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휴가, 돌봄휴직은 왜 ‘가족돌봄’에서만 가능한가

비혼여성들이 서로 돌보는 공동체, 가족 정책이 걸림돌

김란이 | 기사입력 2022/11/29 [18:29]

돌봄휴가, 돌봄휴직은 왜 ‘가족돌봄’에서만 가능한가

비혼여성들이 서로 돌보는 공동체, 가족 정책이 걸림돌

김란이 | 입력 : 2022/11/29 [18:29]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전주에서 비혼여성들이 다양한 형태로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주거공동체 비비사회적협동조합에서 2019년 비혼여성아카데미 특강 ‘당신은 누구와 함께 살고 싶습니까?’ 행사를 홍보한 이미지. ⓒ공간비비

 

저는 전주에서 비혼여성들과 다양한 형태로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조합원 김란이입니다.

 

작년 4월, 여성가족부가 ‘2025 세상모든가족함께’라는 슬로건으로 『모든 가족, 모든 가족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며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보고 놀랍고 희망에 찼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민관이 함께해온 10여 년이 넘는 고민과 토론을 뒤로하고 ‘가족’ 정책이 역주행할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발언문을 쓰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1인가구가 아프면 누가 돌보나?

 

저와 동료 비혼여성들은 30대부터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여성으로서 실패자’이거나,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라는 시선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성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때 겪게 될 어려움을 협박처럼 듣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에서 결혼과 출산이 아닌 방식으로, 우리의 안전망을 만들었고, 서로를 응원하고 돌보는 연결고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혼여성, 1인가구의 삶을 20여 년째 살아오고 있습니다.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라 비난 받았던 비혼여성들이 어느덧 부모를 돌보고 있고, 오히려 출산과 혼인으로 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부모를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많은 딸과 아들이 서로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고만 있죠!

 

▲ 2019년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주최로 “비혼여성, 부모돌봄의 경험을 나누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공간비비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에는 비혼여성 3명이 상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0대 후반과 50대라서,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부모님 동반 병원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가끔은 약만 타오면 되는 일도, 혈연가족임을 증명하는 문서와 신분증 지참 없이는 어려운 의료현실도 한몫 합니다. 그래서 주간 회의에서 각자의 부모를 돌보는 일정을 공유합니다. 가능하면 자신의 휴일을 이용하지만, 병원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으므로 최대한 서로의 부모돌봄 일정을 생활공동체의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비단 혈연가족이 아닌, 우리 생활공동체 구성원이나 회원의 돌봄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할 때 시간을 내고, 몸과 맘을 내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입니다.

 

‘돌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간비비와 같은 특수한 회사조직은 대한민국 0.1% 정도일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어떤 조직에서 일하든 가족이나, 파트너,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월차와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다른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결재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것은 또 평가와 임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인지’ 질문을 던질 때를 경험하게 되죠!

 

특히 혈연가족이 아닌 사람을 위해 회사에서 휴가를 받아내거나 휴직을 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남녀고용 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가족돌봄휴직’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가족의 범위가 결혼,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1인가구는 누가 돌봅니까?

 

▲ 2019년 부모돌봄을 하고 있는 비혼여성을 대상으로 자기돌봄 & 치유의 장을 위한 ‘자기돌봄 캠프’를 열었다. 이후 ‘비혼여성 부모돌봄 자조모임’을 만들어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공간비비

 

생활공동체, 돌봄공동체…시민들이 연결될 권리 보장해야

 

우리는 혈연지간이 아닌 다른 비혼여성들과 ‘서로돌봄’을 통해 가족이 해줄 수 없는, 사회와 제도가 해줄 수 없는 삶의 틈새를 메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혈연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돌봄조차 행사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곤 합니다.

 

돌봄이 가장 필요한 때는 아플 때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중 한 명이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아픈 노모와 함께 살고 있고, 다른 혈연가족들은 병간호가 어려운 상황이라, 비비에서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부딪힌 벽은 수술동의서에 법적 가족만 서명을 할 수 있다는 병원 측의 관행이었죠. 병원에 있는 순간순간 의료진에게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혈연가족인지를 묻고 답할 때 ‘실질적 보호자’가 외면당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당혹감과 난처함을 느꼈습니다.

 

입원실에서 혈연가족인 아닌 사람이 환자를 간병하고 있으면, 주변의 이상한 시선과 눈초리들을 받게 됩니다. 가끔은 집요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친구나 선배라고 답변하면, ‘가족이 아니어서 안쓰럽다’거나 ‘가족도 아닌데 애쓴다’며 아픈 사람을 향해 ‘감사해야 한다’는 둥 선 넘는 충고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시민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을 뭔가 문제가 있거나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곧 ‘정상가족’, ‘건강가정’에 대한 통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아픈 순간에도 혈연가족이 함께했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라고 간주하고,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30%가 넘어서고 있는 1인가구들이 아프거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될 때는 누가 그들을 돕습니까?

 

▲ 2019 비혼여성아카데미 특강 ‘당신은 누구와 함께 살고 싶습니까? -가족구성권 운동과 생활동반자등록법의 필요성’ 행사 모습. 강사-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공간비비

 

비비뿐만 아니라 많은 비혼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봄공동체, 생활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1인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존재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결혼 그리고 출산을 통해 가족을 만드는 방식은 정부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없어질 방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돌봄의 공백, 고립과 고독사, 세대 간의 불통 문제를 해결하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제도적 노력 없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법적 ‘가족’의 틀이 아닌, 다른 방식의 협력과 의존을 고민하고 그 결과에 필요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공동체, 돌봄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독립적인 삶은 보장해주면서, 구성원들끼리 상호협력하고 의존할 수 있도록, 그간 가족에 맞춰진 제도적 권리와 의무를 공동체에게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가정기본법에 명시하고 있는 가족의 정의,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사회 기본단위”를 규정하고 있는 3조 1항은 삭제되고 다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오랜 고민과 노력으로 함께 살아가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민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싶습니다.

 

[필자 소개] 김란이. 비혼여성 1인가구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주거공동체 ‘비비사회적협동조합’에서 비전을 갖고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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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을 2022/12/01 [14:58] 수정 | 삭제
  • 1인 가구가 많다고 하면서도 법, 제도들은 여전히 결혼,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는 거 같아요.
  • Waltz 2022/11/30 [18:28] 수정 | 삭제
  • 맞아요. 비혼인 제가 결국 부모 돌봄에 더 책임을 갖게 되더군요. 돌봄이 꼭 고생만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과 시간을 내서 하려고 하는데, 직장다니며 사는데 한계가 있긴 하죠. 지인 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으면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비비사회적협동조합 같은 곳이 전국에 있으면 좋겠네요. 서로 의지가 많이 될 것 같아요.
  • ㅇㅇ 2022/11/30 [11:46] 수정 | 삭제
  •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고요.. 사전에서 선배先輩 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았어요. 꼭 나이와는 관련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먼저 길을 내준 선배 여성들이 있어서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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