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깨고, 이데올로기를 수프로 녹여낸 양영희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와 북토크 이야기

박주연 | 기사입력 2022/11/17 [08:37]

금기를 깨고, 이데올로기를 수프로 녹여낸 양영희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와 북토크 이야기

박주연 | 입력 : 2022/11/17 [08:37]

지난 10월 2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화제다. 많은 언론에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올해의 다큐멘터리’로 꼽는 관객들도 늘어나고 있다. 재일코리안 2세인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 대미를 장식하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전작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과 마찬가지로, 감독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작에서 아버지와 북한에 있는 가족들,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선 어머니 강정희 씨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또한 이번 영화에선 재일코리안이 아닌 일본인 한 명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양영희 가족과 한국과의 연결 고리도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작들과 연결되면서도 더 확장되는 양영희 ‘가족관’의 매력이 폭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가족이길래 다큐멘터리를 3편이나, 25년에 걸쳐 만들 수 있는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 답이 궁금하다면 3편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수프와 이데올로기〉 개봉과 함께 출간된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를 읽으면 된다. 책엔 영화 속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카메라 뒤에 서 있던 감독의 진솔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생각도 꾹꾹 담겨있다.

 

▲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표지. 표지에 실린 사진은 1971년 니가타항에서 북송선을 배웅하는 7살의 양영희 모습 ©마음산책

 

‘이카이노 여자들’인 양영희

 

양영희 감독은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현 이쿠노구)에서 살아온 가족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양공선 씨와 어머니 강정희 씨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일본 오사카 본부의 간부였다. 감독은 그런 가족과 함께 “일본인, 통명(일본식 이름)을 쓰는 한국조선인, 본명을 사용하는 한국조선인의 명패가 태연하게 뒤섞여 있던 곳”, “골목을 걷다 보면 오사카 사투리, 한국말 억양의 오사카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자랐다. 그 당시는 “북조선을 믿으면서 조총련을 지지하는 사람이 재일(在日) 사회의 70퍼센트를 넘는다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곳엔 북한으로 ‘귀국’하게 된 양영희 감독의 세 오빠들을 보며 “‘조선에 가서 나라를 위해 힘쓰다니 훌륭하네’라고 울먹이던” ‘야구르트 아줌마’가,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팔면서 “제주도 남자는 못 써, 입만 살았다니까!”라고 일 안 하는 남편을 토로하던 ‘고양이 아줌마’가, 항상 한복 차림으로 다니며 감독의 어머니와 제주 말로 대화를 나누던 ‘비녀 할망’이 있었다. 감독이 “이카이노는 여성들”이라고 회상할 만큼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가혹한 역사가 감춰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이카이노에서 감독은 7살 나이에 세 오빠를 떠나보냈다. 오빠들은 14살, 16살, 18살이었다. 그들은 ‘귀국’사업이라고도 불린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보내졌다. 감독의 부모를 비롯한 많은 “재일코리안들(90퍼센트 이상이 남한 출신자와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의 ‘귀국’을 선택했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던 9만명 이상의 재일코리안이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믿고 북으로” 이주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북으로 간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렇게 오빠들을 잃어버린 감독은 부모와 불화하기 시작한다. “절대적으로 북조선을 지지하는 전체주의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졌고, 조선학교에서 “강요하는 ‘충성심’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나이를 더 먹어 가면서 부모와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20대 후반부턴 독립해 살기 시작했다. “일본에 남은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 뿐”이라는 말 때문에 마지못해 간 집에서의 식사 자리는 결국 아버지와의 말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집안 곳곳의 김일성의 저서, 북조선 혁명문학 시리즈, 김일성과 짐정일의 초상화, 아버지가 김일성 바로 뒤에 자리한 사진 등으로 가득한 집을 바라보며 “마치 집 전체가 저주를 받은 듯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하필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난 건지 내 운명이 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든 양영희

 

그런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것’으로 좋아했던 건 연극이었다. 재일코리안이 중심이 된 극단에서 활동했고, 미디어 관계자들과 교류가 늘어났다. 서른 즈음부턴 라디오 진행도 하고,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카메라와의 관계가 시작됐다. 캠코더를 든 감독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재일, 조국, 조직, 가족”을 향했다.

 

“캠코더라는 장치의 힘을 빌려 속내를 숨긴 관찰자, 인터뷰어, 감독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발을 내디딜 수 있었는지 모른다”는 감독의 고백처럼, 카메라는 감독에게 일생일대의 숙제인 ‘가족과 마주하기’의 실마리가 되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평양에 있는 가족들을 담아냈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속내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건 아니다. 가족이란 존재와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들 셋을 북으로 보내고 평생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은 걸 감내해야 했음에도, 여전히 조국을 향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말들은 좀처럼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독은 카메라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며,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함으로써 자신의 뿌리, 정체성을 알고자 노력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집요하고 끈질기게. 그것은 가족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고자 한 인간 양영희의 욕망이기도 했겠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욕망 혹은 소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개인사로 한정될 수 없는 역사라는 걸 목격했을 때부터.

 

▲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 제주도를 방문한 양영희 감독, 강정희 씨, 아라이 카오루 씨 ©엣나인필름

 

감독의 그런 노력은, 아들 셋을 전부 북한에 보내서 후회하냐는 ‘잔인한’ 질문에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솔직함을 드러낸 아버지의 모습(디어 평양),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카 선화가 카메라를 끄라며 셧다운을 외친 후 조심스레 감독에게 “고모는 지금까지 어떤 연극을 봤어?”라고 묻는 모습(굿바이, 평양), 평생 숨겨온 제주 4.3의 경험을 “제주 아낙들이 많이 죽었어. 학교 운동장에다 강제로 끌어내서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두두두. 끔찍하지”라고 털어놓는 어머니의 모습(수프와 이데올로기)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내고야 만다. 모두가 함께 목격해야 하는 기록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 혹은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경외를 표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작업들 때문에 이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없고, 북한에 모셔진 아버지의 묘지에도 갈 수 없다. 올해 초 돌아가신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다’는 것 또한 언제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의 몫으로 남아선 안 되는 역사의 파편이 여전히 개인에게 남아있다는, 잔인하고도 서글픈 현실 또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금기가 돼요’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양영희 감독은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일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감독은 그것이 “자신을 구하는 방식”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상의 차이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오빠들이 왜 내 곁을 떠났는지, 그들이 지금 어디 있고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순수하고 당연한 질문이 내 안에서 커져갔다.”

 

크나큰 상실감과 질문은 커져 갔지만 답이 아니라 오히려 의문을 키우는 조선학교에서의 학창 시절, 재일코리안 커뮤니티에서의 삶은 감독을 점점 압박했다. 숨 막히는 삶을 살아내며 “나는 나를 언제 표현할 수 있을까?” 기다렸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부터 머릿 속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아둔 장면들을 쓸 수 있는 날을 기다린 감독에게 작품 창작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 11월 3일 저녁, 출판사 마음산책 마음폴짝홀에서 양영희 감독의 북토크 “나는 왜 책을 썼는가”가 열렸다. ©마음산책

 

기록과 창작의 의미는 그 뿐만이 아니다. 북토크에서 재일코리안 3세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독자에게, 양영희 감독은 “그런 고민들이 언젠가 빛이 된다. 고민을 많이 할수록 더 빛날 것이니 고민하는 자신을 격려하라”고 했다. 그리곤 “사람들이 왜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족을 다 털어놓는 작품을 했냐고 묻는데, 나의 가족과 나의 고민을 금기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계속 금기가 돼요. 전 그게 싫어요.”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가 되지 않기 위한 투쟁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이 투쟁은 “나름 할만 하다”며 웃었다. “제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에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소품으로 쓰이는데, 그렇게 한번 선례가 생기면 이후에 하는 사람들한텐 더 쉬워지겠죠. 익숙해지면 되거든요. 익숙해져 버리면 ‘우리가 왜 이걸 금기로 했더라?’가 되는 거에요. 그런 식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나 자신 그리고 나의 가족을 둘러싼 의문을 풀고자 했던 양영희 감독의 과업은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다. 더 놀라운 건, 그 ‘정치적인 것’을 견고한 이데올로기로 결론짓지 않고 다시 ‘개인적인 것’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낯선 일본인 남성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환대하는 어머니의 닭 수프처럼.

 

▲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 닭 수프를 준비 중인 강정희 씨 모습 ©엣나인필름

 

이데올로기, 정치와 역사 때문에 가족을 잃었고, 멀어졌고 또 미워했다. 만날 수도 없게 됐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를 넘어 가족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정말 오랜 시간 가족을 파헤친 감독은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고 밝힌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175쪽~176쪽)

 

작은 친절과 환대가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 많은 것들이 쉽게 ‘정치적’인 것으로 이름 붙여지며 이데올로기로 흡수되어버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정말 무엇을 보고, 해야 하는가? 침묵하지 않고, 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그리고 영화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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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ㅂㅎ 2022/11/23 [11:35] 수정 | 삭제
  • 너무 재밌어요
  • 236 2022/11/22 [14:36] 수정 | 삭제
  • 기록이 “자신을 구하는 방식”이었다는 감독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 moon 2022/11/18 [11:39] 수정 | 삭제
  • 어마하게 어려운 주제들을 수프에 담아낸 이 시대의 감독. 역사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 독자 2022/11/17 [21:43] 수정 | 삭제
  • 역사와 국가와 정치가 배신한 개인들의 삶이 그 개인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은 투쟁이라 할 만하고, 그 투쟁에 우리가 묶여있음을 지각하는 게 중요하다.
  • 솔비 2022/11/17 [13:21] 수정 | 삭제
  • 우연히 디어 평양을 보고 양영희 감독의 용기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던.. 그게 우리의 분단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부작의 대미는 나같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한국에 많이 알려지게 된 것같아 반갑습니다.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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