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제안합니다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의 룰 대신 찾은 일…다카시마 치아키 씨

샤노 요코 | 기사입력 2021/05/23 [13:07]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제안합니다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의 룰 대신 찾은 일…다카시마 치아키 씨

샤노 요코 | 입력 : 2021/05/23 [13:07]

어느 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라쿠텐도’(樂天堂). ‘콩과 향신료 전문점’이라고 되어 있지만, 한 평 될까 말까 하는 시내 상점가 봉당에서 식품부터 생활잡화, 의류에 소품까지 모든 것을 판다.

 

‘팔리려나…’ 갑자기 흥미가 생긴다. 일본 교토시 사쿄구, 골목에 상점들이 늘어선 한구석에 있는 가게를 찾으니, 얼굴 가득 미소를 띤 다카시마 치아키(高島千晶) 씨가 맞이한다. 

 

▲ 일본 교토에서 ‘콩요리 클럽’과 ‘소일거리 교실’을 운영하는 다카시마 치아키 씨의 모습. 계간 라쿠텐(樂天)통신 편집장이기도 하다. ©촬영: 에리구치 아키코


소비를 부추겨야 생존한다? 양복점을 운영하며 든 회의감

 

지금은 완전히 교토에 뿌리를 내린 치아키 씨이지만,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야마구치현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것이 2003년, 치아키 씨가 마흔 살 때였다.

 

전후 일본, 치아키 씨의 할아버지는 오사카에서 메리야스공장을 설립해 야마구치로 이전했다. 그 뒤를 이은 아버지가 공장경영을 겸해 양복점을 열었다. 처음엔 번성했지만, 거품경제가 붕괴되며 경영이 악화되었다. 아버지는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자신도 현지로 떠났다. 양복점을 물려받은 치아키 씨는 남편과 함께 어떻게든 버티려고 필사적으로 일했다.

 

가게 개업 자금으로 빌린 돈은 1억엔(약 10억원). 매월 100만엔과 이자를 변제하고, 86만엔의 월세와 직원 5명의 월급을 주었다. 즐기며 하던 일이었지만 점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양복점이라는 게 재고와의 싸움이에요. 시즌 초에는 반짝반짝 빛나던 것이 계절이 바뀔 무렵에는 쓰레기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소비를 점점 부추겨야 하죠.”

 

치아키 씨는 육아를 하면서도 비슷한 딜레마를 느끼고 있었다. 그림책을 사주면 아이가 그때는 기뻐한다. 하지만 다 읽으면 또 다른 그림책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림책만이 아니다. 거리에 나가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넘쳐났다. “새 것을 사는 것이 기쁨이 되어선 큰일이겠구나 생각했죠.”

 

콩을 진열한 가게 오픈! 콩요리 클럽을 시작하다

 

양복점 한쪽에서 ‘오가닉(Organic) & 공생’을 내걸고 콩과 향신료(spice)를 취급하는 ‘라쿠텐도’를 시작한 것은, 소비를 부추기고 부추김을 당하는 관계가 아닌 다른 장사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과 빚 메꾸기에 내몰렸을 때, 문득 만든 콩요리가 생각보다 쉽고 맛있게 만들어졌다. 콩은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한다. “돈이 없어도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있는 게 기뻤어요.”

 

▲ 콩은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며, 값이 싸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2001년 남편이 개인파산을 하고, 부부는 두 가게를 접을 결심을 했다. 그러던 가족을 지탱한 것이 이전부터 팔던 ‘콩’이었다. 치아키 씨는 콩과 레시피 세트를 소비자에게 정액으로 매달 보내주는 ‘콩요리 클럽’을 생각해냈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다니며 세계의 콩요리를 조사했다. 멕시코, 이라크, 이탈리아, 아프가니스탄... 고대로부터 콩은 전 세계에서 먹는 재료였고, 인간을 키워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육식용 가축을 먹이기 위해 대량의 곡류를 소비하는 것, 그것이 세계의 식량 격차를 초래해 분쟁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안마를 공부하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으로 교토로 이주한 것은 그 시기였다. 이사하고 사흘째에 다시 ‘라쿠텐도’ 간판을 걸고 현관 앞에 작은 원형 테이블을 놓고서 콩을 진열해 가게를 시작했다. 때는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세계는 긴장감이 높아져 있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아래에도 부엌이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치아키 씨 나름의 ‘반전’(anti-war) 표명이었다.

 

시급은 낮은데 온갖 서비스 요구…다른 일거리는 없을까

 

그로부터 18년. 서두에 적었듯, 지금 라쿠텐도에는 빼곡하게 물건이 진열되어 있다. 몇 년 전, 딸이 유학하던 영국 런던을 방문해 유색인종이 모여 사는 서민의 거리에서 작은 식료잡화점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에 큰 자극을 받았다.

 

“아프리카계, 인도계 같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팔고 싶은 것을 팔아요. 어디든 각각의 손님이 찾아와 번창하고 있더라고요. 손님들과도 대등한 느낌이 들어 굉장히 좋았어요.”

 

그 후에 방문한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가게에 가도 말린 콩이 가득했다.

 

“일본의 편의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시급은 낮은데 고급 호텔급의 서비스를 요구하니 형평이 너무 안 맞죠. 큰 자본의 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저나 가족의 생활에 맞춘 일을 만들면 좋겠다고 확신했습니다.”

 

▲ ‘콩요리 클럽’ 낙천당 인터넷 쇼핑몰의 콩 요리 키트 중. https://rakutendo.com/net-shop


시행착오로부터 얻은 일의 지혜와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싶어서 2011년부터 ‘소일거리 교실’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싱글맘 등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물건 공급처부터 원가계산 방법까지 아낌없이 알려준다.

 

철거 직전이었던 옆의 가게를 사들여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인데, 건물을 살 자금은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누가 안 사실래요?”라고 SNS에 글을 올렸더니 돈을 빌려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SNS는 소일거리의 든든한 응원군이에요.”

 

다카시마 치아키 씨는 현재 소일거리 교실에서 탄생한 ‘양(羊) 상점가’를 운영한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남편 담당이다. “돈이 없다면 지혜를 씁시다”라고 말하는 치아키 씨.

 

그렇다. 그리고 일생과 인생을 스스로의 손으로 되찾자.

 

*‘콩요리 클럽’ 낙천당 홈페이지 rakutendo.com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샤노 요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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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4 [19:08] 수정 | 삭제
  • 몇번이고 보게되는 기사입니다 넘 좋네요
  • ARA 2021/05/25 [12:15] 수정 | 삭제
  • 양복점재고 얘기에 눈물이 찔끔 ㅠㅠ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레몬 2021/05/23 [20:39] 수정 | 삭제
  • 홈페이지 들어가봤는데 콩요리 레시피들이 다양하고 엄청나네요.. 진짜 흥미로운 기사에요 보기만해도 힐링이 되는 거 가틈...나 많이지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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