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교육 더는 못 참아”

청소년들이 말하는 학교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3/11/24 [01:31]

“입시교육 더는 못 참아”

청소년들이 말하는 학교

김이정민 | 입력 : 2003/11/24 [01:31]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다니는 게 아닌, 대학을 목표로만 생활하게 되는 거 같다.”
“하루가 다람쥐통 같다, 우리가 무슨 공부하는 기계도 아니고, 바뀌어 가는 입시제도 때문에 머리만 썩고, 정작 바꾸어야 할 교육정책은 바뀌지 않았는데 교육열만 높아서 지금의 학생들이 그 피해자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다.”

청소년 독립신문 <바이러스> ‘학생의 날 할말은 하자’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청소년들의 학교, 교육제도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의견들이 줄을 잇고 있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청소년 독립신문 <바이러스>는 ‘청소년이 바라는 세상과 학교를 위한 청소년의 10대 요구’를 만들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설문결과를 보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꽉 짜여져있는 시간표, 등교시간’이다. 2위는 ‘용의복장, 두발규정’, 3위는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와 교육과정’, 4위는 ‘학벌 위주 사회현실’을 꼽았다.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은 입시위주 교육현실에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공부에 대한 강요와 과중한 부담을 가장 절실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 9월 열린 제6회 강북청소년 문화축제 <추락>도 그 주제를 '불만 있습니다'로 정해 청소년들이 느끼는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청소년들이 기획자가 되어 직접 만드는 축제를 통해 청소년들은 학교에 대해 갖고 있는 갖가지 '불만'을 그들의 시각과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들의 ‘불만’은 두발제한, 교육제도 문제, 학생인권존중 등 각기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주요한 문제제기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키우는’ 교육이 아닌, 입시만을 위한 주입식 교육현실에 모아졌다.

말뿐인 수행평가, 특기교육

청소년 스스로 교육의 현실, 입시제도의 허술함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는 어떤 교육전문가의 그것보다 실제적이다.

“고등학교 인문계 못 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너무 부담스러워요.”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설아영 학생은 대학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학교교육과 부모님들의 기대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도록 하는 것보다 무조건 대학입시만 통과할 것을 강요하는 교육현실이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수행평가는 폐지하던지. 아니면 수행평가의 참뜻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이런 형식적이고 기준 없는 수행평가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학생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학생 언니나 오빠 있는 애들은 그냥 써달라고 하고 자기가 한 것처럼 대충 만들어 와요. 어디서 베껴 와도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간다고 점수 잘 나오는 게 아니에요.”

시험만이 아닌 평소 다양한 체험학습이나 수업과 연관 있는 과제물들을 통해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애초 수행평가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원칙 없는 평가기준과 교사들의 성의 없는 태도로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획일적인 교육평가 관행을 개선하고자 제시된 수행평가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말뿐인 특기적성 교육으로 특기를 키우기는커녕, 주입식 교육으로 있던 특기도 죽여 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급활동 시간은 말이 학급활동 시간이지, 자습으로 공부를 하게 합니다.”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안정환 학생은 마치 하나의 대안처럼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시도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학교교육이 입시위주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시도들은 별 의미 없이 묻혀버리는 것이다. 입시위주의 교육 풍토 안에서 학생들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여건이 학교 안에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특기 적성을 살리는 교육이란 공허한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특기 역시 점수화되어 성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쟁만 부추기고 있는 격이다.

교육문제는 청소년이 전문가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갑갑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문제의식은 나날이 높아져가고 있다. 수동적인 교육 수혜자가 아닌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 청소년들은 바로 자신들의 문제인 교육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데에 다양한 방식을 통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열린 청소년 행사들을 보면 청소년들의 문제제기도 다양해졌다. 비관자살 학생을 기리는 ‘우리들의 죽음-자살 학생 추모제’가 서울과 광주에서 열렸고, 부천에서는 학생 인권주간을 진행한 바 있다. 안동에서는 ‘내가 바라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1회 밀양 청소년 한마당 ‘뭐꼬?’는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스스로의 공동체를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물론 청소년들의 권리 찾기 움직임은 비단 각각의 행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교육의 주체가 되겠다는 청소년들의 활동과 그 목소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청소년 문제가 바로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그들 입을 통해 가장 생생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소년기를 ‘과도기’로 치부하며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청소년들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귀 기울여 듣고, 진지하게 수렴하는 자세가 요청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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