어 지인들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동네가 아직 있다는 게 참 소중합니다. 글 멋지네요~
  • 당근 2020/10/16 [14:39] 수정 | 삭제
  • 망원동엔 왜 퀴어가 많을까 저도 되게 궁금했던 거라 재밌게 읽었습니다!
  • 양파 2020/10/16 [11:25] 수정 | 삭제
  • 이런 글 좋아요!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