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군’ 선별…학교는 우리가 어떤 ‘몸’이길 바라는가[이제는 페미니즘] 자기관리 잘하는 젠더화된 시민 양성소?<기획의 글>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청이 증대하고 있는 시대, 페미니즘 교육의 개념과 의제, 실천의 역사와 현재성을 탐색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한다. “이제는 페미니즘” 연재 필진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들이다. 이제IGE는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학 연구자 집단이다.
교과과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잠재적 교육과정’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보다 확실히 깨달은 바가 있다면, 배움은 교과서 내용이나 선생님의 말씀 외에도 ‘학교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다는 점이다. 교육이 명시적 교과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교의 여러 규칙과 규율, 교육과정 내에서 실시되는 각종 검사와 활동은 잠재적 교육이자 보충적 교육으로서, 우리가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앞선 신그리나 연구원의 연재 글이 성에 대한 직접적 교육내용을 분석했다면(기사: 교육 현장에서 ‘위험한 것’이 된 성평등 교육 http://ildaro.com/8920), 이번에는 학교의 잠재적 교육이 우리가 몸과 젠더, 성차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저 우리의 인식이 아직도 너무나 고루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성인식에 대한 통계수치들은 그래도 전보다는 좋아졌다고 나오지 않던가. 또한 남성과 여성의 해부학적 차이가 왜 그토록 중요한 문제로 강조되는 걸까? 이러한 흐름은 심지어 페미니즘 안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왜 성평등 교육은 끊임없이 ‘나’에 몰입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그토록 돌봄과 연대를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의문들을 해소할 단초를, 학교의 잠재적 교육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학교의 신체규율: ‘체력은 국력’에서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학교는 우리의 신체를 규율하고 정상성의 의미를 구성해온 주요한 시공간이다. 근대 국가에서 학생은 국가가 활용해야 하는 자원으로 인식되어왔고, 체계적인 몸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학교는 바로 이를 수행하는 기관 중 하나였다. 체질, 체격, 신체검사와 체능검사 등 신체의 표준화, 등급화, 정상화와 관련한 작업들이 학교 보건체계의 확립과 입시제도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학교는 당대의 이상적이고 건강한 신체상을 각종 체육활동을 통해 구현했다. 체력 증진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체의 정상성은 ‘남성 신체’로 대표되었고, 건강한 시민의 신체란 늘 성별화된 신체이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학교에서 과거와 같은 신체활동이 대거 축소되었다. 학교는 더 이상 학생의 신체를 직접 소환하고, 전시하고, 규율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연례행사인 운동회와 체육대회 등의 의미와 형식도 변화하였다. 교실에서 줄지어 몸무게와 키를 재는 모습도 볼 수 없다. 이제 신체 측정과 건강검진은 학교에 연계된 병원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학교가 더는 신체규율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학교는 물리적 신체의 성장이나 전시에 몰입하지 않는 대신, ‘정신건강’에 대한 강조를 통해 새로운 신체규율의 방식을 전개하는 중이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라는 슬로건은 학교 정신건강 사업이 구성하는 새로운 내용을 표현한다. 이제 학교는 학생의 건강 지표를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교에서 실시되는 정신건강 검사일 것이다. 신체검사나 체능검사가 학생들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중심으로 정상성의 의미를 구성해왔다면, 정신건강은 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을 통해 구성되고 있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와 ‘관심군’ 선별
아래 안내문은 “학생의 정서·행동 문제를 조기 발견하고 그 악화 방지, 학습 부진과 학교생활 부적응을 예방”(2020 교육부 매뉴얼)하고자 실시되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이하 <특성검사>) 결과안내문 중 일부분이다. 학생이 정서행동의 문제를 가졌는지를 판단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정상군, 관심군을 구분하여 통보해준다. 관심군은 일반관리군과 위험관리군으로 구분된다.
이 많은 것들을 불과 34문항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선별검사(screening test)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선별검사는 전문 의료진이 엄밀한 도구와 평가에 기준하여 내리는 진단(diagnosis)과는 다르다.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로 특정 질병이나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조기 발견하려 할 때 사용하는 간소화된 도구다. 대부분 자가 체크의 형태로 실시되며, 그 결과는 임시적이고 잠정적이다. 효율적이라는 장점은 있겠지만 섣불리 그 결과를 진단결과와 착각,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이런 차이들은 잘 고려되지 않고 있다. 검사가 치러지는 4월이면 검사 과정과 결과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하는 청소년들의 고민 토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 관심군으로 분류될 때의 공포와 우려들이다. 정말 비밀은 보장되는지, 학교 생활기록에 남는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한 학교에서의 차별은 정말 없는지 등이다. 관심군이라는 분류가 ‘문제아’, ‘일탈학생’과 같은 낙인의 표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이런 오해를 근거 없는 예민함이나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누가 관심군인지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야 하지만, 일상 대부분을 공유하는 학교생활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군, 위험관리군과 같은 보건예방 관점의 용어는 교육 현장에서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언론은 <특성검사>의 결과를 정신건강에 대한 ‘진단’과 구별 없이 활용, 왜곡하고 있으며, 관심군 학생을 위기에 놓인 존재가 아니라 위험한 존재로까지 표상하며 편견을 강화한다. <특성검사>는 그 예방목적에도 불구하고 낙인과 차별의 감각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경쟁자원이 된 심신, 자기관리하는 주체
<특성검사>의 실시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들을 의식하며 세부적 용어 변경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개선 노력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다 2017년에는 누가 보아도 ‘부정적인’ 내용만을 묻고 있던 문항 구성을 순화시키는 큰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의 긍정적 자원”도 조기 발견하고 이를 통보하여 “부모가 학생을 이해하는 데 돕고 학교에서는 생활지도에 활용하기”(교육부 매뉴얼) 위한 취지에서 성격유형에 대한 24문항이 추가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새롭게 추가된 성격유형에 대한 검사 결과안내문의 일부이다.
다음의 <표 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기통제부진' 요인에 해당하는 검사 문항은 부모와 교사에 대한 반항, 학업 집중력 저하, 디지털 기기 중독, 교칙 위반 등의 여부를 묻는다. 학교가 바라는 순응적 주체를 제시하고, 이에 어긋날 경우 정신건강의 이름으로 위험 요인화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위 문항에 부정적 답변의 점수가 높을수록 자기통제 관련하여 문제가 있는 관심군으로 분류될 수 있다.
‘관심군’으로 분류된 원인이 되는 문제적 정서행동과 ‘정상군’이 지향해야 하는 자기계발 방안들을 함께 제시하는 <특성검사>는 결국 우리의 심신을 경쟁자원의 하나로 파악하게 만든다. 이런 경향은 정신건강 관리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다양한 잠재적 교육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살예방, 비만예방, 흡연예방, 영양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우리의 몸이 생존경쟁에서 너무나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본질적인 기질을 조기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능동적인 주체만이 ‘건강’한 주체이며 ‘정상’의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
안전도, 평등도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
이런 주체 구상은 결코 젠더중립적이지 않다. 위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특성검사>에서 제시되는 롤모델이 남성뿐이라는 점은, 학교의 정신건강 관리체계의 목적이 실상은 자기관리에 능동적인 주체를 만들어내는 데 있을 뿐 아니라, 그럼으로써 젠더화된 주체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만예방이나 흡연예방, 자살예방 교육들에서 ‘성차’는 의심되거나 질문되는 문제이기보다 본질적이고 이분화한 이해를 적극 수용하고 강화하는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작년에 논란이 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만든 청소년 자살예방 교육용 동영상은 그 단적인 사례다. ‘나 죽고 싶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물속 추워. 너 추운 거 싫어하잖아. 그리고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가 퉁퉁 불어 진짜 안 예쁘대.’라고 말하는 소녀들의 대화는 자살 고민 앞에서도 여성은 외모에 대한 자기관리가 우선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처럼 학교 정신건강 관리체계는 성차와 성평등에 대한 특정한 인식과 실천을 제안하고 있으며 틀을 짓고 있다. 여기서 성차는 종종 은폐되거나 ‘남학생의 위기’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남성 신체를 노골적인 정상성의 대표 모델로 삼는 과거의 몸 인식과는 달리, <특성검사>는 겉으로는 젠더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특성검사>에 포함된 다양한 정서행동 문제의 개별 사안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ADHD와 같은 문제행동은 전형적으로 남학생과 관련이 깊다고 인식되고, 우울이나 자살과 같은 경우 여학생과 더 깊이 관련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사안의 가시성으로 인해 ADHD의 심각성은 더 왜곡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남학생들의 위기를 증거하는 내용으로도 활용되고, 때로는 ‘그래서 남학생의 기질과 본능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 이러한 내용과 주장 모두 막상 ADHD의 이해와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우울과 불안은 비가시적인 편이라, 교사나 학부모의 인지 대응력을 낮추기도 한다. 현재 20대 여성들의 우울과 자살이 큰 사회 이슈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학창 시절일 때 <특성검사>를 통한 사전예방은 왜 불가능했는지 질문을 던져볼 만하다.
이전 시기 신체규율이 몸의 물리적인 활동을 강조하고 그 단련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체육교과와 관련지어졌다면, 건강의 의미가 변화한 이후 학교에서의 신체규율은 보건교과와 보다 관련지어지고 있다. 다만 학교 보건사업과 교과내용 모두 ‘안전’이 주 프레임이라는 점이 성별화된 신체를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위기를 촉발하는 위험 요소가 개인의 기질이라고 이해되는 인식의 틀 속에서, 안전은 적극적인 자기관리 속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 왜 성교육, 성평등 교육이 자꾸 자기관리의 노하우로 축소되어 이해, 유통되는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이런 인식 및 규율 체계와 무관할 수 없다.
‘순결교육’이 성교육의 일부로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는 여성의 몸을 위험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전통적 성차별 인식의 잔존 때문만이 아니다. 새롭게 강화된 성에 대한 자기관리 규율체계와도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 되지 않기’와 같은 성폭력 예방교육 지침은 전통적 의미의 성차별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몸을 개인의 자원으로 생각하는 흐름 위에서 위험에 대한 자기관리 노하우 측면으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별 고정관념 위주로 성에 대한 인식을 평가할 경우, ‘나’ 개인의 생각만 바꾸면 나는 언제든 경쟁력 있는 젠틀맨이나 원더우먼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성별 고정관념은 사라져도 그 자체가 성평등한 사회나 공동체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특성검사>처럼 학교에서 실시되는 각종 검사와 예방교육 더 나아가 학교폭력 처리 과정 및 학생인권 규정과 처리 절차들을 포함한 잠재적 교육과정은 지금 우리의 성에 대한 인식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학교는 어떤 몸을 가진 시민을 정상으로 양성해왔는가?’ 이와 같은 질문이 성에 대한 직접적 교육 내용을 넘어선 곳에서도 제기되어야 한다.
학교는 항상 우리가 몸을 어떻게 인식하고 가꾸어야 할지를 젠더화된 시민성의 규범과 연관 지어 가르쳐왔다. 페미니즘 교육은 학교 교육이 수행하고 있는 이러한 체계적 경향과 조건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본 글은 엄혜진·김서화(2020), “시장화된 공교육과 ‘성평등’: 가해자/피해자, 정상군/관심군, 그리고 수컷/암컷 이분법에 기반한 시민성 개발“, 『한국여성학』 제36권 2호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김서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및 동국대 강사.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아들의 성적대화>(2018)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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