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1kg당 천원’ EU 플라스틱세를 소개합니다[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재활용 안 되는 플라스틱 얼마나 줄일까‘환경세’라고 들어보았지요? 국제사회에서 주로 Environmental Tax, Ecotax, Green Tax라고 불리는데, ‘어떤 행위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생된 환경오염 피해를 근거로 징수하는 조세’입니다.
영국은 1993년 연료세를 단계별로 올리는 ‘연료 가격 상승제’(Fuel Price Escalator)를 도입했는데, 당시 전국적인 파업으로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죠. 1996년부터 꾸준히 시행한 ‘매립세’는 실제 매립되는 쓰레기 양을 2001년 5천만 톤에서 2015년 4분의 1 수준인 1천2백만 톤으로 감축시킨 효과를 냈습니다.
스웨덴은 산성비 및 호흡기 질환과 관련이 깊은 질소 배출에 1992년부터 세금을 부과해서 즉각적으로 30-40% 배출량 절감 효과를 냈어요. 이후 제도를 점차 발전시켜서 배출량이 줄어든 공장에 세금을 환급해주기도 했죠.
한국의 경우, 1994년에 기존 교통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 명목으로 교통세를 도입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이를 에너지, 환경, 지역균형발전 분야까지 포괄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로 확대 개편한 바 있지요. 휘발유와 경유차 이용자들이 많이 부담하도록 되어있어 환경세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전체 국세 대비 5%에 해당하는 총 14.6조 원이 ‘교통·에너지·환경세’로 징수되었습니다.
유럽연합 총 환경세에서 나오는 수입이 2002년 약 2천6백억 유로에서 2017년 3천3백억 유로(한화로 446조 원)로 늘 만큼, 환경세의 종류 및 범위는 늘고 있어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가 심각해져 가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유럽연합 플라스틱세 도입, 폐기물 감량하도록 회원국 압박
환경세를 도입하기 시작한 지 30여년이 지난 유럽에서 최근 또 하나의 환경세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플라스틱세’(Plastic Tax)인데요, 유럽연합 차원에서 각 회원국에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 1킬로그램당 0.8유로(한화 약 1천원)’를 부과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플라스틱세, 과연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유럽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이 제도가 각 회원국이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데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 1킬로당 0.8유로’라는 큰 틀의 규칙은 정해졌고, 최대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을 운영할 것인가는 각 회원국에 재량에 맡겨져 있어요. 다양한 정책 디자인이 나오겠지요.
예를 들어, 기업들이 플라스틱은 아니지만 또다른 재활용이 어려운 재료로 급선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 배출량이 일정기간 넘도록 줄지 않은 제조업체에게는 누진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가능하겠고요. 한편, 슈퍼마켓에서 비닐봉투 판매 자체를 금지하거나 일회용기를 사용한 테이크아웃에 세금을 매긴다면,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즉각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유럽 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 배경에는 나날이 늘어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된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코로나 위기가 제도 시행을 앞당겼다는 평가가 많이 들리네요. 유럽 연합에서 코로나 회복기금을 비롯한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이 시급했는데, 명분이 이미 확보되어 있는 플라스틱세가 수입원으로 채택됐다는 것이지요. 브렉시트가 가시화되어 영국이 더이상 분담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줄어든 세수를 급히 메꾸려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수 확보’ 노력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들을 더 나은 조세 정책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 EuPC(European Plastics Converters Association)는 플라스틱 폐기물 매립지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플라스틱 포장재 자체에 세금을 매기는 편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제도를 통해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 양을 줄이는, 즉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걷어들인 세금이 관련 연구개발이나 기업 인센티브 등에 쓰여야 하는데, 현 제도는 이런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오네요. 세수 중 매년 60~80억 유로가 유럽연합 일반 예산으로 흘러 들어갈 전망이라는 겁니다.
‘화학적 재활용’ 비중 높지만 친환경성 떨어져
플라스틱을 최대한 재활용해 자원 순환(resource circulation)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모두 공감하시지요? 그런데, 플라스틱 쓰레기는 실제로 어떻게 재활용되는 걸까요? 또 그것들이 다시 우리 일상으로 돌아온다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걸까요? 여기서 에코 소비자로서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현재 상용화된 기술은 크게 기계적(mechanical) 재활용과 화학적(chemical) 재활용으로 나뉩니다. 기계적 재활용에선 플라스틱을 압착하고 분쇄해서 작은 알갱이로 만듭니다. 이 알갱이들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인데, 아직은 이 방법을 도입한 업체가 많지 않습니다. 가공하기 까다롭고 단점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용도에 맞게 재가공하려면 어떤 염료나 첨가제가 들어갔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폐기물의 색깔을 분류하지 않고 가공하면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거무스름한 색으로 나오고요. 더러운 쓰레기를 재료로 하다 보니 고온 세척을 여러 번 해도 악취가 남는 경우가 많다네요. 유럽 식품안전청은 이렇게 재가공된 플라스틱 제품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아 대부분 식품 포장에는 쓸 수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그래도 단점을 잘 극복한다면 기계적 재활용 방식이 화학적 재활용보다 친환경적인데요, 왜 그럴까요?
현재 업계에서 훨씬 많이 쓰이는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고분자 구조인 폴리머 사슬을 전부 쪼개 원유나 가솔린으로 만들고, 이것을 원료로 처음부터 다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것이어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시킵니다. 폐기물이 오염되거나 다른 물질과 많이 섞여 있을 경우, 처리 공정 자체에 드는 에너지도 늘어나죠. 환경공학자들은 화학적으로 분해한 플라스틱(오일, 가스)은 다시 제품으로 가공하기보다 소각시설 등을 운영하는 연료로 소비하는 것이 탄소배출 면에서 낫다고 합니다.
앞서 설명한 플라스틱 재활용의 혼란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개발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 예로 플라스틱 제품들의 생애주기를 더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디지털 추적’ 기술이 있습니다.
작년 독일의 대표 화학기업인 바스프(BASF)와 호주의 블록체인 기술 보유 기업 시큐리티 매터즈(SecurityMatters)가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는데요. 골자는 플라스틱 제품 내부에 바코드를 심어 생산부터 폐기되는 순간까지 데이터베이스에서 모든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해진다면, 어떤 플라스틱 폐기물이 어떻게 분리배출 및 재활용되어야 하는지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플라스틱 자원 순환에 도움이 되겠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 쓰고 물건을 잘 씻어 분리하면 되는 줄만 알았던 플라스틱 재활용. 알면 알수록 복잡하죠? 단지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혁할 것인지, 탄소경제에 실제로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재생 플라스틱의 안전성 기준은 또 누가 어떻게 만들건지도 앞으로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고요.
이러한 과정은 거버넌스(협치)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정부는 관련 정책을 디자인할 때 플라스틱 사용과 탄소배출 두 가지를 모두 절감하는 방향으로 업계를 유도해야 하고, 관련 연구개발을 하는 학계와도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다음 편지는 기후위기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 그 중에서도 비행기와 자동차에 관련해 유럽 및 독일사회가 어떤 정책과 대안을 내놓고 있는지 다룹니다. 전기차나 수소차가 과연 정답일까요?)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 분석 일을 하고 있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으며, 베를린의 녹색정치,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이 기사 좋아요 3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녹색정치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