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커뮤니티에 페미니즘을’ 인디 뮤지션 왁사해치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케이티 크러치필드의 솔로 프로젝트, 왁사해치

블럭 | 기사입력 2021/03/14 [11:31]

‘음악 커뮤니티에 페미니즘을’ 인디 뮤지션 왁사해치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케이티 크러치필드의 솔로 프로젝트, 왁사해치

블럭 | 입력 : 2021/03/14 [11:31]

미국 앨라배마주에 있는 왁사해치 크릭(Waxahatchee Creek)이라는 지명에서 이름을 가져온 ‘왁사해치’(Waxahatchee)는 인디 뮤지션 케이티 크러치필드(Katie Crutchfield)의 솔로 프로젝트 명이다. 지난 해 3월, 왁사해치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Saint Cloud”가 발표됐다. 

 

▲ 왁사해치(Waxahatche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케이티 크러치필드(Katie Crutchfield)이 모습. (Peter Hutchins, 2015)


‘소셜 미디어도 싫고, 아티스트 브랜딩 같은 것도 싫어’

 

미국 리뷰 매거진 피치포크(Pitchfork)와 음악 매거진 롤링스톤(Rolling Stone)의 기사에 따르면 인디 록, 인디 포크에 가까운 이 앨범에는 음악가 본인이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이 앨범은 미 공영 방송 NPR을 포함해 17개의 매체에서 2020년 베스트 앨범으로 꼽혔다. 피치포크를 포함한 네 개의 매체가 2020년 앨범 전체 중에서 이 앨범을 2위로 꼽았다. 영국 신문사인 가디언(The Guardian)과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무려 만점을 줬다.

 

*Waxahatchee - Lilacs (Jimmy Kimmel Live) https://youtube.com/watch?v=oaRNLE1ZnVI

 

“Saint Cloud”는 왁사해치 앨범 중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했다. 빌보드 포크 앨범 차트 2위를 기록한 것뿐 아니라, 얼터너티브 앨범 차트 6위, 인디 앨범 차트 17위까지 오르며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자극적인 전개 없이, 직설적인 언어가 아님에도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놓은 것이 공감을 샀다.

 

▲ 케이티 크러치필드의 솔로 프로젝트, 왁사해치의 Saint Cloud 앨범 커버. 2020


Witches같은 곡을 들어보면, 은유적인 표현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 싶다.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셜 미디어가 싫고, 아티스트의 브랜딩 같은 것도 싫고, 음악 산업이 경쟁 위주로 가서 모두가 치열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왁사해치는 곡 Witches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들과 함께 그저 뛰놀기를 바란다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같은 좌절과 고립감을 느끼는 친구들과 서로 언어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신화는 다른 사람들처럼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신화는 항상 좋은 날씨일 거야

 우리는 바른 방식으로 멍청한 짓을 하고, 그 오래된 사슬의 고리를 헛되이 버려도 소용없어

 Lindsey가 날 조금 믿어주고 있어, 내일 뭐가 생길까? 얻을 건 아무것도 없겠지

 Alison은 그 오래된 사슬의 고리에 대해 항상 심하게 경멸했지”

-왁사해치 Witches 중

 

여기서 등장하는 앨리슨(Alison)은 왁사해치(케이티 크러치필드)의 쌍둥이 자매다. 두 사람은 곡을 함께 쓰며, 앨리슨은 왁사해치의 앨범에 계속 참여해오고 있다. NPR을 비롯한 복수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실제로 같은 공간에서 곡을 쓰진 않고, 서로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과잉 남성성, 전 여친 욕, 호모포비아’ 공연 문화에 분노

 

두 사람은 처음에 페미니스트 펑크 밴드인 PS 엘리엇(P.S. Eliot)을 결성했다. 밴드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했으며, ‘라이엇 걸’(Riot Grrrl, 1990년대 초 여성 인디 펑크, 락 밴드들이 진행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공연함. 음악업계 내에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냄)이라는 페미니스트 펑크 운동이자 장르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 왁사해치(Waxahatchee)는 페미니스트 펑크 밴드들과 함께 ‘라이엇 걸’(Riot Grrrl)이라고 불리는 페미니스트 펑크 운동에 참여했다. (Tim Mosenfelder, Getty Images)


2011년 왁사해치가 SNS에 쓴 글을 보면, 남성 위주의 록 음악 시장과 공연장과 문화에 관한 분노를 읽을 수 있다. 16살이었던 2005년에 펑크 음악 공연을 보러 간 경험이 밴드를 하게 된 시작이었고, 그때의 분노가 여러 음악적 행보로 이어진 것이다.

 

“과잉 남성성, 체육관 반바지, 전 여친 욕, 성차별, 동성애 혐오, 프로틴 쉐이크 하드코어가 여전했다. 내 또래와 공연 보러 온 버밍엄의 모든 애들에게 그게 인기가 있었다. 오늘날 나는 다시 한 번 용서할 수 없는 경험을 증명할 거다. 그 더러운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오늘날까지 우리 커뮤니티에 스며들고 있다.” (왁사해치가 2011년 7월 15일 SNS에 게재한 글 중에서)

 

*P.S. Eliot - We'd Never Agree(audio) https://youtube.com/watch?v=Rejc50Z1vsI

 

내가 여성들과 일하는 이유

 

미국 종합뉴스 매체인 바이스(VICE)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세션과 스태프)가 있으면 보통 여성을 택한다. 나는 미국의 레이디페스트(Ladyfest)를 비롯해 여성과 함께 하는 축제를 많이 해왔다. 뉴욕과 뉴저지에는 여성 에이전시가 있고, 그들을 지원하려고 한다. 우리가 속한 신(scene)은 (각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고, 우리 커뮤니티에는 많은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밴드와 투어 멤버 중에 남성이 없는 이유에 대해 ‘끔직한 경험들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여성들과 함께하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고,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으며, 다시 (남성들과 작업했던 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axahatchee - Fire https://youtube.com/watch?v=cEyYlyRr2_U

 

비슷한 의미로, 볼티모어 선(Baltimore Sun)이라는 지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왁사해치는 “펑크 신에서 소외된 이들이 많았고,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관해 많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슬리터 키니(Sleater-Kinney)와도 투어를 한 적 있는데, 이들은 3인조 여성 록 밴드이며 앞서 말한 ‘라이엇 걸’(Riot Grrrl)에 속하는 페미니스트 펑크 밴드다. 20년 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해 온 밴드와의 투어를 이야기하며, 왁사해치는 전설적인 라이엇 걸 밴드들과 함께 투어를 하는 것이 자신의 최종 꿈이라고 말했다.

 

*Waxahatchee - Full Performance (Live on KEXP) https://youtube.com/watch?v=132nMGtsxCg

 

▲ 왁사해치의 네 번째 앨범 Out in the Storm 커버. 2017


그의 음악이 의미만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다. 음악적 성과도 인정받는다. 가장 최근 작품이 워낙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다섯 장의 앨범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전 작품인 네 번째 앨범 “Out in the Storm” 역시 10개 매체에서 2017년의 앨범 중 하나로 꼽혔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 온라인 매거진 업록스(Uproxx)는 2017년의 록 앨범 1위로 꼽기도 했다. “Saint Cloud”보다는 조금 더 록 색채가 강한 이 앨범은 왁사해치의 폭넓고 탄탄한 음악적 기반을 증명한다.

 

왁사해치는 느슨한 형태의 자매애로 쌍둥이 동생과 함께 곡을 쓰고, 페미니스트 펑크 운동에 가담하며, 여성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고 지지해온 이들과 동지애, 연대의식으로 뭉쳐 있다. 그의 음악은 은유적이면서도 직설적인, 그래서 음악을 듣는 여성들에게 더 힘을 주는 음악이다.

 

첫 앨범부터 작년에 나온 앨범까지 하나씩 들어보면 극적인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언어가 다듬어지는 과정, 그리고 성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팬으로서 뮤지션의 성장을 함께하는 기쁨이 아니라, 음악시장 안에서의 태도와 윤리, 애정을 표현하고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까지 여러모로 관찰하며 배울 게 많은 음악가다.

 

*Waxahatchee - Can't Do Much https://youtube.com/watch?v=yHuhABPbOaE

 

<참고 기사>

롤링스톤 2018년 10월 15일자 “Katie Crutchfield on the Art of Songwriting” (By Rob Sheffield)

뉴욕타임즈 2012년 8월 30일자 “Twin Rock Dreams Prevail“ (By Jon Caramanica)

피치포크 “Out in the Storm”(2017) 앨범 리뷰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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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스 2021/03/21 [13:42] 수정 | 삭제
  • 연재 잘 보고있습니다. 인디뮤지션을 소개받는 거 좋아요!!
  • ㅎㅗㅎㅗ 2021/03/15 [19:15] 수정 | 삭제
  • 매력적인 뮤지션을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유튜브로 감상 중입니다.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막. 코로나가 빨리 진정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