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국제법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 [위안부 X 국제법] 세미나 연재의 앞선 두 개의 글에서 장수희 선생님이 UN 보고서 읽는 법과 더불어 맥두걸 보고서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해주었다. 평소에 국제법을 포함해서 법이라곤 전혀 접하지 못했던 분들이라도 이전 기사들만 읽어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재밌고 쉬운 글!) 관련 기사: 법알못의 유레카! ‘위안부’ 관련 맥두걸 보고서 읽기 https://ildaro.com/8978
특히 두 번째 글에서는 맥두걸 보고서의 핵심 개념인 ‘성노예’ 개념을 소개했다. 즉, 맥두걸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가해진 행위가 성폭력(sexual violence, including rape)일 뿐 아니라, 노예행위(slavery, including sexual slavery)임을 분명히 했다는 의의가 있다. 관련 기사: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노예범죄에 해당한다 https://ildaro.com/8979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떤 죄목으로 소추할 수 있는지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맥두걸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법상의 어떤 죄로 소추하고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을까? 이 규정들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성폭력이자 노예행위라고 정의한 것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게 이 글에서 다뤄볼 부분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법정에서도 다투기로 결심한 이상, 범죄의 성격을 정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성노예’라는 맥두걸 보고서의 정의는 국제법을 근거로 삼은 소송에서 여러모로 적합하고 유용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좋겠다!)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다양한 층위와 영역에서 여러 용어로 규명하면 안 되고 하나로 통일해야만 한다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여성’이 겪은 전쟁범죄, ‘식민지민’이 겪은 집단학살
맥두걸 보고서는 3장 “성노예와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을 소추하기 위한 국제법적 틀”에서 총 다섯 가지 국제범죄를 제시하고 있다. 인도에 반한 범죄, 노예행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고문, 전쟁범죄가 그것이다.
우선, 전쟁범죄(war crimes)와 집단학살(genocide)을 살펴보자. 맥두걸 보고서가 서두의 “목적과 맥락”에서 언급했듯, 국제법은 오랫동안 젠더 관점을 결여한 채 남성의 경험만을 반영했다. 그래서 강간이나 성노예와 같이 여성이 경험하는 피해는 제대로 국제법상의 범죄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전시 성폭력이 좀처럼 전쟁범죄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나, 집단학살협약(정식명칭은 「집단학살 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서 제노사이드를 정의할 때 ‘민족, 종족, 인종 혹은 종교 집단’을 언급할 뿐 성별은 열거하지 않은 데에서 드러난다.
맥두걸 보고서는 단호하게 특정한 성폭력 행위와 성노예는 전쟁범죄를 구성하며, 집단학살협약에 명시적으로 열거되어 있지 않더라도 성별 역시 보호집단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와 집단학살로 인정받으려면 또 하나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전쟁범죄의 경우,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행위가 국제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적군이나 점령군에 의해 자행되었을 때 제네바협약의 중대한 위반을 구성할 수 있”(맥두걸 보고서 58항, 번역: 조시현, 이하 같다)기 때문이다. 조선인 ‘위안부’들의 당시 국적은 일본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성폭력 행위를 ‘적군이나 점령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국제법이 ‘식민지’라는 상태에 대한 관점을 결여하고 있기에 생기는 문제이다.
제노사이드 범죄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집단학살죄의 주요 요건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보호되는 집단, 즉 민족, 종족, 인종 혹은 종교 집단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려는 범인의 특정한 의도”(맥두걸 보고서 48항)이다. 하지만 식민본국이 식민지민들을 대할 때는 적극적으로 물리적 파괴를 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미 확보된 자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집단학살죄 역시 마찬가지로 식민지배 및 식민지 범죄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법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는 맥두걸 보고서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젠더 관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면서 명료한 논증을 제시한 것에 비해서, 식민지 관점을 구체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예 ‘식민지’라는 단어가 보고서 전체에서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 집단학살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맥두걸 보고서도 결론적으로는 전쟁범죄, 집단학살 모두 성립된다고 적고 있다. 맥두걸 보고서에서 미진했던 논리적 연결고리를 보완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이건 ‘식민지성’을 전면에 제기하면서, 국제법을 포함한 법의 또 다른 편향을 지적하고, 그것을 교정한 새로운 규범을 형성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다음으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ary)와 노예행위(slavery)를 살펴보자. “인종, 종족, 종교, 정치적 또는 다른 이유에 근거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박해를 비롯한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은 인도에 반한 범죄로 소추할 수 있다.”(맥두걸 보고서 38항) 맥두걸 보고서는 ‘성폭력’과 ‘노예행위’ 둘 다 인도에 반한 범죄에 포함된다고 적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예행위’가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는 점은 훨씬 더 이른 시기부터, 명확하게 확립된 국제관습법이라고 볼 수 있다. ‘노예행위와 노예와 유사한 관행’을 금지하는 것이 강행규범(국제법상 강행규범은 그로부터 어떠한 일탈도 허용되지 않으며 그 후에 확립되는 동일한 성질의 일반국제법규에 의해서만 수정될 수 있는 규범)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운용되던 시기에도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상태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소급 적용이 불합리하다’는 반론을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구차한지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또, ‘노예행위’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 전쟁범죄로 기소하는 것 외에 독자적인 죄목으로 삼을 수도 있다. 노예행위를 독자적인 범죄로 기소할 때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와는 달리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으로 행해졌음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와 노예행위의 경우에는 무력충돌과의 연관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맥두걸 보고서는 “인도에 반한 범죄가 대개 무력충돌 상황의 경우에 기소되었지만 어떠한 무력충돌과의 연결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맥두걸 보고서 38항)고 명시했다. 노예범죄의 기소도 “전쟁 시나 평화 시에”(맥두걸 보고서 46항) 가능하다고 했다. 무력충돌 상황이었다는 것이 요건이 되면 식민지성을 규명해야 하는 과제가 따라붙기 마련인데, 인도에 반하는 범죄와 노예행위는 그런 허들도 없는 것이다!
보편적 관할권: 모든 국가의 법원에서 재판할 수 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도에 반한 범죄, 노예행위, 제노사이드, 고문, 전쟁범죄로 소추하면 된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에다가 소장을 제출하면 되는 것일까? 일본의 법원? 한국의 법원? 국제사법재판소(ICJ)?
심지어는 그렇게 할 의무도 있다고 적고 있다. “승계정부를 포함한 국가는 그러한 규범을 위반한 사람들이 처벌받도록 해야 하고, 자국 안에서 소추를 하거나 다른 국가로 소추를 위해 인도하여 재판받도록 보장할 의무를 진다.”(맥두걸 보고서 37항)
참고로 여기서도 ‘성노예’ 개념의 유용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는데, 맥두걸 보고서는 ‘노예행위’의 경우에는 특별히 “어떤 경우에나 모든 국가 또는 비국가 행위자에 대하여 진정한 보편적 관할권을 허용한다”(맥두걸 보고서 46항)고 적고 있다. 애초에 노예행위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의 발전 과정이, 해적들처럼 관할권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들에 대응하는 것과 불가결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의 ‘각하’ 판결, 맥두걸 보고서의 실종
우리가 [위안부 X 국제법] 세미나를 진행하는 기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진행과 겹쳐있었다. 이 소송들은 국제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맥두걸 보고서를 현재의 맥락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독해할 수 있었다.
한국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두 건이고, 그 중 한 건에 대해서는 1심에서 인용 판결을 이끌어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1.8. 선고 2016가합505092 판결) 그러나 다른 한 건에는 각하 판결이 내려졌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4.21. 선고 2016가합580239 판결) 관련 기사: ‘위안부’ 소송,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https://ildaro.com/9016
‘각하’ 판결은 무슨 뜻일까?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소송의 기본적인 요건들을 갖췄는지 검토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것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 내리는 결정이다.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 검토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기각’과는 달리, 본격적인 검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각하 판결의 근거로는 다른 국가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이른바 ‘국가면제’ 법리가 활용되었다. 83면에 이르는 기나긴 길이의 이 판결문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해 보이는데, 다음 필자가 상세하게 다뤄줄 것으로 생각하고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국가면제’ 법리는 맥두걸 보고서의 ‘강행규범 위반에 있어서의 보편적 관할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판결문은 맥두걸 보고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젠더 기반 폭력도, 식민지 범죄도 아니었던 이탈리아의 페리니 사건은 상세하게 소개했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법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맥두걸 보고서를 누락시킨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판결문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사안의 부정의함을 떠올리게 할 만한 그 무엇도 배제하고 싶다’라는 법원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나의 과도한 상상일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의지는 없으면서도, 문제 해결을 향한 사회적 기대에 반하는 판결을 냈다가 비판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소송 적격성을 형식적으로 판단하는 절차 뒤에 숨어버리려고 한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절차와 형식도, 내용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 1857년 드레드 스콧 대 샌포드 사건(Dred Scott v. Sandford)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도망 노예인 스콧이 이제는 자신이 자유인이 되었음을 확인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을 거절했다. ‘노예’는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가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형식적 판단’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군‘위안부’문제 연구소 아카이브814에서 맥두걸 보고서 영문과 한글 번역문을 제공한다. 참고로, An Analysis of the Legal Liability of the Government of Japan for “Comfort Women Stations” established during the Second World War라는 제목의 부록은 별도의 보고서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으니, 부록까지 모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https://archive814.or.kr/Archives/Type/view/13681
[필자 소개: 이은진. 젠더법학 연구자.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 법과 사회의 역동에 관심이 있다. 「낙태죄의 의미 구성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고찰: 포스트식민 법제, 정책, 담론 검토」(2017), 「낙태죄와 재생산 평등권」(2020),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폭력 피해자를 넘어서-평택 기지촌 여성 구술집』(2020)을 썼고, 『평등, 차이, 정의를 그리다: 페미니즘 법이론』(2019)의 공역자로 참여했다. 2018년 9월부터 1년간 일본군‘위안부’연구회 간사로 일했고, 현재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연구활동가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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